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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적 불공평—그것이 없어질 때가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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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적 불공평—그것이 없어질 때가 올 것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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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5
파75 5/1 206-212면

인종적 불공평—그것이 없어질 때가 올 것인가?

이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묻는 질문 중 하나이다. 혁명이 그 대답인가? 본 기사는 한 흑인이 어떻게 불공평이 제거될 유일한 성공적인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알려 준다.

갑판에 올라선 나는 희미한 이른 아침 빛 속에서 잠수부들이 ‘캐나다’ 항구의 찬 물속으로 소리없이 들어가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폭발물이 있는지 물에 잠긴 배 부분을 살피고 있었다. 개중에는, 비록 이 배의 폭발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출발을 중단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우리는 아무런 사고 없이 출항하였다. 대부분 흑인 미국인들인 우리들 500여명은 표면상으로는 사탕수수 수확을 거들기 위한 의도하에 ‘쿠바’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정부 지도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다. 수주일 후에 미국 상원의원 한 사람은 의회에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미국 국민들이 우리의 제도와 우리의 정부를 공격하고 파멸시키기 위한 교화와 훈련을 받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이 시간에도 우리의 바로 문턱에서 진행되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가 바로 이러한 책동이 행하여지고 있는 적국 기지이다.”—「의회 기록」, 1970년 3월 16일자.

적어도 나에 관한 한 그 상원의원의 언명은 정확하였다. 나는 고도의 혁명 전술 훈련을 받기 위하여 ‘쿠바’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목표는 미국의 제도에 항거하는 무장 폭동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선상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특히 우리와 함께 승선한 소수의 백인들에게 이렇게 묻곤 하였다. “만일 당신의 친어머니나 아버지가 혁명을 방해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그들을 죽이겠는가?” 주저하는 사람은 훈련을 더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자들로 따로 구별되었다. 그들은 압제자들을 넘어뜨림으로써 대중의 고통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온전히 인식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하였다.

“어쩌면 사람의 정신이 그렇게도 뒤틀릴 수 있을까! 상태가 나쁠지 모르지만 그것이 결코 혁명을 일으킬 이유가 되지 못할텐데” 하고 당신은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진실한 젊은이들은 그렇게 믿지 않는다. 시사 보도가 밝혀 주는 바와 같이 부유한 가정 출신들도 자기들이 믿는 바 불공평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에 가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 그들로 이 제도의 멸망이 불공평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가?

이제 나는 그 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 특히 수백만의 흑인들이 생각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줄로 안다. 나의 생활과 생각이 하나의 좋은 예라고 나는 믿는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성장함

나는 1945년에 남부의 한 벽촌에서 11남매 중의 하나로 태어났다. 우리는 소작농이었다. 내가 살던 최초의 집은 목화 밭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한 통나무 집이었으며,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나는 여러 곳의 그러한 통나무 집에서 생활하였다. 우리는 겨울철에는 벽에 신문지를 발라서 바람을 막고 살았다.

그러나 단순히 가난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백인들도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마음에 손상을 입히는 것은 흑인들에 대한 대우와 태도였다. 우리는 백인 학교, 백인 식당, 백인 화장실 또는 심지어는 백인들과 동일한 수도물을 사용하는 일까지도 금지당하였다. 그리고 “흑인과 개들은 사용을 불허함”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기도 하였다.

그 당시 남부에서는 ‘버스’ 정류장 같은 공공 장소에는 구획이 정해져 있었으며 우리는 ‘버스’의 뒷자리에만 앉아야 하였다. 우리가 만일 앞자리에 있으면 이러한 멸시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하였다. “야, 너희들도 여기는 깜둥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텐데. 빨리 뒤로 꺼져버려.”

