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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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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 소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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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파83 4/15 7-11면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찬송하리로다. ·⁠·⁠·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 ·⁠·⁠· 하시는 이시로다.”—고린도 후 1:3, 4.

1, 2. 고린도 후서 1:3-7에서 사도 ‘바울’은 환난 중의 위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여호와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체험을 통하여 이 점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이러한 고무적인 말로 편지하였읍니다.

2 “찬송하리로다. ·⁠·⁠·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 ·⁠·⁠· 하시는 이시로다. ·⁠·⁠· 우리가 환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린도 후 1:3-7.

3. (ㄱ) ‘바울’은 어떻게 여호와께서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읍니까? (ㄴ) 동료 ‘증인’들은 무엇을 기초로 위로를 받고 환난을 인내하도록 격려받을 수 있읍니까?

3 그렇습니다, ‘바울’은 여호와께서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는 천적 아버지께서 자기를 위로하시고 부드러운 자비로 대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하였으며 특히 그가 “의를 위하여”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러하였읍니다. (마태 5:10 비교) 따라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환난을 인내하도록 격려할 수 있었읍니다. 확실히, 환난을 인내해 온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충실성의 본을 통하여 그리고 여호와께 대한 신뢰심을 표현함으로써 동료 신자들이 하나님께 충실을 유지하도록 고무하는 격려를 베풀어 줍니다. 그리고 고통을 인내하는 일에서 ‘바울’은 본을 세워 놓았읍니다.

충실한 인내의 기록

4, 5. (ㄱ)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두번째로 편지한 것은 언제였읍니까? (ㄴ) ‘바울’은 ‘고린도’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어떻게 부족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그는 어떻게 그들보다 우월하였읍니까?

4 기원 55년경에 ‘바울’은 ‘고린도’ 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의 두번째 영감받은 편지를 썼읍니다. 거기에서 그는 자신이 “지극히 큰 사도들”이라고 풍자적으로 언급한 자들의 반대를 받았었읍니다. 그는 자기의 사도된 직분을 담대히 변호하였는데, 이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즉 여호와께 속한 회중을 구하기 위해서였읍니다. (고린도 후 11:5, 12-14; 12:11; 5:12, 13) 그 사도는 혈통상으로 볼 때 자기가 반대자들보다 부족할 것이 없음을 밝힌 다음에, 자기는 “그리스도의 봉사자”로서 수고와 고통, 여행, 위험 및 고난에 있어서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지적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5 “저희[그의 적대자들]가 그리스도의 일군[봉사자들, 신세]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린도 후 11:21-27.

6. (ㄱ) ‘고린도’인들에게 두번째 서한을 보내기 전까지의 ‘바울’의 그리스도인 생애의 일부 특징들에 대한 기록을 우리는 어디에서 발견하게 됩니까? (ㄴ) ‘바울’의 충실한 인내의 기록을 숙고함으로써 우리가 받게 될 유익은 무엇입니까?

6 성서 「사도행전」은 (9:3부터 20:4까지)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면서부터 ‘고린도’인들에게 그의 두번째 서한을 보낼 때까지의 그의 생애 가운데 앞서 말한 일부 특징들을 언급하고 있읍니다. 이제 그의 충실한 인내의 기록을 숙고해 보도록 합시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환난을 인내하도록 격려해 줄 것임에 틀림없읍니다.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함’

