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82 3/15 3-4면
  • 교회들이 관여하고 있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교회들이 관여하고 있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정치에 관여하는 종교
  • 종교가 긴장 요소를 완화시킬 수 있는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 교직자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4
  • 종교의 정치참여—그것은 무엇으로 인도하는가?
    깨어라!—1974
  •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합당합니까?
    그 밖의 주제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파82 3/15 3-4면

교회들이 관여하고 있다

“지금은 경건한 사람들이 정부에 뛰어들 때이다.” 이것은 ‘캘리포오니아’의 한 교역자의 말이다. 당신도 그와 같이 종교인들이 정치에 관여해야 한다고 여기는가? 도덕 표준의 하락, 범죄의 증가, 경제 쇠퇴, 국제적인 긴장 요소들, 빈곤과 굶주림 및 전세계에 만연한 무신앙 등을 보고 경악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긴다.

이러한 문제들 다수에 대해 정부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부들이 힘을 쓸 수 없는 때가 종종 있다. 설상가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추문들로 얼룩져 있다. 부패와 기만에 관한 보도들로 인해 자기네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는 매우 약해져서 “나는 정치 체제 전체가 부패하고 부도덕해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하고 말한 중년 어머니와 같은 생각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진실한 많은 사람들이 종교가 도움을 베풀려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종교는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여긴다. 또한 그들은 인류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인간의 능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올바른—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기도로 도움을 구하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그들은, 아마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자기들에게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에 “경건”한 요소를 투입하기 위해 “경건한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에 관여하게 하려고 한다. 교직자들, 사제들 및 종교적인 서약을 한 사람들이 점점 정치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것이 종교가 오늘날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가? 이러한 일부 종교가들이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고려해 보고, 그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보도록 하자.

정치에 관여하는 종교

미국에는 바로 수도에 ‘로비’ 활동가들을 두어 입법자들에게 영향을 가하려드는 종교들이 있다. 그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 ‘가톨릭’ 사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 나라의 정치 풍조를 좌우하는 도덕적인 태도들에 대해 우리가 장기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직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정부에게 ‘여러분이 한 일은 잘못이오. 여러분은 잘못된 행로를 취했단 말이오.’ 하고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로비’ 활동들은 오래 동안 신중하게 행해져 왔다. 보다 최근의 양상은 훨씬 덜 신중하다. 정통파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조직한 특별 권익 단체들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도덕적 다수파’와 같은 이러한 단체들은 ‘이스라엘’ 지지, 동성애 권리, ‘파나마’ 운하 협정, 대만 안보 및 낙태 등과 같은 쟁점들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정치가들은 그들의 영향력을 과소 평가하지 말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싫어하는 계획들을 지지한 상원 의원들은 투표에 패하여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유럽’에 본부를 둔 ‘세계 교회 협의회’가 정치에 관여한 방법은 조금 다르다. 1970년 이래 그 협의회가 여러 가지 정치 혁명 운동에 기증한 돈은 3백만 ‘달러’(미화)라고 한다.

또, 일부 교역자들은 정부의 민선 관직에 앉으려고도 한다. 그러나 최근의 한 신문 표제는 정치 관여의 궁극적 결과가 어떠할 수 있는가를 이렇게 예시하였다. “‘필리핀’의 사제들, 교구를 떠나 반란에 가담하다.” 이 기사는 공산주의 ‘게릴라’ 운동에 가담한 네명의 ‘가톨릭’ 사제들에 관해 말하였다. 그처럼 과격한 운동들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으로 비싼 것이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로 인하여 지난 10년 동안 약 850명의 사제, 수녀 및 평신도들이 살해되거나 납치되거나 추방당하였다.

종교 지도자들의 이러한 정치 활동을 독자는 어떻게 여기는가? 독자는 그것에 성원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회의적인가? 독자는 종교가 정치적인 쟁점들에 대해 신중하게 발언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사제들이 혁명에 가담하는 것은 불쾌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종교의 정치 관여를 용납한다면, 어느 정도까지만 관여할 수 있다는 한계선을 긋기가 어렵다. 일부 교역자들이 자기들이 좋다고 여기는 계획들을 위해 한 나라의 수도에서 신중하게 ‘로비’ 활동을 벌이는 것이 용납될 수 있다면, 정통파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자기들에게 중요한 계획들을 촉진시키기 위해 주(州) 규모의 압력 단체들을 조직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 또한, ‘도덕적 다수파’가 ‘이스라엘’ 방어를 부르짖을 수 있다면, ‘세계 교회 협의회’가 자기들이 지지하는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 돈을 기증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면,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의 ‘가톨릭’ 사제들이 위험을 무릅쓰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돈을 내 놓는 대신, 스스로 자기들이 지지하는 목적을 위해 투쟁하다 죽는 것을 반대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또 ·⁠·⁠· 독자는 이러한 일련의 논조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지각하였는가? 그것이 과연, 처신하기 어려운 오늘날 종교가 인류를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가?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가하려드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음에는 종교와 정치가 혼합된 주목할 만한 사건들이 몇 가지 열거되어 있다.

[4면 네모]

◻ 1095년에 교황 ‘어반’ 2세는 서방 군대들에게 “동방의 기독교 구역에 있는 그들의 형제들을 돕기 위해 나아가” ‘터어키’를 칠 것을 호소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로 일어난 제1차 십자군과 십자군 운동으로 인해 이 세기에 걸쳐 대살륙이 벌어졌었다.

◻ 12세기에 교황 ‘아드리안’ 4세는 ‘아일랜드’ 땅을 영국 왕 ‘헨리’ 2세에게 공식적으로 부여함으로써, 영국의 그 나라 점령을 (신도들이 보기에) 합법적인 것이 되게 하였다.

◻ 1524년에 독일의 소작인들이—어느 정도 ‘마르틴 루터’의 가르침에 자극을 받아—반란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그들의 운동에 호의적이었지만, 1525년에 ‘루터’는 독일의 군주들에게 “포악하고 난폭한 소작인들의 무리”들을 짓밟을 것을 권하였다. 군주들은 그의 조언을 따라 대단한 잔학 행위를 범하였다.

◻ 1618년에 주로 ‘프로테스탄트’ 신도들인 주민에게 ‘가톨릭’교를 강요하려는 ‘보헤미아’의 지명된 왕의 노력은 삼십년 전쟁의 발발 원인이 되었다.

◻ 1918년에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그들의 영향력을 활용하여 ‘국제 연맹’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그 지지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단 이십년 후에 세상은 전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에 말려 들어간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국제 연합’을 지지하고 있지만, 나라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중무장을 하고 있으며 더 분열되어 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