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자들이여—“양떼”에게 훌륭한 본이 되라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디모데 전 4:12.
1.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이 훌륭한 본을 세울 것을 기대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 회중내에서 감독자로서 봉사하는 데는 많은 일들이 관련되어 있읍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 특권을 가진 헌신하고 영적인 수만명의 남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회중내의 각자 모두는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이므로 임명받은 장로들은 그들이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여호와의 다른 숭배자들보다 조금도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마태 23:8-12) 그러나 그들의 책임과 그들이 달성해야 할 성경적 요구 조건을 생각할 때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이 기대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누가 12:48) “양떼”는 이들 아랫목자들이 말하고 행하는 것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이들 아랫목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훌륭한 본을 세우는 것이 기대되고 있읍니다.
2. ‘바울’은 어떠한 특별한 면으로 본이 되도록 ‘디모데’를 격려하였읍니까?
2 좋은 본이 되어야 한다는 이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칠 수 없읍니다. 이것이 감독자 ‘디모데’에게 보낸 ‘바울’의 첫째 편지 가운데서 볼 수 있는 직접적인 충고의 요점 중의 하나입니다. ‘바울’은 아무 일도 소홀히 지나쳐 버리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는 ‘디모데’도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았읍니다. ‘디모데’는 아직도 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바울’이 다음과 같이 편지할 때에 그는 틀림없이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없이 말(라.)” (디모데 전 4:12-14) 만일 ‘디모데’가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 생활을 계속 영위해 나간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업신여길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3. 감독자들은 무엇을 검토해 보아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 가운데 있는 감독자들은 ‘디모데’처럼 자기 자신의 생활 형태를 마땅히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고려하는 것이 주로 감독자들과 봉사의 종들 및 더 큰 회중적 책임을 갖기를 바라는 남자들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양떼”에게 본이 되려면 무엇이 관련되어 있는가를 주의 깊이 고려해야 합니다. (고린도 후 13:5)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이렇게 질문합니다. “장로 여러분, 여러분은 참으로 훌륭한 본이 되고 있읍니까?” 여러분의 동료 신자들은 히브리서 13:7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생각하면서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그렇습니다. 장로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연합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께 대한 충실을 증명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는 다만 성경에 근거한 충고와 위로의 말뿐이 아니라 여러분의 격려적인 본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바른 행실과 그 결과를 관찰하면서 여러분의 믿음을 본받을 것입니다.
4. (ㄱ) 디모데 전서 3:1과 마태 복음 20:26, 27은 그리스도인 감독자로 섬기는 데 관련되어 있는 점을 어떻게 강조합니까? (ㄴ) 장로의 책임을 완수하는 데 무엇이 요구됩니까? (ㄷ) 데살로니가 전서 5:12, 13에 의하면 형제들은 누구를 생각해야 하며,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나타내야 합니까?
4 이것은 임명된 장로라고 해서 그가 절대 불가결한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의 영적 형제 자매들을 섬기는 데 있어서 “선한 일”이 있읍니다. (디모데 전 3:1) 장로의 직책은 그의 노력의 결과로 ‘장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 20:26, 27) 장로들에게 부가적 특권과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임을 올바로 이행하는 데는 그에게 겸손하게 여호와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동료 신자들에게 종 노릇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로마 12:11; 갈라디아 5:13; 골로새 3:23, 24) 참으로 장로는 믿음 안에 있는 그의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주재하고, 훈계하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장로가 임명된 직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장로가 본을 보이면서 동시에 열심히 일할 때 그들은 감동되어 장로들의 노력을 지원하는 반응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생각할 때 그러한 고려는 마땅한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가운데서 수고하며 주 안에서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분들을 알아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하여 사랑으로 극진히 존경하고 서로 화평하게 지내시오.”—데살로니가 전 5:12, 13 새번역.
“말”에 있어서 훌륭한 본
5. 어떠한 여러가지 환경 가운데서 감독자들은 “말”하는 데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 감독자들이 “말”하는 데 있어서 훌륭한 본이 되어야 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읍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가정에서부터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그것은 그들이 회중의 각 성원들이나 연단에서 말할 때 나타내야 하고 또한 이웃에서 집집으로 방문해서 증거할 때 그렇게 해야합니다. 감독자가 한 말은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에 근거해 있거나 그 원칙에 좌우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6. 장로들은 왜 악한 생각을 품는 일을 경계해야 하고 “선한 말”을 해야 합니까?