7. ‘바울’이 ‘수고를 넘치도록 하였’다는 것은 무슨 일을 뜻하는 것이었읍니까? (ㄴ) 그 사도가 ‘에베소’ 회중 “장로들”에게 한 말에 의하면, 그는 자기의 봉사의 직무를 어떻게 수행하였읍니까? (ㄷ) ‘바울’로 하여금 좋은 소식 및 왕국 관심사를 위해 정력적으로 수고하도록 박차를 가한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7 수고를 넘치도록 함: ‘바울’은 “좋은 소식”의 선포자로서 그의 적대자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하였”읍니다. (고린도 후 11:23, 오늘날의 영어 역본) 그는 물론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리고 종종 몹시 어려운 구역에서 전파하는 일에 참여해 왔읍니다. 이를테면, 이교 여신 ‘아데미’의 숭배가 성행하고 있었고 ‘바울’ 자신이 폭도의 피해자가 되었던 ‘에베소’에 있었을 때 봉사의 직무와 동료 신자들의 유익을 위한 그의 노력은 매우 강렬하고 종종 가슴을 에이게까지 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훌륭한 영적 열매의 결실이 있었읍니다. 나중에 그는 타당하게도 ‘에베소’ 회중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철저히, 신세] 증거한 것이라.” (사도 20:17, 20, 21, 31; 19:1-41) 그러므로 이제는 장로가 된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전에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각 집에서”의 전파 활동을 통하여 그리스도교의 기본 진리들을 가르쳤읍니다. ‘바울’이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왕국 관심사를 증진시키는 일에 계속 활기차게 수고하도록 그에게 박차를 가한 것은 ‘바울’의 마음에 작용한 여호와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였읍니다. (이사야 61:1, 2; 로마 10:8-10) 그와 같은 정력적인 활동으로 그 사도는 20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의 탁월한 본을 세워놓았읍니다.

8. (ㄱ) ‘바울’은 어떻게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였다고 말할 수 있었읍니까? (ㄴ) 의문의 여지없이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 투옥되어 있는 동안 무엇에서 위안을 얻었으며, 지진으로 풀려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ㄷ) ‘빌립보’에서의 ‘바울’의 투옥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격려를 이끌어낼 수 있읍니까?

8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함: ‘로마’의 ‘클레멘트’는 기원 1세기 말경에 편지하는 가운데 ‘바울’은 일곱번 투옥된 일이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후서」를 쓰기 전에 이미 그는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더 자주 투옥당했었읍니다. 「사도 행전」의 기록은 ‘마게도냐’의 ‘빌립보’ 시에서의 그러한 투옥 사건 한 가지에 관하여 알려줍니다. ‘바울’과 ‘실라’는 “의를 위하여” 고통당하는 것을 기뻐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갇혀 있는 동안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노래로 그분을 찬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묵상하는 데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으며 그들에게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위안을 얻었읍니다. (시 65:2; 119:52) 지진으로 풀려나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도망치는 데 급급하기는커녕 도리어 “주[여호와]의 말씀을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읍니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그 간수와 집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읍니다! (사도 16:16-40) 참으로, 이러한 내용들은 오늘날 투옥되어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박해를 경건한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기도에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에 관하여 담대하게 말하도록 격려해 줍니다!—사도 4:29-31.

구타당하고 죽을뻔 하였으나 겁내지 않음

9. “매도 수없이 맞”았다는 말은 무엇을 알려줍니까?

9 매도 수없이 맞음: ‘바울’은 지나칠 정도로 구타당하였읍니다. 그는 종종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었던 것으로 언급되어 있읍니다. (23절, 이십 세기 신약) 이것은 그가 구타당하는 동안 거의 맞아 죽은 상태에 있는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심하게 구타당하였음을 알려 주는 말일 수 있읍니다.

10. (ㄱ) ‘바울’은 어떻게 “여러 번 죽을뻔” 하였읍니까? (ㄴ)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될 때 그 사도를 지탱시켜 준 것은 무엇이었음에 틀림없읍니까?

10 여러 번 죽을뻔 함: 이 말은 반드시 구타당하는 일에 관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앞서 같은 편지에서 ‘바울’은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바 있읍니다. (고린도 후 4:10, 11, 공동번역) 그 사도는 ‘다메섹’과 ‘비시디아’의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데살로니가’ 및 ‘뵈뢰아’에 있었을 때 생명의 위협, 심지어는 죽음의 고통까지 겪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사도 9:23-25; 13:49-51; 14:1-6, 19, 20; 17:1, 5-9, 13, 14) 사실상,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고 한 그의 말로 미루어 볼 때 그는 ‘로마’식 투기장에서 죽임을 당할 위험에 직면한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린도 전 15:32; 비교 사도 19:23-41; 고린도 후 1:8-11) 자신의 생명이 아주 빈번히 위험에 처했었기 때문에 과연 그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하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고린도 전 15:31) 의심의 여지없이, 여호와의 성령의 도움과 하나님의 귀중한 약속에 대한 ‘바울’의 믿음이 그가 종종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될 때에도 그 사도를 지탱시켜 주었읍니다.—고린도 후 1:20-22.

