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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81 08월호 9-12면
  • 기억해 주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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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해 주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행복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 소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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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81 08월호 9-12면

기억해 주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행복

1971년 5월 24일 저녁의 일이었다. 한 헌신한 그리스도인이 음식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쳤다. 식당을 떠나면서 그는 일련의 계단을 내려 오기 시작했다. 난간이 있는 줄로 착각하고 오른 손으로 난간을 헛잡았다—그만 그는 순식간에 밑으로 그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머리가 쇠 장식품에 아주 세차게 부딪혔다.

‘알렉스 헨더슨’은 중상을 입었다. 사실상, 그가 살아날 가망이 너무 희박하여 그의 아내는 의사로부터 애도의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의 남편은 살아났다. 그가 추락한 결과는 어떠했는가? 두골에 심한 골절상을 입었고, 세군데나 혈종이 있었으며 왼편이 마비되었다. 무의식 상태로 여러 달이 지난 후에야 부분적으로나마 좋아졌다.

현재 심한 불구로 인해 ‘알렉스 헨더슨’은 한 때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봉사에서 일했던 것만큼 많은 일은 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 ·⁠·⁠· 을 잊어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행복하다. (히브리 6:10) 우리의 천부께서 믿음의 행위와 그분의 이름을 위해 나타낸 사랑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참으로 위안이 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비극적인 사고의 여파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무엇이 그들을 지탱시켜 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지난 일을 잠깐 돌이켜 보기로 하자. ‘알렉스’는 다음과 같이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우리 가족 내에서의 종교

“나는 1921년에 ‘글래스고우’에서 태어났읍니다. 우리 가족은 ‘스코틀랜드’교인들이었읍니다. 어머니는 독실한 신자였읍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내가 겨우 열두살 때 원수인 사망에게 어머니를 빼앗기고 말았읍니다. (고린도 전 15:26) 무성한 정원을 손질이나 하는 것이 아버지가 창조주와 보다 가까와지는 주된 방법인 것 같았읍니다. 아버지가 몇차례 교회 문을 드나드신 어느날 즉 1943년 6월 11일, ‘자네트’와 나는 결혼하였읍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나는 군복무를 5년간 하게 되었읍니다. 한 교직자는 내가 신학교에 들어가서 교직자가 되겠다면 제대를 주선해 주겠다고 제안했읍니다. 하지만 나는 계속 공군에 남아 있는 쪽을 택했읍니다.

“전쟁이 끝나자 아내와 나는 사회 생활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 들어 갔읍니다. ‘자네트’가 주일 학교 선생이었으므로 교회가 주최하는 여러가지 ‘쇼우’에서 우리는 함께 경쾌한 노래인 ‘아름다운 스코틀랜드’를 불렀읍니다. 부가하자면, ‘오, 위대하신 여호와여 나를 인도하소서’란 제목의 ‘스코틀랜드’ 찬송가가 있었지만, 내 기억으로는 그 당시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읍니다.”—시 83:18.

기억해 주시는 하나님에 관해 배우게 됨

“1947년 11월에 우리 부부와 세살된 아들은 ‘뉴우요오크’ 시로 이사했읍니다. 곧 종교에 대한 ‘자네트’의 관심에 발동이 걸렸읍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그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해 알게 되었었읍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들과 성서 연구를 시작했읍니다. 그리고 1950년에 그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상징으로 물 침례를 받았읍니다.

“나의 아내가 그런 ‘여호와의 증인’들과 관련을 갖게 되었으므로 내가 그들 집회에 한번 참석해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았읍니다. 나는 내가 처음으로 참석했던 그 집회, 즉 1951년 예수의 죽음의 기념식을 결코 잊을 수 없읍니다. (누가 22:19, 20) 처음에는 모든 것이 조용했읍니다. 그런데 연로한 한 여자가 ‘우리 예수님을 위해 찬송합시다!’ 하고 외쳤읍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내가 다시는 참석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읍니다. 물론 그 여자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라 단지 한 방문객이었으며,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회는 매우 질서 정연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이 참석하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여러분 가운데 계시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고린도 전 14:23-25) 하지만 그 때는 누구도 내게 그 점을 확신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네트’는 일요일 집회가 끝나면 종종 몇몇 ‘증인’들을 우리 ‘아파트’로 초대하곤 했읍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대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종종 동네 극장에 앉아 영화를 2회를 연달아 보거나, 그 방문객들이 떠난 후에 내가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을 때까지 지치고 발바닥이 쑤시도록 무의미한 방황을 하곤 했읍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성서 진리에 노출되는 것을 얼마나 꺼립니까!

