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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우스’의 진상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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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81 08월호 7면

‘뉴우스’의 진상

학생들과 “침몰하는 배”

● ‘카아네기’ 고등 교육 정책 연구 위원회의 분석에 의하면, 미국 대학생들의 목표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음을 알려준다. 10년 전만 해도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인간다운 가치 기준 및 목표들을 첫째로 둔 것과는 달리, “옳은 일을 배우고 많은 돈을 벌라”는 것이 오늘의 철학이 된 것 같다. 왜? “오늘날 재학생들은 자기들이 미국 혹은 세계라 불리우는 침몰하는 배, 말하자면 ‘타이타닉’에 타고 있는 승객이라고 느낀다.”고 그 연구는 말하였다. “대학생들 사이에는, 자기들이 ‘타이타닉’에 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그 여행을 가능한 한 즐거운 것이 되게—사치스러운 것이 되게—하고 일등 칸에 타야만 한다는 신조가 점증하고 있다. 그들은 그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까지도 사람이 희망이 없으면 그러한 인생관을 갖게 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그러나, 그는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경우에나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반면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한 가운데서의 영원한 생명을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누릴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바울’이 권고한 현명한 행로를 취한다. 그는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고 권고하였다.—고린도 전 7:29-31; 15:29-32; 요한 17:3.

생존주의자들 ‘아마겟돈’에 대비하다

● “생존주의자들 ‘아마겟돈’을 위해 준비하다” 이것은 ‘로스앤젤레스’의 「타임즈」지의 최근 표제다. 그 기사는 미국에서 다가오는 재난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급속히 점증하고 있음을 묘사했다. “생존주의자들은 ‘아마겟돈’이 어떻게 올 것인가에 관한 여러 가지 대본들을 구독한다.”고 그 「타임즈」지는 설명한다. “그것은 지진, 염병, 기근 혹은 혁명으로 인해 올 수 있다.” 핵 전쟁, 경제 붕괴 혹은 시가전 등에 대한 공포 역시 생존주의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한 집단의 출판물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폭민 정치를 하려 들 것이다. 문명은 파괴될 것이다.”

준비하기 위해서, 생존주의자들은 금, 식량, 연장, 의약품 및 무기들을 축적하고 있다. 다시 한번, 핵 낙진 보호처들이 활기차게 팔리고 있다. 생존 기술—특히 소화기들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훈련소들이 생겨 나고 있다. “자녀들에게 총기 다루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어느 생존주의 강사는 단언하였다. “내 막내 딸은 열 한살인데, 우리는 그 아이에게 총쏘는 법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러한 준비는 “생존주의자”들을 ‘아마겟돈’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아마겟돈’은, 그 말이 나온 성서에 의하면, 인간의 소행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도 그것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으로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제거할 싸움이다. (계시 11:18; 16:14, 16) 그러므로 생존은 얼마나 많은 식량을 축적하느냐 혹은 얼마나 총을 잘 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명령을 청종하는 것에 달려 있다.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그 예언자가 말하는 것처럼,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을 것이다.—스바냐 2:3.

낙태는 더 가벼운 죄인가?

● 낙태에 대한 경악할 만한 사실들 얼마가 영국 사회학자 ‘콜린 프랑코메’가 미국 ‘메사츄세츠’의 ‘보스턴’과 ‘뉴우요오크’의 ‘롱 아일랜드’의 낙태 진료소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2년간의 연구로 밝혀졌다. “그 연구가 드러내준 한 가지 놀라운 통계는 ‘보스턴’ 진료소의 낙태 환자들의 66‘퍼센트’가 ‘가톨릭’교인인데 반해, ‘보스턴’ 전 인구 중 ‘가톨릭’교인은 35‘펜센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연구가 드러내 주는 가장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가톨릭’ 신자인 미혼 여성들로서 낙태는 두가지 죄악 중 더 가벼운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왜? 그들의 신앙을 근거로 그들은, 그 연구가 알려 주는 바에 의하면, “피임을 하여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것보다 낙태를 하는 것이 더 났다고 추리한다는 것이다!

죄에 대해 이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가 사람들에게 스며든 것은 피임—성서에 특별히 다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에 대한 논쟁을, 명백히 금지되어 있는 태아를 죽이는 것만큼이나 중대시하는 교회 때문임이 분명하다. 한편, 당초에 원치 않는 아기를 만들어 낸 음행이 죄라는 사실은 피임에 대한 열띤 논쟁에 묻혀 거의 무시되고 있다.—출애굽 20:13; 21:22, 23; 고린도 전 6: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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