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겸허를 배양하는 일
1. 세상의 일부 사람들이 겸허의 가치를 인식하였음을 알려 주는 어떠한 표현들이 있읍니까?
이 세상의 현인들도 겸허의 미덕을 올바로 인식한 때가 있었읍니다. 그러기에 다음과 같이 말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겸허한 사람이 대화 상대자의 호의를 얻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 같은 사람을 질투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말한 사람도 있읍니다. “겸허는 찬란한 빛이다. 그것은 정신이 지식을 받아들이도록, 마음이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켜 주는 것이다.” 겸허가 부족한 사람이 허심탄회한 태도를 소유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2. 일부 유명한 사람들은 겸허를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2 그 다음에 또, 발견자들로서 유명한 사람들 중에도 겸허를 나타낸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알버어트 아인시타인’은 이렇게 말한 일이 있읍니다. “우주의 법에는 하나의 정신—인간의 정신보다 엄청나게 우월한 하나의 정신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을 직면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를 겸허하게 하는 힘으로 인해 겸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라고 생각하는 ‘아이삭 뉴우튼’ 경은 이렇게 말한 일이 있읍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멀리까지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본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을 시술한 의사들 중에도 분명히 그와 비슷한 정신 태도를 보인 사람들이 있읍니다. 매우 어려운 수술들을 수혈 없이 성공적으로 집도한 후에 그들은 ‘증인’ 환자들에게 영예는 의사인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였읍니다.
겸허를 나타낸 본들
3. (ㄱ) 겸허를 배양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것입니까? (ㄴ) ‘모세’와 겸허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3 매우 바람직한, 그렇습니다. 매우 필요한 특성인 겸허를 배양하는 데에는 무엇이 도움이 될 것입니까? 분명히, 주제넘음과 겸허에 관한 앞의 두 기사에 나와 있는 모든 내용을 적용시킨다면 겸허를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겸허를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되는 또 다른 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겸허한 종들을 참으로 강력하게 사용하신다는 점을 고려해 보는 것입니다. 찬양을 받으려고 애쓰고, 자신을 지으신 분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의를 쏠리게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실 수 있겠읍니까! ‘모세’가 단 한번 그런 적이 있었읍니다. 그때가 심한 압박감을 느껴 화를 터뜨릴 만한 상황이었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에 대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읍니까! 그렇지만, ‘모세’가 참으로 겸허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바로’에게 가는 것을 처음에 사양한 것에서 볼 수 있읍니다. 더우기,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수 12:3; 출애굽 4:10-17.
4. ‘엘리후’와 ‘요셉’은 어떻게 합당한 겸허를 나타냈읍니까?
4 겸허에 있어서 또 다른 훌륭한 본은 젊은 ‘엘리후’였읍니다. 그는 연장자들인 ‘욥’과 그의 세 친구가 말을 마치기까지 참을성있게 기다렸다가 자기 말을 하였읍니다. ‘엘리후’는 우월감을 나타내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모든 찬양을 자기를 지으신 분께로 돌렸읍니다. (욥 32:4-11, 21, 22; 36:9) 또한, 족장 ‘야곱’의 아들 ‘요셉’도 큰 권능을 가진 ‘바로’ 앞에 불리어 가 그 군주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합당한 겸허를 나타냈읍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한 것에 대한 영예를 여호와께 돌렸읍니다.—창세 40:8; 비교 다니엘 2:26-30.
5. ‘기드온’의 겸허함이 여호와 하나님께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5 또한, ‘기드온’의 경우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사명을 받았을 때, 자기 씨족이 ‘므낫세’ 지파에서 가장 작은 가문이고 그 자신은 자기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겸허하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기드온’이야말로 여호와께서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치는 데 사용하실 만한 사람이었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승리에 대한 영예를 자신이 받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참으로 겸허한 사람만이 합당하게 일할 수 있었읍니다.—사사 6:14-16; 7:2-7.
6. (ㄱ) 젊은 ‘솔로몬’ 왕의 요청이 여호와의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여호와의 어떤 다른 젊은 종이 합당한 겸허를 나타냈으며, 어떠한 면에서 그러하였읍니까? (ㄷ) 젊은 ‘엘리후’, ‘솔로몬’ 및 ‘예레미야’의 태도는 비교적 젊거나 경험이 적은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읍니까?
6 그와 비슷하게 젊은 ‘솔로몬’도 처음에 왕이 되었을 때 겸허함을 나타냈읍니다. 꿈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갖고 싶으냐고 물으시자, ‘솔로몬’은 겸허하게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의 겸허함이 매우 마음에 드셨기 때문에, 그에게 지혜만이 아니라 많은 부와 영광도 주셨읍니다. (열왕 상 3:4-14) ‘솔로몬’이 겸허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를 어느 인간 통치자보다도 현명한 사람이 되게 해주셨읍니다. ‘예레미야’도 여호와의 예언자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을 때 자기가 어리다는 점으로 인해 그와 비슷한 겸허함을 나타냈읍니다. (예레미야 1:6-8) 당신은 비교적 젊거나 경험이 적은 여호와의 증인입니까? 그렇다면, 젊은 ‘엘리후’, ‘솔로몬’ 및 ‘예레미야’ 같이 합당한 겸허를 나타낼 때 자신이 지혜로움을 증명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7. 고린도 전서 2:1-5의 ‘바울’의 말은 왕국 선포자들에게 어떻게 겸허의 훌륭한 본이 됩니까?
