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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를 믿어야 하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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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81 02월호 3-4면

성서를 믿어야 하는가?

믿음이냐 의심이냐? 신빙성이 있느냐 없느냐? 이러한 양자 택일의 질문들은 사람들의 매일 매일의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읽고 듣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신빙성이 없다. 인간의 지혜에 대해 저술가 ‘알도우스 헉슬리’는 이렇게 기술한 적이 있다. “자기가 어떤 나쁜 이유를 근거로 믿고 있는 것에 대해 또 다른 나쁜 이유를 찾는 것—그것이 철학이라는 것이다.”

과학에 대해서 말하자면, 거대한 국립 도서관들 전체 서가들에는 지난 50년에 걸쳐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 과학적, 학문적 저작물들로 가득차 있다. 사람들이 읽는 것을 다 믿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부정적인 의심 혹은 적극적인 조사?

종종 의심이 속임수나 사기에 대한 필요한 보호책이 되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습관에 쉽사리 빠져들 수 있다. “한번 당하고 나면 두배 더 조심하게 된다”는 격언을 종종 듣게 되는데 그것은 납득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의심의 세상 가운데서 사는 것이 참으로 만족할 만한가? 정보에 대한 어떤 믿을 만한 근거가 없는 경우에도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부정적으로 의심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결과가 없다. 반면에 진지한 질문과 적극적인 조사는 진리를 찾는 사람에게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과학 분야에 있어서 참으로 그러하다. ‘프랑스’ 과학자 ‘클라우드 버나드’는 그의 걸작 「실험 의학 입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자연계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첫 번째로 직면하게 되는 요구 조건은 사고의 완전한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다. ·⁠·⁠· 의심하는 사람이라야 진짜 과학자이다. 그는 과학에는 믿음을 두지만 자신과 사물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대하여는 의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유명한 ‘프랑스’ 생태학자의 말에 의하면, 과학적 조사에는 의심과 믿음 두 가지가 다 요구된다. 과학 조사가는, 어떤 특정 분야에 있어서 아직 모든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져야 하지만, 자기 실험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다른 분야들에서 과학적인 진리로 간주되는 것들은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과학을 전체적으로는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새로운 발견을 하여 과학에 기여하기를 희망하는 한, 한 가지 특정 분야에 대한 그의 의심은 건설적이다.

종교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의심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교라고 주장하는 교회들이 가르치는 일부 교리들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은 타당하다. 진지한 조사의 결과로 종교적 잘못을 거부하게 될 수 있으며 또한 참 숭배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조사는 무엇을 기초로 수행될 수 있는가?

성서—믿음의 기초

그리스도교를 시험하는 기초로서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성서(聖書)이다. 흥미롭게도 성서 자체도 그 독자들에게 맹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경신(輕信)에 대해 경고하면서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잠언 14:15) 또 이러한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을 확인하고, 훌륭한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데살로니가 전 5:21, 신세) 그것은 면밀히 검사하고, 옳은 것을 가려내고, “이지력”을 발휘하고나서 진리라고 밝혀진 것에 고착하는 것을 의미한다.—로마 12:1, 2, 신세 참조.

그처럼 추리하는 일과 스스로 확인해 보는 것은 확신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은 믿음을 세워 준다. 성서에 이렇게 정의되어 있는 바와 같다. “믿음은 바라는 사물에 대한 보증된 기대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히브리 11:1, 신세) 성서에 대한 믿음은 “증거”를 요구한다. 성서가 권장하는 종류의 믿음을 갖는 데에는 지식이 필요하다. 사람은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지식과 경험과 함께 자라나는 것이다. 성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그리스도에 관한 말씀, 신세]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 10:17) 그리고 진짜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성서이다.

믿음—오늘날 바람직한 특성

우리의 믿음을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지식과 그것을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능력을 성서는 “지혜”라고 부른다. 그러한 지혜를 획득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성서의 조언에서 나온 것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야고보 1:5-8.

운명에 대해 의심과 불안으로 에워싸인 세상, 세월에 의해 증명된 도덕의 가치를 거부해 온 세상 가운데서는 인간에게 인간을 인도할 수 있는 영적 지침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의심하는 사람은 참으로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이 불완전한 인간의 자꾸 변하는 철학에 의해 실제로 이리 저리 밀려 다닌다. 그러한 사람은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 그에게는 아무런 확신도 없다. 어떠한 논증도, 아무리 논리적이라 할지라도, 그를 확신시킬 수 없다. 그가 믿을 수 없는 이유는 믿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성서를 시험해 보라

그러한 회의론자들은 인생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의심한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없이 고작 (어떤 동물들의 수명보다도 짧은) 자기들의 수명을 살고 죽는 것으로 만족한다. 우리의 친애하는 독자는 인간이 겨우 70내지 80년을 살다가 죽고 나면 자기가 쌓은 지식과 경험 전부가 사라지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바이다. 우리는 독자가 인생도 탐구하고 진리도 찾는 사람들 중 한분이기를 바라는 바이다. 제1세기에 살던 그러한 사람들에 관해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영원한 생명에 합당한 기질을 가진 모든 자들은 신자들이 되었다.”—사도 13:48, 신세.

우리는 당신이 성서가 생명을 주는 지식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다음에 이어지는, 성서의 확실성에 관한 고고학적 그리고 과학적 증거를 고려해 보도록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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