나는 14세된 ‘엠메트 틸’이 살해된 때를 기억하는데—그것은 전국적으로 큰 ‘뉴우스’였지만 나의 부모들과 대부분의 남부 흑인들에게는 특이한 점이라고는 그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뿐,—또 하나의 흑인이 백인들에게 살해되었다는—늘 들어오던 이야기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는 ‘탤러햇치’ 강에서 시체로 인양되었는데—보도에 의하면 그가 한 백인 소녀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백인들에게 난폭하게 타살당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죽일 만한 이유가 되는가?

이것은 두려움과 호소조로 할머니가 우리에게 백인들에게 말할 때에는 언제나 발끝을 내려다보고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마님” 등의 공손한 말씨를 사용하고, 억지로라도 미소를 띤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교훈하시던 것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왜 백인들은 우리를 억압하는가? 흑인이라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하고 나는 자문하곤 하였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나의 누나가 천식이 발작하였는데 우리가 일을 해 주던 백인 지주는 그를 의사에게로 데려다 주는 수고를 거절하였다. 보통 나의 부친은 유순한 분이었지만 결사적이 된 나머지 그 지주에게 총을 들이대고 강제로 병원으로 차를 운전하게 하였다. 물론, 아버지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만일 돌아오셨더라면 필경 린치를 당하셨을 것이다. 그는 북부로 도주하셨으며 우리는 다른 군(郡)에 사시는 할머니한테로 이사하였다. 마침내 아버지는 우리에게 사람을 보내 ‘뉴우요오크’ 시에서 아버지와 재결합하게 되었다.

가옥 도장공(塗裝工)과 수위 노릇을 하시는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우리는 ‘브루클린’의 ‘쉽스헤드 베이’의 백인들의 주택가로 이사하였는데, 그곳 학교에서 나는 반 전체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다. 교사는 나를 바보로 간주하려고 했음으로 나는 그렇지 않음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결심하였다.

6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대학 2학년 수준의 독해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나는 비범한 학생들을 위한 특수반에 속하게 되었다. 그 다음 해에 나는 “재능 개발 계획”이라고 불리우는 한 실험 계획에 참가하도록 선택되었다. 나는 욕심껏 여러 가지 흥미와 한없는 정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성악, ‘발레’, ‘저널리즘’ 및 간호법을 공부하였으며, ‘모델’ 학교에도 들어갔다.

고등 학교를 나온 후, 나는 녹음 기술자가 되어 한때는 ‘사이먼 앤드 가푼클’의 ‘폴 사이먼’과 함께 일하였다. 따라서 나는 ‘텔레비젼’ 출연 및 다른 공연을 위하여 다른 도시들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또한 대학 교육을 추구하였다.

혁명가가 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나 자신이 기만의 피해자, 주로 자기 기만의 피해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피부색이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종 차별은 남부에서만 존재한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북부에서도 그것은, 단지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을 뿐, 심각한 상태에 있었다. 나는 ‘버스’의 뒷자리로 쫓겨다니던, 그리고 백인 가정에서, 백인 학교에서, 백인 식당에서 환영받지 못하던 작은 깜둥이 소녀의 영상을 나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노력하였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기억을 되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백인 이웃들 사이에서 ‘아파아트’를 얻기 위하여 부득이 ‘뉴우요오크’ 주 인권 위원회에 호소하면서,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한, 어떤 직업 분야를 염두에 두고 교육을 추구해 가는 동안에도, 문들이 닫혀져 있고 장해물들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하였다. 내가 어떤 직업에 지원하였을 때, 나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회사가 대외적으로 인종 통합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매우 고액의 급료를 주겠다고 제의하던 일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결국 나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으며, 그들에게 그 직업을 사양하겠다고 말하였다.

생각과 견해를 구체화하다

1960년대에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신문의 표제들을 크게 장식하곤 하였다. 1963년 9월 어느 날 아침, 주일 학교 시간에 ‘알라바마’ 주, ‘버밍햄’의 한 교회에서 폭탄이 터졌다. 이에 놀란 수십명의 흑인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어떤 아이들은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네 아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들은 죽어 있었다.—백인들에 의하여 살해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 해 여름, ‘미시시피’에서 3명의 민권 운동가, ‘채니’, ‘슈베르너’ 및 ‘굿맨’이 살해당하였다.

