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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랑하는 것을 삼가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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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81 08월호 23-24면

자랑하는 것을 삼가해야 할 이유

최소한 몇 가지 이유만으로도 자랑하는 것을 삼가야 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 자랑하는 것은 매번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랑이 종종 거만함과 겸손의 부족으로 생기는 것이긴 하지만 때때로 자랑은 자기 존중, 칭찬받을 만한 공적 혹은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회중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회중을 이러한 말로 안정시키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찌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그들에 대한 이러한 믿음과 사랑이 있었음으로 ‘바울’이 합당한 자랑을 하는 것은 적절하였다.—데살로니가 후 1:3, 4.

사도 ‘바울’은 또한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들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로마 2:17) 그리고 우리는 반복적으로 성서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는, 즉 말하자면 그분들을 자랑하는 하나님의 종들에 대해 읽게 된다.—시 34:2; 고린도 전 1:31; 빌립보 3:3.

남편이 자기 아내의 요리 솜씨를 자랑하는 것과 같이 가족 성원들이 서로의 특성, 미덕 혹은 달성한 일들에 대해 합당한 자랑을 할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 부모들은 자기들이 기른 자녀가 하나님께 전 시간 봉사를 하는 길을 택한 것을 자랑할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아마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자랑이 좋은 면으로 언급된 경우 못지 않게 20회나 비난받을 일로 언급됐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자랑하지 말라는 충고를 반복적으로 받을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항상 조심치 않는다면 쉽게 곤경에 빠져들어갈 수 있는 이기심이 우리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창세 8:21.

사실, 흔히들 말하는 대로 자찬이나 자랑의 느낌이 도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마치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삼가할 필요가 있다. 자랑 때문에 스스로 바보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랑으로 인해 패망하였는가! 한때 영국의 한 수필가가 “보통, 자랑이 모든 엄청난 과오의 근원이다.”라고 잘도 진술하였다. 현대의 유명한 예로는 ‘아돌프 히틀러’가 있다.

자랑하지 말아야 할 가장 심각한 이유는 우리로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베드로 전 5:5) 그렇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는 말씀도 같은 의미이다. (잠언 16:5) 더 나아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말씀을 읽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잠언 16:18.

우리에게 충고가 주어질 경우와 같은 때, 자랑하는 생각을 억제하는 것이 현명한 행로임을 나타내는 예들이 성서에는 많다. 적절한 예를 하나 든다면, 문둥병으로 고생한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있다. ‘엘리사’의 사환이 그에게 병을 치료하려면 ‘요단’ 강물에 몸을 일곱번 담가야 한다고 말하자 그의 자존심이 상하였다. ‘나아만’은 ‘다메섹’ 강들이 ‘요단’ 강보다 더 낫다고 자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을 억제하였고 그의 종들은 그를 설득시켜 ‘엘리사’가 알려준 대로 하게 하였다. 그렇게 하여 ‘나아만’은 문둥병을 치료받았다. 확실히 그는 자존심을 억제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열왕 하 5:11-14)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현명한 충고는 받을 때 기분이 내키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자존심을 억제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지혜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느니라.” (잠언 9:8; 15:31) 책망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최초의 사람은 ‘가인’이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경고하셨다. “죄가 문간에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네가 죄를 갈망하고 있으니 네 자신이 죄를 지배할 수 있겠느냐?” 자존심 때문에 ‘가인’은 듣기를 거절하였고, 결국 살인자가 되어 추방되었다. (창세 4:7, 신세) 또 다른 예로 ‘웃시야’ 왕을 들 수 있다. 자기 군대의 승리에 도취하여 그는 제사장의 직무를 찬탈하려고 하였다. 힐책을 당했을 때 그는 자존심을 억제하기를 완강히 거절하였고 그 결과 문둥병자로 죽었다.—역대 하 26:16-21.

때때로 우리는 이런 저런 일로 무시를 당하거나 모욕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어떻게 할 것인가? 보복을 하거나 같은 식으로 응수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 12:17-21) 그런 경우에 예수의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말씀이 적용된다. (마태 5:39) 무시당하기를 거절하고 자존심을 억제하지 못한 사람으로 ‘아각’ 사람 ‘하만’이 있었다. ‘아하수에로’ 왕이 모든 사람에게 ‘하만’ 앞에 엎드려 절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유대’인 ‘모르드개’는 합당한 이유로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였다. 이 일로 인해 뽐내며 우쭐대던 ‘하만’은 매우 분노하여 ‘모르드개’뿐 아니라 모든 ‘유대’인을 멸절시키기로 작정하였다. 결국 ‘하만’은 먼저 크게 수치를 당하였고 그후 즉시 ‘모르드개’를 달려고 준비했던 나무에 달려 죽었다. 만일 ‘하만’이 자존심을 억제하고 ‘모르드개’에게 받은 멸시를 무시하였다면 그는 불시에 그런 수치스러운 종말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에스더 3장에서 9장) 이러한 말씀을 우리는 음미해 볼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나쁜 기질을 즉시 나타내거니와, 총명한 사람은 무시당할 때 자기 감정을 감추느니라.”—잠언 12:16, 신 영어 성서.

그 밖에 우리는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면 우리의 자존심을 억제하고 사과하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는 참으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 산상 수훈 가운데 이렇게 충고하신 바와 같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 5:23, 24.

또 다른 경우, 우리가 저지른 어떤 실수를 인정하기 위해 우리의 자존심을 억제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으며 완전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확실히 모르거나, 판단하는 데 실수를 하여 현명하지 못한 행동을 취하였다면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지 모를 다른 사람에게 그 점을 인정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이 점이 특히 감독권을 가진 부모나 어떤 일의 감독자나 혹은 회중의 임명된 장로들에게 중요하다.—야고보 3:1, 2 비교.

또한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적게 기대함으로 우리의 자존심을 억제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잔치에 초대되었을 때 더 높은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하더라도 제일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낮은 자리에 내려 앉으라고 요청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높은 자리로 올라 앉으라고 요청받는 것이 낫다.—누가 14:7-11.

참으로 우리의 자랑 혹은 자존심을 억제해야 할 만한 많은 이유들이 있지 않은가? 과연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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