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방법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 48:14.
1.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성서는 어떻게 알려 줍니까?
여러 세기 동안,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인도해 오셨읍니다. 시편 필자도 그 중 한 사람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시 43:3) 예언자 ‘다니엘’은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우리 시대인 이 “마지막 때”에 “참된 지식이 풍부해질 것이다”라고 예언하였읍니다. (다니엘 2:28; 12:4, 신세) ‘이사야’ 역시 이 “말일”에 참 숭배가 “굳게 설” 것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실 것을 예언하였읍니다.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그러므로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하는 초대가 오늘날 널리 행해지고 있읍니다.—이사야 2:2-5.
2.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진리로 인도하실 때 무엇을 고려하십니까?
2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자기 백성을 진리로 인도하십니까? 우선, 그분께서는 자신이 인간을 자유 의지를 가진 피조물로 창조하셨음을 고려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빌레몬’의 “자의”를 존중했읍니다. (빌레몬 14) 하나님께서 이 자유 의지를 창조해 주셨기 때문에, 그분은 사람들이 강제로 그분의 진리를 믿게 하거나 ‘로보트’처럼 어떤 방향으로 행동하게 하심으로써 자유 의지를 방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이 그리스도인 시대에, 그분은 의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분의 승인받은 조직으로 와서 연합하도록 사랑스럽게 호소하시며, 그 다음 성령과 말씀과 지상에서 그분의 진리를 전파하는 조직을 통하여 그들을 부드럽게 인도하십니다.
3.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을 인도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무엇을 기억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까?
3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는 일과 관련해서 또 한 가지 고려할 점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정하신 때에 자신의 방법으로 그분의 진리를 이해하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다니엘 12:9) 또한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진리안으로 점진적으로 인도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정신을 창조하신 분이시므로, 영적 양식이 지나치게 부족하면 적절한 정신 기능을 유지시켜 나아갈 수 없고, 한꺼번에 너무 많으면 인간이 흡수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십니다. 요한복음 16:12에 예수께서는 자기의 충실한 추종자들에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장기간 캄캄한 방에 갇혀 있었다가 나올 경우, 점진적으로 빛을 쏘이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갑자기 지나치게 많은 빛을 받게 되면 충격을 받거나 심지어 해를 입을 수도 있읍니다. 하나님의 진리로 계몽을 받는 일도 그와 마찬가지로 점진적이어야 합니다. 이 점은 지혜자의 다음과 같은 말과도 일치합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느니라].”—잠언 4:18.
4. (ㄱ) 예수께서는 진리가 점진적으로 밝혀져야 할 필요성에 관하여 어떻게 지적하셨읍니까? (ㄴ) 여호와의 진리가 점진적으로 밝혀지기 때문에 그분의 종들은 기꺼이 어떠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4 예수께서는 진리를 점진적으로 밝혀 주시는 것이 여호와의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읍니다. 그분은 자기의 사도들에게, 후에 성령이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6:12, 13) 또한, 앞서 확립된 진리들이 한걸음 한걸음 밝혀지게 될 것이므로, 하나님의 종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가지 성경적인 문제들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시정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었읍니다.
왕국 진리와 관련된 인도
5, 6. 하나님의 왕국과 관련하여 예수의 제자들이 부정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5 제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함에 있어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목적과 관련된 모든 진리를 그들에게 한꺼번에 밝혀 주시지 않았읍니다. 일례를 들면, 성서의 중심 교리인 하나님의 왕국을 고려해 봅시다. 예수께서는 자기 추종자들에게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읍니다. (마태 6:10) 그분은 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권고하셨읍니다. (마태 6:33) 그러나 그분이 지상에 계신 동안 그분의 추종자들은 왕국 통치에 관한 세세한 모든 점들을 이해하였읍니까? 예컨대 ‘하나님의 왕국이란 무엇인가?’ ‘그 왕국에서 누가 다스리며, 얼마나 많은 수가 다스릴 것인가?’ ‘그 왕국은 언제 올 것인가?’ ‘그 왕국은 땅과 인류를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할 것인가?’ 등등의 질문에 대하여 그들은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읍니까?
