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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의 나라” 안에서 자유를 선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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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의 나라” 안에서 자유를 선포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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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파77 7/15 329-332면

“자유의 나라” 안에서 자유를 선포함

“자유의 나라”—‘타일랜드’라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 나라를 “샴”으로 알고 있으며, 노래 가운데서는 “먼 나라” 중 하나로 불려진다. 이 나라는 행복하고 태평스런 사람들 속에서 여러 가지 매력적인 점들을 찾아 볼 수 있는 아름답고 이국적 향취가 풍기는 나라이다. ‘타일랜드’인들은 자기네 문화를 자랑하며, 또한 “제국주의” 시대에 이웃 나라 대부분이 영국이나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에도 자기들은 결코 다른 나라에 예속된 일이 없었다는 점에 대하여 긍지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비우호적인 세상 가운데서, ‘타일랜드’는 그 나라 전통적인 자유를 보존키 위하여 애쓰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나라 안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자유가 선포되고 있는 중이다. 이 자유에는 압제적인 인간 권위로부터의 자유, 빈곤과 질병 및 사망 자체로부터의 자유가 내포되어 있다! 이 모든 자유에 대한 전망은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대두되었다.—요한 8:32.

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서 알려 주는 강력한 소식이다. 그러나 오랫 동안, 이 진리가 이 “자유의 나라” 특히 대부분의 인구가 불교를 믿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발전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이들 불교 신봉자들은 예수를 죽이기를 원하던 종교적 ‘유대’인들처럼 그렇게 맹렬히 성서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요한 8:36, 37) ‘타이’ 불교도들은 본래 너그러운 기질로 인하여, 자유를 매우 잘 인식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자유를 누리도록 허용하며, 특히 종교 문제에 있어서 그러하다. 그들에게는 “모든 종교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도록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기대되는 바와 같이, ‘타일랜드’에서는 성서 진리를 아주 자유롭게 전할 수 있으며, 많은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되어왔다.

그러면 왜 이 나라에서의 초기 성서 진리에 대한 선포 활동은 발전을 보지 못했는가? 그것은 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환경과 배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러 세기 동안, 그들은 나라들의 분쟁에 말려든 일이 없었다. 그 나라는 세계 대전에도 말려 들지 않았었다. 그들은 수로를 따라서 비옥한 농토에서 거두는 풍부한 쌀과 기타 소출을 누리며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해 왔다. 그들에게는 메시야에 대한 기대도 없으며, 그들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아버지같은 하나님에 대한 개념도 없다. 그들이 공경심을 가지고 부르는 “부처”는 하나님에 관하여 가르치는 일도, 그의 존재를 부인하는 일도 없다. 하나님에 관하여 물어 보면, 그들은 솔직하게 “마이 코에이 키트” 즉 “전혀 생각해 본 일이 없읍니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타일랜드’는 성서 진리에 대해 참으로 ‘멀고 먼 나라’였다.

자유의 선포자들이 ‘타일랜드’에 들어 오다

당신은 사도 ‘바울’과 그의 동반자들이 먼 나라에 진리를 전파하면서 겪은 인내와 믿음에 관하여 흥미있게 읽어 보지 않았는가? 현대 ‘여호와의 증인’들이 처음으로 동남 ‘아시아’에 들어 갔을 때도 그와 비슷하였다.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였지만, 좋은 소식을 선포하고자 하는 긴박감을 가지고 광대한 ‘아시아’ 대륙을 여기 저기 넘나들었다. ‘타일랜드’, ‘인도차이나’, ‘버어마’로 들어갔다가 ‘버어마’를 가로 질러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국적과 용모와 성품들이 달랐지만, 그들을 쉽사리 알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그들 모두는 커다란 가방들을 가지고 다녔다. 그들은 그 가방들이 필요하였다. 이 가방들 속에는 여러 언어로 된 여호와의 자유의 소식이 들어 있는 책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필수품이 보잘 것 없고, ‘콜레라’가 전염되는 속에서 또는 빈대가 들끓는 잠자리에서 잠을 자야 하는 형편에서도 잘 대처해 나아갔다. 그들은 구타를 당하고 강도를 만나고, 심지어 죽도록 방치해 버리는 경우를 당하면서도 계속 전도를 수행해 나아갔다. 그들은 낯선 언어로 인하여 벙어리가 되었지만 견디어냈다.

