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결혼 언약에 충성스러우시므로 자비를 보이시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충성스러운 사랑)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세아 2:19, 20.
1. 현 20세기에 간음한 아내에 대한 남편의 행동에 관해 무슨 질문이 일어납니까?
불충실한 아내, 간음을 행한 아내는 본 남편으로부터 자비를 기대할 이유가 없읍니다. 그러한 여자는 남편 아닌 애인들이 자기를 항상 부양해 주리라고 자신있게 기대할 만한 확실한 이유도 없읍니다. 아무리 격정적인 애인이라 할지라도 얼마 동안 성적 만족을 누린 다음에는 그러한 음녀에게 싫증을 느끼고 다른 여자를 찾게 됩니다. 그러한 경우에 그 여자는 어디로 갈 수 있겠읍니까? 결혼 계약에 충실하다면 모름지기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자비를 보여 음란한 아내를 다시 받아들일 것입니까? 현 20세기의 무자비한 세상에서 그러한 일이 얼마나 있겠읍니까?
2. 누구의 생각과 활동이 우리 인간보다 높으며, 그러므로 그분은 자기의 언약 백성을 위하여 기원 전 537년에 무슨 일을 하셨읍니까?
2 그러나 인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생각과 행동이 그렇게 월등한 분은 누구입니까? 그분은 우리 인간 위에 하늘처럼 높은 분입니다. 앞의 말씀을 하신 그분은 자신을 여호와라고 밝히시며, 고대 ‘아모스’의 아들인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렇게 알려 주십니다. (이사야 55:8, 9; 1:1) 여호와께서는 유배당한 자기의 언약 백성이 이교 ‘바벨론’ 땅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중동지방의 땅으로 회복될 것을 예언하시면서 그러한 말씀을 하셨읍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논리와는 반대로 이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기원전 537년에 그러한 회복을 가져다 주셨읍니다.
3. 이 회복은 무슨 문제를 처리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으며, ‘아라비아’의 ‘시내’ 산은 이 일과 무슨 관련이 있었읍니까?
3 유배된 백성이, 70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자기들의 머나먼 고토로 회복된 이 일은 여호와께서 결혼 문제를 친히 해결하신 것과 관련이 있읍니다. 그보다 거의 천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 유배된 백성 곧 고대 ‘이스라엘’ 민족과 결혼을 하셨읍니다. 결혼 장소는 ‘아라비아’ 반도의 서쪽에 위치한 ‘시내’ 산 근처였읍니다. 결혼 쌍방의 중간에 서서 결혼을 주재한 사람은 예언자 ‘모세’였으며,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중보(仲保) 역할을 하였읍니다. 결혼 관계를 지배할 기본적 법규로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선포하셨읍니다. 그 중 첫째 계명은 이러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애굽 20:1-3.
4. 이들 해방된 ‘이스라엘’은 사실상 누구에게 속했으며, 그들은 어떤 관계에 들어가기로 하였으며, 어떻게 그 관계를 맺었읍니까?
4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고대의 ‘애굽’에 부당하게 압제받고 속박되어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해방시킴으로써 이 민족적 “아내”를 자신에게 데려오시고 사셨읍니다. (이사야 63:7-9) 그 “아내”가 하나님께 속한 것은 당연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남편인 소유자로서 이 아내 같은 민족과 함께 결혼 계약을 맺기로 결정하셨읍니다. 그 계약은 하나님의 법전에 기초한 엄숙한 계약이었으며, 그것을 일반적으로 ‘모세’의 율법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자기들의 천적 소유주로 모심으로써 축복과 안전을 얻기 위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혼 관계에 들어갔읍니다. 그들은 그 결혼 계약 곧 ‘모세’의 율법 언약에 충성할 것을 약속하였읍니다. 그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언약 백성이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읍니다.—예레미야 31:31, 32.
5. 부도덕한 세상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무엇에 고착하기가 어려웠으며,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누구의 행로를 예시하였읍니까?
5 ‘바알’과 기타 갖가지 거짓 신들을 섬기는 부도덕한 세상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의 하나님이며 남편인 소유자와의 계약, 곧 결혼 언약에 고착하기가 매우 어려웠읍니다. 그러므로 그 민족은 전반적으로 여호와께 대해 영적 간음을 범하였읍니다. (야고보 4:4) 기원전 997년에 열 두 지파 ‘이스라엘’ 왕국은 둘로 나뉘었읍니다. 열 지파 ‘이스라엘’ 왕국이라고 하는 부분의 음란한 행로는 예언자 ‘호세아’의 아내, ‘고멜’에 의해 예시되었읍니다.