이제 나는 평등권 쟁취를 위한 투쟁에 가담하게 되었다. 나는 ‘CORE’(인종 평등 회의)와 ‘SNCC’(학생 비폭력 협조 위원회)를 위하여 일하였다. 나는 ‘마르틴 루터 킹’ 박사같은 온건한 흑인 지도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렸다. 나는 「할렘 배리 타임즈」지를 위하여 그에 관한 특종 기사를 쓰기도 하였다. 그 역시 한 백인에 의하여 죽임당하였을 때, 다른 많은 흑인들처럼, 나는 이렇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옹호한 비폭력이 무엇을 성취시켰단 말인가?”

나는 흑인의 역사에 관하여 광범위하게 탐독하기 시작하였다. 잔혹한 노예 매매 행위와 흑인을 소유물로서 대하던 일,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어떻게 흑인 가족이 파괴되어 각각 다른 주인에게 팔려 가는 만행이 저질러졌었는지에 관하여도 읽게 되었다. 어떤 노예 소유자들은 건장하고 힘센 남자들을 사용하여 자기 노예 여자들을 사육하고 그리하여 노예 시장에 공급하거나 밭에서 부릴 후손들을 생산케 하였다는 내용을 읽게 된 나는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길이 없었다.

그러한 끔찍한 불공평은 잊어버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어떤 사람들은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망각할 수 없었다. 왜냐 하면 내가 보기에는 비록 노예 제도는 사라졌지만, 그 태도는 아직도 여실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불공평에 격노함

나는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상황을 목격하였다. 흑인들은 별도의 부락을 형성하여 밀집한 가운데, 인종 차별, 경제적인 억압, 불공평, 불량한 주거 시설, 과밀집 상태, 희망이 없는 상태 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장소를, 피압박민, 즉 자유케 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의 식민지라고 보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흑인들은 1776년에 영국의 멍에에 항거한 식민 통치 시대의 미국민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도 그들처럼 어떤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거부당한 사람들인 것이다. 식민 통치 시대의 사람들이 항거한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항거할 차례이다. 이것이 나의 견해였고, 또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그러자 나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자극한 모종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바로 나의 아버지가 살해당하신 것이다. 경찰과 시체 공시소의 사무원은 아무도 피살자의 신원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신원불명으로 다루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원하는 대로 기관을 해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피살자의 신원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아버지의 신분증으로 우리에게 연락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두번, 처음에는 노상에서 ‘칼’에 맞아서 그 다음은 시체 공시소에서 해부되어 죽임을 당하신 것과 같이 느껴졌다. 그들이 마침내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었을 때, 그의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치아와 눈에 묻어 있는 피마저 닦아 주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흑인이고 가난하기 때문에 그러한 모욕적인 처리를 한 것이라는 통절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 대신, 마음 속으로 하나의 맹세를 하였다. 나는 동료 흑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불공평을 타파하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나는 백인들이란 거짓말을 하면서 사는 데 익숙하게 성장해 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압박받는 상태에 대한 책임은 우리 자신의 유전적인 열등성에 있다고 믿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인종 차별 주의가 우리를 억압된 상태에 묶어 두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흑인들은 비폭력 수단을 통하여 이것을 백인들에게 뚜렷이 인식시켜 주려고 노력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만이라도 백인들의 태도에 대한 흥정을 중단하고 압박 그 자체에 대하여 단독적이고도 직접적인 거래를 해야 되겠다고 느꼈다.

나는 ‘블랙 팬더스’(흑표범단) ‘할렘’ 지부에 가입하였다. 그때에는 이미 나는 흑인들 스스로가 무장할 때라는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고 있었다. 1969년 말, 나는 한 흑인 급진주의 신문을 통하여 ‘쿠바’로의 여행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쿠바’는 성공적으로 혁명을 완수하였다고 생각한 나는 그곳에 가서 그들이 어떻게 그 과업을 완수하였는지를 보기를 원하였다. 나는 즉시 지원하였으며, 3개월의 여행에 참가하도록 선발되었다.