6 세움이 되는 말을 하기 위하여는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입은 영적으로 적합하고 세움이 되는 말을 함으로 “선한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 12:34) 감독자는 정신과 마음에 악한 생각이 뿌리를 박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그의 말 가운데 나타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손상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야 할 말과 들어야 할 말이 무엇인가를 알리기 위하여 성서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에베소 4:29.
7.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은 왜 순수한 자기 개인의 견해 혹은 생각을 퍼뜨리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합니까?
7 그리스도인 아랫 목자들은 말하는 데 있어서 본이 되기 위하여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고린도 전 4:6) 교리 문제에 있어서나 도덕 혹은 그리스도인 조직 문제에 있어서나 감독자는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디모데 후 4:2) 만일 그가 순수한 개인 의견을 주장하거나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을 통하여 받은 가르침과 반대되는 생각을 퍼뜨린다면 그것은 혼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제넘게 앞서 가려고 해서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하게 할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 그분의 조직의 조처를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겠읍니까? (잠언 11:2) 그 제목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나 명백한 대답이 아마 나중에 나올 것입니다. 또는 기도를 통하여 그리고 ‘왙취 타워 협회’의 출판물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함으로 그 장로는 자기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며,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퍼뜨리지 않은 것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8. (ㄱ) 말에 대하여 다투는 일과 논쟁하는 일을 왜 피해야 합니까? (디모데 후 2:14-19) (ㄴ) 질문이 생기고 영적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도움이 베풀어져야 합니까?
8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른 사람들을 명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였읍니다.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도는 이어 진리로부터 이탈한 사람들이 한 말의 불건전한 영향에 관하여 말하였읍니다. 말에 대하여 다투거나 건전한 가르침을 배척하는 자들과 논쟁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고 아마도 영적으로 잃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디모데 후 2:14-19; 디도 1:7-9) 이것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하여 아무도 진실하게 질문을 일으킬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견해를 고집하는 것은 필요치 않은 교란을 일으킵니다. 물론 영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올바른 방법으로 가르침을 받고 그것도 “온유함으로” 그렇게 하는 길이 있읍니다.—디모데 후 2:23-26.
9.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하여 감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9 감독자들은 “말하고 가르치는 데 있어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다만 외부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해 주는 일뿐 아니라 영적으로 회중을 세워 나가는 데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디모데 전 5:17, 신세) 성서 연설과 영적으로 참신하고 교훈적이고 실용적인 집회의 순서를 준비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정기적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왙취 타워 협회’ 출판물과 연설 골자 및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으로부터 나온 기타 내용들을 사용함으로 연사 및 가르치는 자들은 건전한 가르침이 되게 하는 많은 훌륭한 점들을 발전시킬 수 있읍니다. 감독자들은 말하는 데 있어서 본이 됨으로써, 그들 자신이 올바른 방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항상 ‘훌륭한 행실’을 하는 일
10, 11. (ㄱ) 행실과 하늘로부터의 지혜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읍니까? (ㄴ) 위로부터의 지혜가 나타나게 되면 불경건한 특성이 뚜렷한 상황과 비교할 때 어떠한 일이 있게 됩니까?
10 회중 감독자들은 또한 “행실”에 있어서 본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훌륭한 행실을 하려면 그들에게는 하늘로부터의 지혜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제자 ‘야고보’는 이 점을 이렇게 강조하였읍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해, 신세]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야고보 3:13-16; 베드로 전 2:12.
11 동료 장로들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회중 성원들과의 관계는 하늘로부터의 지혜를 반영하는 훌륭한 행실로써 강화됩니다. (야고보 3:17, 18) 반대로 다툼, 시기, 자랑 그리고 기타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특성과 행동은 그러한 관계를 파괴합니다. 이러한 악한 특성들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는 있을 수 없읍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나타낸다는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행실을 하려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빌립보 2:3) 이러한 행실이야말로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내신 바와 같은 정신적 태도를 반영하는 데 본이 되는 것입니다.—빌립보 2:5-8.
12. (ㄱ) 회중 내의 여자 성원들을 어떻게 보아야하고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ㄴ) 하나님의 도덕적 표준을 범하는 일에 대하여 감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ㄷ) 사법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장로들은 비밀을 지켜야 할 어떠한 책임이 있읍니까?
