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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79 03월호 20-24면
  • 여호와의 일을 여호와의 방법으로 수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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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의 일을 여호와의 방법으로 수행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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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9
파79 03월호 20-24면

여호와의 일을 여호와의 방법으로 수행함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립보 3:15, 16.

1, 2. 오늘날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떠한 이중적인 활동이 요구되어 있으며, 어떠한 성귀에서 그 사실을 지적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을 위한 여호와의 사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시고 또한 명령하신 이중적인 사업입니다.

2 그분은 이렇게 예언하셨읍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마태 24:14, 신세) 그러므로, 왕국의 이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 참여하는 것은 확실히 오늘날 여호와의 사업을 수행하는 일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의 초기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읍니다.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그들이 지키도록 가르치시오.” (마태 28:19, 20, 신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이 가르침 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파할 뿐만 아니라 가르치기도 해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 자신이 첫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행하라고 명하신 일을 다른 사람들도 수행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3.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 어떻게 설명합니까?

3 여호와 하나님의 사업은 어떻게 수행되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 각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혹은 자기 생각에 올바른 방법으로 이 사업을 수행해야 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 사업을 수행하는 데 합당한 방법을 명령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일찌기 ‘모세’ 시대에 예증되었읍니다. 신명기 12:8에서 이러한 기록을 읽을 수 있읍니다. “우리가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찌니라.”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신명기 6:18에 있는 명령과 같이 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으리라.]” 사도 ‘바울’은 이러한 원칙들이 그리스도인 회중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하였읍니다. “형제들아, 내가 ···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린도 전 1:10) 그리고 빌립보서 3:15, 16에서 ‘바울’은 일치하게 말하고, 생각하고, 일하는 것이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표라고 지적하였읍니다. 목적과 행동에 있어서의 이러한 일치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업을 그분의 방식으로 수행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첫째로 둠

4. (ㄱ) 하나님의 사업은 우리 생활에서 어느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까? (ㄴ) 우리에게 있는 가치있는 것을 사용하여 마땅히 수행해야 할 어떠한 일들이 있읍니까?

4 여호와의 일을 여호와의 방법으로 수행하는 데 관련된 어떠한 일들이 있읍니까? 우선, 우리는 우리 생활에서 그것을 가장 중요시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권고하셨읍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 6:33) 우리에게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며, 신체적 정신적 힘 혹은 활력이 제한되어 있으며 이 세상 재물이 제한되어 있읍니다. 우리가 마땅히 시간을 내어 수행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읍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는 가족을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부양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오락을 가족을 위하여 마련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이 가장에게 요구되어 있읍니다.—디모데 전 5:8 비교.

5. (ㄱ)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세속 직장과 관련하여 어떻게 여호와의 사업을 첫째로 둘 수 있읍니까? (ㄴ) 한 가장은 그렇게 하여 어떠한 보람있는 결과를 얻었읍니까?

5 그러나, 그러한 의무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할 여지가 있는 분야가 있읍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왕국을 우리 생활에서 첫째로 두기 위하여 우리는 전파하고 가르치는 사업에 참여하고 우리 가족의 영적 관심사를 돌볼 수 있는 가장 많은 시간을 허용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험 기사로 일하던 어떤 가장은 그 직장을 나와서 독립하여 궂은 일을 하는 직업을 가졌으며, 그리하여 자기의 아들 넷과 딸의 영적 관심사를 돌보았읍니다. 그 결과는? 자녀들 또한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였읍니다.

6. 우리는 우리의 여가를 사용할 때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합니까?

6 다음에 우리의 여가 문제가 있읍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오락이 필요하지만, 얼마나 필요합니까? 그것이 우리 생활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합니까?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형태의 오락을 아주 열렬히 추구하여 우리의 영적 관심사가 피해를 입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영적 필요를 첫째로 돌본 다음에 시간이 있을 때에 오락을 즐깁니까? 흔히 그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보통 이것과 저것이 아니라 이것 아니면 저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은 소식”에 따라 생활하고 그 소식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일을 우리 생활에서 말하자면 계란의 노른자위로 생각하고, 나머지를 흰자위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경솔하게도 오락을 우리의 시간과 정력과 재력을 사용하는 노른자위로 삼고 하나님의 일을 흰자위로 삼습니까? 우리는 자제함이 없이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고 있읍니까?—디모데 후 3:4.

균형과 시기

7, 8. (ㄱ) 여호와의 일을 여호와의 방법으로 수행하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어떠한 방법으로 전해야 합니까? (ㄴ) 시간 조절 문제에 있어서는 어떠합니까?

