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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통치권이 이 도전에 응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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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통치권이 이 도전에 응할 수 있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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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0
파80 05월호 13-16면

인간 통치권이 이 도전에 응할 수 있는가?

한때 “지상의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이다”a라고 가르친 적이 있다. 이러한 가르침이 생겨난 이유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 당시 세상의 지배적인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중세 후반에 교황들은 정치적 권력을 두고 왕과 각축을 벌였다. 그들은 강력한 군대를 거느렸다. 존 F. 어스트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교황은 왕의 역할과 겨루려 하였으며 세속 문제들에 대한 중재자가 되려고 온갖 신경을 곤두세웠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다스리는 권세를 하나님에게서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후에 여러 나라의 왕들 역시 통치권의 신수설(神授説)을 주장하였다. 「신 가톨릭 백과사전」은 이렇게 지적한다. “신수설은 여러 나라의 왕들로 하여금 자기들 권력이 교황들의 권력과 똑같이 신성한 것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입장에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로 통치한다고 주장한 교황들과 다른 통치자들은 좋은 정부를 마련해야 하는 도전에 응하였는가? 그들의 신민은 생명, 자유 및 행복을 누렸는가?

아니다,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이러한 통치권들은 심한 부정과 압제의 오점을 남겼다. 사람들은 무의미한 전쟁에 참전하도록, 그리고 수백만 명의 생명과 행복을 앗아간 유혈 십자군에 가담하도록 동원되었다. 또한 극악한 종교 재판을 행하여 수천 명의 희생자들을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고문하여 처형하였다. 참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교회의 통치 혹은 신수설을 주장한 왕들의 통치와 동일시하는 것은 하나님께 얼마나 모독적인 일인가?

인간의 노력이 계속되다

좀더 최근에 와서 종교적 견해들은 수정되었다. 1916년에 출판된 「사도 교회 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 일부 신학 집필가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이 그리스도교의 영향력하에서 발전하여 결국 왕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하였는가?

아직도 살아 있는 수백만의 사람들의 생애중에 소위 그리스도교라고 주장하는 나라들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대량 학살을 범하였다. 교회 역사가 롤란드 바잉튼은 이렇게 말하였다. “미국의 교회들은 특히 제일차 세계 대전에 대하여 십자군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미국의 교역자들 말에 의하면 바잉튼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것은 거룩한 전쟁이었다. ·⁠·⁠· 독일인들은 야만인이었다. 그들을 죽이는 것은 지구에서 괴물들을 일소하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런던의 주교 A. F. 윈닝튼 인그람은 영국민을 이렇게 충동시켰다. “독일인들을 죽이라—그들을 꼭 죽여야만 한다. ·⁠·⁠· 내가 수천 번 말했듯이 나는 그것을 순결을 위한 전쟁으로 본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 역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공언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같은 시기에 독일 쾰른의 가톨릭 대주교는 독일 군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우리가 빠져들게 된 정의를 위한 이 전쟁에서 하나님은 우리 편이다. 우리는 여러분이 조국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최후의 피 한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울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20여 년 후인 1939년에 여러 나라들이 제이차 세계 대전에 휘말려 들어갔다. 또 다시 참전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그리스도교 나라로 자처하는 나라들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그리스도교 영향력하에서 발전하여 하나님의 왕국이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제이차 세계 대전이 1945년에 끝난 후의 35년간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그것은 인간 정부들이 마침내 인류의 필요를 성취시키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가?

현재의 노력은 성공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오늘날 구출의 희망이 실현되기는커녕 오히려 세계적인 문제들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사실상, 인간의 실패는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어 실제로 문명 자체가 위협받게 되었다. 전쟁을 제거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고려해 보라. 그것이 성공하였는가?

그와는 거리가 멀다! 1945년 이후에 전세계 이곳 저곳에서 터진 거의 150개의 전쟁에서 2,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희생당하였다. 어느 날이건 간에 평균 12개의 전쟁이 세상 어느 곳에선가 벌어지고 있었다. 인간 정부들은, 건설, 환경 미화, 교육, 연구 등등과 같은 유익한 용도에 달리 바쳐질 수 있는 자금을 소모하여 전쟁 준비에 매일 1,000,000,000달러를 훨씬 넘는 돈을 지출하고 있다.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에 얼마나 큰 실패인가!

정부들은 서로 모여 무장 해제에 동의해야 함을 우리의 이성은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였는가? 그들은 합의점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군비 경쟁을 계속한다. 작년 여름에 사이러스 밴스 미 국무장관은 자기 나라가 가지고 있는 파괴 능력을 짐작케 하는 이런 말을 하였다.

