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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78 11월호 8-12면
  • ‘만들어진 만물로써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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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들어진 만물로써 알 수 있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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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8
파78 11월호 8-12면

‘만들어진 만물로써 알 수 있다’

조잡한 석기가 설계자의 존재를 증명한다면, 복잡한 설계를 가진 생물은 현명하고 능력있는 창조주의 존재를 훨씬 더 강력하게 선언하지 않는가?

산에서 돌이 무너져 내릴 때 산기슭에서 돌무더기를 볼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 돌들이 차곡 차곡 쌓여 아름다운 석조 건물을 이룬다면 우리는 눈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집이란 설계와 목적을 가진 활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설계자 없는 설계가 있을 수 없고 지성적인 활동자 없는 목적을 생각할 수 없다. 이 점은 “집마다 지은 이가 있”다고 한 히브리 3:4의 말과 일치한다.

어느 과학자가 땅을 파다가 둥글고 옆으로 길쭉하며 가운데 홈이 파인 매끈한 돌을 발견한다. 그는 그것이 원시인의 작품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막대기에 가죽 끈으로 부착되어 망치나 무기로 사용되었다고 확신한다. 마찬가지로 끝이 날카로운 반반한 돌을 발견하고 그것은 “석기 시대” 사람이 칼이나 깎는 기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임을 확신한다. 화살촉 모양의 날카롭고 조그만 부싯돌을 보고 그것이 화살이나 창끝에 사용되도록 인간에 의해 고안된 것으로 확신한다. 그처럼 목적에 따라 설계된 것들은 우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과학자들은 결론을 내린다.

작품은 그것을 만든 자를 반영한다. 이러한 도구와 무기들은 조잡하다. 그러므로 그것을 만든 자들은 원시인으로 생각된다. 왜냐 하면 원숭이들은 무기를 만들지 못하며 현대인들이 만든 것들은 아주 정교한 설계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과학자는 그 석기가 석기 시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 모습과 두뇌의 능력은 원숭이와 인간 사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므로 그는 어깨가 굽고, 이마가 좁고, 불안정하게 걷고, 털이 많은 원인(猿人)을 상상한다. 그가 만든 것은 원숭이가 짚었을지 모르는 막대기보다는 발전된 목적과 설계를 반영하지만 현대인이 만든 것보다는 훨씬 못한 목적이나 설계를 반영한다. 그 과학자는 기물을 보고 그것을 만든 사람을 상상하며 그 작품을 통해 그의 특성을 판단한다.

그들은 자신의 논리를 포기한다

그러나 문제가 지상의 동식물과 관련되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설계는 설계자를 요한다는 견해와 전혀 다른 견해를 취한다. 아주 간단한 생명체도 거치른 석기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 그렇다. 심지어 단세포 원생 동물도 단순하지 않다. 단세포이지만 척추 동물의 여러 기관이 수행하는 모든 신체 기능을 수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보면 복잡한 유기체이다. 진화론자들은 그러한 복잡한 유기체는 설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에 의해 갑자기 존재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원생 동물이 스스로 생겨날 수 있다면 거치른 석기가 산사태나 급류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은 더 용이한 일일 것이며, 석조 건물이 무너지는 돌에 의해 생겨나는 것은 간단한 일일 것이다!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설계를 가진 창조물들과 관련하여 많은 지성있는 사람들이 목적있는 작품은 지성있는 작자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논리적 법칙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감정적 편견 때문이 아닌가? 성서는 그들의 논리적 법칙에 동의하는 데도 그들은 성서의 그 법칙을 외면하려고 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느니라].” (로마 1:20) 그들은 거치른 석기의 제조자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원생 동물만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지상에 있는 모든 생물의 창조자가 그 우연이라고 선뜻 주장한다! 그들은 이러한 놀라운 설계를 보고도 우주의 위대하신 설계자와 창조주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그러한 몇가지 경이로운 점을 고려해 보자. 맹목적인 우연이 과연 그러한 경이로운 것들이 반영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