11.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맞은 매는 어떠한 성질의 것이었읍니까?

11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음: ‘바울’은 “의를 위하여” 자기가 다섯번 매맞은 일이 ‘유대’인들에 의해, 아마 그들의 회당에서, 자행되었음을 지적하였읍니다. (24절; 마태 10:17) ‘모세’의 율법에는 재판장이 죄상에 따라 매의 대수를 결정하고 몽둥이나 막대기로 구타하는 제도가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 형벌은 인정상 40대까지로 제한되어 있었으며 ‘유대’인들은 실수하여 법적 한계선을 넘는 일을 피하기 위하여 그것을 39대로 줄였읍니다. (신명 25:1-3) 그처럼 매맞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었읍니다. 그러나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처우를 충실한 인내로써 견뎌내도록 ‘바울’을 강화시켜 주셨읍니다.

12. (ㄱ) 사도 ‘바울’이 자기가 “세번 태장으로 맞”았다고 말했을 때 그는 분명히 어떠한 처우에 관하여 언급한 것이었읍니까? (ㄴ) “의를 위하여” 매맞는 일을 어떠한 도움으로 인내할 수 있읍니까?

12 세번 태장으로 맞음: 이 세번의 혹독한 태형은 태장을 치는 ‘로마’ 관리들에 의해 자행되었음이 분명합니다. (25절) 태장으로 매를 치는 이러한 일은 매맞는 사람의 겉옷을 벗긴 후에 행하여졌었읍니다. ‘로마’ 시민인 ‘바울’은 법적으로 그러한 태형으로부터 면제받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좋은 소식의 선포자들로서 투옥당하기 전에 그들이 “많이” 맞지 않도록 구해 주지 못하였읍니다. (사도 16:19-24, 33, 35-40) 그러한 태형은 극히 잔인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영의 도움으로 ‘바울’은 “의를 위하여” 이 가혹한 처우를 충실하게 인내하였읍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하나님의 도움으로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상당한 신체적인 학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성실을 유지해 왔읍니다.

13. ‘바울’은 어디에서 돌로 맞았으며, 그러나 그것이 그의 봉사를 중지시켰읍니까?

13 한번 돌로 맞음: ‘루스드라’에서 광적인 ‘유대’인들은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내” 쳤읍니다. 물론 돌로 치는 목적은 죽이기 위해서였읍니다. (레위 20:2; 사도 7:58-60 비교)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가서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선교 여행을 계속하였읍니다.—사도 14:19-22.

파선 및 바다의 위험

14. ‘바울’은 어떠한 파선의 경험을 언급하였으며, 그것들은 좋은 소식을 위한 그의 여행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읍니까?

14 세번 파선을 당함: 「사도행전」에는 단 한번의 파선만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일은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편지를 쓴 이 후에 일어났읍니다. 그것은 ‘바울’이 ‘로마’에 가는 도중에 발생하였읍니다. (사도 27장) 그러나 그 이전에도 ‘바울’은 원양선을 타고 종종 여행한 일이 있었으며 근해 항해시에 파선당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비록 성서가 여기에 언급된 세번의 파선에 관하여 상세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이 지중해 항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식을 위한 자기의 여행을 그만두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5. (ㄱ) ‘바울’이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ㄴ) 앞의 경우에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어떻게 도와 주셨으며, 이것은 우리로 어떠한 확신을 갖게 합니까?