7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분은 그분의 아버지께서 주신 지시를 밀접히 따르셨읍니다. (요한 14:10)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본을 주의깊이 연구하고 그분이 하신 방식에 따라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여호와의 사업을 여호와의 방법으로 수행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셨으며, 그분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좋은 소식”을 전파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셨읍니다. (누가 8:1) 제자들은 그분의 본을 받아 “좋은 소식”을 가지고 솔선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였으며, 그들은 시장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모이는 어떠한 곳에서나 사람들에게 증거하였읍니다. (사도 16:13-15; 17:17-21)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도 동일한 원칙을 따릅니다. 그들은 낯익은 사람들에게나 낯선 사람들에게나 솔선적으로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그들은 일상 생활에서 친척과 이웃을 만나며, 직장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그러한 기회에 적절한 방법으로 성서 진리를 전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활동을 이러한 것에만 제한한다면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결코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 있읍니다.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미치는 이러한 폭넓은 사랑을 가지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왕국의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자 노력합니다. 당신 자신이 이러한 활동에 참여할 때 당신은 이러한 균형잡힌 그리스도인 견해를 반영합니까?—마태 5:46-48; 디모데 전 2:3, 4.

8 균형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시간 조절의 문제가 있읍니다. 과연 ‘천하의 모든 일에 기한이 있’읍니다. (전도 3:1-8) 이러한 원칙과 일치하게, 우리가 회중 집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 전도인이 연설을 하고 있을 때에는 졸거나, 속삭이거나 논의되고 있는 내용과 관계없는 것을 읽을 때가 아닙니다. 또한, 집회가 열리고 있는 저녁 시간은 재방문을 하거나 어떤 다른 때에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 활동에 참여할 때가 아닙니다. 장로들은 특히 이러한 시간 조절 문제에 주의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흔히 그들은 집회중에 회중적인 일을 처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잘 계획한다면, 그러한 일은 다른 때에 돌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평화롭게, 즐거이 수행함

9, 10. (ㄱ) 왜 우리는 여호와의 일을 평화롭게 수행해야 합니까? (ㄴ) 때때로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9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서로 화목하라”고 충고하셨읍니다. (마가 9:50) 여호와는 “평화의 하나님” 그분의 아들은 “평화의 왕”이 아니십니까? (빌립보 4:9; 이사야 9:6, 신세) 그리고 예수께서는 평화로운 사람 즉 평화를 조성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선언하지 않으셨읍니까? (마태 5:9, 왕국 행간 번역) 이것은 우리가 서로 화목을 유지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10 함께 평화롭게 일하는 것이 때로는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분명히, 우리 모두의 개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음을 기꺼이 인정하고 비평적이 될 것이 아니라 이해심을 보여야 하지 않겠읍니까? 때때로 평화를 유지하는 데 문제가 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이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수행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우리가 의당 우리의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그럴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흔히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는 가능한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읍니다. 그러한 경우에, 명백히 가장 능률적인 방법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는 것보다 함께 평화롭게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11. 평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장로는 기꺼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 특히 장로들은, 회중과 관련된 문제를 토의하기 위하여 함께 모일 때, 평화를 유지하는 중요성을 기억할 필요가 있읍니다. 명백한 원칙이 관련되어 있지 않을 때 그리고 취향과 비용에만 차이가 있을 경우에, 현명한 사람은 화평을 위하여 강력한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양보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방식을 시행하기를 고집한다면, 우리는 불유쾌한 감정을 일으킬 수 있고 심지어 우리의 형제들 사이를 멀어지게 할 수 있읍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의견의 승리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겠읍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일을 그분의 방법에 따라 수행한다는 것은 또한 시편 133:1의 이러한 말을 기억하고 그 일을 평화스럽게 수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12. 즐거움으로 여호와의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왜 매우 이치적인 요구 조건입니까?

12 여호와의 일을 수행하는 또 다른 중요한 면은 우리가 그것을 즐거이 수행하는 것입니다. 불행한 주부가 남편을 좋지 않게 반영하듯이, 즐거움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하나님을 좋지 않게 반영할 것입니다. 참으로 적절하게도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명령하였읍니다. (빌립보 4:4)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즐거워해야 할 넘치는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다! ‘진리가 그들을 참으로 자유케 하였’읍니다. (요한 8:32) 그들은 죄를 용서받았읍니다. (사도 13:38) 그들은 진리의 지식이 더욱 풍부해지는 것을 보고 있읍니다. (다니엘 12:4) 그들은 서로 선한 교제를 즐기고 있읍니다. (로마 1:11, 12) 그들은 주는 데서 오는 더 큰 행복을 누리고 있읍니다. (사도 20:35) 그들은 영적 낙원의 축복을 누리고 있읍니다. (고린도 후 12:4) 그리고 그들은 성실을 유지함으로써 그들이 그들의 크신 하나님 여호와의 마음까지 즐겁게 해 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잠언 27:11.

하나님의 일을 깨끗한 손으로 수행함

13. 고대 ‘이스라엘’은 흔히 어떠한 면에서 요구에 달하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3 여호와의 일을 그분의 방법대로 수행하는 한 가지 면은 깨끗한 손으로 즉 고결한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요구에 달하지 못하였읍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일에서 가능한 한 바쁠 수 있지만, 우리가 성서의 도덕적 원칙에 따라 살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이 허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점을 지적하셨읍니다. 그분은 그들에게서 가증한 각종 형태의 형식적 숭배를 보았다고 말씀하시고 이렇게 지적하셨읍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라.]”—이사야 1:13-16.

