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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의 사건을 되살아나게 하는 지도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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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파82 8/1 19-23면

성서의 사건을 되살아나게 하는 지도

“비가 올 모양이군요” 하고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한 영국 사람이 차창 밖으로 얼마의 구름을 바라보면서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그 지방 안내인은 그 말을 듣고는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연중 이 때에 ‘이스라엘’에서는 결코 비가 오는 일이 없읍니다. 이곳은 영국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우 쉽게 우리 지방과 우리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성서 지역들을 판단할 것이다. 특히 우리가 중동 지방을 방문한 일이 없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배경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지방의 풍토와 관습을 더 잘 알게 되면 우리는 성서에 기록된 매우 많은 사건들에 관해 더욱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지도야말로 이러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지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언어보다 더욱 호소력이 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지도를 보고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약간의 시간을 들여 지도와 부호 및 여러 가지 색채의 의미에 익숙해지면 그것을 사용할 때 우리의 연구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지도란 꼭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성서 지리학자 ‘데니스 밸리’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원하는 장소를 찾으면 “또한, 우리는 최소한 그곳이 자연 풍경과 계곡, 언덕, 강 및 평야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시각 관념을 형성하게 되고 이것이 실제 지형(地形) 사진에 부가되면 그 배경이 되살아날 것이다. 성서 내용을 읽을 때에 마치 우리가 거기에서 그 사건의 발생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면 묘사된 인물과 함께 동화되기가 참으로 쉬울 것이다. 몇 가지 예를 살펴봄으로써 성서 지도의 이러한 사용법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도주한 일

거인 ‘골리앗’을 죽인 후 청년 ‘다윗’은 계속하여 ‘불레셋’ 사람들을 격파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어 여인들은 ‘사울’ 왕이 죽인 수천명과 ‘다윗’의 수만명을 비교하면서 노래와 춤으로 승리를 축하하였다. ‘사울’은 그것을 듣고 대단히 분노하였다. 칭찬은 증오로 변하여 그는 자기의 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다. ‘다윗’의 연속적인 성공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고 ‘사울’은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었다.—사무엘 상 18:6-29.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자기의 아내 ‘미갈’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한 상태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 (사무엘 상 20:3) 그는 마침내 ‘예루살렘’ 남서쪽 ‘유다’ 산지가 해안 평지를 향해 경사를 이루는 지역에 위치한 ‘아둘람’ 동굴로 도주하였다. 이 근접하기 어려운 지역에는 수많은 석회암 동굴이 있으며 여기에서 수백명이 함께 ‘다윗’에게 모여들었다. (사무엘 상 22:1, 2) 그러나 ‘아둘람’ 부근의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붙일 것이라는 여호와의 경고를 받아 그는 더욱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나섰다.—사무엘 상 23:6-13.

‘유다’ 광야는 그러한 피난처로는 아주 적합하였다. 수백년이 지나서 예수께서는 여기서 천사들에 의해 야생 짐승 곧 표범, 늑대, ‘하이에나’로부터 보호를 받고 40일을 보내셨다. (마가 1:12, 13) 우리 시대에 와서, 수천개나 되는 동굴 중 일부에서 놀랄 만한 것이 발견되었다. 약 2,000년 전으로 소급하는 고대의 성서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특별한 건조한 기후 탓으로 보존된 것이다. 멀지 않은 또 다른 동굴에서는 기원 132-135년에 ‘로마’에 항거한 두번째 ‘유대’인 반란의 유적이 출토되었다. 왜 그들의 지도자 ‘바코바’는 이 지역으로 도망하였으며 어떻게 이 두루마리들이 그처럼 오랫동안이나 숨기워 보존되었는가? ‘다윗’이 “광야의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에 유하였고 또 ‘십’ 광야의 산골에도 유하였”던 꼭 같은 이유에서이다.—사무엘 상 23:14, 15, 신세.

‘십’ 광야 바로 옆에 있는 ‘마온’ 광야는 ‘유다’ 광야의 중앙 고원 지대이다. (사무엘 상 23:24) 지도를 보면 이 광야는 대체로 다른 쪽 경계를 이루는 ‘예루살렘’, ‘베들레헴’ 및 ‘헤브론’ 세 도시와 함께 사해 서편을 따라 곧 바로 뻗어가면서 보인다. 다음에 우리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동서를 가로지르고 남북을 치닫는 많은 계곡과 ‘와디’를 보게 된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있던 산 측면에서 ‘기드론’ 골짜기를 내려가면서 우리는 번잡한 도시를 어느 덧 뒤에 남겨둔 채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요하난 아하로니’의 말대로 “공포의 광야”로 들어 간다. 이 계곡을 따라가면, ‘엔-나아르’(“불의 ‘와디’”)가 나오는데 이것은 사해로 약 900‘미터’(약 3,000‘피이트’) 급강하하여 양쪽을 약 60‘미터’(200‘피이트’) 치솟은 깎아지른 절벽과 함께 깊은 산협과 협곡을 이룬다. 겨울에 이 하상(河床)을 따라 걷는 것은 급작스런 폭우 다음에 ‘와디’를 치밀고 내려오는 급류 홍수에 휘말릴 위험이 있을 것이다. 여름에는 열기가 굉장하다. 그 지역의 ‘와디’마다 유사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다윗’이 이곳을 안전한 피난처로 여겼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사울’ 왕이 3,000명의 군사로도 그 석회암의 절벽에 난 무수한 동굴을 찾아 내기 힘들었으며 많은 사람들은 단지 위로부터 내린 ‘로우프’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을 뿐이다. ‘사울’과 그의 부하는 나중에 ‘다윗’이 사해 연안 부근의 ‘오아시스’인 ‘엔게디’로 옮겼다는 보고를 듣고 ‘사울’은 “들염소 바위로” 계속 찾아 나섰다. 아주 캄캄한 어느 동굴 속에서 바로 뒤에 숨어 있던 ‘다윗’은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있었으나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해하기를 원치 않았다.—사무엘 상 24:1-15.