6 예수와 함께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이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예수께서 부활되신 후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고 그분께 질문한 사실로 볼 때 명백합니다. (사도 1:6)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왕국 통치의 모든 면에 관해 이야기해 주시는 대신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사도 1:7) 왜 예수께서 문제를 이러한 식으로 처리하셨읍니까? 왜냐 하면 제자들이 왕국에 관하여,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들은 왕국이 지상의 정부로서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것으로 믿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사실 왕국은 하늘에 설립될 것이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기 위해 선택되는 자들은 땅에서 하늘로 올리워지게 되어 있었읍니다. (계시 5:9, 10; 14:3; 20:4) 그뿐 아니라, 그들이 한 질문을 보면, 그들은 그 왕국이 즉시 설립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음을 알려 줍니다. 그러나 사실은 여러 세기가 경과해야 하였읍니다.
7. (ㄱ) 왕국에 관한 제자들의 부정확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어떠하셨읍니까? (ㄴ) 하나님의 왕국 통치에 관해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읍니까?
7 예수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이 부정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을 정죄하시거나 버리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그들이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할 것과 성령이 그의 추종자들을 점진적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때가 되면 명백한 이해에 도달할 것이라는 점을 아셨읍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왕국 통치에 관한 온전한 지식을 얻게 될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그 동안 예수께서는 그분의 초기 추종자들에게 왕국을 첫째로 구하는 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열성 및 왕국에 관한 그들의 견해를 기꺼이 조정하고자 하는 자진성을 심어 주셨읍니다. 그리하여 비록 왕국 진리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부족하기는 하였지만, 그들이 알고 있던 지식은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날의 임재를 밀접히 유의’할 수 있게 하였읍니다. (베드로 후 3:12) 오늘날 하나님의 왕국 통치에 관한 우리의 지식, 즉 왕국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 왕국이 어떠한 일을 성취할 것인지 등에 관한 지식이 훨씬 더 밝혀지긴 했으나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읍니다.
이방인에 관한 진리
8. 이방인과 관련된 어떠한 문제가 있었으며, 이 문제가 오순절날 제기되었읍니까?
8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이해가 점진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문제는 기원 36년 이후 그리스도교로 입교한 비 ‘유대’인 즉 이방인 개종자(改宗者)들을 일부 ‘유대’인 개종자(改宗者)들이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었읍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육적 ‘유대’인들과 같이 할례를 받아야 하였읍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오순절날 부어졌을 때인 기원 33년에 이 문제가 일어났었읍니까? (사도 2:1-4) 그렇지 않았읍니다. 비록 성령이 부어진 그 일은 하나님께서 그 제자들과 함께 계시며 그때부터 그들을 인도하시리라는 사실을 확립해 주긴 했지만, 성령은 하나님의 진리의 세세한 모든 점들을 기적적으로 그들에게 알려 주지는 않았읍니다. 사실은 오순절로부터 16년이 지난, 기원 49년에 가서 비로서 ‘예루살렘’에 있던 장로들과 사도들이 결정한 교령 가운데서 할례 문제가 해명된 점으로 보아 알 수 있읍니다.—사도 16:4.
9-11. (ㄱ) 여러 해 동안 여호와의 인도를 받은 후, 그분의 종들이 할례 문제를 다루는 데 보다 유리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베드로’가 본 환상은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조정하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읍니까?
9 그 기간 동안,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계시는지를 실제로 경험하게 하셨읍니다. 이와 같이 하여 그 문제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이해가 깊게 되었읍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결정적인 행동이 요구되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분의 종들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고 그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자격을 잘 구비하게 되었읍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그의 견해를 조정해야 하였던 경우를 들어 보십시다. 오순절로부터 3년 후 ‘베드로’는 그가 불결하다고 생각했던 이방인들에 대한 그의 견해를 시정하도록 성령의 인도를 받았읍니다.
10 한 환상 가운데서, ‘베드로’는 ‘모세’의 율법하에서 불결하게 여겨졌던 음식을 먹으라는 말을 듣게 되었읍니다. 그는 깜짝놀라 그러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하늘로부터 들리는 한 음성이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더 이상 더러운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고 하였읍니다. 바로 그 순간,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심부름꾼들이 찾아왔읍니다.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그들을 보내어 자기 집으로 와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해 자기에게 이야기해 달라고 청하였읍니다. ‘베드로’는 방금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을 두려워하였는데, 이제 그는 자신이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이방인의 집으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있는 것이었읍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였읍니까? 성령이 다음과 같이 알려 주었읍니다.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사도 10:9-20.