14. ‘바울’ 자신은 행실에 있어서 어떠한 본을 보였으며, 이것은 어떠한 고대의 명령과 일치합니까?

14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고, 순결하며,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종들도 거룩하고 순결해야 한다고 명령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베드로 전 1:16)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며, 따라서 우리는 거룩하고 순결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진정으로 투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자신이 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했다고 말한 사도 ‘바울’과 같이 느낄 수 있읍니다. (로마 7:19) 그러나 그는 유전받은 약함에 대항하여 싸우기를 그치지 않았읍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린도 전 9:27) 고대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유대’인들은 이러한 명령을 받았읍니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찌어다.” 이러한 명령은 일차적으로 종교적 정결함을 의미하였지만, 그 원칙은 또한 도덕적 정결함에도 적용됩니다.—이사야 52:11.

15. 우리가 우리의 행실을 경계할 어떠한 부가적인 이유가 있읍니까?

15 우리가 전하고 있는 정결한 소식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하여 우리가 정결함을 유지하는 것이 대단히 적절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소자 중 한 사람이라도 실족시키는 것은 극히 심각한 문제라고 경고하셨읍니다. (누가 17:1, 2) ‘바울’은 이 점에 있어서 신중하였읍니다.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 깨끗함과 ··· 거짓이 없는 사랑”을 보였다는 그의 말로 볼 때 분명합니다. 참으로, 여호와의 방법으로 여호와의 일을 수행하는 것은 여호와와 그의 회중에 모독이 돌려지지 않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실족되지 않도록 우리가 깨끗한 손으로 여호와의 일을 수행하는 데 신중해야 함을 의미합니다.—고린도 후 6:3-10.

여호와의 일을 비이기적으로 수행함

16. ‘다윗’ 왕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해주실 것을 기도하였으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6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일을 수행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으로, 비이기적으로, 순결한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절대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다윗’ 왕은 이것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읍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시 86:11) 분열된 마음으로 섬기는 것은 이기심이 침투하게 방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숨은 동기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과 영혼, 정신 그리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고 있읍니다.—마가 12:29-31.

17. 자신의 동기를 살피는 것은 왜 쉬운 일이 아닙니까?

17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이 점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요구 조건에 미달하였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불완전한 인간의 마음은 예레미야 17:9에 지적되어 있듯이, 극히 거짓되고 불성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계속 지적하듯이, 단지 여호와 하나님께서만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면 우리는 이기적인 경향 혹은 계획을 분별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의 타락한 경향은 언제나 우리의 선한 일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예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경우 바로 이기적인 혹은 숨은 동기가 문제의 원인이었으며,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격렬히 반대하였읍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의 경우도 동일합니다. 외면상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주로 자기 자신들의 권익에만 관심이 있읍니다.—마태 23:13-33.

18. 사도 ‘바울’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비이기적으로 섬겨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어떻게 명백히 지적합니까?

18 사도 ‘바울’은 올바른 동기의 중요성을 매우 명백한 말로 이렇게 지적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 전 13:1-3.

19. 성경은 우리가 나타내야 할 사랑이 어떠해야 한다고 더욱 충고합니까?

19 그러므로 매우 적절하게도 ‘바울’은 우리에게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충고합니다. (고린도 전 16:14) 그러나 ‘바울’은 거기에서 그칩니까? 아닙니다. 그는 우리의 타락한 마음이 참으로 거짓되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랑엔 거짓[즉, 위선]이 없”다고 합니다. (로마 12:9) 참으로 동기가 올바른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 사랑을 표현하기는 아주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을 “거짓[즉, 위선]이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봉사자 중 한 사람으로 추천하기를 잊지 않았읍니다. (고린도 후 6:6)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청결한 마음[에서] ··· 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표현하였듯이, 우리의 사랑은 “비위선적인 형제 사랑”이어야 합니다.—디모데 전 1:5; 베드로 전 1:22, 신세.

20. 요약컨대, 여호와의 일을 여호와의 방법으로 수행하려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요구되며, 우리에게 어떠한 결과가 있을 것입니까?

20 여호와의 일을 여호와의 방법으로 수행하는 데는 참으로 광범한 면이 포함됩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여호와의 일을 첫째로 두어야 하며, 그 일을 현명하게, 평화롭게, 즐거움으로 그리고 깨끗한 손과 순결한 마음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현재 커다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며 매우 임박한 새 사물의 제도에서 그분의 승인과 끝없는 생명을 얻을 수 있읍니다.

[23면 삽화]

언제나 왕국을 첫째로 두며 훌륭한 계획하에 사랑에서 우러나와 하나님을 섬길 때 현재와 장래에 커다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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