우리 발 아래 있는 토양

세째 창조의 날에 여호와께서는 “뭍이 드러나라”고 하셨다. (창세 1:9) 이로 인해 육지 식물을 위한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러한 식물들이 땅에서 번성한다는 것은 토양의 경이이다. 토양? 그것이 경이라고? 그것은 지면에서 일어나는 가장 흔한 일 중의 하나가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토양은 중요한 자원이며, 오늘날 토양의 침식 때문에 생기는 사막 지역이나 확대되는 사막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다. 종종 암석이 비옥한 토양으로 변화하는 데는 수천년이 걸린다. 암석들이 풍화 작용을 겪게 된다. 균류가 자리를 잡고 조류(藻類)를 간직하는 싹을 내게 된다. 그리하여 균류와 조류는 함께 지의(地衣) 식물을 이룬다. 지의류는 암석의 표면에서 자라고 암석을 분해시켜 이끼를 자라게 하는 얇은 토양을 증가시키고, 이끼가 살다가 죽으면 결국 어린 식물이 자라도록 토양을 더 풍부하게 한다. 침식 작용에 의해 이 토양이 이동되어 두껍게 축적되고 거기에서 더 고등 형태의 식물 그리고 결국 나무가 자라게 될 것이다.

식물에서 나무가 떨어지고 죽게 되면 ‘박테리아’가 부패 작용을 일으키고 풍부한 유기질 토양이 생겨난다. 미생물이 이러한 유기 화합물을 분해하여 식물이 필요로 하는 간단한 영양소로 변화시킨다. 단단한 땅에 있어서도 많은 토양은 결코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기, 물 그리고 여러 가지 생물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한 ‘온스’ 즉 약 30‘그램’ 정도의 토양 알맹이의 표면적이 2.4‘헥트아르’가 넘을 수도 있다. 온화한 지역에서는 한 찻숟갈의 토양이 50억개 이상의 생물을 포함할 수 있다! 각각 설계와 목적을 가진 하나의 경이이며 그 모든 것이 “땅이 그 소산을 내”기 전에 필요한 것이다. (에스겔 34:27) 토양은 단순히 발로 밟기 위한 것인가? 토양이 없다면 지상에 생명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항해사들

추운 계절을 피하고 먹이를 찾기 위하여 이주하는 새들이 많다. 그들의 항해술은 경탄할 만하며 아직도 온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북반구에서 추위가 시작될 때 동쪽이나 서쪽이 아니라 남쪽으로 가면 따뜻한 계절과 먹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봄에 돌아 올 때 그들은 북쪽으로 날아갈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들의 피속으로 방출되는 각각 다른 ‘호르몬’에 의해서이다. 일부 새들은 수백 ‘킬로미터’를, 어떤 새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여 6개월 전 그들이 떠난 동일한 장소로 돌아온다. 제비 갈매기와 물떼새는 약 6,400‘킬로미터’ 정도의 일방 여행을 한다. 어린 새들은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한다. 중세까지도 박물학자들은 새들이 이주하는 것을 믿지 않고 봄과 가을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과 관련된 괴상한 설명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리스도 전 7세기에 성서는 이주에 관하여 말하였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느니라].”—예레미야 8:7.