6, 7. (ㄱ) 어떻게 하여 여호와께서는 열 지파 ‘이스라엘’ 왕국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셨읍니까? (ㄴ) ‘이스라엘’ 왕국은 누구를 따르다가 실패하였으며, 누구에게 돌아오고자 할 것입니까?
6 ‘고멜’은 “음행의 아내”가 되었읍니다. 그는 “음행의 자녀”를 가졌읍니다. (호세아 1:1-3, 신세) 이것은 열 지파 ‘이스라엘’ 왕국이 우상 숭배 나라들과 정치적 동맹을 맺은 것을 예시하였읍니다. 아내와 같은 ‘이스라엘’ 나라는 그의 남편인 소유자, 여호와가 아니라 그러한 이교 나라를 의지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가 누린 경제적 번영은 여호와가 아니라 그러한 세속 나라들의 덕택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 나라는 이교 나라들의 신들을 숭배하기 시작하였고, 그의 구속자(救贖者)이시며 남편인 소유자, 여호와와의 결혼 언약을 함부로 범하였읍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간음한 ‘이스라엘’ 왕국에 대해 쟁론 곧 소송을 제기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 언약의 조건에 따라 배도한 ‘이스라엘’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법적 권리와 의무가 있으셨읍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소송을 제기하셨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7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찌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바알’ 우상을 만든]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호세아 2:6-8, 난외주 참조.
8.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누구를 징계하실 목적을 가지셨으며, 그러나 무슨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실 것입니까?
8 이러한 말씀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열 지파 ‘이스라엘’ 왕국 백성을 징계하실 목적을 가지셨읍니다. 이렇게 하여 그 나라 왕의 통치권을 구원하고자 하신 것이 아니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전에 ‘호세아’의 예언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번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호세아 1:4, 5.
9. (ㄱ)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징계 조치로부터 누가 유익을 받을 수 있었읍니까? (ㄴ) 어느 사건 때에 ‘이스라엘’과 여호와 사이의 결혼 언약이 종결되었읍니까?
9 그렇지만, 배도한 나라에 대한 징계 조치로부터 ‘이스라엘’인 개개인 중에는 유익을 받을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예를 들면,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7,000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열왕 상 19:18; 로마 11:1-5)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간과하지 맙시다. 즉, 기원전 740년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되고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로 추방되도록 하셨을 때에 ‘이스라엘’ 전체 민족과의 결혼 언약은 취소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기원전 607년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허락하시고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추방되도록 하셨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열 두 지파 ‘이스라엘’이 천적 남편인 하나님과 결혼 관계에 들어가는 기초였던 ‘모세’의 율법 언약을 폐기하지 않으셨읍니다. 여호와와 전체 ‘이스라엘’ 사이의 법적 결혼 관계는 기원 33년에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말소되었읍니다.—골로새 2:14.
10. ‘이스라엘’ 왕국의 “연애하는 자들”은 어떻게 그를 실망시켰으며, 그러나 누가 여호와의 징계 조치로부터 유익을 받을 수 있었읍니까?
10 열 지파 ‘이스라엘’ 왕국은 자기의 애인이었던 세상 나라들로부터 도움을 구하였지만,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여호와의 때는 그에게 냉정하게 들이닥쳤읍니다. 그가 열렬히 따르던 “연애하는 자들”은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었읍니다. 통과할 수 없는 가시 울타리에 막힌 것처럼 그 왕국은 유익한 도움을 구하지 못하였읍니다. 과거의 애인들은 그들이 원하였어도 ‘이스라엘’에게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없었읍니다.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3년 동안 포위당한 끝에 기원전 740년에 함락되었읍니다.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침입자들의 땅으로 끌려갔읍니다. 그 열 지파 ‘이스라엘’ 왕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땅에 다시 회복되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징계 조치로부터 누가 유익을 받을 수 있었읍니까? ‘앗수르’에 추방당한 사람들 중의 개개인들만이 유익을 받을 수 있었읍니다. 그들은 문제를 회상해 볼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여호와를 천적 남편과 하나님으로 섬기던 때가 얼마나 좋았던가를 회상해 볼 것입니다. 이제야 그들은 어떤 것이 더 좋은가를 깨닫고 ‘바알’ 숭배를 버리고 여호와와의 언약 관계를 다시 갖고자 할 것입니다.
