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진상
안정성 없는 시대
● 세계는 1974년 전반기에 유난히 불안정한 기간을 겪었다. ‘프랑스’, ‘캐나다’, ‘서독’, ‘포르투갈’, ‘이스라엘’, ‘이탈리아’ 및 ‘아르헨티나’의 정부에 갑작스레 큰 변화가 일어나 ‘지도력의 위기’를 낳았다. 「뉴욕 타임즈」지에 실린 한 기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역사의 달력에서 또 한 ‘페이지’를 찢어내고 이제 전혀 새롭고 낯선 새로운 ‘페이지’를 시작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불안정성은 경제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질 것이다. 세계 석유가의 폭등, 치솟은 ‘인프레’, 화폐 가치의 불안한 변동으로 인해 경제가 흔들리게 되었다. 많은 나라 사람들은 미래의 재정적 안전에 대해 걱정을 하고 일반적으로 불신감이 팽배해 있다. 미국의 ‘달라’, ‘프랑스’의 ‘프랑’, ‘이탈리아’의 ‘리라’, 일본의 ‘엥’, 영국의 ‘파운드’ 등의 가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류의 난제들이 서로 깊이 연결되고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 경제학들은 해결책이 무엇인가 모르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유럽’ 주재 수석 특파원 ‘레이 비커’ 씨는 이렇게 말하였다. “세계가 오늘날 정치, 경제 및 재정적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사실상 아무도 모른다. 이토록 많은 불가해한 것들이 시장 위에 도사리고 있고 또 시장 작용을 통제하는 요소들 위에 도사리고 있었던 시대는 과거에 없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찾아보더라도 진정한 피난처는 없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우리 시대를 ‘민족들이 혼란한 중에 곤고’한 때라고 예언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시대를 보게 될 참된 추종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셨다.—누가 21:25, 28.
복음 선교를 강조하다
● ‘스위스’의 ‘로산느’에서 7월 16-25일에 세계 선교 국제 회의가 열렸다. 150개국에서 2,700명의 ‘프로테스탄트’ 복음 선교인들이 초청을 받았다. 금년 가을에 ‘로마 가톨릭’ 주교들은 ‘로마’에 모여 “현대 세계의 복음 선교”라는 주제를 토론하게 된다.
복음 선교라는 말은 복음 곧 좋은 소식을 선포한다는 뜻이며, 오늘날은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는 자로 제자를 삼는 것까지도 의미한다.
최근에 교회들이 복음 전도에 역점을 두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왜 그런가? 과거에는 그들이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난 4년 동안에 장로교인들이 약 100,000명이나 떨어져 나간 점에 대하여 말하면서, 미국 장로교 총회 사회자인 ‘클린톤 마아쉬’ 박사는, 감소의 원인은 교회가 사회 개혁에 깊이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는 교인들에게 있다. 그들은 복음 전도를 너무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미국 ‘가톨릭’ 주교들도 비슷한 견해를 나타내었다. “의견서”에서 그들은 “현대 교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적극성, 열정 및 희생정신이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이 없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인정하였다.”고 말하였다.
실상은 종교 지도자 자신들이 복음 전도를 위하여 “적극성, 열정 및 희생 정신”을 나타내지 않았다.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 생활의 일부였다. 208개 나라와 섬에 사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에게 있어서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 교회들이 행한 복음 선교를 위한 강조는 ‘너무 적게, 너무 늦게’ 행한 또 하나의 예이다.
교회 “술집”
● 미국 ‘와싱톤 디시’에 있는 ‘세인트 마크’ 성공회 교회는 “아래집 술집”을 설립하여 맥주, 포도주, 청량음료 등을 예배 후와 저녁 집회 후에 한 시간씩 공급한다. 그 교회 목사는 ‘런던’에 있는 성공회와 ‘벨지움’에 있는 어느 ‘로마 가톨릭’ 교회에 술집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착안하였다고 말하였다.
교인들은 그 술집을 “날개달린 사자”라고 이름지었는데, 최근에 있었던 그 술집의 개점 개념일에는 교인들이 “친애하는 술집, ‘해피 버스 데이’”라는 합창을 함께 불렀다. 교인 한 사람은 그 술집에 대하여 “그것이 교인들의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만일 아래층 술집이 교회 생활의 “중심”이라면, 윗층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궁금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