‘타일랜드’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은 ‘여호와의 증인’은 영국인 ‘클라우드 굿맨’으로서 그는 1931년에 인도로 가던 중이었다. 그는 ‘방콕’에 기항하여 있는 일 주일 동안 사업 구역에 있는 사람들을 방문하고 영어로 된 서적을 많이 전하였다. 약 5년 후, ‘뉴우지일랜드’로부터 ‘프랭크 듀워’가 왔으며, 그는 일년 동안 머물면서 역시 영어로 증거하였다. 그 후 그는 독일로부터 온 ‘빌리 웅글라우베’와 합하게 되었다. 다음에 ‘오스트레일리안’인인 ‘테드 시웰’과 또 한 사람 독일인 ‘쿠르트 그루베르’가 왔는데, ‘그루베르’는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억류를 피하기 위하여 ‘피낭’으로부터 그리로 피신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타이’인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진전도 없었으며, ‘타이’ 언어로 된 성서 서적도 없었다.

그러나 기쁜 일이 있게 되었다! 북부 ‘타일랜드’를 “휩쓸며” 전파하고 있던 ‘쿠르트’와 ‘빌리’가 그들의 큰 가방을 가지고 ‘치앙마이’에 나타났다. 영어로 된 한 권의 서적이 그 도시에 있는 장로교 여학교의 젊고 열성적인 여교장인 ‘촘차이’의 손에 전해졌다. 이것은 마치 성냥불이 마른 불쏘시개 위에 떨어진 것과 같았다. ‘촘차이’와 그의 동료들은 자전거를 타고 이들 “두 증인”을 찾아나섰다. 그들은 곧 그들을 찾아냈으며, 여러 시간을 토론한 끝에, 그들은 삼위일체나 지옥불 교리와 같은 ‘바벨론’적 교리들로부터 해방되었다. 몇 개월 후, ‘촘차이’를 비롯해서 이전에 장로교 신학교 교장이었던 사람을 포함하여 일단의 사람들이 폭포 옆에서 침례를 받았다. ‘촘차이’는 영문 성서 서적들을 ‘타이’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자매는 오늘날까지도 이 봉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전쟁중의 어려움

1941년경, 모두는 좀더 확대된 자유의 사업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제 세계가 전쟁에 말려 들게 되었다. 전쟁 초기에 일본은 ‘타일랜드’를 점령하였다. 먼저 ‘오스트레일리아’인 증인이 4년 동안 억류되었다. 그의 나라가 일본과 전쟁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에 독일인들이 체포되었는데,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신분 때문이었는데, 증인들은 주축국들에 의하여 법률 보호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빌리 웅글라우베’만이 북부 ‘타일랜드’의 산간 벽지에서 “지하”로 들어가 자유롭게 남아 있었으며, 고무적이게도 그는 그 지방의 새로운 증인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촘차이’를 포함하여 얼마의 ‘타이’인 증인들도 체포되었다. 그러나 일본 점령하인데도 불구하고 ‘타이’ 관리들은 그들 의사대로 독일인 및 ‘타이’인 증인들을 석방시켜 주었다.

1947년경, 통신이 재개되었으며, 이 나라에 성서 서적들이 쏟아져 들어왔으며, 처음으로 ‘타이’어 「파수대」지가 등사판으로 나왔는데, 처음에는 매월 평균 200부씩 발행하였다. 그러나 ‘타이’어밖에 모르는 사람들 모두에게는 참으로 가치있는 것이었다! 이제 그 나라에는 다섯 개의 회중에서 호별로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헌신한 증인이 65명 있게 되었다. 그러나 1,500만 인구에 비하여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이제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책이 ‘타이’어로 나오게 되었다.