11, 12. ‘앗수르’에 유배되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숭배로 돌아갈 기회를 받았으며, 어떻게 하여 그런 기회가 오게 되었읍니까?
11 ‘앗수르’에 유배되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주신 땅에서 여호와의 숭배를 함께 되찾을 기회가 언제 주어졌읍니까? 처음에, 새로운 세계 강국 하에서, 기원전 537년에 기회가 생겼읍니다. 어떻게 하여 기회가 왔읍니까? 기원전 632년경,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바벨론’ 사람들에게 함락되었으며, ‘바벨론’ 세계 강국은 최상의 지위를 확보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유배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던 ‘앗수르’ 영토는 ‘바벨론’ 제국의 영토가 되었읍니다. 그로부터 약 25년 후에, 그때 배도한 ‘유다’ 왕국에 여호와의 심판이 집행되었읍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과 거기에 있는 숭배의 전이 파괴되도록 하셨읍니다. 다수의 생존한 ‘유대’인들은 ‘바벨론’으로 추방되어서 그전에 ‘앗수르’ 영토로 유배되었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연합하게 되었읍니다.
12 여호와께서는 70년만에 그 고집센 지상의 아내 같은 조직에게 충분한 징계가 주어지도록 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게도 예언된 ‘바사’ 사람 ‘고레스’를 일으키시어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을 무너트리게 하셨읍니다. 그 일이 있은 직후 기원전 537년에 여호와께서는 이 ‘고레스’ 대왕을 감동시켜 회개한 ‘이스라엘’인들을 그리던 고토로 돌아가도록 해방시켜 주게 하셨읍니다.
13. 신명기 24:1-4에 비추어 볼 때에, 왜 이 일은 하나님께서 아내와 같은 언약 백성에게 특이하게 자비를 베푸신 것이라고 할 수 있읍니까?
13 그것은 천적 남편이 자기의 언약 백성, 열 두 지파 ‘이스라엘’에게 특별히 자비를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모세’의 율법 언약에 의하면 그것을 기대할 수 없었읍니다. ‘율법’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그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내었거나 혹시 그를 아내로 취한 후부가 죽었다 하자.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렵혔은즉 그를 내어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찌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케 하지 말찌니라.”—신명 24:1-4.
14. 예레미야 3:1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영구히 이혼할 근거가 있음을 어떻게 말씀하셨읍니까?
14 예언자 ‘예레미야’의 시대에 여호와께서는 ‘유다’ 왕국에서 언약을 파기하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강조하셨읍니다. ‘이스라엘’과 영원히 이혼할 근거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영감을 주시어 이렇게 말하도록 하셨읍니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본부가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않겠느냐? 하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예레미야 3:1.
15. 언제 그리고 어떻게 결혼 관계는 끊어졌으며, 개개인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자비가 어떻게 표현되었읍니까?
15 그러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탁월한 자비가 있으셨기 때문에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된 후 여러 세기 동안 전체 ‘이스라엘’과 자기와의 결혼 언약이 존속하도록 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기원 33년에 그 민족이 메시야 예수를 배척하고 그를 ‘예루살렘’ 성밖에서 사형에 처하게 하였을 때 그 언약은 파괴점에 이르렀읍니다. 그 때에 그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결혼 관계가 끊어졌읍니다. 그 이후의 ‘유대’ 역사는 그 사실을 입증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게도 메시야 예수를 믿는 ‘유대’인 개개인만은 메시야 예수께서 중보 역할을 하신 새 언약 안에서 자신과의 관계를 갱신할 수 있게 하셨읍니다.
16. 왜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그리스도교국과 함께 멸망되는 것을 면하게 되며, 그들 외에 또 누가 여호와의 자비로부터 유익을 받습니까?
16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은 그 새 언약 안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1975년 성년에도 불구하고, 기타 종교 부흥 운동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국은 이 경건치 못한 세상에 임할 “큰 환난”에서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사랑에 찬 자비에 입각하여 영적 ‘이스라엘’의 회개한 남은 자들을 ‘바벨론’적인 그리스도교국으로부터 불러내셨읍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그리스도교국과 함께 멸망되는 것을 면하게 됩니다. (계시 18:4) 그러나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만이 거기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기타 양같은 사람들의 “큰 무리”도 기원 1935년 이래 여호와의 자비로부터 유익을 받았읍니다. 그들은 큰 ‘바벨론’의 모든 부분에서 나와 남은 자와 연합하여 여호와께 전적 헌신을 하였읍니다.—계시 7:9-17; 요한 10:16.