혁명가로서의 활약

나는 그때까지 ‘쿠바’는 더럽고 작고 가난에 찌들린 섬나라라고 믿게끔 영향을 받아 왔다. 그러나 내가 받은 인상은 ‘쿠바’야말로 내가 그때까지 보아 온 것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곳 같았다. 우리는 체류 기간이 끝날 무렵, 3주간에 걸쳐서 이 섬을 여행하였으며, 직접 목격한 바에 따라 나는 ‘쿠바’는 쓰레기도, 게으름뱅이도, 창녀도, 술주정군도 또는 직업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청년들도 없는 깨끗한 나라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 할 일이 있는 것같이 보였다.

‘쿠바’의 우리의 수용소 내에서는 모든 것이 군대식으로 운영되었다. 매일 아침 우리는 기상 신호에 맞추어 잠에서 깨었고, 오전 6시경이면 이미 우리는 사탕 수수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은 고되었지만, 나는 규율과 “인민에게 봉사하기 위하여”라는 혁명 구호 아래 일하는 것을 즐겼다. 우리는 월남, ‘아프리카’, 북한 및 소련 등지에서 온 강인한 공산주의자들과 나란히 일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 주었으며, 그리하여 우리 내부에서는 해방을 위한 투쟁에 대한 하나의 국제적인 개념이 자라게 되었다.

저녁이 되면 월남, ‘쿠바’, ‘아프리카’ 기타 등지에서 해방 투쟁에 참가했던 역전의 용사들이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우리는 영화들도 보았으며, 그 중에는 “‘알제리아’의 투쟁”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는 어떻게 ‘모슬렘’ 여인들이 변장을 하고 ‘프랑스’인들을 몰아내는 데 활발하게 참여하였는지를 보여 주었다. 나는 ‘피델 카스트로’의 연설들을 즐겼으며, 그가 일반 민중들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 친화감에 감명을 받았다.

또한 당수 교습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이미 배운 나는 무기에 전념하였다. 나는 사제 수류탄 제조법과 총을 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의 요청으로 ‘쿠바’의 군인 한 사람이 나에게 기관총을 다루는 법을 알려 주었다.

우리의 체류 기간이 끝날 무렵에는 우리가 배운 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데 중점이 두어졌다. 나는 각오와 열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흑인들의 해방, 그리고 세계 전역의 피압박민들의 해방을 구현시키기 위하여 기꺼이 투쟁하다가 죽을 결심이었다.

미국에서의 혁명 활동

1970년 4월에 ‘쿠바’를 출국하기 전에 나는 한 혁명 집단에 의하여 자기들과 함께 일하자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그럴 듯한 직업을 얻어 자신을 위장하고 있다가, 적절한 때가 이르면 연락을 받기로 하였다. 마침내 나는 연락을 받았다. 나의 임무는 군대를 전복하는 것으로, “온갖 수단”을 사용하여 어떤 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흑인 군인들을 포섭하여 혁명 대열에 끼게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당수와 탄약 전문가인 한 흑인 공군 대위가 피부색 때문에 진급이 거절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와 연락을 취하여 회합을 마련하였다. 나는 그의 비위를 맞추어 마침내 그의 우정을 얻기에 이르렀다. 결국 나는 그에게 군대 제도를 파괴하기 위한 흑인 군인 조직을 결성하는 구상을 말해 주었다. 그 다음 수개월간 나는 다수의 젊은이들—적어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목적에 부합한, 모두 훌륭한 교육과 기술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접촉하였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심한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알고 있는 혁명가들은 전략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 때에도 해방 운동에서 기대되는 도덕적인 이상주의에 따라 생활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매우 난잡하였다. 어느 날 저녁, 한 단원이 자기 여자 동료와 관계를 가진 후에, 나에게로 관심을 돌려 왔다. 나는 이것이 혁명이 아니라, 반항으로 보았다.