“하지만 나의 저항은 조금씩 무너져 갔읍니다. 아내의 훌륭한 행실과 잘 선택된 말씨—그리고 본지와 같은 잡지를 보도록 전략적으로 놓아 두는 일—등으로 인해 결국 나는 ‘증인’들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읍니다. (베드로 전 3:1-6) 결핵과 싸우느라 몇 개월간 입원해 있는 것은 나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읍니다. ‘자네트’는 편지로 나의 여러 가지 성서 질문을 대답해 주었고, 오래지 않아 나는 참된 믿음을 충심으로 받아들였읍니다. 현재 그리스도인 회중의 한 감독자로 일하고 있는 나의 아들 ‘아담’도 그렇게 했읍니다. 우리 두 사람은 1957년 9월 9일 같은 날에 침례를 받았읍니다.

“현재의 나의 능력의 한도를 대단히 잘 알고 있는 나는 내가 과거에 기억해 주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던 기회들에 대해 감사하고 있읍니다. 나는 곧 주임 감독자로 봉사하는 특권을 받았읍니다. 전도 봉사와 다른 회중적인 활동에 참여한 일 외에,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이 정기적으로 집회를 갖고 있는 왕국회관을 건축하는 데 참여했던 일 등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읍니다.

“그 때 어떤 사람들은 나를 좋은 뜻으로 ‘말많은 ‘헨더슨’’이라고 불렀읍니다. 무엇보다도 결혼식에서 여러 차례 주례를 맡아, 결혼 생활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행복에 넘친 얼굴들을 보는 것은 감동적이었읍니다. 슬픈 일도 있었읍니다—때때로 장례식에서 조사를 하기도 한 것입니다. 한 장례식에서 언어 문제 때문에 있었던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읍니다. ‘스페인’계 청중이 내가 영어로 된 조사를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연설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통역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그들이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놀라운 부활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그들의 슬픈 얼굴 표정들이 점차 약간 밝은 표정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가장 뛰어난 연설 특권은 1959년의 주의 만찬식 때 연설하는 특권이었읍니다. 그 이유는 그 연설은 내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케 해주신 웅대한 구원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입니다.—마태 26:26-29; 요한 3:16; 5:28, 29.

“1963년에 우리는 다른 회중과 연합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가족으로서 여호와께 헌신한 것이 정말로 행복했읍니다. 그러나 1971년에 나를 나약하게 만든 불의의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 이후로 내 처지는 신체 불구가 되었읍니다. 그러나 기억해 주시는 하나님을 계속 섬기는 일은 내게 큰 즐거움이 되고 있읍니다.”

동료 신자들이 도움을 베풀다

그 사고와 그 여파에 대한 ‘알렉스 헨더슨’의 기억은 불충분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상세한 점들을 이야기하게 하고 ·⁠·⁠·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답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역경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무엇이 그들을 지탱시켜 주는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그리고 허약한 그리스도인이 다른 동료 신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심각한 사고로 인해 ‘피를 멀리하’려는 단호한 결심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사도 15:28, 29) ‘헨더슨’의 가족에게 실제 그러한 경우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들의 확고한 행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가까운 동료 한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까지 타협하지 않고 수혈 반대의 입장을 확고하게 고수하는 것을 보는 것은 믿음을 강화시켜 줍니다.” 그렇다. 심지어 비극에 처해서도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여호와]의 것’이라는 불굴의 입장을 취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세워 줄 수 있다.—로마 14:7, 8.

동료 신자들 스스로가 도움을 베풀 수 있을 것이다. ‘알렉스’는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수 개월 동안 매우 값비싼 24시간 연속의 간호를 받아야 하였다. 한 장로는 “회중이 (영적 형제 자매들이 개인적으로) 그 짐을 지는 데 도와 주”었다고 말했다. 바로, 예수의 참된 추종자들을 식별시켜 주는, 높이 존중받는 사랑을 나타낸 것이다.—요한 13:35.

물론, 그리스도인 사랑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다. 또 다른 한 감독자는 지난 일을 이처럼 회상한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읍니다. ‘알렉스’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그곳에 여러 날 있었읍니다. 나는 매일 방문했읍니다. ·⁠·⁠· 그처럼 방문하는 동안 나는 ‘알렉스’의 손을 잡고는 기도를 드리곤 했읍니다. 그가 들을 수 있었는지의 여부는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없읍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간호원들은 조용했고 소리를 내며 왔다갔다하지도 않았읍니다.”

또 다른 한 장로는 이같이 부언한다. “서서히 ‘알렉스’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또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읍니다. 그 진전은 고통스러우리 만큼 느렸읍니다. 하지만 얼마 후에 그는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신체적인 제약들이 뚜렷하게 나타났읍니다.—몸의 왼쪽 반신이 마비되었고 그의 시력도 나빠졌읍니다. ·⁠·⁠· 기억력도 심한 타격을 받았읍니다. 특히 그는 자기가 입원한 일과 가까운 과거의 일들은 기억하지 못했읍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들에 대한 그의 기억과 지식은 거의 해를 입지 않은 것 같았읍니다. 그의 회복은 놀라웠읍니다.”