큰 새들에 대해서 이주를 인정한 후에도 박물학자들은 작은 새들이 큰 새의 등에 타고 대양을 건너간다고 주장하였다. 다른 많은 꼬마새들처럼 작은 명금은 자기 힘으로 그렇게 한다. 그 새는 가을에 ‘알래스카’를 떠나 조금씩 ‘뉴우잉글랜드’ 해안으로 이동하면서 적절한 날씨를 기다린다. 그 다음 대서양을 거쳐 3일 내지 5일간 비행하여 남미의 북동 해안에 이르게 된다. 무게 20‘그램’ 정도 되는 새가 여러 날 동안 쉬지도 않고 3,800‘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비행한다! 그 조그마한 새의 머리 속에는 시간을 알리고, 태양의 운동을 계산하고, 별을 이용하고, 이 모든 것을 통해 자신의 방향을 맞추고, 하늘이 흐린 때에도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게 하는 어떤 놀라운 계산기가 들어 있는가? 어느 누가 우연에 의해 이 작은 명금이 창조되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비둘기의 귀환 본능에 대한 연구는 새들에게 다른 유도 장치가 있음을 밝혀 준다. 어두운 상자에 넣어 우회로를 통해 그들의 집에서 96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옮겨다가 풀어 주면 하루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태양이 빛날 때는 그들은 자체 유도 장치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들은 흐린 날이나 밤중에도 돌아올 수 있었다. 그들은 지구의 자장을 감지하고 그것을 유도 장치로 사용한다. 한 떼를 풀어 놓았다. 절반에는 자석을 등에 매달아 놓았더니 지구의 자장을 정확히 알 수 없어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였다. 화창한 날에는 전부가 안전하게 돌아왔다. 그러나 흐린 날에는 자석이 없는 새들은 돌아 왔으나 자석을 매단 새들은 되는 대로 선회하였다. 지구의 자장이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어떤 동물이건 그것을 감지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되었다. 이제 과학자들은 새들만이 아니라 꿀벌도 그 자장에 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최근의 실험에 의하면 일부 달팽이들까지도 그것에 반응을 보이는 것같다.

새들만이 아니라 고래, 바다표범, 거북, 뱀장어, 게, 물고기, 나비, 순록도 이주를 한다. 그러나 일부 잠꾸러기들은 고통스런 겨울을 피하기 위하여 동면을 더 좋아한다. 13개의 줄이 있는 조그마한 다람쥐는 동면하는 동물들에 발생하는 독특한 생리적 변화를 잘 예시하고 있다. 체온은 굴 외부의 추위와 몇도 차이 밖에 없을 정도로 떨어진다. 심장 박동은 일분에 단지 한 두번 있게 된다. 활동적일 때 이 다람쥐는 일분간에 수백번 호흡할 수 있다. 그러나 동면시에는 5분간에 한번 천천히 호흡을 한다. 그러나 피는 계속 산소와 결합되며 별로 사용하지 않는 근육도 건강 상태를 계속 보존하게 된다. 무엇이 가을에 수면을 하고 봄에 깨어나게 하는가? 단순히 날씨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피에 방출된 화학 물질에 의해 그것은 동면을 시작하고 다른 화학 물질에 의해 깨어나게 된다. 그러한 화학 물질을 사용하여 과학자들은 한여름에도 긴 잠에 빠지게 하였다.

그러한 놀라운 일과 관련하여 ‘욥’은 다음과 같은 점을 시인하였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

기타 교묘한 설계

거치른 석기도 우연히 생겨날 수 없음을 기억하라. 다음에 지적할 일이 단지 우연히 생겨날 수 있는가를 결정할 때 비교를 위해서 그 점을 명심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멜레온’이 혀를 몇 ‘인치’ 정도 급히 내밀어 명중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이 동물이 어떻게 그 일을 하는지 아는가? ‘카멜레온’ 입의 뒤에 원추체의 뼈가 수평으로 놓여 있으며 그 뾰족 나온 곳은 앞을 향하고 있다. 그 하부에 길고 움푹 파인 혀가 있다. 길다란 근육이 혀를 조절하며 그 혀는 ‘아코오디언’ 주름 상자와 같이 주름이 잡히고 그 뼈를 중심으로 하여 압착될 수 있다. 그 혀의 끝에는 뼈의 뾰족한 끝에 놓이는 괄약근이 있다. 독립적으로 굴릴 수 있는 ‘카멜레온’의 ‘튜렛’ 눈이 사정거리 내에 있는 곤충을 포착한다. 그 긴 근육이 강력하게 수축되고 뼈 위로 혀가 용수철처럼 압축된다. 그 다음 미끄러운 뼈의 끝을 둘러싼 괄약근이 갑자기 꽉 조여지면서 그 “용수철”을 압착하는 긴 근육이 느슨해지고, 혀는 갑자기 튀어 나온다. 그 곤충은 끈적끈적한 끝에 부착되고, 길고 느슨해진 혀는 서서히 안으로 끌어 당겨진다. 그 동작은 어린 아이가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로부터 서양 오얏씨나 미끄러운 수박씨를 재빨리 튀어나가게 하는 것과 같다. 단지 ‘카멜레온’의 경우에 미끄러운 뼈는 고정되어 있고 압력을 가하는 혀끝이 튀어나온다. 그러한 정교한 설계에는 분명히 설계자가 필요하다.