이러한 일들은 나를 번민케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여전히 현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현 제도가 제거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지만, 우리의 방법에 대해서 회의를 갖기 시작하였다. 이제 나는 숨어서, 새로운 지시를 기다리면서, 체포되는 것을 피하여 이곳저곳으로 전전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불공평을 없애는 다른 방법들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뉴우요오크’ 시의 어느 빈민가에 위치한 한 ‘아파아트’에서 혼자 있을 때, 가장 매력적인 방법으로 나의 관심을 끌게 된 일이 발생하였다.

불공평을 없애는 일—어떻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열어 보니 이 ‘아파아트’까지 5층을 올라온, 거의 6‘피이트’쯤 되는 건장한 흑인 부인이 서 있었다. 그 부인은 뜻깊은 생활을 즐기는 일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나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라는 파란 책을 꺼내들었다. 나는 독서광이었으므로, 그 책을 받았다. 그러자 그 부인은 무료 연구 과정을 설명하고 다시 오겠노라고 하였다. 나는 그에게 이야기한 내용의 뜻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책의 첫 장은 “당신은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나는 흑인들과 모든 피압박민들이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투쟁해 왔지”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두번째 질문은 “당신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이지! 바로 그것이 내가 ‘쿠바’에서 목격한 상태인걸. 의학상의 진보로 사람들은 좋은 건강 속에 더 오래 살 날을 기다리고 있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또 하나의 질문은 이러하였다. “이 세상은 왜 이와 같이 재난으로 가득차 있을까요?” 그 대답으로 나는 “그야 자본주의자들이 모든 것들을 자기들만 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이지” 하고 생각하였다. 그 책에 제시된 다음 질문은 “그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쉬운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것은 이 제도가 멸망되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이 제도는 철저히 썩었다고 생각하였다.

그 첫 항의 마지막 질문은 “우리 생전에 이러한 상태가 호전될 것이라고 믿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읍니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이를 구현하기 위하여 세계 전역에서 혁명 투쟁이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쿠바’는 호전되지 않았는가? 그 나라는 자본주의자들을 등에서 떨쳐버렸다. 흑인들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이처럼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들을 담고 있는 책을 전에는 결코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대답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책의 설명은 어떠한지 빨리 알고 싶었다. 우리가 연구를 진행하여 제 10항에 이르렀을 때 그 내용은 마치 우뢰처럼 나에게 심한 충격을 주었다. 나는 그 내용을 큰 소리로 읽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가운데 예언된 여러 가지 일들은 모두 세계 변동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닥칠 것을 알려 줍니다! 오늘날 성서 예언의 성취로서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우리 시대에 바로 이 전체 악한 제도의 멸망이 닥칠 것을 알려 줍니다. 현 정부들은 제거되고 하나님의 정부가 온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다니엘 2:44; 누가 21:31, 32) 아무 것도 이 변동을 막을 수 없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정부”라고? 하나님께서 정부를 가지고 계신단 말인가?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들은 것은 이것이 생전 처음의 일이었다. 교회에서 내가 들어온 모든 것은 하나님은 창공 어느 곳에 계시며, 그분이 모든 악인들은 지옥불에 태우고 선인들은 모두 천당으로 데려가신다는 내용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책은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의 정부를 멸하려 하심을 말하여 주고 있었다.

그 부인은 나에게 성서를 통하여 그 점을 고려해 보라고 권유하였다. 그는 다니엘 2:44을 펼쳤다.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이것 봐라! 하나님도 현 정부들을 좋아하시지 않는구나.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들을 멸하려 하시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그것을 지나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생각은 억지같이 보였지만 그래도 나의 머리 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 공적은 어디에?

