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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79 02월호 24-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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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탄의 때에 받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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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79 02월호 24-26면

비탄의 때에 받는 위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참으로 일생에서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텍사스’ 남부의 한 젊은 여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두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이 살해당했읍니다. 이 비참한 경험으로 인해 나는 말할 수 없어 침울해졌지요. 그런데 이 ‘쇼크’에 더하여, 내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죽었읍니다. 나는 모든 사람과 의사 소통이 없게 되었고, 내 어린 아들과도 그러했읍니다. 내 마음을 괴롭힌 또 하나의 사실은, 나의 아들이 말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 마디도 입밖에 내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 당시 나는 너무나 내성적이었으며 내가 그 애에게 말하지 않는 한 그 애가 표현하는 방법을 결코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얼마나 절실하게 위로를 필요로 했겠는가! 다행히도, 직장 동료가 그 여인에게 성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진정한 격려를 받게 되었다.

사망으로 인해 비탄에 잠겨 있는 사람에게 성서가 제시할 수 있는 희망이란 무엇인가? 성서에서는 우리가 죽은 자를 염려하거나 슬픔에 압도될 이유가 없음을 명백히 알려 준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사랑하는 죽은 자들이 생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고 말하였다. (사도 24:15)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는 자들은 다시는 불행과 질병과 사망에 매이지 않을 전망을 갖게 될 것이다. (계시 21:3-5) 인류가 경험했던 모든 슬픔이 그들의 부활 후에 있게 될 변화된 상태에 의하여 온전히 상쇄된 나머지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다.—이사야 65:17.

일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견디는 것이 훨씬 용이하였다. 그들은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들의 특색인 극단적이고 억제되지 않은 슬픔의 표현을 할 정도로 비탄에 잠기지 않았다. (데살로니가 전 4:13) 그러나 부활이 있으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의 희망이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에 근거를 두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바로 인류를 창조하신 분이시므로, 그분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실, 즉 그들을 재창조하실 능력과 지혜도 가지고 계심이 틀림없다. 사실상, 성서가 첫 사람 ‘아담’의 창조에 관하여 알려 주는 바는 우리가 부활의 기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담’은 지면의 원소들로 형성되었다. 물론, 이러한 원소들에는 개성이 없으며 의식적인 활동이나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러한 원소들을 하나의 조화된 몸으로 조성하시고 그 몸에 생명력을 주셨을 때, 하나의 독특한 개성체가—출산을 통하여 생명을 전할 뿐 아니라 생각하고 추론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이—존재하게 된 것이다.—창세 2:7.

‘아담’이라는 개인을 형성한 것은 그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이 아니었음에 유의하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지면의 원소에게 하신 일이 그가 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그 개인이 죽기 전에 몸안에 가지고 있던 분자들을 보존하거나 재조직하는 데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의 일생 동안에도,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오늘 당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은 약 7년 전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동일한 사람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죽은 자가 인간으로 부활되든지 혹은 영적 생명체로 부활되든지 간에, 그의 몸은 죽기 전 그와 동일한 개인이 되도록 특징지워 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모든 특성을 그 안에 갖게 될 것이다. 그는 그의 이전 생명과의 온전한 동일성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고린도 전 15:36-49.

부활의 소망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성서에서는 이 소망의 근거를 제공해 준다. 우리는 성서로부터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이 이전에 전혀 없었던 새로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반대로, 성서는 부활받은 남녀와 아이들의 구체적인 상황을 알려 준다. (열왕 상 17:21-23; 열왕 하 4:32-37; 마가 5:41-43; 누가 7:11-15; 요한 11:38-45; 사도 9:36-42; 20:9-12) 가장 현저한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500명이 넘는 증인들이 그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된 후에 그를 목격했다. (고린도 전 15:6) 이 사건이 얼마나 확정적이었던지 사도 ‘바울’은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믿음을 송두리째 거절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니라].”—고린도 전 15:13-17.

사도 ‘바울’과 다른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은 실패하지 않는 위로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 것을 전혀 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부활의 사상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신으로 인해 그들은 죽음을 직면하는 데 좀 더 나은 입장에 있게 되는가? 과거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를 부인함으로써 그들은 사별한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는가? 그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사별하게 될 때, 이러한 불신은 그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것인가? 사실 그 자체가 대답해 준다.

그러므로, 애도의 때에는 성서에서 알려 주는 바, 부활에 관한 하나님의 틀림없는 약속으로부터 계속 위로를 얻도록 하라. 다른 희망이란 없다. 그 희망을 놓치지 말라. 또한, 부활에 관한 성서의 소식을 슬픔에 잠긴 자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그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주는 데서 오는 만족을 맛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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