‘먼 곳’으로부터 온 원숙한 도움

이동하는 충실한 ‘파이오니아’들(전 시간 봉사자들)은 그 나라 전역에 씨 뿌리는 일을 수행해 왔었다. 그러나 이제 다른 종류의 봉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미국 ‘왙취타워 길르앗 성서 학교’에서 선교인들이 도착하여 사람들의 가정에서 성서 연구를 사회하는 방법을 시작하였으며, ‘먼 곳’에서 온 이들 봉사자들은 이 나라 말을 배우게 됨에 따라 그들의 봉사가 더욱 효과적이 되었다. ‘타이’ 본토인 “특별 ‘파이오니아’” 봉사자들이 이 봉사에 그들과 함께 연합하였다. 그리고 때가 되어 지방 감독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개최된 천국 전도 학교는 아주 유용한 목적을 달성하였다. 가외의 선교인들인 ‘필리핀’인들이 그들의 나라에서 직접 ‘타일랜드’로 와서 그 활동에 새로운 영을 더해 주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1967년부터 성서 진리에 대한 선포가 ‘타일랜드’ 내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게 되었다. 증인들은 목적을 가지고 전파하며 기대를 걸었으며, 그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40,000여부 이상의 ‘타이’어로 된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책과 「낙원을 잃은 때부터 낙원을 찾을 때까지」라는 책이 그 나라 전역에 전해졌고, 이제 외국인과 내국인 선교인들이 ‘타이’어로 전파하고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또 하나 유의할 만한 점은 이들 성서 진리를 가르치는 상당 수가 불교의 배경으로부터 이제 전향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듬어 찾’은 데 대하여 보상을 받았다. (사도 17:27) 그들이 비록 여기 하나 저기 하나 흩어져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매우 귀중하였다!

본토 증인들이 분주히 일하다

성서 진리를 받아 들인 이들 첫 성원들 중 하나는 ‘버어마’ 국경 근처에 살던 한 소녀였다. 그는 불교 가정에 태어났으나 창조주에 관하여 알고 싶어하였다. ‘타이’어로 성서와 소책자들이 나옴에 따라, 이 소녀는 자기가 읽은 소식으로 인하여 불이 붙어, 자기가 알게 된 진리의 선포자가 되고자 하였다. 이 소녀는 가족들과 함께 장로 교회에 입교하였었는데, 그는 거기서 “전도사” 교육을 받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거절하는 변명만 듣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주 열성적인 “특별 ‘파이오니아’” 증인이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이미 그 사람이 ‘양의 옷을 입은 이리’라는 경고를 받은 바 있었지만, 그 사람은 성서에 관하여 이야기하므로, 이야기를 듣고 ‘타이’어로 된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한 권을 받았다. 그 증인은 꾸준히 그를 방문했으며, 그리고 그 소녀도 그러기를 원하였으며, 그 증인은 그에게 성서와 좋은 소식의 선포자가 되는 방법에 관하여 가르쳐 주었다. 그 소녀 역시 ‘파이오니아’ 증인이 되었다.

‘방콕’에서, 한 ‘타이’ “파이오니아” 봉사자는 전형적인 열렬한 조상 숭배를 하는 중국인 가정의 한 젊은이를 방문하였다. 그 젊은이 역시 찾고 있는 중이었다. 또 다시 이 사람의 정직한 마음과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와 그 증인의 꾸준한 가르침이 결합하여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다. 대가족으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자유의 부름을 받아 들였으며, “파이오니아” 증인이 되었다.

중부 ‘타일랜드’의 ‘피차누록’에서, 장로 교회의 장로가 되었다가 “전도사”가 된 진실한 사람이 있었다. 분열이 있었고, 그의 교회는 원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는 일요일마다 설교하기 위하여 24‘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계속 자전거를 타고 교회에 나갔다. ‘여호와의 증인’이 그와 접촉하게 되었고 그는 증인들과 진리를 연구하였다. 얼마 안있어 그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는 주말마다 하는 자전거 여행을 계속하였지만, 이제는 성서 진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다. 거짓 종교의 표지가 교회 건물에서 떼어지고, 그 장소는 참다운 성서 연구 중심지가 되었다. 교회 성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들도 그와 함께 연구를 하였으며, 때가 되자 이들 역시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침례를 받았다.

