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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80 08월호 17-19면
  •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의심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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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의심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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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0
파80 08월호 17-19면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의심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말해 보세요. 며칠 전에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왜 인사하지 않았죠? 내게 뭔가 화가 났나요?”

“우리가 마주쳤었다고요? 아니, 난 기억이 나질 않는데요!”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는 서로 지나쳤고 당신은 나를 쳐다보기까지 했는데,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요! 내게 뭔가 화가 났나요?”

당신은 실제 있는 위와 같은 일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일이 있는가? 아마 당신은 남의 동기를 의심하는 더 심각한 경우도 보았을지 모른다. 이유 없는 의심이나 불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을 이러한 경향이 초래할 수 있는 파괴적인 결과에서 명백히 볼 수 있다. 성서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떠한 일이 발생하였는가를 고려해 보라.

약속의 땅을 정복한 후에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이 요단 강 건너편에 있는 자기들에게 배당된 영토를 점유하였다. 그들은 거기다 제단을 하나 세웠는데 그것은 제물이나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그들 후손들이 참 숭배에서 돌아서지 않았다는 증거 역할을 하도록 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지파들은 그 동기를 의심하여 이 이스라엘인들이 여호와의 숭배로부터 이탈하고 있는 것이라고 의심하였고, 그리하여 그들을 상대로 전쟁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다행히도, 그 상황은 해명되었으며 계획된 군사적인 조처는 취해지지 않았다.—여호수아 22장.

다윗 왕은 암몬의 하눈 왕에게 그의 아버지의 죽음에 처해 위로의 뜻을 나타내도록 자기 신복들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암몬 사람들은 다윗이 그 사람들을 첩자 활동을 하도록 보낸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여 그들에게 극히 치욕적인 일을 행하였다. 이 일은 전쟁으로까지 번졌으며 암몬 사람들과 아람 사람들은 그 전쟁에서 참패를 당하였다. 동기를 의심한 일로 초래된 얼마나 비참한 결과인가!—사무엘 하 10장.

순결한 동기가 의심을 받을 때

초기 그리스도인 시대에 사람들의 동기를 의심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이 의심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편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떤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찌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라.]” 그렇다. 고린도에 있는 어떤 동료 신자들은 그릇되게도 바울의 활동이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그 충실한 사도의 동기를 부당하게 의심하였던 것이다.—고린도 후 12:16.

특출한 예를 하나님의 아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그분이 땅에 오신 동기는 가장 순결한 동기였으며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고 입증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고한 그분은 신성 모독이라는 죄명으로 고발을 받으셨다. (마태 26:64, 65, 신세 참조) 그 결과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동기를 의심한 사람들은 비극적인 결과에 이르렀으며, 그를 살해하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행로를 걷지 못하게 하는 죄를 짓게 되었다.—마태 23:29-39.

여호와 하나님의 동기까지도 의심을 받아 왔다. 사단과 그의 악귀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을 한다. 오히려 마귀는 여호와께서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한계를 정해 놓으심으로 인간들에게서 무언가 좋은 것을 이기적으로 감추어 놓으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우기 사단은 하나님께서 순종을 “매수”하신다고 주장한다. (욥기 2:3-5) 비슷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종들의 순결한 동기가 사단에 의해 의문시되고 있다. 마귀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그들을 참소’하였다고 하지 않았는가! (계시 12:10) 확실히 경건한 사람들은 결코 사단을 흉내내어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의심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스도인들은 성서 기록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한 가지는 다른 사람들의 동기나 태도를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윗이 하눈 왕을 위로하도록 사람들을 보냈을 때 암몬 사람들이 그러하였다. 오늘날 어떤 사람이 수줍어하고 사교성이 없을지 모른다. 아마 그의 얼굴 인상마저 엄격해 보일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냉정하고 교만하고 사랑이 없다고 그릇된 결론을 내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부정확하게 판단하는 경우가 때때로 있다. 그러나 그들이 게으르다고 여기는 그 사람은 자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어떤 신체의 약함이나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그는 더 많이 혹은 더 빨리 일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모든 사람의 생산성과 능률이 다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좋다.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에 찬 배려를 나타내려고 한 사람들의 동기가 의심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무실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정상 작업 시간 후까지도 교대로 전화를 받는다. 전화 바로 옆에 앉아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근처의 다른 방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어느 날 당번이 아닌 신뢰할 만한 사람이 전화 바로 옆에 있었을 때 전화가 걸려 왔다. 사려 깊게도 그는 그 전화를 받아 줌으로써 그 옆방에 있던 그 시간 당번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게 해주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당번은 사랑으로 도움을 베푼 그 사려 깊은 사람에게 감사하기는커녕 동기를 의심하였다. 사소한 일인가?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태도나 동기를 평가할 때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필요성을 설명해 준다.