영적 간음에 대한 형벌
17, 18. (ㄱ) 왜 그리스도교국은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됩니까? (ㄴ) 이에 대한 경고로서 여호와께서는 호세아 2:9-13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7 성서의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조직들은 정치인들과 군국주의자들과 벗함으로써 자신을 더럽힌 데 대해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고대 ‘이스라엘’이 아내 같은 그 조직과 천적 남편인 여호와 사이에 맺은 ‘모세’ 율법 언약을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경고로서 여호와께서는 ‘호세아’를 통하여 계속 말씀하셨읍니다.
18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호세아 2:9-13.
19. 율법 언약에 의하면 음란한 나라에 대한 여호와의 의무는 무엇이었읍니까?
19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잊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떠한 대우를 받아야 하였읍니까? ‘이스라엘’과 맺은 결혼 언약에 분명히 나타난 경고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천적 남편인 그분께 불충실하였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결혼상의 축복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음하는 여자, 곧 언약을 파기하고 ‘바알’ 형상을 숭배하며 세상적 애인들과 음란한 관계를 가진 나라에 축복을 줄 의무가 없었읍니다. 여호와께서 그 나라의 도덕적 불성실과 음란성을 폭로하여 그의 세상적 동료들까지도 그를 경멸하도록 하시더라도 정당하였읍니다.
20. 여호와께서는 음란한 민족을 어떻게 수풀같이 만들 것이며, 왜 아무 사람도 그를 여호와의 심판의 손에서 건져 내지 못할 것입니까?
20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거칠은 수풀과 같이, 즉 들짐승으로부터 아무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아무런 안전도 주지 못하는 수풀과 같이 만드실 것입니다. 그 민족은 충실한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스라엘’) 및 ‘야곱’의 아들들인 열두 지파의 족장들로부터 나왔다고 하여 면죄를 주장할 수 없었읍니다. 그러한 인물들과의 혈연적인 관계가 있다고 하여 여호와께서 심판을 내리실 때에 그분의 손에서 구출받을 근거 곧 공로가 되지 않습니다.
21. ‘이스라엘’은 그의 혈연적 계통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맺어진 여호와의 무슨 언약의 성취에 참여하기에 합당치 못하였읍니까?
21 그렇다고 하여 여호와께서 기원전 1943년에 벗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잊으시고 그 언약에 고착하지 않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언약에 대해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으며, 그것을 결코 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란한 ‘이스라엘’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지만 그 언약의 성취에 참여할 자격이 없음을 나타내었읍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세 12:2, 3)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창세 22:17, 18.
22.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을 무너지게 하셨으면서도 왜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씨를 보존하셨으며, 그 씨의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셨읍니까?
22 ‘아브라함’의 씨의 중심 인물인 메시야는 기원전 740년에 ‘사마리아’가 멸망될 때까지도 오시지 않았으며,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던 때까지도 오시지 않았읍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메시야 자손은 그의 육적, 혈연적 계통에서 나와야 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원수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을 무너트리게 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아브라함’의 육적 씨는 보존하셨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지상의 모든 족속을 축복할 메시야가 그 계통에서 나와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마태 1:1-3; 갈라디아 3:8-29) 그렇게 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게도, ‘예루살렘’의 ‘유다’ 왕국이 멸망된 후 70년간 유배되어 있던 동안에 회개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보존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럽게도 충실한 남은 자에게 결혼 언약을 지키셨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전영하는 사람 곧 ‘바벨론’의 정복자 ‘고레스’를 일으키셨읍니다. 이 해방자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씨의 남은 자들을 ‘유다’ 땅으로 회복시키셨읍니다.
23. 여호와께서는 아내와 같은 언약 백성과 화해할 것을 미리 알리기 위하여 호세아 2:14-16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3 그러므로, 자신과 자기의 아내같은 언약 백성과의 이러한 화해를 예언하기 위해서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호세아’에게 영감을 주시어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開諭)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 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히브리’어: ‘이쉬’)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주인(‘바알리’)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호세아 2:14-16, 난외주) 「구역 성서」의 16절을 인용하면 이러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다시는 나를 ‘바알’(주인)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이시’(남편)라 일컬으리[라].”—호세아 2:18; 리이서역; 로더함역.
24. 여호와께서는 “거친 들”에 있는 아내 같은 조직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으며, 그에게 “저의 포도원”을 준다는 말은 무슨 뜻이었읍니까?