7 또한, 주목할 만한 겸허를 나타낸 사람으로 사도 ‘바울’이 있읍니다. ‘바울’은 고등 교육을 받은 ‘바리새’인이었고,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셨는데도 자신이 지닌 장점들을 결코 과시하지 않았읍니다. 그 자신이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네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형주]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 전 2:1-5) ‘여호와의 증인’이 되는 사람들 중에는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처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에서 겸허를 나타냄으로 현명하게도 그 사도의 훌륭한 본을 따르고 있읍니다.
8. 예수께서는 겸허에 있어서 어떻게 가장 훌륭하고 가장 위대한 본을 세워 놓으셨읍니까?
8 물론, 겸허에 있어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훌륭한 본되시는 분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사단’ 마귀가 된 자는 얼마나 대조를 이룹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고자 하는, 겸허하지 않은 태도를 나타낸 적이 없읍니다. (마태 4:8-10; 빌립보 2:5-8) 오히려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의 보조자와 대변인이 되는 것으로 온전히 만족하십니다. (잠언 8:30; 요한 1:1) 지상에 계시는 동안 그분은 자기가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음을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5:19, 30; 7:28; 8:28, 42) 그분은 몸소 영예를 받는 것을 거절하시고 여호와께로 주의를 이끄셨읍니다. (마가 10:18) 그리고 예수께서 최대의 시련을 겪으실 때 그분은 이러한 태도를 나타내셨읍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태 26:39) 의문의 여지없이 예수께서는 겸허에 있어서 훌륭한 본을 세워 놓으셨읍니다. 그렇다면, 확실히 하나님의 영물들 모두와 모든 인간들도 겸허해야 합니다.
겸허해지는 것이 이치적이다
9. 고린도 전서 4:6, 7에 의하면 하나님의 종들이 겸허해지는 것이 이치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9 우리가 겸허해지는 것은 논리적입니다. 그것이 이치적입니다. 우선,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지 않습니까?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열왕 상 8:46)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저지릅니다. 우리의 경험은 한계가 있으며 우리의 지식 또한 결코 무한한 것이 아닙니다. 더우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받은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기록된 것들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너희로 ···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고린도 전 4:6, 7) 분명히,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냐 하는 것은 주로 우리의 유전질, 우리의 환경, 그리고 특히 하나님의 섭리에 달려 있읍니다.
10. 거룩한 봉사에 있어서의 성공은 무엇에 달려 있으며,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어야 합니까?
10 더 나아가, 사실상, 우리가 거룩한 봉사에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든지 간에 모든 것이 여호와의 축복에 달려 있지 않습니까? 실례를 들어 보십시다. 농부가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하더라도, 작물 재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 한 가지는 날씨입니다. 그래서 시편 필자는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진술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이 하는 일에 관하여 같은 취지로 말하면서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 (시 127:1; 고린도 전 3:6, 7) 그렇습니다. 우리가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무리 다재다능하고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겸허해 지는 것이 합당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겸허를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
11.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우리가 겸허해지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것입니까?
11 우리가 겸허해지는 데 도움이 될 특성들 중에는 사랑, 즉 비이기적인 사랑이 있읍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오셨고, 하고 계시고, 또 앞으로 해주실 모든 일들을 깊이 인식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온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참으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마가 12:30) 그러면 우리는 자신에 관하여 자랑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결국, 자랑이란 겸허의 반대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나 합당하게 겸허한 자세로 말하고 행동함으로 우리 자신에게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주의를 이끌어, 그분께 모든 영광과 영예가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청종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9:23, 24.
12.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는 겸허해지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12 또한, 여호와와 친밀한 관계를 배양하는 것도 우리가 언제나 겸허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겸허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할 것이 우리에게 요구되어 있읍니다. (미가 6:8, 신세) 창조주이신 그분의 위대하심, 그분의 위엄 그리고 그분의 속성들이 우리에게 실제적이 되는 만큼 우리는 합당한 겸허를 나타내며 처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와 동일한 정신 태도를 갖기 원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읍니다. (히브리 11:27) 그것은 마치 우리가 어린 아이와도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섭취하고 ‘기도에 항상 힘쓰는 것’, 그렇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이 훌륭하고 친밀한 관계를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로마 12:12; 데살로니가 전 5:17.
13.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하는 갈망은 겸허해지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13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해오신 모든 것에 대해 사랑과 인식을 나타내고, 그분의 발자취를 밀접히 따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면, 그것 역시 겸허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훌륭하고 고상하고 비이기적이고 완전한 본을 세워 놓으셨읍니까! 우리가 그분의 발자취를 밀접히 따라야 할 의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만큼 우리는 겸허해지도록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을 온전히 본받는 데 있어서 자신이 너무도 부족함을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고 자신에 대해 만족해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비해서도 그처럼 만족을 느낄 만한 근거가 있읍니까? 오히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느껴야 합니다. 즉 우리가 정말 하기를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실제로는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행하게 되는 경우가 너무도 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것입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데 있어서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자신에 대해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로마 7:15-25.