다른 사람의 의심스러운 점을 선의로 해석하라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의심할 때 오는 슬픈 결과를 볼 때, 우리는 확실히 그와 같은 일을 삼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지혜롭게 행하며 다른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점을 선의로 해석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표현한 하나님의 원칙과 일치하는데, 그는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고 말하였다. (고린도 전 13:7) 이 원칙에 고착한다는 것은 의심스러운 경우에 부당하게 동료 그리스도인을 의심하지 않고 그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아는 것은 그들의 동기를 의심하는 일을 피하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다. 때때로 이렇게 하는 데에는 몇 달, 심지어는 몇 년이 걸린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많을수록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의심할 위험성은 더 적어진다.

우리의 동기가 의심받을 때

그러나 우리 자신의 동기가 의심받는 경우에는 어떠한가?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야 하는가? 화를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그 이유를 전도서 7:9은 이렇게 말한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사람은 당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그릇된 견해를 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실수를 범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는 당신을 더 사랑할 것이며, 당신이 화로 응수하지 않았다면 특히 더욱 그러할 것이다. 확실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본받을 필요가 있는데, 그분은 비난을 받으실 때에도 자제를 행사하신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동기를 아시며 그분은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계속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한다면 기쁨을 발견할 것이다. 그분이 어떤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를 옹호하실 필요가 있다면 그분은 적절한 시기에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다.—시 37:3-8; 사도 15:8; 고린도 후 7:6.

어떤 사람이 자기의 동기를 오판하는 사람으로부터 충고를 받을 경우에 특별히 어려운 상황이 존재한다. 어떠한 말로 변호하든지 자기 정당화로만 보일 수 있다. 모든 요인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충고가 사실 적용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실제 상황을 설명하려고 할 경우에도 일부 악의 없이 충고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동기를 의심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의심받고 있는 점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것 같지 않는 한, 충고하는 사람의 견해를 바로잡고자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입장이나 동기가 오해를 받고 있을 때, 항상 단순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논쟁하지 않는 입장을 고수하려고 거짓 비난을 내버려 두는 것은 분명히 도덕적으로 그릇된 일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 당신의 입장이나 태도를 침착하게 설명하는 것은 타당하며, 그렇게 할 때 당신의 양심은 편안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거짓 비난을 무력하게 시인하여 죄의식을 갖지 않고 최소한 문제들을 해명하려고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충고자 역시, 특히 충고하는 일에 있어서 균형을 잡도록 유익을 받을 것이다.

독일 격언 중에 이러한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한 번 하면, 그가 진리를 말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그러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다음에 그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여 일부 사람들에게 지난번의 그같은 잘못이 생각나게 될 경우, 그들이 이전에 실수를 범한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사랑은 사람을 조급하게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백한데도, 과거에 그와 같은 일을 한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일에 대한 의심을 받는다면, 사람들이 우리에게 나타내는 불신으로 인해 낙심하지 않겠는가? 물론 낙심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좋은 방향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 남의 악행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기억하는 것이 좋다.—고린도 전 6:9-11; 13:4, 5, 새번역.

조심성과 균형의 필요성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부당하게 의심하지 말아야 하고 한편 우리 자신의 동기가 오해를 받는 경우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고자 노력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될 점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참다운 종들을 박해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어떤 관리들은 속임수를 써서 동료 신자들을 배반하게 만들려 할지 모른다. 그러한 경우에 박해자가 하는 말이나 약속 모두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그러한 상황에 적용된다.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추종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말씀하셨다.—잠언 14:15; 마태 10:16.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불충실의 뚜렷한 증거가 없는 한 하나님의 동료 숭배자들을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말씀을 상기하는 것이 좋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로마 14:4; 야고보 4:12.

이 기사 첫머리에 언급되어 있는 경우가 생각나는가? 한 여자가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인사하지 않았다고 해서 동기를 의심했었다. 그런데, 나중의 대화를 통해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 사람은 그 때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그 여자를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인사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이 전부였다. 이 여자가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에 대해서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그 사람에 대해 앙심을 품지 않고 동시에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잘한 일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상대방이 단순히 자기를 못보고 지나친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더 나은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참으로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평가하는 데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행복하게도 지상의 어느 누구도 동료 인간들의 말이나 행동을 의심하지 않을 때가 도래할 것이다. 결국 그것은 왕국 통치하의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실현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누구나 사랑을 나타낼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훌륭한 특성을 볼 것이다. 분노, 비탄, 슬픔이나 낙심의 원인이 되는 것들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 때까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부당하게 의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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