잠시 후 나는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부인이 정부의 앞잡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모험을 피하여 나는 그 다음 날 이사해 버렸다.

비록 나는 군대를 전복하기 위한 활동은 중지하였지만, ‘쿠바’에서 훈련시킬 흑인 청년들을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나의 정부를 세우신다는 말은 나의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을 믿도록 양육받아 왔지만 내가 보아온 일들이 나로 회의론자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교회들은 하나님을 마치 돈만 바라는 분으로 묘사하는 것같았다. 그들은 항상 사람들에게서 돈을 빨아내면서 그들의 압제의 원인에 대하여는 눈을 감기우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그러므로 ‘쿠바’에서 종교가 다소간 탄압을 받는 것도 나를 번민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실제성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기도를 하고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나는 기도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도록 ‘커튼’이 다 가리워졌음을 확인한 다음 무릎을 꿇었다. 나는 이러한 요지로 이야기하였다. “하나님이시여, 당신이 누구이시든, 만일 당신이 아직 살아계신다면, 나를 도와 주십시오. 나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모르고 있읍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내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계신다면, 그것을 내게 내려 주십시오.”

토요일인 바로 다음날 아침, 한 부부가 나의 집을 방문하여 하나님의 정부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바로 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임을 알았다. 그들은 나를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으로 초대하였으며, 그 다음날 나는 참석하였다.

나는 흑인들과 백인들로부터 받은 따뜻한 환영과 그들 사이에 나타난 진정한 우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회의를 품은 나는 다른 왕국회관에도 가 보았다. 그러나 그곳의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증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합과 따뜻함은 내게 아름답게 보였다. 더 나아가서, 그들 사이에서는 자기들의 신념을 위하여는 죽음이라도 불사하려는 언질, 성실성, 의욕 등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나치스’ 독일, ‘말라위’ 및 다른 나라에서 증인들이 어떠한 혹독한 고통을 당하였으며, 어떻게 의로운 원칙으로 자기들이 생각하는 바에 대한 자기들의 충성을 타협하기를 거부하였었는지를 듣게 되었다.

이것은 나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이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배후에서 그들을 분발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나는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떤 민족주의적인 정부가 아님은 분명하였다. 왜냐 하면, 증인들은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멸하실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그들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지도자가 있는 어떤 비밀 조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신민(臣民)이 있는 실제 정부

이 때부터 나는 하나님께서 땅의 신민이 있는 하나의 하늘 정부를 가지고 계신다는 생각을 신중히 고려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이들 증인들이 하나님의 왕국의 땅의 신민이란 말인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정부들을 멸절시키실 때, 새로운 지적 사회를 시작하도록 보존될 사람들은 이들이란 말인가?

이러한 생각은 나의 관심을 끌었으며, 나는 더욱 조사해 보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 예수께서 자기 추종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를 배우던 일이 생각났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왕국, 흠정]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 6:9, 10) 이제, 이 왕국이 신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통치하는 왕이 있는 실제 정부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나에게 밝혀지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왕이며, 사실상 예수께서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자기가 왕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18:36, 37) 나는 또한 성서는 이 통치자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정부, 흠정]를 메었고 ··· 그 정사[정부, 흠정]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리라].”—이사야 9:6, 7.

최선의 헌법

어떤 정부가 실제 정부의 구실을 하려면, 그 신민이 지킬 하나의 헌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하나의 새로운 정부를 계획하면서 우리 혁명가들은 그 법률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기울이곤 하였었다. 이제 나는 성서(聖書)가 실상은 하나님의 정부의 헌법이라는 견해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율법서는 누구를 다스리는가?

나는 성서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대중, 그리스도교국, 역사상 최악의 유혈 전쟁들을 자행해 온 자들, 그리고 자기들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수치스럽게도 소수 집단들을 약탈하고 억눌러온 자들을 다스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참으로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성서야말로 참으로 그들의 헌법, 그들의 율법서인 것이다. 성서의 내용이 그들의 삶의 모든 부면을 다스리고 있다.