11 ‘베드로’는 그 요지를 이해하였읍니다. 이전에 불결하게 간주했던 것을 여호와께서 깨끗케 하신 그 환상은 단순히 음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에 대한 ‘베드로’의 태도에 관한 것이었읍니다. ‘베드로’가 이해하였음을 나타내어, 그는 후에 ‘고넬료’와 그의 식구들에게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고 말하였읍니다. 그 다음 성령이 그 이방인 집 식구들에게 부어졌으며, 그들은 침례를 받았읍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좋게 여기신다는 점을 보여 주었읍니다.—사도 10:21-48.
12. (ㄱ) 이방인과 관련된 어떠한 문제가 더 있었으며, 언제 있었읍니까? (ㄴ) 중앙 기구는 무엇을 근거로 결정적인 해답을 줄 수 있었읍니까?
12 그러나 이것은 이방인들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교로 입교한 모든 ‘유대’인들을 만족시켰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왜냐 하면 13년이나 더 지난 후, 일부 할례받은 ‘유대’인들이 ‘시리아’ ‘안디옥’으로 와서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의 여부에 관한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사도 15:1, 2) 그리하여 기원 49년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기타 장로들로 이루어진 중앙 기구는 하나의 모임을 열었읍니다. 그 모임에서, ‘베드로’, ‘바울’ 및 ‘바나바’는 그들이 전파한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성취시킨 일에 관해 설명하였읍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여러 해 동안 이들 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해 오셨는가를 조사해 본 후,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성경의 증거를 만장일치로 확인하고, 그 진리를 확증하였읍니다.
13. 일부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 부족을 나타냈으며, 아마도 어떠한 결과를 당하였을 것입니까?
13 모든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견해를 기꺼이 시정하려 한 것은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점진적으로 인도하시는 증거로 보는 대신, 진리를 버릴 구실로 삼곤 하였읍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상징적으로 자기의 살을 먹고, 자기의 피를 마시는 일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나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하고 성서 기록은 알려 줍니다. (요한 6:53-66) 그것은 참으로 근시안적인 행동이었읍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일에 관한 커다란 인식 부족이었읍니다! 38년 후 아마도 그들 중 일부는 무거운 대가를 치렀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발전하는 진리에 대한 이해 속에서 계속 행하지 않은 사람들은 또한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에 그곳에서 도망하라는 예수의 교훈 역시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가로 그들은 생명을 잃었으며, 반면에 계속 여호와의 인도를 받은 사람들은 도망하여 목숨을 건졌읍니다.—누가 21:20-24.
우리 시대의 인도
14. 과거 1세기 동안 기본 진리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어느 정도로 시정되어 왔읍니까?
14 여호와의 조직이 과거 1세기 동안 「파수대」나 기타 출판물의 지면을 통하여 출판한 내용을 돌이켜 볼 때, 우리는 건전한 영적 양식을 풍부히 발견하게 됩니다. 그 기간의 초기에 기본적인 성서 진리가 밝혀졌으며, 그 진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명백히 남아 있읍니다. 지옥, 삼위일체, 연옥, 영혼, 죽은 자가 있는 곳, 대속, 부활, 지구의 운명, 왕국 및 기타 주요 교리들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100년 동안 거의 변화되지 않았읍니다. 때때로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는 조정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 진리는 언제나 진리였읍니다.—요한 16:13 비교.
15. 여호와의 현대 종들은 그들의 견해에 있어서 조정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읍니까?
15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이 한걸음 한걸음 자기의 진리에 대해 보다 온전한 인식을 얻도록 계속 인도해 오셨으며, 그분이 정하신 때에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그렇게 해 오셨읍니다. 그로 인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난 1세기 초부터 여호와의 영이, 그러한 조정을 하도록 인도하고 있음이 분명해지면 교리, 행실 및 조직적인 절차 등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기꺼이 수정하고 시정해야 함을 이해해 왔읍니다. 「뉴우 소사이어티」라는 잡지에 ‘브라이언 윌슨’이 인정한 바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들은 “계속적인 성서 연구를 통하여 항상 더 온전한 지식에 이르게 되었고, 이전의 경우들에서 예언적 해석상의 과오를 시인해 왔”읍니다.
16. (ㄱ) 성서 예언은 왜 특히 견해를 조정하는 것이 요구되는 분야입니까? (ㄴ) 여호와의 종들은 “마지막 날”에 관한 지식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 왔으며, 그들은 어떤 후원을 받아왔읍니까?