“오늘날의 미사일들 중 어떤 것은—단 하나만 가지고—제2차 세계 대전 전 기간에 모든 전투 지역에서 우리 폭격기들 전체가 투하한 것보다 다섯 배의 폭발력을 발휘한다. 물론 우리 무기 대부분은 그것보다 작다. 그러나 우리는 도합 9,000개의 핵탄두와 폭탄을 미사일과 장거리 폭격기에 배치하였다. 소련은 우리를 겨냥하여 약 5,000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수치를 극적으로 증가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무기 한두 개만 가지고도 밀워키만한 크기의 도시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

지구와 그 위의 생명체는 무엇이든 완전히 멸절시킬 잠재력이 얼마나 큰가! 그러한 핵 파괴 능력은 당신으로 안전 보장을 느끼게 해 주는가? 그것은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 자유 및 행복’에 기여하는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그러나 당신은 범죄를 통제하는 문제에 있어서의 인간 정부들의 무능함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을지 모른다.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의 의학 박사 앨버어트 스젠트지오르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우리 동네가 어두워진 후에는 강도를 만나거나 살해당할까 두려워서 밖에 나갈 수 없다. 심지어는 집에서도 불안을 느낀다.” 슬프게도 범죄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자기 집에 갇힌 죄수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정부들은 그 상태를 시정하는 데 무력함이 입증되었다.

더우기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다. 그러나 어떤 지역들의 곡창 지대는 식량이 넘쳐 흐른다. 그러나 심지어 식량이 남는 나라들에서도 가격이 매우 빨리 치솟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식량을 충분히 살 수 없다. 인간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또한 에너지 문제가 있다. 해, 바람, 강, 호수 및 바다에서 계속 쓸 수 있고 무해한 에너지를 엄청나게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정부들은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선견지명의 빈약함으로 인해서 그들은 땅의 계속 쓸 수 없는 석유와 가스 매장량을 파냈는데, 그렇게 하여 동시에 그들은 우리가 숨쉬는 공기를 상당히 오염시켜 버렸다.

지상사를 다스리는 인간의 노력을 조사해 본 결과 어떠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가?

인간들이 할 수 없는 일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인간들은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성공적인 정부를 세울 수 없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까지 존재해 온 모든 문명은 결국에는 붕괴되었다. 역사란 실패한 노력들, 실현되지 못한 열망에 대한 이야기다. ·⁠·⁠· 그러므로 역사가라면 비극의 불가피성을 느끼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실제 당신이 그 점을 생각해 보면, 오늘날의 정치가들이 과거의 지도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것들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세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이유가 있는가? 이년 반 동안 카터 대통령의 연설문 수석 작성자로 일한 제임스 M. 팔로우즈는 이렇게 지적하였다. “나는 정부 내에서 많은 변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 이제 나는 이 정부가 카터나 다른 대통령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를 다스리는 데 인간이 반복적으로 실패한 사실로 우리가 놀라야 하는가? 우리가 성서 연구생들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통치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함을 강조해 줄 뿐이다.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예레미야 1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첫 인간 부부가 그분의 권위에 반역한 이래 인간들이 자치 정부를 실험해 보도록 허용하셨다. 왜 허용하셨는가? 인간과 천사들에게 대상 교육을 베푸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이 교육에서 무엇을 배웠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알게 된 점, 즉 인간은 성공적으로 자치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한 이러한 점도 깨닫게 된다. 즉, 인류의 정부들이 하나님의 허락으로 기능을 발휘해 왔지만, 우리 모두가 살고 싶어할 만한 세상을 누리려면,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왕국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는 방법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주장할지 모른다. “인간들이 정부에 대한 그 도전에 응하려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그것을 기대하지 않는가? 우리가 좋은 정부를 세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달리 어떻게 세상이 더 나은 것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왕국을 설립하시는 데 인간을 사용할 것이라는 교회들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면 그러한 주장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성서는 왕국이 인간 노력에 의해 임할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왕이 되라는 권유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한 6:15; 18:36) 「존 도반 성서 해설 백과」는 정확하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왕국이란 결코 인간이 시행하는 행동이나 인간이 수립한 세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왕국을 설립하려는 노력의 이념이 아무리 숭고할지라도 이 성서 용어는 현대 자유 신학 용어와는 전혀 상반된다. 왕국이란 하나님의 행동을 말하는 것이지, 인간의 업적이나, 심지어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의 업적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자,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의 왕국은 어떻게 임할 것인가? 성서의 대답에 깊이 유의하라. 인간 정부와 그 무익성을 묘사하고 나서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다니엘 2:44.

인간 정부들을 멸망시키고 자신의 정부를 출범시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혹하거나 부당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가?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의 정부 형태를 영속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한 정부를 고대하고 살아 남을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기쁨의 원인이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새 하늘”의 통치가 지상의 인간 사회에 축복을 쏟을 것을 설명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 할찌니라.”—이사야 65:17-19.

그러므로, 인간이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정부를 마련하지 못한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부를 설립하시는 것이 시기에 알맞고 적절하다는 점에 대해 확실히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유익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 왕국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과 우리가 그것을 지지할 수 있는 방법을 마땅히 알고 싶어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우리는 당신이 다음 기사들을 고려하도록 초대하는 바이다.

[각주]

a 제임스 해스팅스 편 1916년판 「사도 교회사전」 제1권 67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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