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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78 5/22 15-17면
  • 당신은 혼자있는 시간을 존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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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혼자있는 시간을 존중하는가?
  • 깨어라!—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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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8
깨78 5/22 15-17면

당신은 혼자있는 시간을 존중하는가?

그는 혼자있는 시간을 존중하는 젊은이였다. 그가 수도원의 수행자 혹은 은둔자라는 말은 아니다. 그는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거의 매일 많은 사람과 접촉하였다. 그는 선생이었다. 그에 대하여 알려 주는 기록은 그가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생이었음을 확인해 준다. 그는 한결같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내적인 깊이와 개인적인 자립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 자신만의 시간, 생각하고 회고하고 묵상하고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종교심이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도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잠시 동료 인간들로부터 따로 있는 기회가 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깊은 곳까지 살피고 그의 천적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갔다.

성경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포함한 깊은 내적 자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독방에 오랫 동안 감금되어 있었더라도, 개인적인 특성에 있어서 균형과 자립력을 유지하였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록은 그가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고 알려 준다. “이른 새벽 아직 어두울 때” 그가 “외딴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는 기록도 있다.—누가 5:16; 마가 1:35, 새번역.

이 젊은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 항상 많은 무리가 그를 따랐고 친밀한 동료들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예수께서는 혼자있는 시간을 얼마간 가질 수 있었다.

당신은 “혼자있기 좋아하는 사람”인가?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얼마간 혼자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좋아하는가? 당신은 감정이 혼란되어 있을 때 혼자있고 싶어하는가?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하는가? (시 4:4) 가정내에서 괴로운 일을 경험한 한 젊은 주부가 한동안 몇몇 친구들과의 접촉을 끊었다. 친구들은 이 여인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의 남편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우리 집 사람은 혼자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감정과 생각을 진정시킬 때까지 시간을 주십시오.”

그 주부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있는 시간을 추구한 것은 잘못이었는가? 아니다. 단, 그 혼자있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원한을 자라게 한다든지, 너무 오래 격리되어 비뚤어진 혹은 내향적인 성격이 될 정도라면 그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잠언 18:1) 그러나 혼자있는 얼마 동안 생각과 감정이 건전한 원칙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것은 명료한 생각과 균형잡힌 감정을 가지게 하는 건전한 과정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어느 정도로 혼자있고 싶어하는 사람인가? 때때로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는가? 당신의 양심이 당신을 괴롭힐 경우, 당신은 혼자있는 시간을 가져 정직하게 문제를 직면하고 다음에 그 문제를 시정할 단계를 취할 수 있는가? 당신은 배운 새로운 것을 회상할 때 오는 유익을 얻고 있는가? 당신은 사물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는 노력을 기울이는가? 당신은 건설적인 질문과 문제들에 대해 숙고하기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당신은 혼자서 생각하고 음미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같이 느껴지는가? 그러한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지 않을 것이며, 아마 즐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가능한 한 다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할 것이다. 그들이 어떤 사람에게 말할 수 없을 때에는 혼자 생각할 수 없는 것같이 보일 것이다. 그들은 정신과 마음에 스치는 무엇이든지 말해 버린다. 그러한 사람이 독방에 감금된다면 어떠한 일이 발생하겠는가? 당신이 그러한 경우에 처한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겠는가?

내적 발전

당신이 밤에 잠시 잠에서 깰 때 무엇에 대해 생각하는가? 공상에 잠기는가? 시편 필자 ‘다윗’은 깨어있는 시간으로부터 유익을 얻는 법을 배웠다. “밤마다 내 심장[신장, 신세]이 나를 교훈[시정, 신세]하도다.”—시 16:7.

자기들의 속을 오랫 동안 그리고 깊이 조사하면 마침내 심오한 진리와 의미의 어떤 저장소를 발견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깊이 그리고 꾸준히 “자기 분석을 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견해, 경향, 태도, 감정, 야망, 열망 등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성서를 우리의 지침으로 삼는다면, 그러한 자기 탐색의 결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속에서 발견하는 것의 대부분이 시정되어야 할 것들, 심지어는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대치되어야 할 것들임을 알게 된다. 그러한 탐색으로 우리는 내적으로 그릇, 그것도 매우 공허하고 담긴 것이 별로 없는 그릇과 같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지식과 지혜를 받아들이고, 흡수하고, 소화하고 활용하며 분별력에 있어서 자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지성적인 건축 자료는 자신이 아닌 외부로부터 와야 한다.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리라]”고 영감받은 잠언은 말한다. 「잠언」의 다른 곳에서는 외부 지식의 확실하고 완전한 근원을 이렇게 지적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2:10, 11; 3:5, 6.