12 훌륭한 본이 되기 위하여 감독자들과 다른 책임있는 형제들은 이성에 대하여 항상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들은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해야 합니다. (디모데 전 5:1, 2) 끊임없는 경계심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높은 도덕 표준에 고착하는 일이 해이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부패시키려는 확정적인 증거가 있다면 감독자들은 조직을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모든 일을 형벌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4:3-8) 동시에 임명받은 아랫목자들은 하나님의 의로운 원칙을 범한 사람들이 관련된 사법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비밀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장로들이 올바로 감독하고 그들의 행실이 언제나 비난받을 여지가 없을 때에만 회중의 온전한 신임을 기대할 수 있읍니다.
“사랑”의 본
13. 감독자들이 훌륭한 본이 되는 데 성공하려면 어떠한 영이 필요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감독자들은 사랑의 영을 나타내지 않는 한 그들이 참으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데 성공할 수 없읍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을 불일듯 일으킬’ 것을 상기시킨 다음에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비겁한 영이 아니라 권능과 사랑과 절제의 영입니다.” (디모데 후 1:6, 7, 새번역)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사랑의 특성을 나타내신 결과로 우리 생활에 미친 건전한 영향을 알고 있읍니다. 감독자들이 사랑의 영의 열매를 나타내는 데 훌륭한 본이 될 때 이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동료 여호와의 숭배자들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는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랑은 끄는 힘이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사랑있는 아랫목자의 충고와 도움을 얻게 하도록 촉진시킵니다. 우리로 영적 발전을 하도록 도우려는 그들의 따뜻한 관심과 그들의 열의에 대하여 우리는 감사하게 느낍니다.
14. 결혼한 감독자들은 그들이 아내들을 그들의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나타낼 어떠한 기회가 있으며, 이것은 그들의 아내들로 하여금 어떠한 일을 할 수 있게 합니까?
14 감독자들은 영적인 남자들로서 일을 수행하는 데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고린도 전 16:13, 14) 이들 감독자들이 결혼한 사람들이라면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가 먹이고 소중히 여기는] 제몸같이” 해야 합니다. (에베소 5:28, 29) 감독자들은 그들 자신의 몸을 매일같이 얼마나 돌보아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아내들도 주의와 정기적 영적 돌봄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이 “주 안에서 마땅”한 내조적 아내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골로새 3:18, 19) 「‘여호와의 증인’의 연감」에 있는 일용할 성귀를 함께 토론하는 것, 협회의 출판물을 복습하는 것, 그리스도인 집회를 준비하는 것, 항상 깨어 함께 기도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모든 것은 그러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또한 기회가 있는 대로 장로들은 다른 면으로 아내들을 도와야 합니다. 이렇게 하고 또 그 부부에게 자녀가 있다면 자녀를 올바로 양육하는 것은 그가 자기 집안 일을 잘 다스리는 증거가 될 것이며 그것은 성경적 요구 조건의 한가지를 달성하는 것이 됩니다.—디모데 전 3:4, 5; 5:8.
15. 감독자는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회중을 돌볼” 수 있다는 것과 사랑이 있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15 참으로 가족을 훌륭하게 돌보는 감독자는 그가 “하나님의 회중을 돌볼”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 3:5, 신세) 장로는 회중적 책임을 이행하면서 믿음 안에 있는 친족에 대하여 예리한 개인적 관심을 기울입니다. (갈라디아 6:9, 10) 감독자들은 회중 집회를 준비하고 또 사회하며, 환자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을 방문하고 또 정기적으로 “좋은 소식”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과 그들이 돌보아야 할 “양떼” 그리고 이들 장로들이 전하는 왕국 소식을 들어야 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본인 것입니다.
16. ‘바울’로 하여금 ‘고린도’ 회중의 최선의 유익을 위하여 행동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으며, 오늘날 그리스도인 감독자들 가운데서도 같은 태도를 볼 수 있읍니까?
16 감독자들이 직접적인 충고를 하거나 징계 처분을 해야 할 때가 있읍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장본인을 도와 주고 회중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장로들은 사도 ‘바울’을 본받습니다. 그 사도는 사랑의 동기로 ‘고린도’ 회중의 최선의 유익을 위하여 행동하였읍니다. 이렇게 하는 데 그는 상당히 긴장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 후 2:4) 그 회중에 있는 어떤 사람들이 ‘바울’의 지칠 줄 모르는 비이기적인 노력에 대하여 온전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는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더욱 기꺼이 노력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고린도 후 12:15) ‘바울’처럼 많은 감독자들도 온 마음을 쏟아서 열심히 일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며, 그렇게 해서 장한 본을 세웁니다.