어느 ‘타이’ 증인은 ‘네델란드’에서 성서 소식을 배운 후, ‘네델란드’인인 자기 남편과 함께 본국에 돌아왔다. 그는 ‘피차누록’ 북부 여기 저기에 사는 불교를 믿는 자기 친척들을 방문하였다. 그는 가족의 재연합을 위하여 그들 모두를 방문하였고, 그들에게 성서 진리를 전해 주었으며, ‘피차누록’에 있는 회중 집회에 그들을 동반하였다. 많은 수가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그들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6‘킬로미터’나 되는 험한 여행길을 여러 차례 다녔다. 그들을 위해서 “여호와의 증인은 무엇을 믿는가?”라는 순회 감독자의 연설을 포함한 녹음 ‘테이프’들을 보내 주었다. “파이오니아” 증인들이 그들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즐거움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피로가 가셔 버렸다. 이들 겸손한 사람들은 이미 매 식사시에 기도를 드리고 있었으며, 그들은 녹음 ‘테이프’를 사용하여 열정적으로 그 마을에서 증거하고 있었다. 얼마 후 그 가족의 아버지는 그 때까지 결혼 등록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자기 여덟 자녀들을 데리고 그 자녀들의 어머니와의 합법적인 결혼 수속을 위해 그 지방 관청을 찾아갔다. 그들 모두는 즉시 ‘바벨론’적 종교에서 나왔으며, 흡연을 중지하였다.

‘네델란드’에서 온 그 증인은 그 동안 다른 친척들에게 성서 서적들을 보내 주었다. 그들 또한 관심을 나타내었고 “이사”를 해 왔으며 그들은 첫 집단을 구성할 수 있었다. 사실상, 집을 이사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실제로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대나무와 나뭇잎을 가지고 며칠간 일하면 그들이 살 만한 새로운 훌륭한 집이 되었다!

48‘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회교 가문의 한 젊은이가 ‘타이’어로 된 「낙원을 잃은 때부터 낙원을 찾을 때까지」 한 부를 받았다. 그는 격리된 곳에 있으면서 그 책을 탐독하였다. 그 다음 그는 더 많은 성서 책자들을 구하기 위하여 ‘방콕’으로 여행을 하였으며, 또한 여호와의 백성과 사귀고 훈련을 받고자 하였다. 자기 아내와 농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자 그는 큰 불교도 마을에서 대단한 열성과 담대함을 가지고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이 마을은 법률의 단속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위치해 있는 총격이 일고 ‘마리화나’를 흡연하는 험악한 곳이었다. 거기 있는 한 “불량배”가 그 증인에게 싸움을 걸었지만 이 새로운 증인의 평온한 행동에 감동되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역시 담배를 끊고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에 관하여 증거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그는 그의 이전 “깡패” 친구들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그를 시험하기 위하여, 그들은 그의 물소 떼를 훔쳐 갔으며, 결국에는 그를 쏘아 죽였다. 난폭한 “깡패”들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 다른 증인과 그의 아내 그리고 다른 관심자들은 인근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단 쪽으로 이사하였다. 그들은 함께 언덕 위에 자그마한 왕국회관을 짓고, 그 주위에 그들의 집을 지었다. 이제 그들 모두는 함께 평화스러운 연합을 가질 수 있고 그들의 주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유를 가져오는 일에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오랫 동안 대다수가 불교도인 이곳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데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지만, 꾸준히 일해 온 보람이 나타나고 있다. ‘타일랜드’에는 700명 이상의 열성적인 증인들이 있으며, 지난 2년간 213명이 침례를 받았다. 일반 사람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정중한 정신적 저항감의 부드러운 장벽도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심지어 ‘타일랜드’ 문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 사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물의 제도 내에서 ‘탐 띠 다이 띠’(선을 행하면 선을 받는다)라는 그들의 철학이 통하는 것인지 의아심을 갖게 한다. 진리—성서 진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왕국을 받아 들이는 데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격려하며, 그리하여 그들이 낙원이 된 땅에서 영원한 축복의 전망을 가지고 진정으로 ‘자유케’ 되게 하고 있다.

[329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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