15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냄: 물론 ‘바울’은 자기가 24시간 동안 물속에서 기적으로 견뎌냈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파선을 당하여 그는 그 위험한 순간들을 겪으면서 거친 풍랑속에서 애써 헤엄치기도 하고 부서진 배에서 나와 떠다니는 나무 조각이나 파편에 매달리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설사 그가 뗏목을 타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 괴로운 경험(성경의 다른 곳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음)은 그 사도가 구조되거나 육지에 닿기까지 담대한 인내를 요하였읍니다. 분명히 ‘바울’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고통 중에서 인도하여 내셨읍니다.’ (시 107:23-31 비교) 그 동일한 “위로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 역시 응답하실 수 있읍니다.—요한1서 5:13-15 비교.

우리 하나님은 무한한 위로를 베푸신다

16, 17. 우리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여호와의 성령의 도움이 매우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우리는 ‘바울’이 환난 중에도 여호와께 충실을 유지하도록 도움이 되었던 위로의 근원들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았읍니다. 이러한 것들을 강조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현대 ‘여호와의 증인’들이 “의를 위하여” 받는 고통을 인내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17 여호와의 성령의 도움은 매우 가치가 있읍니다. 특히 환난 중에 있을 때 우리는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그 인도에 순응하고 그 열매를 나타내야 합니다. (누가 11:13; 시 143:10; 갈라디아 5:22, 23) 우리의 마음에 작용하는 여호와의 성령은 우리로 그분의 사랑을 의식하게 하며 이러한 위안이 되는 보증은 우리로 환난을 인내하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로마 5:3-5; 8:35-39; 데살로니가 후 3:5.

18. 그리스도인으로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귀중한 약속에 대한 믿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읍니까?

18 성서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귀중한 약속에 대한 믿음 역시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로마 15:4) “[예수 그리스도]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형주]를 참으”셨다는 것을 상기하십시오. (히브리 12:1, 2) 비록 우리가 “죽음의 문턱”에 이를 정도까지 고통을 겪게 될지라도 우리에게는 그 희망이 천적인 것이든 지적인 것이든,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 부활되어 끝없는 생명을 즐길 놀라운 전망이 있읍니다. (마태 10:28; 누가 23:43; 요한 5:28, 29; 17:3; 고린도 전 15:53; 베드로 후 3:13) 우리에게는 영원한 장래가 있음을 생각할 때 그것은 얼마나 “일시적인 가벼운” 환난입니까!—고린도 후 4:16-18, 새번역.

19. 기도는 환난 중에 어떻게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까?

1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힘을 주신다는 사실 역시 환난 중에 큰 위로의 근원이 됩니다. (누가 22:32; 사도 4:23-31; 야고보 5:16-18 참조) 예수께서는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여호와께 열렬히 간구하고 탄원하였으며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읍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시련의 때에 예수를 강화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히브리 5:7; 누가 22:43) 확실히 여호와께서 환난 중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위로받게 됩니다.

20. 다음에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의 “지극히 큰 사도들”을 능가했던 어떤 다른 부면들에 대하여 고려하게 될 것입니까?

20 우리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으로서 충실히 인내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사도 ‘바울’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우리와도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바울’의 수고와 고통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봉사자’로서의 그의 변호는 그가 또한 여행, 위험 및 고난에 있어서도 ‘고린도’의 “지극히 큰 사도들”을 능가했었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다음과 같은 점들을 기억하는가?

◻ 사도 ‘바울’은 여호와께서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심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가?

◻ 환난을 인내한 그리스도인들은 동료 신자들이 여호와께 충실을 유지하도록 어떻게 격려할 수 있는가?

◻ 그 사도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였다’고 말했을 때 거기에는 무슨 일이 내포되어 있었는가?

◻ 우리는 ‘바울’의 투옥 경험으로부터 어떠한 유익을 받을 수 있는가?

◻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한한 위로를 베푸시는 방법들 가운데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8면 삽화]

‘바울’은 종종 ‘빌립보’에서 ‘실라’와 함께 당했던 것처럼 투옥을 당하곤 하였다

[10면 삽화]

‘바울’은 그의 선교 여행 중에 네번 파선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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