17. 많은 감독자들의 훌륭한 본은 하나님의 백성의 조직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쳐 왔으며, 충실한 아랫 목자들에게 어떠한 느낌의 근거가 되게 하였읍니까?
17 다년간 문자 그대로 여호와를 섬기고 그들의 영적 형제 자매들에게 필요한 것을 돌보기 위해서 자신들을 바쳐온 많은 감독자들을 지적할 수 있읍니다. 이러한 감독자들이 나타낸 본은 하나님의 백성의 전체 회중 내에 사랑의 영을 증진시켰읍니다. 이렇게 고난이 많은 시대에도 “양떼”를 치는 이러한 본은 우리의 확신을 강화시켜 주었읍니다. “양떼”에 대한 참다운 사랑과 염려 때문에 이들 아랫목자들은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처럼 그들 자신을 표현할 만한 이유가 있읍니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 전 3:12, 13.
믿음을 나타냄으로 동료 신자들을 강화시킴
18. 감독자들은 그들에게 순수한 믿음이 있다는 증거로 어떠한 실천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합니까?
18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떠들석하게 종교 고백을 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후 3:2)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 11:6) 이 경우에도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은 “믿음”에 있어서 모두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더우기 그들에게 순수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행실 혹은 실천력이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 2:14-26) 이러한 실천에는 다른 것들과 함께, 병약자들인 동료 신자들을 위로하고, 그들 가운데 있는 궁핍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고,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일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포함됩니다.—마태 24:14, 신세; 비교 마태 25:34-40.
19. 믿음은 왜 필수적이며,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합니까?
19 ‘바울’이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로마 1:17; 갈라디아 3:11; 히브리 10:38) 믿음은 우리에게 앞에 놓여있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해줄 뿐 아니라 일을 하도록 움직입니다. 예를 들면, 보조 ‘파이오니아’나 정규 ‘파이오니아’로 등록을 하고 “좋은 소식”의 전 시간 전파자로서 봉사하는 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마가 13:10) 가족 책임과 기타 임무에도 불구하고 많은 감독자들과 봉사의 종들은 이 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마련하였읍니다. 많은 감독자들은 직장과 다른 일들을 조절해서 회중적 책임을 돌보는 일에 더 유의할 수 있게 하였읍니다. 또한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그리스도인 대회에서 임명을 수행하고, 왕국회관을 건축하는 일이나 매일매일 여러가지 신권적 활동에 참여하는 데는 순수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참으로 감독자들과 여호와의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믿고, 생활하고, 일하고 숭배하는 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20. (ㄱ) 마귀를 굳게 대항하는 데 있어서 믿음은 어떠한 역할을 합니까? (ㄴ) 특히 감독자들은 어떻게 동료 신자들이 그들의 믿음의 시련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베풀 수 있읍니까?
20 믿음은 또한 난관을 뚫고 나가고 믿음의 시련을 극복하는 데 필요합니다. ‘베드로’는 연로자들에게 “양떼”의 본이 되라고 훈계한 다음에 이렇게 경고하였읍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베드로 전 5:8, 9) 감독자들은 마귀가 하나님의 종들을 곁길로 가게 하거나 올무에 걸리게 하여 삼키려고 사용하는 책략과 계략에 대하여 이전 어느 때보다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그들이 당하는 상황에 대해 방심해서는 안되며 “양떼”의 임명된 아랫목자들은 특히 경계해야 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여호와의 증인’에게 난관과 시련이 닥치면 감독자들이 전선에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 장로들은 하나님께 의뢰하고, 적을 저항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믿음의 큰 방패와 기타 영적 병기를 사용하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들의 동료 신자들에게 도움을 베풉니다.—에베소 6:10-18.
21. 믿음의 본이 되는 감독자들은 믿음과 희망에 관하여 어떻게 하도록 “양떼”를 도와 줍니까?
