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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를 끼치는 부드러운 말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0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지나친 칭찬은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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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0
파80 04월호 3-4면

해를 끼치는 부드러운 말

일을 잘한 데 대한 칭찬은 부지런한 일꾼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그러나 칭찬과 비슷하지만 종종 칭찬으로 오해되어 항상 해를 끼치는 말이 있다.

잠언 28:23에서는 이와 같이 말한다.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이 말은 칭찬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아첨을 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사전에 의하면 “아첨하다”라는 말은 허위로 또는 진실하지 않게 너무 지나치게 칭찬하는 것을 뜻한다. 아첨이란 말은 또 칭찬과 배려로 어떤 사람의 총애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첨은 수고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 근거한 칭찬과는 달리 허위에 입각해 있다.

지나친 칭찬은 어리석다

항상 아첨하는 말은 나쁜 열매를 거둔다. 이를테면, 그것은 예수께서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중에 들어있다고 하신 교만을 조장한다. (마가 7:21, 22) 성서는 하나님의 숭배자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충고한다. (로마 12:3) 아첨에 의해 조장되는 지나친 자아 개념은 그리스도인의 그러한 건전한 생각을 거스려 작용한다.

아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평을 반대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그들은 자신들에 관하여 칭찬하는 말만 듣고자 한다. 그러한 예 중에는 하나님의 예언자들에 대해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이 있다.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아첨하는, 난외주]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이사야 30:10)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의 올바른 충고보다도 부드러운 아첨의 말을 열망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멸망하기에 이르렀다.

예수 당시에 특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아첨을 좋아했었다. 그들에 관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태 23:5-7) 그러나 이것은 그들을 멸망으로 인도하였다. 그들은 “서로 영광을 취”하였기 때문에 약속된 메시야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왕국에 참여하는 축복을 잃어버렸다. (요한 5:44; 12:43; 마태 21:42, 43) 더우기,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유대 민족은 기원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해 멸망받기에 이르렀다.

이익을 얻으려는 아첨

아첨에 의해 초래되는 나쁜 열매란 자존심과 교만뿐이다. 종종 아첨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도구로서 부드러운 말을 사용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 회중으로 들어온 어떤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다 16) 이와 비슷한 정신을 가진 자들에 관하여 「시편」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시 12:1, 2.

“두 마음”을 가진 자는 이기적인 동기를 감추려고 부드러운 아첨의 말을 사용한다. 그러한 말로 그는 그의 말을 듣는 자들의 허영심에 호소하여 그들의 ‘총애를 얻으려’ 한다. 그 다음 아첨하는 자는 이기적인 이익을 많이 얻으려고 그의 피해자를 이용한다. 실로 다음과 같은 성경의 말씀은 참되다.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잠언 29:5.

현명하게도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충고하셨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 23:8-12)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자들은 어마어마한 종교적인 직분을 사용하는 그러한 아첨하는 말로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참으로 가치있는 높임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것은 오로지 겸손한 자들에게 주어진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언 18:12.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의 자부심이나 다른 사람들의 자부심을 부풀게 하는 수단으로서 아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또 그들의 동료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아첨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의 본은 훌륭한 것이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데살로니가 전 2:5.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라

이것은 아첨하는 말이 모두 동기가 그릇되다는 것이 아니다. 원래 일부 사람들은 친구나 친지들에게서 발견한 능력에 위압당하기가 쉽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참으로 “훌륭합니다” 하고 말하거나 그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개 그러한 표현들은 과장된 경향이 있으며 오로지 아첨을 더할 따름이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항상 칭찬을 들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로마 3:23.

한편, 칭찬을 결코 하지 않는 극단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대신 우리는 예수께서 심지어 책망을 하려 하실 때도 칭찬으로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아들은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은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시 2:1-4) 아마도 그러한 칭찬은 에베소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가 되었을 것이며, 그들이 예수께서 그들에게 ‘책망’하신 한 가지 점을 고치기가 훨씬 용이하도록 자극했을 것이다.

칭찬이 유익을 가져다 주는 반면에 아첨하는 자의 부드러운 말은 해를 끼친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알려 준다. 아첨의 말을 사용하는 자와 아첨에 의해 ‘말려들어간’ 자 모두는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말씀이 참됨을 알게 될 것이다.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잠언 26:2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첨을 거절하셨다. (마가 10:17, 18) 그분은 그의 제자들에게 본이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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