사고력을 발전시킴

혼자있는 시간은 생각하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사고력을 발전시키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음악 혹은 체육면에서의 소질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능력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한 능력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사고력도 마찬가지이다. 사고 능력은 우리가 섭취하는 지식과, 경험 및 훈련의 양 만큼만 발전한다.

사고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참으로 정신 노동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특별한 사고 능력, 사람들의 유형을 신빙성있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키기를 원한다고 가정하자. 우선, 우리는 우리가 아는 어떤 사람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 사람을 신체적인 감각으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분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분별력에 사고력이 포함되는가? 아니다.

더우기,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하여 생각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반응은 방해를 시작하지 않는가? 우리가 참으로 생각하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하여 느끼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다시 말하면, 지성적인 평가를 하기 전에 호불호, 존경, 불경, 신임, 불신임 등 감정적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우리가 단순히 그 사람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만 한다고 가정하자. 그 사람의 견해, 태도, 행실, 능력, 소양 등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서 그러한 특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 우리는 그 사람이 특정 환경하에서 어떠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논리적인 예측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 속의 정신적, 감정적, 영적 특성을 평가하는 것은 사고력을 요한다. 우리는 시각, 청각 및 촉각과 같은 단순한 신체적 감각으로 식별할 수 없는 무형적인 것을 다루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감정이 생각을 가장하고 잠입하여 우리의 정신 과정을 이탈시키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마음과 머리의 충돌을 해결함

마음 즉 감정의 본바탕은 머리 즉 지성의 본바탕을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성적인 매력은 건전한 판단, 심지어 양심까지 완전히 흐려놓을 수 있다. 정신이 관능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계획하고, 전략을 세우고 공모하면서 생각을 계속하게 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성서는 이렇게 충고한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무엇보다도 마음을 징계하고 훈련하여 성서의 인도에 호응하게 해야 한다. 영적인 특성을 인식하도록 마음을 가르쳐야 한다. 이러한 특성은 하나님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다. 인간의 마음은 그러한 특성에 이끌려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사람은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창세 1:26) “사랑, 즐거움, 평화, 오래 참음, 친절, 착함, 믿음, 온유, 자제”—이러한 것들이 성경 갈라디아 5:22, 23(신세)에 하나님의 영의 열매로 열거되어 있다.

‘컨코던스’를 사용하여 “사랑,” “즐거움,” “평화” 등의 단어를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 보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분별력을 얻기 위하여 연구와 개인적인 묵상을 하는 것이 참으로 커다란 유익을 준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창조주 자신의 특성을 당신 자신의 특성으로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분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을 본받는 데는 그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기 때문에 연구와 아울러 기도가 영적 분별력을 얻는 과정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이 모든 일에는 얼마의 혼자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있는 시간의 필요성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도록 명령을 받았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모세’를 통하여 전달된 “율법책”에 밀접히 고착하라고 교훈하셨다.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라.][작은 소리로 읽어야 한다, 신세]” (여호수아 1:8) ‘여호수아’는 혼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율법책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보내야 하였다. “그것을 주야로 연구하라”고 표현한 번역판도 있다.

시편 필자 ‘아삽’은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겠다고 결심했다. 「신세계역」은 “나의 영이 주의깊이 탐구할 것이다” 하고 번역하였다.—시 77:6.

“이 일을 깊이 생각하여 힘을 다하시오” 하고 사도 ‘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충고하였다. (디모데 전 4:15, 새번역) 또 그는 “내가 말하는 것을 항상 생각하시오” 하고 기술하였다.—디모데 후 2:7, 신 영어 성서.

이러한 필요한 일들을 하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와 같이 우리의 생활 중에서 혼자있는 시간을 적절한 만큼 가진다면 유익할 것이다. 생각하고, 연구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묵상하기 위하여 혼자있는 시간이라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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