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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은 당신과 얼마나 가까운 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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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은 당신과 얼마나 가까운 분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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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파84 11/1 3-5면

하나님은 당신과 얼마나 가까운 분인가?

세 살된 ‘라파엘’은 “여호와, 안녕하세요?”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기도를 시작하였다. 어른이 그런 식으로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은 옳지 않게 보이겠지만 우리는 이 어린 아이의 어린애다운 천진함에 미소를 지을 수 있다. ‘라파엘’이 하나님을 가까운 분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결코 추상적인 힘 정도가 아니다. 그분은 실재하는 인격체이시다. 독자에게도, 하나님은 그러한 실재하는, 가까운 분이신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 관해 더 많이 배우려고 하지 않거나 그분과 가까와지려고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만한 태도 때문에 하나님과 가까와지지 못한다. 하나님의 눈은 “교만한 자를 살피”신다고 ‘다윗’ 왕은 말하였다. (사무엘 하 22:28) 다른 사람들은 너무 겸허한 나머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들은 어린애 같은 예민한 감수성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 18:2-4) 그리고 지나치게 겸허한 사람들은 아마 ‘라파엘’로 하여금 그처럼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 어린애같은 태도를 좀더 갖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태도를 갖는 것이 좋은 출발이긴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과 가까와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그분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작품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감동되어 시편 필자 ‘다윗’처럼 그분에 관해 생각하게 되고 그분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게 되지 않는가? 그는 이렇게 질문하였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시 8:3, 4)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창조물에 관해 인식 깊은 마음으로 묵상하는 것은 확실히 독자와 하나님 사이의 사랑의 띠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두개의 자석은 올바로 배열하면 서로 끌어당긴다. 참으로, 서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끌어당기는 힘은 더 강해진다. 그와 비슷한 일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 제자 ‘야고보’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야고보 4:8.

하나님에 관하여 배우는 것은 그분을 “가까이 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요한 17:3)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연구함으로써만 우리는 그분의 이름인 여호와와, 땅에 대한 그분의 목적에 관한 진리 그리고 사랑, 지혜, 공의 및 능력과 같은 그분의 속성들을 배워 알 수 있다. (시 83:18) ‘하지만, 나는 이미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전적으로 의로우시며 지혜와 사랑이 충만한 분임을 알고 있다’고 독자는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하나님에 관한 정확하고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특성에 관한 단순한 진술 자체만으로는, 특히 그것들을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과 연관시켜 설명할 수 없다면 다소 무의미해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면서부터 귀머거리인 사람이 “큰 소리”가 무엇이고 “부드러운 소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소리들을 비교할 수단이 전혀 없다면 참새의 짹짹거리는 소리와 비둘기의 구구하는 소리의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와 비슷하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진술만으로는 냉혹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요한 1서 4:8)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사랑이 인류에게 어떻게 표현되어 왔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요한 3:16) 그는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과 연관시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라고 시편 필자는 말하였다. (시 34:8) 개인적으로 그렇게 함에 따라 그는 하나님께 가까와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버지를 쳐다보며, 어린 ‘래리’는 이렇게 질문한 일이 있다. “다른 누구보다도 여호와를 사랑해야 한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어떻게 아빠보다 그분을 더 사랑할 수 있지요? 아빠는 볼 수 있고 또 사랑하지만, 여호와는 볼 수가 없는데 말예요.” 아버지는 처음에 그런 감정을 갖는 것이 극히 정상임을 설명함으로써 그 아이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 어린 아이는 여호와의 놀라운 특성들과 행적에 관한 성서 기록을 배운 후에, 그리고 하나님의 인자하신 돌봄을 개인적으로 체험함으로써 다른 누구에게보다도 여호와께 대한 더 강한 애착을 발전시킬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마태 22:37, 38) 시간을 내어 여호와 하나님에 관하여 배우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의미하는 것

흔히 우리는 조금 아는 사이거나 단순히 어떤 사람을 식별한다는 의미로 “안다”는 말을 사용한다. 우리는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 사람을 알지요’라고 말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심지어 어딘가에서 흘끗 보았을 뿐이거나 잠깐 소개받았던 사람일 경우에도 그렇게 말할지 모른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분과 대충 알고 지내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우리를 돕는다. 하나님의 영감받은 ‘요한’의 첫째 편지에 나오는 얼마의 요점들을 고려해 보도록 하자. 그 일부를 요약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은 어두움 가운데로 행하지 않고 진리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르고 진리에 고착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 응답으로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거리낌없이 기도로 그분께 나아갈 것이다.—요한 1서 1:5-7; 2:3, 4, 13, 14; 3:19-24; 4:6-8, 13; 5:3, 14, 15.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소극적인 어떤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려면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확실히, 어떤 명목상의 종교 의식 이상의 일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많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즐긴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어떤 갑작스러운 감정적인 흥분도 아니다.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시 25:4, 5)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생활의 길 전체인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라고 권고한 후에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찌어다.” (시 34:8, 14) 어떤 경우에는, “악을 버리”기 위해 단호한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960년대에 ‘히피’였던 ‘마리’는 심하게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다. 결국 그것은 도둑질, 부도덕, 낙태, 심지어 매춘 행위로까지 인도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여호와의 증인’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께 가까와지려면 변화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나는 하루에 두세갑 피우던 담배와 모든 마약을 끊었으며, 음행에 관한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기로 마음에 결심하였읍니다. 나는 꿈, 점성술 및 영매술에 관한 일체의 서적을 내다버리고 우상 숭배에 쓰이는 조상(彫像), 초 및 그림들을 전부 없애버렸읍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헌신하였고 지금까지 그분을 섬기고 있다.

그러나 당신도 하나님을 알게 되는 데 필요한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 당신의 생활 방식이 ‘마리’만큼 극단적은 아닐지 모르지만, 진정한 변화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께서 어린애같은 열망으로 그분의 뜻을 배우고 행하는 가운데 진실하고 겸손하게 그분을 찾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4면 삽화]

하나님과 아는 사이가 되고 싶은 욕망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단호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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