불구가 된 사람은 포기하고 절망에 빠지기가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특히 “소망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로마 15:13) 한 동료 신자는 이와 같이 말한다. “‘알렉스’는 최선을 다해 참을성있게 견뎌냈읍니다. 서서히 그는 지각을 회복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는 읽고 말도 하고 어지간히 움직일 수도 있게 됐읍니다. 그러나 왼편은 계속 마비되어 있었읍니다. 서서히 회복하면서 그는 집회들을 참석하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집회에 참석하여 연설을 하거나 해설을 하게 됐읍니다.”

‘알렉스 헨더슨’이 처음에 ‘휘일 체어’를 타고 그리스도인 회중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나중에 그는, 지금도 사용해야 하는, 보조 다리와 지팡이를 사용하여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를 지탱시켜 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는 선뜻 “집회 참석”이 한가지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히브리 10:24, 25.

노래를 부르는 것은 항상 ‘헨더슨’의 가정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었다. 그들의 영적 자매들 중 한 사람은 “‘알렉스’와 ‘자네트’가 왕국회관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듣는 것을 항상 좋아했읍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력이 나빠진 ‘헨더슨’은 회중의 노래책의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자매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전체 노래 책을 커다란 글자로 베껴 주었읍니다. 그리하여 그가 여호와를 찬양하는 노래를 다시 듣는 것은 참으로 가슴 뭉클한 일이었읍니다.”—에베소 5:18-20.

한층 더한 봉사의 특권들

“우리 가족은 아마 1975년 후반의 한 특별한 집회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하면서 ‘알렉스’는 감회에 젖는다. “감독자 중 한 사람이 내가 장로로 임명되었음을 알리는 서신을 낭독했을 때 우리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읍니다! 그 일은 전혀 뜻밖의 일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형제들은 내가 장로로서 동료 신자들을 섬기는 것을 소중한 특권으로 받아들일 것임을 잘 알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 전혀 나와 상의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첫 반응은 어떠하였겠읍니까? ‘나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나는 겸손하게 여호와의 도움이 있어야만 내가 그러한 책임을 짊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내 자신의 힘을 자랑할 수 있겠읍니까?”—비교 고린도 전 1:28-31; 빌립보 4:13.

상당한 신체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신체 불구 때문에 역경을 겪고 있는 사람의 용기를 돋구어 줄 수 있다. 한 젊은이는 이와 같이 말한다. “‘헨더슨’ 형제가 자기 해설과 연설에 맛을 더하는 데 사용하는 진리의 여러가지 매혹적인 세부 점들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읍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지식을 우리 모두에게 간절히 알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 그가 그러한 신체적인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열정적이고 격려적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허약한 그리스도인 누구도, 남자이든 여자이든, 여호와를 찬양하고 동료 신자들을 겸손하게 세워 주고자 하는 자신의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한 장로는 이와 같이 말한다. “‘헨더슨’ 형제는, 전에는 앉아서 회중에게 연설을 하곤 했지만, 아주 최근에 와서는 연단에 서기 시작했읍니다. ·⁠·⁠· 이 단순한 사실은 나에게 믿음을 강화시켜 주고 격려가 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의 봉사에서 충실한 사람이 사고를 당해 불구가 되어서 그의 봉사가 방해를 받았지만, 여호와의 영의 도움으로 이러한 것들과 싸워 이긴 것을 나는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 주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음

진실로, 그리스도인들은 오로지 여호와의 도움으로만 역경을, 어떠한 성질의 것이든, 성공적으로 직면할 수 있다. 시편 필자는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하고 질문했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 2) ‘알렉스’는 이와 같이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내가 참고 인내하도록 도와 주셨읍니다. 그분은 사랑의 도움을 마련해 주셨고, 나에게 난관하에서도 나의 성실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주셨읍니다.” ‘자네트’는 이같이 부언한다. “문제들이 생기면 나는 그것들을 기도로 여호와께 아뢰고 기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어떠한 것이 되었든, 대처할 수 있는 방법과 결과에 만족할 줄 아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간청했읍니다.”—베드로 전 5:6, 7.

그리스도인들은 잊어버리기 좋아하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며, 그들 앞에 영원한 생명의 즐거운 희망을 두셨다. (시 94:14; 요한 3:16; 베드로 후 3:13) 그러므로 ‘알렉스’는 자기의 신체 장애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으로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즐거워하십시오. ‘기도에 힘쓰십시오’ 그리고 계속 믿음 안에 거하십시오. 곧 언젠가는 눈먼 자들이 보게 될 것이고, 귀먹은 자들이 듣게 될 것이고, 말 못하는 자들의 혀가 즐거이 외치게 될 것입니다—그렇습니다. 저는 자들이 사슴 같이 뛰게 될 것입니다. 물론 나도 그 찬란한 장래를 사모하고 있읍니다. 그 동안에는 기억해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참다운 행복의 원천입니다.”—시 100:2; 이사야 35:5, 6; 로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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