16 기꺼이 재조정을 해야 할 분야는 아마도 성서 예언에 관한 면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예언들은 단지 전반적인 개요만이 주어져 있읍니다. 그러므로 세세한 점에 이르기까지 밝혀질 것을 기다리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히브리 11:1) 이에 대한 한 가지 예는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현 악한 제도가 멸망되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대치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성서 예언과 관련된 것이었읍니다. (베드로 후 3:13) 그러나 성서 가운데에는 오늘날이 “마지막 날”, “마지막 때”임을 분명히 알려 주는 임박한 끝에 관한 전체적인 “징조”의 풍부한 양상들이 들어 있읍니다. (디모데 후 3:1, 새번역; 다니엘 12:4)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하신 말씀을 성취시키는 사업을 강화하도록 고무시켜 주었읍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마태 24:14, 신세) 그들은 이 사업을 수행하는 일에서, 하나의 조직으로 존속하는 일에서, 그리고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번영하는 면에서, 또한 이 타락한 세상에서 새 인간성을 입고 그것을 나타내는 면에서 성공을 거두어 왔읍니다.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실제로 후원해 오셨다는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이사야 54:17.
17. 우리 자신이 앞당겨 잡은 기대가 성취되지 않은 것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목적을 변경시키셨음을 의미합니까?
17 그러나 이 “마지막 날”에, 여호와의 종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이 제도의 끝 즉 ‘텔로스’(희랍어)에 관하여 앞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던 때가 있었읍니까? 그렇습니다. 그러한 때가 있었읍니다. 그러한 견해들 중 일부는 끝이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의 길이와 관련이 있읍니다. 여호와의 이름, 말씀 및 목적을 증명하려는 열정과 열심 그리고 새로운 제도에 대한 의욕으로 인해서, 여호와의 종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때때로 그들의 기대를 앞당겨 잡는 일이 있었읍니다. 이것은 사도들이 그 당시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는 것과 관련해서 가지고 있던 견해와 비슷합니다. (사도 1:6) 때로는 기대를 앞당겨 잡았다가 성취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자기의 목적을 얼마간 변경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6:10) 그러므로 의로운 새 질서를 설립하는 여호와의 목적 그리고 그 시기는 확고히 정해져 있읍니다.
18. “기록한 말씀” 안에 머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이것은 분명히 우리가 모든 성경적 요소들을 주의 깊이 고려해야 하며 어떤 점들을 강조하는 나머지 다른 점들을 간과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필요성을 인상깊게 해 줍니다. 예수 자신이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라고 명백히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마태 24:36) 항상 “기록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고 한 사도 ‘바울’의 충고에 면밀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읍니다.—고린도 전 4:6.
19. 견해들이 재조정되어 왔지만, 증거는 이 제도의 임박한 끝을 어떻게 확증해 줍니까?
19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조정해야 하였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읍니까? 분명히 이 제도의 끝이 임박하였다는 증거는 날마다 증가하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결혼, 가족, 정부 및 세상 종교 등과 같은 제도들이 심히 붕괴되는 것과 증가하는 범죄와 폭력,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불경스런 태도의 증가 등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디모데 후 3:1-5.
20, 21. 점진적으로 밝혀지는 여호와의 빛 가운데서 계속 행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상을 받을 것입니까?
20 이 “마지막 날”은 아직도 미확정적인 기간이 남아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점진적으로 밝혀지는 여호와의 빛 가운데서 계속 행하며, 기꺼이 재조정하는 사람들은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 및 “큰 환난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로 들어가는 “큰 무리”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큰 무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베드로 후 3:14, 15; 계시 7:9-17.
21 그러므로 여호와께 인도를 구하는 사람들은 ‘의인이 땅을 차지하고 거기 영영히 거하게 될’ 새로운 제도의 설립을 확신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읍니다. 거기에는 더는 “악인이 없”을 것입니다. 그 대신 온유하고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게 될 것입니다.—시 37:10, 11, 29.
22. 여호와의 종들은 현재와 장래에 대하여 어떠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읍니까?
22 그러므로 여호와의 백성의 현대 조직이 과거 100년 동안 그러했던 바와 같이, 우리는 오늘날 이 마지막 날의 남아있는 기간에도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라는 점을 확신합니다. (시 48:14) 그 다음, 그분의 새 질서에서 우리는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자기의 종들을 계속 인도하실 것을 바라볼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 1서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