또 다른 경우에 ‘다윗’은 ‘사울’의 진영에서 잠들어 있는 왕을 죽일 수 있었는데도 자기를 쫓는 자의 창과 그의 옆에 있던 물병만을 취하였으며 나중에 그 골짜기 반대편에 서서 ‘사울’의 부하들이 그들의 왕을 보호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황무한 주위 언덕에 울려 퍼졌으며 ‘다윗’은 건너편을 불러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사울’이 쫓아야 할 일을 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사무엘 상 26:1-20.

우리가 「시편」에서 ‘다윗’이 도움을 호소한 그 많은 경우를 고려할 때 이러한 묘사는 참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가 문자적인 바위산 혹은 암벽—즉 높은 산지—을 자기의 피난처로 생각하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항상 여호와께서 자기의 진정한 보호자이며 구원자이심을 기억하였다. 목자인 ‘다윗’은 언덕에 올라가곤 하였다. 그는 마치 긴 뿔 가진 산염소나 산양처럼 발걸음이 날쌔고 민첩하였다. 그러나, 좁은 길에서 그의 발이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 준 것은 그의 하나님이었다. (시 18:1-3, 31-33) ‘십’ 사람들에게 배반당하고 그에게 올무를 놓은 적들에게 쫓길 때 ‘다윗’의 마음은 여전히 여호와께 고착했으며 적막한 절벽과 골짜기 사이에서 수금을 타면서 반주에 맞추어 노래 부를 수 있었다. (시 54, 57) 심지어 ‘다윗’의 적들의 압력으로 그가 침울한 상태에 있을 때에도 여전히 그는 여호와께 이야기하고 구원을 위해 그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시 142) 우리 역시 큰 어려움에 직면하여 이와 같이 할 수 있는가?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쌓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유다’ 침공

기원전 10세기에 ‘여호사밧’이 ‘유다’ 왕으로 있을 때 그는 얼마의 불안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방에서 온, ‘모압’과 ‘암몬’ 및 ‘세일’에 거하는 족속들로 된 연합국이 “바다 저편 ‘에돔’에서 [그들은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었다]” ‘유다’를 향해 진군해 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 왔다. (역대 하 20:1, 2, 10, 11, 신세) 지도를 보면, ‘엔게디’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며 ‘모압’과 ‘암몬’ 및 ‘에돔’은 금방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도 있다. 이러한 군대가 어떻게 ‘엔게디’까지 이르렀으며 왜 그러한 특별한 방법으로 오게 되었는가?

‘유다’ 초기의 왕 ‘르호보암’은 전략적 요지에 일련의 요새 도시를 건설하였다. 지도에서 ‘유다’ 동쪽 측면을 보호하는 ‘베들레헴’, ‘에담’, ‘드고아’, ‘벧술’, ‘헤브론’ 및 ‘십’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역대 하 11:5-12)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들은 기습 부대를 필요로 하였으며 아마 ‘유다’의 공허하고 험준한 광야가 그런 기습을 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들은 사해 남단을 돌아서 왔을지도 모른다. 혹은 ‘리산’ 반도를 행군하여 사해를 건너 왔을지도 모르는데, 일부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고대에는 사해의 가장 좁은 지점(약 3‘킬로미터’)에 얕은 여울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다음 ‘맛사다’의 큰 암벽을 지나 아마 상기 요새 중 하나에서 파견된 정찰병에게 발각되기 전에 ‘엔게디’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것은 ‘여호사밧’에게 시간이 거의 없음을 의미하였는데, 적이 있는 곳은 ‘예루살렘’으로부터 하루 행군 거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윗’과 같이 그는 여호와께 의뢰하였고 그분에게 도움을 구하였다. 대답은 이러하였다.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그는 그의 백성을 가파른 골짜기 끝에 있는 ‘드고아’ 바로 밑에 배치하여 두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이는 적군이 “‘시스’ 고개로 말미암아 올라”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사밧’은 이대로 하였으며 노래하는 자들을 선두에 배치하였다.—역대 하 20:3-21