21 감독자들은 “양떼”를 도와 믿음으로 행하고 앞에 있는 희망으로 즐거워하게 해야 합니다. 하늘 영역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은 보이지 않는 분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들을 볼 수는 없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우리와 관계하시는 것은 실질적입니다. (히브리 11:27) 그들의 인도의 결과로 일어나는 일은 성서 예언의 성취인 것입니다. 감독자들은 그들의 영적 형제 자매들을 열심히 도와서 이 사실을 인식하게 하고 “큰 무리”의 성원이 상당한 수로 모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축복이 지금 수행되는 일 위에 있읍니다. (이사야 60:22; 계시 7:9) 우리는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영적 안전을 경험하고 있읍니다. (시 91:1, 2) 믿음을 포함한 여호와의 성령의 열매는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풍부합니다. (갈라디아 5:22, 23; 비교 로마 1:8) 우리의 믿음의 눈은 다가오는 여호와의 심판의 집행을 바라보고 있읍니다. (계시 11:16-18; 16:14, 16) “큰 환난”이 지나면 새 질서가 시작될 것이며, 이 땅은 낙원 상태가 될 것입니다. (마태 24:21; 누가 23:43; 베드로 후 3:11-13) 그 때에는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요한 5:28, 29; 사도 24:15, 새번역) 인간 가족은 하나님과 평화스러운 관계를 회복하게 될 것이며, 이 마지막 시험 기간에 순종을 증명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입니다. (계시 20:7-10) 그러나 우리가 미래를 내다볼 때, 우리는 지금 믿음의 본으로 봉사하고 있는 수만명의 감독자들과 앞에 놓여 있는 희망을 즐기도록 그렇게도 열심히 “양떼”를 돕고 있는 충성스러운 아랫목자들을 소중히 생각하게 됩니다.—로마 12:12.
“정절”—가치있는 본
22. (ㄱ) 빌립보서 4:8과 야고보서 3:17을 고려하는 것이 어떻게 감독자들로 정절에 본이 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ㄴ) 회중 내에서 책임을 질 형제들을 추천하는 문제에 있어서 감독자들은 어떻게 정절을 지키고자 노력해야 합니까?
22 끝으로 감독자들은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는 훈계를 받습니다. 이것은 생각과 도덕적 행실이 깨끗한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생각은 항상 정절에 기초하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빌립보 4:8; 야고보 3:17) 그러나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감독자들은 또한 회중내에서 책임을 갖도록 형제들을 고려할 때 좋은 판단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들의 자격은 성경적 요구 조건에 따라 면밀히 다루어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친하거나 친척이라고 해서 편애를 나타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의 도덕적 행실에 의문이 있다면 시간을 허락해서 그러한 의문을 제거하도록 사실을 파악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디모데 전서 5:22에 있는 건전한 충고와 일치한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혹은 정절)케 하라.”
23. 무엇이 감독자들에게 사법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정절을 보존하도록 도움이 될 것입니까?
23 감독자들은 또한 사법 문제를 올바로 다룸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죄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범죄의 경우를 다루는 데 있어서 장로들은 자비를 베풀 만한 환경이라면 자비로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묵인하거나 대단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잠언 28:13; 야고보 2:13; 비교 유다 3-15, 22, 23) 임명된 장로들은 범죄자의 설명을 들을 때에나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들을 때 편애나 감상 혹은 감정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지 성서 원칙이 지배하게 함으로써 충실한 아랫목자들은 그들의 정절을 보존할 수 있읍니다.
24. 감독자들은 어떻게 해서 ‘바울’처럼 고린도 전서 11:1과 같은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까?
24 이상과 같은 면으로 본이 됨으로써 충실한 그리스도인 감독자들 모두는 선한 양심을 가지고 ‘바울’처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읍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린도 전 11:1) 이 사도는 자기의 약점을 의식하면서도 확신을 가지고 자기가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달하려고 노력하는 오늘날의 감독자들에게 있어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회중이 말씀을 담대히 전하도록 격려받음
25.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이 세운 좋은 본을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에 따라 회중 내에는 어떠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읍니까?
25 “하나님의 양떼”의 충실한 아랫목자들이 보인 본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어떠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읍니까? 당연히 회중 성원 모두가 선한 행실을 유지하면서 계속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격려를 받을 것입니다. (사도 4:29-31; 베드로 전 2:12) 사랑의 열매는 틀림없이 회중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며, 이것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백성과 연합하도록 이끌 것입니다. (스가랴 8:23; 요한 13:34, 35)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제자를 삼고, 경건하게 생활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선행을 하는 데 활동적인 믿음이 전시될 것입니다. (마태 24:14; 28:19, 20) 정절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케 함으로써 전 회중은 깨끗함을 계속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즐기는 축복을 인식함으로 충실하게 함께 여호와를 섬기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가 “양떼”에게 훌륭한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 감독자들과 함께 봉사함에 따라 우리의 연합된 노력을 계속 축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