방귀벌레는 적들을 저지하기 위하여 폭탄을 사용한다. 분비선에서 나온 세 가지 화학 물질이 저장소에 저장된다. 적이 접근하면 관이 열려 그 화학 물질이 튼튼한 벽을 가진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에서 촉매에 의해 그것들이 폭발하고 독한 안개가 어떤 방향으로도 겨냥할 수 있는 포탑에서 발사된다. 그 벌레는 수분간에 수십번씩 “펑” 소리와 함께 반복적으로 여러 번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적은 물러나며 어떤 때는 기겁을 하게 된다. 이 벌레는 조제실을 가지고 있어서 폭탄을 제조하고 그것을 목적에 따라 사용한다. 그것은 놀라운 작은 폭탄 공장이다!

물매암이에게는 두 개의 초점을 가진 눈이 있어서 연못물의 위 아래를 볼 수 있으나 그것은 경이로운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것은 날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으며, 물 위로 걸을 수도 있고, 잠수할 수도 있다. 잠수시에 그 벌레는 폐역할을 하는 기포를 가지고 다닌다. 그것은 그 벌레로부터 이산화탄소 노폐물을 흡수하여 수중으로 방출하고, 수중의 산소를 그 벌레에게로 이동시킨다. 물매암이는 여러 시간 동안 수중에 있을 수 있다. 그 벌레의 아랫 부분은 물에 젖어도 상관 없지만, 복눈의 윗쪽 절반을 포함한 윗부분에는 분비선에서 나온 기름이 계속 칠해져서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것은 물의 얇은 막에서 거의 모든 방향으로 신속하게 돌진하면서 선수파를 일으킨다. 이러한 잔물결이 제방이나 물막에 있는 물체—아마 다른 물매암이 혹은 먹이가 될 수 있는 곤충—에 닿으면 그 물결은 도로 반사된다. 그 물매암이는 물 표면에 위치한 두 개의 더듬이로 자기 주위에서 오는 소식을 포착한다. 수백 마리의 동료들이 주변에서 불규칙적인 방향으로 같이 돌진하고, 모두가 물결을 만들 때 그것은 자기 소식만 듣고 충돌을 피하면서도 먹이를 붙잡는다. 그 장치는 밤낮 작용한다. 물매암이가 물결을 이용해서 행하는 활동은 박쥐가 음파를 이용해서 하는 일과 같다.—그 조그마한 두뇌에 참으로 놀라운 계산기가 들어 있다!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