‘시스’ 고개 길은 ‘엔게디’ 근처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있는데 우선, 이리저리 꼬불꼬불하고 가파른 갈지자형의 협착한 길을 따라 약 390‘미터’(1,300‘피이트’) 높이를 올라가야 하였다. 그 다음 고원 지대를 계속 가로질러 거의 해발 820‘미터’(2,700‘피이트’) 높이에 있는 ‘드고아’까지 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진다. 그 길은 실로 작은 ‘와디’와 지류의 개천 바닥을 건너면서 수없이 오르내려야 하는 오르막 길이다. 더위에 겹쳐 지쳐버린 적은 아마 꼭대기 부근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휴식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회가 없었다. 그들은 복병에게 발각되었던 것이다. 미처 여호와께서 ‘유다’를 돕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복병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모르는 적들은 완전히 큰 혼란에 빠져 버렸다. ‘유다’ 사람들의 찬양의 함성이 언덕에 울려 퍼지자 침략군들은 그들의 동맹군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논쟁이 일어났으며 서로 싸우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전멸하고 말았다. 우리는 주위 산지를 가로질러 울려 퍼지는 찬양의 노래와 함께 울퉁불퉁하고 황량한 고지에서의 그 광기에 찬 싸움을 보고 들을 수 있는가? 여호와의 웅대한 승리에 대해 ‘유다’는 그분을 얼마나 송축했겠는가!—역대 하 20:22-30.

선한 ‘사마리아’인

강도의 습격을 받은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인에 관한 잘 알려진 예수의 비유는 ‘유다’ 혹은 ‘유대’ 광야 바로 북쪽 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내용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에 이르는 길을 여행자들이 “내려가”는 길임을 여러 번 강조한다. (누가 10:29-37) 예수께서는 그 길을 아주 잘 알고 계셨다. 우리도 오늘날 거의 그 동일한 길을 여행할 수 있다. 지도를 살펴보면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 약 23‘킬로미터’에 걸쳐 약 914‘미터’(3,000‘피이트’) 이상 경사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그 길의 대부분은 사막에 인접하여 아주 먼 거리를 해발 이하로 내려가게 된다. 그 길목에는 거의 집들이 없으며 매우 적적하고 지리한 무더위의 길이다. 또한 튀어 나온 절벽이나 바위 부근에서 강도들이 숨어서 마음 놓고 가는 여행자들을 기다리기가 매우 쉬운 곳이었다!

예수께서 이러한 환경을 배경으로 비유를 말씀하신 데에는 그만한 목적이 있었다. 그분의 말씀을 듣던 많은 사람들은 그 길을 알고 있었으며 정신적 눈으로 그것을 그려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발생한 일을 “볼” 수 있었으며, 친절한 ‘사마리아’인이 외딴 주막집에서 부탁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우리도 그 비유를 읽으면서 이러한 것을 그려 볼 수 있는가?

성서 지도의 사용

여기에 고려된 예들은 우리가 성서 지역들에 대한 지도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예이다. 만일 더 상세한 것을 알기 원한다면 그 지역의 대축척도(大縮尺圖)를 살펴볼 것이다. 그 지도에 나와 있는 장소를 살펴보면서 일부 지도에 나와 있는 등고선과 색채를 보고 강이나 큰 길 또는 관련된 경계선 등에 유의하라. 밀집되고 굴곡이 심한 등고선과 자주 변색되는 부분은 언덕과 골짜기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지만, 하나 혹은 두 가지 색채만을 사용하고 넓게 벌어지고 완만한 등고선은 평야 지대 및 기복이 덜한 지형임을 알려 준다. 만일 당신이 그 지역의 사진을 볼 수 있다면 이것은 정신적 시각에 보탬이 될 것이다.

‘바울’의 여행과 같은 좀 더 긴 노정(路程)을 추적하는 데는 소축적도가 유용하며 상세한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신세계역」 성서의 표지 이면을 보라. 그러나 지도가 작을수록 우리가 알고자 하는 이름들은 적게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위치는 개략적인 것이다. 또한 지도는 종종 역사상 특별한 기간과도 관계가 있다. 이름은 아주 빈번히 바뀌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성서 이해를 위한 보조서」a에는 큰 도움이 되는 지도들이 있다.

당신이 비록 성서의 지역들을 직접 방문해 볼 기회는 결코 가질 수 없다 하더라도 지도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알아보도록 하라. 머리 속에 그려 봄으로써 성서를 읽을 때 더욱 의미깊은 것이 되게 하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새겨져서 성서 사건을 더욱 쉽게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각주]

a ‘뉴우요오크’,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22면 그래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피이트

3000

예루살렘

2000

1000

0

여리고

-1000

[21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여리고

요단강

암몬

모압

리산

에돔

여울?

유다 광야

맛사다

엔게디

십마온 광야

십

헤브론

시스 고개

벧술

드고아

에담

베들레헴

엔-나르 와디

쿰란

예루살렘

사해

[22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여리고

사해

베다니

벳바게

예루살렘

[20면 삽화]

‘유다’ 광야의 동굴

‘엔게디’에서 본 사해 남단

[23면 삽화]

‘여리고’까지 3,000‘피이트’ 경사로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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