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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파74 4/1 147-148면

종교가 공산주의와 평화를 도모함—그 이유는?

종교가 공산주의와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 놀라운가? 당신은 교회가 무신적 공산주의에 대한 방벽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당신은 여러 해 전에 ‘가톨릭’ 교회가 공산주의를 비난하는 강력한 선언을 하였을 때 그러한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언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 제 2차 세계 대전 후에 ‘항가리’와 ‘폴란드’ 등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나라의 ‘가톨릭’ 지도자들은 무신적 정권에 타협을 하였고 충성의 선서를 하였다.

‘가톨릭’ 공직자들이 이것을 승인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항가리’의 대주교 ‘조셉 그레즈’가 소련 수상의 방문을 따뜻이 맞았을 때 ‘가톨릭’ 잡지인 1958년 4월 26일자 「아메리카」지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소련 공산당 제일인자와 ‘가톨릭’의 대주교가 악수하는 것은 불유쾌하고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또한 ‘바티칸’의 ‘오타비아니’ 추기경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새로운 적그리스도에게 손을 내밀며 심지어는 누가 그들과 먼저 악수를 하고 우정의 미소를 교환할 수 있는가를 보기 위하여 경쟁한다.”

그러나 그것은 십여년 전의 ‘가톨릭’의 태도였다. 그 후로 공산주의는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여 왔다. 이것은 공산주의에 대한 ‘가톨릭’의 공적 입장에 영향을 미쳤는가?

참으로 그러하였다! 지금은 심지어 교황까지도 소련의 고위 관리들과 따뜻한 인사와 우정의 미소를 교환한다. 공산주의 국가 원수들이 정기적으로 ‘바티칸’에 나타나 교황을 알현한다. 그리고 2년 전에 대주교 ‘아고스티노 카사롤리’는 1917년 ‘볼세비키’ 혁명 이후 ‘모스크바’를 방문한 ‘바티칸’의 첫 공직자가 되었다. 최근의 ‘바티칸’의 한 간행물은 심지어 중공의 모택동의 교리에서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발견하였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태도의 엄청난 변화에 대하여 보도하면서 1973년 9월 1일자 ‘파나마’ 「스타 앤드 헤럴드」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바티칸’은 공산주의 세계와의 냉전을 그치고 공산 정권과의 공존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이십오년 전에 교황 ‘비오’ 12세는 ‘무신적 공산주의자들’을 축출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교황 ‘바오로’ 6세는 공산국가의 수도에 공사를 파견하고 그러한 정부들과 협정을 맺고 있다.”

지금까지 ‘바티칸’은 두개의 공산국가와 온전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으며 다른 국가들과도 그러한 유대를 맺으려 하고 있다. “가장 큰 공산 국가와 가장 작은 공산 국가—중공과 ‘알바니아’—만이 ‘바티칸’의 모든 제안을 지금까지 일축하여 왔다”고 「뉴욕 타임즈」지는 논평하였다.

그러나 ‘가톨릭’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 공산주의 정권과의 화목을 도모하고 있다. 사실 희랍 정교회는 그들과 손을 맞잡고 일하고 있다. 1971년 2월호 「가톨릭 세계」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루마니아’의 희랍 정교회와 공산주의 정부는 ‘루마니아’의 국가주의적 목표를 조장하는 상호 이익의 사실상의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대통령 ‘니콜라에 체아스쿠’와 총대주교 ‘주스티니안’이 함께 외국인들에게 인사하는 광경은 때때로 외부의 방문자들을 놀라게 한다 ··· 교회와 국가는 교회와 공산국가 사이의 이 이상한 ‘결혼 관계’하에서 번성하고 있다.”

소련에서도 교회와 국가간에 비슷한 우호 관계가 존재한다. 사실 수년 전에 ‘뉴욕’ 주 항소 법원은 ‘모스크바’ 총대주교직과 관련된 사건을 판결하면서 이렇게 결론지었다. “소련의 교회가 공산주의 통치자들에 의하여 이용되는 도구라는 견해만이 가능하다.”

소련의 교회와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기타 정교회들이 세계 교회 협의회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의 영향을 받아 세계 협의회는 “‘마르크스’주의자와 그리스도인 사이의 대화”의 길을 열었다. 그러면 왜 교회들은 무신적 공산주의와 평화를 도모하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종교를 공산주의 정권이 짓밟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들은 양보를 하고 타협을 한다. 예를 들면 침례교는 소련에서 “인정된” 종교이다. 그러나 「뉴욕 타임즈」지 통신원 ‘그로우스’에 의하면 침례교인 자신들도 “침례교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국가의 권위 앞에 너무 무력함을 보였다”고 불평하였다.

‘가톨릭’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파나마’ 「스타 앤드 헤럴드」지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바티칸’ 소식통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교황이 공산주의에 접근하는 것은 현실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의 외교적 솔선 행위는 공산국가에 있는 교회와 6천 5백만으로 추산되는 신도들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현실적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왜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기꺼이 교회와 협상을 하고 그들에게 양보를 하는가? 왜냐 하면 아직도 그들 중 상당수가 종교심이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 말대로 행동할 교회가 존속하도록 허락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지배권을 더 쉽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971년 12월 17일자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지에 다음과 같이 보도된 바와 같다.

“‘쿠바’ 수상 ‘피델 카스트로’는 혁명가로서 자기는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그리스도인들간의 협조가 두터워지는 것을 ‘유익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세상 종교가 공산주의와 평화를 도모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울 것이 없다. 그것은 새삼스러운 전술이 아니다. 여러 차례 교회는 정치적 권세에 몸을 팔았다. 예를 들면 ‘바티칸’은 1933년에 ‘나찌’ 정권과 평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각 ‘가톨릭’ 주교가 취임하기 전에 정부에 “충성의 선서”를 할 것을 요구하는 협약에 조인하였다.

교회가 어느 정도까지 행동할 수 있는가를 암시하여 교황 ‘비오’ 11세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톨릭 교회의 수반은 마귀와 상대하는 것까지 그의 의무로 간주할 것이다. ··· 만일 그것이 인류 가운데서 종교의 권익을 보호 혹은 증진할 것이라는 희망을 지지하는 이치적인 근거만 있다면.”—1943년 2월 21일호 ‘브루클린’ 「이글」지.

성서에서 세상 종교를 “음녀” 곧 ‘땅의 임금들과 음행한’ 음녀로 묘사한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계시 17:1, 2) 교회는 그리스도를 분명히 버렸다. 그분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의 제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선언하셨다. (요한 18:36; 17:16)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과 ‘동침’해 온 종교와의 관련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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