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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위험한 것이 될 수 있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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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파83 5/1 4-6면

음악—위험한 것이 될 수 있는가?

당신은 이렇게 질문할지 모른다. ‘과연 음악이 어떻게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는가? 음악이란 그저 소리에 불과할 뿐인데.’ 사실이다. 그러나 소리는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밤중에 나는 비명 소리를 듣고 태연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웃음 소리가 번져가는 것은 어떠한가?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웃으면 무리 전체가 흔히 억제할 수 없는 웃음 바다로 돌변하고 만다.

음악은 힘을 지니고 있다

이제, 그 소리들이 음악이 되게 해 보라. 노래나 음악의 형식에 따라 이윽고 발은 장단을 맞추게 될 것이며, 몸을 흔들고 손가락들로 딱딱거리고 흥얼흥얼 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 청중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 무엇에 의해서? 음악 소리에 의해서 말이다.

실례를 들어 보자. 앞에서 언급한 ‘다윗’은 한때 ‘사울’ 왕의 궁에서 음악가로서 섬기고 있었다. 그 청년은 수금을 “타는 데 능숙하였다.” 그의 음악은 번민하는 ‘사울’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사무엘 상 16:18-23, 신세 참조.

음악은 감정을 동요케 한다. ‘재즈 그루우프’가 친숙한 곡을 두들겨대기 시작하면 청중은 일어설지 모른다. 고전 음악 애호가들은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감상하면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될지 모른다. 전투의 격정과 포성과 승리의 종소리가 울림에 따라 청중은 거의 자기들이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렇다, 음악은 힘을 지니고 있다.

여러 세기 동안, 정치가들과 위정자들이 백성들의 마음을 뒤흔들기 위해 음악의 힘을 사용해 왔다. 어떠한 방법으로? 국가 및 애국적인 노래를 통해서이다. ‘히틀러’와 ‘나찌’당은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버 알레스’(독일, 독일이 제일)라는 국가를 이용하여 민중을 죽음과 파멸의 길로 끌고 가지 않았던가! 흥미롭게도, 이 국가는 ‘하이든’이 작곡한 고전 음악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이 노래에 응수하여 영국인들은 “하나님이 왕을 구원하시네!”라는 노래를 열창하였다. ‘히틀러’ 자신은 ‘바그너’의 음악에도 크게 매료되어 있었다.

음악의 설복력은 또한 성서 시대에도 분명히 나타났다. 「출애굽기」의 기록은 ‘모세’가 여호와로부터 법판을 받으러 ‘호렙’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이 성급한 나머지 ‘모세’의 형 ‘아론’에게 그들을 위해 또 다른 신 즉 주조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음을 알려 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종교적 축제를 즐기면서 이 우상에게 희생 제물을 드렸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였는가?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출애굽 32:1-6.

‘모세’와 ‘여호수아’가 하산하였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 진중에서 나는 떠들썩한 소리를 들었다. ‘여호수아’는 그것이 싸우는 소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그 소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였다. 그렇다, 그것은 전쟁에서 대승하였거나 패한 소리가 아니라 노래 소리였다. 그것은 “다른 노래를 하는 소리”였던 것이다. ‘모세’는 그 음악이 사악한 것과 관련이 있음을 그 특이한 소리로 인해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백성들은 금송아지 주위에서 춤추며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제멋대로 노래부르고 춤추면서 우상 숭배에 가담하고 있었다. 음악은 그들의 거짓되고 부도덕한 숭배에서 두드러진 부분이었다.—출애굽 32:7-25, 신세 참조.

이 사건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의 교훈을 제공해 준다. 한 가지는 음악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세상은 지극히 음악 지향적이다. 하지만, 도덕감을 저하시키는 선정적인 음색을 가진 쉰 목소리의 음악이나 기타 대중 음악이 ‘여호와의 증인’의 모임에서 특색을 이룬다면 그것은 타당한 일인가? 결단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근자에, 심지어 일부 장로들과 부모들이 그것을 묵인하는 가운데 이 부면에 긴장을 푸는 경향이 있어 왔다. 이러한 음악 가운데 얼마는 부도덕과 반항심, 마약 및 심지어 영매술까지 기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음악 그 자체가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인가?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음악은 여호와께 대한 거룩한 숭배에서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그 아버지가 “음악과 춤”으로 잔치를 배설한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 일이 있다.—누가 15:25, 새번역.