14. 형제 사랑이 겸허해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그와 비슷하게, 동료 여호와의 증인들과 자기 가족에 대한 사랑도 겸허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왕국 노래 가사에도 있듯이 “사랑은 착함을 살피며 형제 세워 나”갑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우리로 다른 사람들의 좋은 특성을 인식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겸허해지는 데 도움이 됩니까? 겸허의 부족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들로 불안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를 원치 않으므로, 진정한 형제 사랑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겸허의 부족은 경쟁심과 앞다투는 일을 유발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겸허합니다.—고린도 전 13:4.
15. 자제는 어떻게 겸허해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15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인 자제 역시 겸허를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그 두 가지는 과연 어떤 관계가 있읍니까? 참으로 관계가 있읍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잇속만 차리는, 혹은 자기를 과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경향이 종종 있는데, 때때로 그 이유는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러한 말이나 행동을 하자마자 그는 자기가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게 될지 모릅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비뚤어지고 거짓되고 기만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7:9, 예루살렘 성서; 신영어 성서) 그러나 자제력을 발휘하여, 잠간 멈추어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영향을 줄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숙고해 보는 것은 합당한 겸허를 나타내게 해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충분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식사 때, 밥상 위에 놓여 있는 고기나 ‘케익’ 혹은 과일 중에서 가장 좋은 곳 혹은 가장 큰 것만을 고르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제와 사려깊음은 우리가 그러한 충동을 억누를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잔치 집에서 겸허하지 않게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설명하셨듯이 우리는 덜 중요한 자리로 옮기라는 요청을 받게 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여 겸허를 나타낸다면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난처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게 해줄 것입니다.—누가 14:8-11.
16. 여호와께 대한 믿음이 겸허해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겸허를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될 또 다른 영의 열매는 여호와와 좋은 관계를 가짐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여호와께 대한 믿음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우리는 물질적인 것이든 지성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혹은 영적인 것이든 생활상의 좋은 것들을 상실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 대한 믿음은 우리가 주제넘게 혹은 겸허하지 않게 나서지 않도록 해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일들을 여호와의 손에 맡길 것입니다. 우리가 겸허하다면 하나님께서 일들을 ‘바로’ 잡아 주시거나 우리가 인정을 받거나 발전된 위치에 이르게 조처해 주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알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그러한 겸허를 나타냈읍니다. 그는 자기 임의대로 일들을 처리할 수도 있었읍니다. 왜냐하면 그는 왕으로 기름부음받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살해함으로 즉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도 있었읍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지 않고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왕권을 주시기를 겸허하게 기다렸으며,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정하신 때에 그렇게 해주셨읍니다.—사무엘 상 24:2-6; 26:10, 11.
17. 감정 이입은 겸허해지는 데 어떤 면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17 겸허에 도움이 되는 또 다른 것은 감정 이입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신을 상대방의 입장에 놓고 생각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회중의 어떤 장로가 회중 집회에서 자신에게 임명된 부분을 다루는 데 반복적으로 시간을 초과하는 것은 겸허의 부족 때문일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가 감정 이입을 사용한다면, 자기가 맡은 ‘프로그램’ 부분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기 원하는 동료 장로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할 줄 알 것입니다. 또한 겸허한 장로는 충분한 이유 없이 회중 집회가 시간을 초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영적 형제 자매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상, 감정 이입은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 있어서 겸허한 사람이 되게 해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정 이입을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오로지 좋은 소식을 위해서,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 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 같이’ 되었읍니다. 그것은 그가 겸허를 나타냄으로, 듣는 사람들에게 그들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냈음을 의미하였읍니다—고린도 전 9:19-23.
18. 그리스도인 겸허를 예찬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18 참으로, 많은 점들이 그리스도인 겸허를 추천해 줍니다. 전체 역사를 통하여 겸허의 부족으로 인하여 생긴 대 황폐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겸허를 나타내는 것이 이치적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 동료 ‘여호와의 증인’들, 자기 가족 및 기타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게 됩니다. 겸허는 심지어 우리 개개인에게도 유익을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만족하게 해주고 좌절감을 느끼지 않게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명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겸허해지도록 크게 도와 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겸허를 배양하고 나타냄으로써 참다운 지혜를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도록 하십시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읍니까?
◻ 성서 기록에 나오는 일부 젊은이들은 어떻게 겸허를 나타냈읍니까?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겸허에 있어서 어떻게 가장 위대하고 가장 훌륭한 본이 되셨읍니까?
◻ 여호와께 대한 사랑과 그분과의 좋은 관계는 어떠한 면에 있어서 겸허를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우리의 바램은 겸허를 나타내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 형제 사랑이 여호와의 숭배자들로서 겸허해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면 삽화]
‘엘리후’는 겸허하게도 우월감을 나타내는 태도를 피하고 모든 찬양을 여호와께 돌렸다
[22면 삽화]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섭취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겸허를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