사람들은 공학적인 업적을 보고 인간 발명가들을 찬양한다. 그러나 생물체들이 목적에 따라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우연히 생겼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인간 발명자들이 실은 개작자들이다. 이전에 이미 발명이 있었다. ‘솔로몬’이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느니라]”고 말한 바와 같다. (전도 1:9) ‘다니엘 핼러시’ 저 「생물 전자학」 19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새의 날개를 본뜬 굽은 날개를 가진 민간 항공기가 시장에 나왔다. 어느 고무 회사는 해양 포유 동물의 피부를 본 뜬 유선형의 선박용 인조 ‘피부’를 시험하고 있다. 항공기의 새로운 대지(對地) 속도기가 딱정벌레의 눈을 본떠서 만들어졌고, 창게의 눈의 기계 작용을 본뜬 더 발전된 ‘텔레비젼 카메라’가 만들어졌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물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 사실은 욥 12:7-9의 말을 상기시킨다.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발명가들은 그들의 현명한 개작에 대하여 찬사를 받으면서도, “지혜로”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하신 분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시 104:24.

성서 잠언 6:8은 추수하는 개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여러 세기 동안 사람들은 곡식을 추수하고 저장하는 개미의 존재에 대해 의심해 왔으나 1871년에 영국의 한 박물학자가 그들의 곡식 창고를 발견하였다. 또한 개미들은 농작물을 가꾸고, 노예를 가지고 있으며, 가축을 기른다. 흰 개미들은 꿀벌처럼 집에 ‘냉방 장치’를 사용한다. 어두운 가운데서 춤을 추어 꿀벌들은 꿀이 어디에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먼 곳에 위치해 있는가를 다른 벌에게 알린다. 곤충은 인간이 온전히 흉내낼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성서가 말한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지혜로’운 것이다.—잠언 30:24.

“물, 물, 사면이 다 물이나 한 방울도 마실 수가 없다”는 말은 대양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일부 바다새는 해수로부터 염분을 제거하는 분비선을 가지고 있다. 일부 물고기와 뱀장어는 400‘볼트’까지의 전기를 발생한다. 많은 물고기, 벌레 혹은 곤충들은 냉광을 사용하기 때문에, 열을 내어 ‘에너지’를 소비하는 과학자들이 만든 광선이 무색하다. 박쥐와 돌고래는 수중 음파 탐지기를 사용하며 말벌은 종이를 만들고, 개미들은 다리를 건조하고 ‘비버’들은 ‘댐’을 만들고 어떤 뱀들은 섭씨로 천분의 일도의 온도 변화를 탐지하는 온도계를 가지고 있다. 연못의 곤충들은 환기 장치와 잠수종을 사용하며, 낙지는 ‘제트’ 추진 방식을 사용하고, 거미들은 일곱 가지 종류의 실을 짜며 함정문, 그물, 올가미를 만들고, 그들의 새끼는 고도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기구로 여행한다. 어떤 암나방이는 향내를 내는데 그 중 하나의 분자라도 수컷의 더듬이에 닿으면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수컷이 탐지할 수 있다. 연어는 바다에서 여러 해를 지낸 후에 그들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 온다. 연어는 고향인 강의 독특한 냄새를 기억하고 연안에서 헤엄칠 때 냄새를 포착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가 창조한 여러 가지 경이로운 것들에 ‘욥’의 주의를 이끌었다. ‘욥’의 반응은 어떠하였는가?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나이다].”—욥 42:2.

그러한 놀라운 설계가 설계자 없이 생겨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화론자들은 ‘자연 도태와 적자 생존’이 그 설계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생존이 아니라 적자의 출현이다.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건축 재료도 없이 집을 지을 수는 없다. 성서가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증거는 어디에나 있다. 거치른 석기를 보고 원인(猿人)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모든 놀라운 작품을 통해서 반영되는 그분의 특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핑계할 수는 없다.’ (로마 1:20)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창조물을 통해서 여호와의 존재를 ‘보는 눈’을 가지도록 하자.—마태 13:14-16.

[10면 삽화]

‘카멜레온’

설골

괄약근

설골 근육

가운데 뼈

끈적 끈적한 혀에 곤충이 달라붙게 된다

[11면 삽화]

방귀벌레

[12면 삽화]

항해, 수중 탐지기, ‘제트’ 추진, 작물 재배, 통신—누가 이런 일을 먼저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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