성서에는 인종의 우월성에 관한 아무런 가르침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며,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든 면에서 평등하다. 성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차별대우하시지 않고 당신을 두려워하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 주신다”고 하였다. (사도 10:34, 35, 공동 번역) 이러한 것들을 배우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는가를 독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백인 교회들은, 우리 흑인들은 저주받은 인종이고, 그러므로 열등하며, 동물같다고 가르쳐 왔다. 사실상, 우리는 불완전한 꼬리를 가지고 있으며, 인종적으로 우둔하며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는 식의 수많은 신화들이 조작되어 왔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의 도움으로 그러한 비열한 거짓을 벗어 버리고 있는 사람들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웅대한 일인가?

내 말의 뜻을 곡해하지 말라. 내 말은 여호와의 증인들은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나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인종적 우월감을 나타내는 태도의 잔재를 감지하게 되며, 개중에는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긴밀한 교제를 할 때 거북함을 나타내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조심스럽게 미움을 주입시켜 온 이상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마치 유명한 음악 영화 “남태평양”에 나오는 노래 속의 설명과 같다. 그 영화 속에서 인종이 다른 소녀와의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낙담하고 있는 한 젊은 군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미움과 두려움을 그대는 배우는구나; 해가 가고 또 해가 와도 그것을 배워야 하는구나, 그대의 귀여운 작은 귓속에 북소리가 울려오듯이, 두눈이 추하게 만들어졌고, 피부가 다른 빛을 띤 사람들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침을 받았구나. 너무 늦기 전에, 그대의 나이가 여섯, 일곱 또는 여덟이 되기도 전에, 그대의 친척들이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을 미워하라고 주의 깊은 가르침을 그대는 받았구나.”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정부의 헌법에 따라 생활하기 때문에, 지상의 어떠한 사람들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인종적 편견을 벗어버렸다. 그들은 인종에 관계없이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성서가 말한 바와 같이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요한 1서 4:20) 때때로 나는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내가 혁명의 대의를 진척시키기 위하여 주저하지 않고 죽였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인 백인 증인들의 사랑을 경험하고는, 나의 마음은 너무 감동되어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을 흘리곤 한다.

구출은 가까왔다

나는 이제 인간 정부들을 전복시키기 위한 책동에 가담했던 것을 참으로 후회하고 있다. 성서 연구를 통하여 나는 그러한 행위가 무익한 것일뿐 아니라, 로마서 13:1-7의 성서의 말씀을 범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정부 관리도 내 손으로 문제를 저지르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불공평을 없이 해줄 것을 인간 정부에 계속 기대하는 자들은 실망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정부가 멀지 않아 이러한 모든 정부를 “쳐서 멸”할 때 멸망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공산주의 정부들 역시 하나님에 의하여 멸망되도록 계획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비록 그러한 정부들이 대중의 상태를 개선하는 데 많은 일을 해 왔다고 하지만, 인간 통치자들은 모든 사람을 위한 정의를 구현하는 데 무력함을 증명하였을 뿐이다. 사실상, 어떤 공산주의 정부들은 끔찍한 학살을 감행하여 왔다. 게다가, 그러한 정부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병들고, 늙고 또 죽어 간다. 인간 통치자들은 이것을 방지하기 위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방지하실 수 있고 또 하실 것이다! 그분의 말씀은 이렇게 알려 준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인류와] 함께 계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실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처음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계시 21:3, 4, 새번역.

그러므로, 심지어 원수인 사망까지도 포함한 온갖 형태의 압제로부터의 인류의 구출은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압제와 불공평을 뿌리뽑기 위하여 인간의 시도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제 하나님께서 이것을 실현시키실 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서 불공평이 없어질 유일한 참된 희망은 하나님의 왕국에 의한 것뿐이며 그 왕국은 이제 곧 고대하던 이러한 구출을 실현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데 나의 전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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