24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유배되어 있었을 때에 그들은 마치 “거친 들”에 있는 것 같았읍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게도 회개한 남은 자들을 “개유” 곧 설득시켜 “말로 위로”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징계로써, 예언자 ‘에스겔’과 ‘다니엘’을 통하여 그렇게 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징계받은 조직, 곧 아내 같은 조직에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읍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 조직을 ‘바벨론’의 “거친 들”에서 이끌어 내어 오랫 동안 황폐되어 있던 ‘유다’와 ‘예루살렘’ 땅으로 회복시킬 것을 뜻하였읍니다.
25. 여호와께서 아내 같은 조직에게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신다는 것은 그 조직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25 “‘아골’ 골짜기”라는 여호와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침입해 들어오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의 도시 ‘여리고’를 함락시킨 뒤, 탐욕적인 ‘아간’은 여호와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자기 가족과 함께 돌로 쳐죽임을 당하였읍니다. ‘아간’은 이기적으로 불순종하여 전취물을 감춤으로써 ‘이스라엘’에게 환난을 초래하였읍니다. 적절하게도 ‘아간’이 쳐죽임을 당한 골짜기는 “‘아골’ 골짜기”라고 불리었읍니다. ‘아골’이라는 이름은 “환난”을 뜻합니다. (여호수아 7:10-26) 따라서 여호와께서 아내 같은 조직에게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겠다고 하신 약속은 그 조직이 그 골짜기가 있는 그들의 고토로 회복될 것을 뜻하였읍니다.
26. “거친 들”에 있던 아내 같은 조직은 여호와께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결혼 관계를 새롭게 한다는 어떤 증거를 주셨읍니까?
26 이제 여호와의 아내 같은 조직의 회개한 남은 자들은 어떠하였읍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위로에 대해 “응답” 곧 호응하였읍니까? 성서 역사는 ‘그러하였다!’고 알려 줍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어렸을 때 그 조직은 진정으로 “응답” 곧 반응을 하였읍니다. 그 조직은 하나님과 더불어 ‘모세’의 율법 언약에 들어옴으로써 하나님의 아내 같은 조직이 되라는 여호와의 초대를 받아들였읍니다. 이와 비슷하게, 고대 ‘바벨론’에서 회개한 남은 자들은 ‘이스라엘’과 천적 남편인 여호와 사이에 결혼의 띠를 새롭게 하는 점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였읍니다. 이 결혼 관계를 새롭게 한다는 증거로 여호와께서는 모형적 메시야인 ‘고레스’ 대왕을 사용하시어 충실한 ‘이스라엘’ 남은 자들을 ‘유다’와 ‘예루살렘’ 땅으로 되돌려 보내셨읍니다.
27. 이제 남은 자들은 ‘바알’ 숭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였으며, 아내 같은 조직은 여호와를 “내 남편”이라고 부름으로써 무엇을 나타내었읍니까?
27 여호와의 회복된 언약 백성은 다시는 ‘바알’ 숭배나 기타 우상 숭배로 되돌아 가지 않았읍니다. 회복된 남은 자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땅에서 하나님인 ‘이스라엘’의 천적 남편에 대한 숭배를 열정적으로 회복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군대로부터 구출되었을 때에 그러하였던 것처럼 깊은 감사를 느꼈읍니다. ‘이스라엘’의 천적 남편은 그들에게 더욱 친근하고 친밀하게 보였읍니다. 아내 같은 조직은 자발적으로 여호와를 더욱 친밀하고 애정있는 말로 불렀읍니다. 그러므로 그 조직은 그분을 영적으로 말하여 “내 주인”이라고 하지 않고 “내 남편”이라고 불렀읍니다. 그 조직은 단순히 노예와 같이 그 “주인”에게 소유되었다는 느낌을 갖고 싶지 않았읍니다. 그는 첫 여자 ‘하와’가 남편 ‘아담’의 돕는 자였던 것처럼 돕는 자의 신분을 갖고 싶었읍니다. (창세 2:19-24) 그 모든 것은 참으로 아름다웠읍니다!
28. 고대 하나님의 자비가 나타난 때처럼 오늘날 무엇이 또 아름답습니까?
28 현 20세기에 진행되는 그의 현대적 대응 사건도 역시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결혼 언약에 충실하심으로써 오늘날 자비를 나타내시기 때문에 실로 감탄스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현재 그분의 자비를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