음악은 철학을 전달해 줄 수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에 음악은 매일의 생활에 훨씬 더 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몇십년 동안에 하나의 세계적인 거대한 산업이 매년 수억 매의 ‘레코오드’ 및 ‘카셋트’를 양산하면서 급성장해 왔다. 100년전만해도, 생연주 음악을 듣거나 혹은 직접 그것에 참가할 때에만 음악에 접할 기회가 있었으며 그것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오늘날에는 음악을 듣는 일이 일상적인 경험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적절한 질문이 생긴다. 즉 음악은 철학을 전달해 줄 수 있는가? 음악은 우리의 생각과 생활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나의 직접적인 실마리를 ‘라디오’와 ‘텔레비젼’ 광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상업 광고에는 음악이 수반된다. 그리하여, 음악의 도움을 받아 상품의 이름이 정신에, 심지어는 자녀들과 유아들의 정신에까지 새겨지게 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음악이 비슷한 방법으로 사용된 일이 있었으나 그것은 훨씬 더 고상한 목적을 위해서였다. 시편들은 음악에 맞춰 노래로 불리어졌으며, 그것은 의문의 여지없이 사람들이 귀절을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예를 들어, 성서 기록은 ‘솔로몬’ 성전의 봉헌식에 ‘레위’인 성악가들이 소집되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부는 제사장 일백 이십인이 함께 서 있다가 나팔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였음을 알려 준다. 여기에서 음악은 격려하고 세워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여호와를 찬양하는 역할을 하였다.—역대 하 5:12, 13.

아마 그들은 그 때에 시편 136편을 노래하고 연주하였을 것이며 그 음악은 틀림없이 그들이 가사들을 기억하도록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요점 즉 음악은 사상을 전달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해 준다. 그것은 가사를 수반하는 것이든 안하는 것이든, 하나의 작품 또는 철학을 옹호하거나, 어떤 생활 방식을 추천하는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점은 오늘날 우리가 고전 혹은 현대 음악의 특색을 논할 때에도 역시 동일하다.

이를테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루드비히 반 베에토벤’에 관한 전기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는 가사의 도움이 없이도 인생 철학을 전달해 주는 음악의 힘을 그의 어떠한 선배들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밝혀 주었다.” 일례로, 그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원 교향곡이 있다. 그것은 ‘베에토벤’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여실히 전달해 준다. 그렇다, 음악은 우리를 움직일 수 있고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하나의 실례로, 고전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현재 유행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작품을 고려해 보자. 한 음악 연구가는 이 작곡가의 “죽음에 대한 강박 관념”에 대해 말하면서 “‘말러’의 생애와 음악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인생의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끈질긴 탐구”를 묘사하였다. 그의 교향곡 제1번에 관해 언급하면서 그 필자는 그 내용을 “인생의 기쁨이 죽음에 대한 강박 관념에 의해 어둡게 되고 있다”는 말로 묘사하였다.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교향곡 제2번은 죽음의 강박 관념으로 시작하여 ·⁠·⁠· 불멸성에 대한 그리스도인 신앙을 천명하는 것으로 그 절정에 이른다. ·⁠·⁠· 이 작품 속의 종교적 요소는 큰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이제 ‘말러’의 종교적 혼돈과 강박 관념 및 신경증이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또 하나의 경우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다. 이 ‘발레’ 음악은 한 젊은 처녀가 봄의 신을 달래기 위해 춤을 추면서 죽어가는 이교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한 평론가가 기술한 대로, 이 의식은 “여기서 음악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그 음악에서 가장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인상적인 특징은 ‘리듬’의 힘이다. 그것은 ‘리듬’ 형식을 통해서 최면술적이고 강압적인 힘을 나타낸다.” 그 효과는 놀라울 정도여서 흔히 마음을 불안 속으로 몰아 넣는다. 사실상, “그것은 음악적 전통에 대한 ‘유럽’인의 확신을 뒤엎어 놓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고전 음악이라 할지라도 잠시 멈추어 자문해 보라. 즉 어떤 형태의 음악을 과도하게 접하는 것은 나를 침울하게 하거나 혹은 나를 과도히 흥분케 하는 경향이 있는가? 작곡가의 철학 사상이 은밀히 침투하여 나의 사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 물론, 그의 음악이 창조주 및 그분의 위업들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면, 그 작곡가가 주는 영향은 무해무득하거나 심지어는 매우 긍정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작곡가가 염두에 두었던 것을 모르는 가운데 음악을 감상하게 될 수 있다. 이 경우에 그 의미는 (만일 있다면) 전적으로 감상하는 사람의 상상하는 바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기준이 현대 음악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현대 음악은 건설적인가? 아니면 타락시키는 것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인 도덕성 및 영성에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는가? 다음 기사는 이러한 점들과 그 외의 문제점들을 분석하게 될 것이다.

[5면 삽화]

음악은 사악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6면 삽화]

이들의 음악은 모두 건설적인가?

‘말러’

‘바그너’

‘스트라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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