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전쟁의 종식—그것이 이룩될 것인가?
“아마겟돈”—성서에 나오는 이 명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매번 의미 심장한 표지로 소개되는, 이 제목에 관한 일련의 유익한 기사가 1985년 3월과 4월의 네개 호 「파수대」지에서 특별히 다루어져 왔다. 이러한 성경적인 설명을 통해, 독자가 ‘아마겟돈’이란 과연 무엇인지 알게 됨으로 위안을 얻기를 바라는 바이다.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찌어다. 땅을 황무케 하셨도다.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시 46:8, 9.
위와 같은 영감받은 시편 필자의 말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의 간절한 바램과 부합한다. 더는 전쟁이 없게 될 날을 염원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누구이겠는가? 그러나, 그 날을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데도 인간의 어떠한 노력으로도 현재까지 전쟁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아직도 매우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쟁은 매우 파괴적이고 치사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에 인류 사상 처음으로 문명의 존속, 그리고 생명 자체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중대한 위험이 앞에서 어른거리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이처럼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을 막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그처럼 비참하게 실패를 거듭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은 과연 불가피한 것인가? 무엇보다도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인간의 노력이 실패하는 이유
신문 잡지 기고가이며 전쟁 역사가인 ‘그윈 다이어’는 이렇게 기술한다. “만일 우리가 사는 마을에 경찰이 없는데, 모두가 총을 가지고 있고 공격을 당할까봐 항상 두려워하는 가운데 살고 있다면, 총격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바로 그와 같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 국가들 사이를 통제하는 경찰이 없으므로 나라마다 스스로 무장을 하고서 폭력 태세를 갖춘다. 그러나 나라들이 관련된 형태의 폭력에는 특별한 명칭이 붙는다. 소위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소 단순화된 설명이긴 하지만, 전쟁을 조장하는 기본 요인 몇 가지를 잘 지적해 준다. 전쟁을 벌이는 도구와 그렇게 하려는 의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세계라는 “마을”에서의 법과 질서의 부재에도 유의하게 된다.
유명한 역사가들인 ‘윌’과 ‘애리얼 두랜트’는 그들의 저서 「역사의 교훈」(The Lessons of History)에서 그와 동일한 기본 요인들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국제적인 법과 감정이 현재와 같이 미비한 상태에서는 국가는 어느 순간에라도 스스로를 방어할 태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긴요한 이익이 관련될 때, 국가는 생존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수단은 무엇이든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보존이 개재되어 있을 때에는 십계명은 입 다물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근절시키려는 노력의 성패는 주로, 그러한 기본 요인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무리 고상한 개념에서 나온 것이라도, 그렇게 하는 데 성공한 인간의 계획이 과연 있었는가? 사실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국제 질서 부재
국가들을 통제하고 국제적으로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권력을 가진 모종의 세계 기관을 만들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예를 들면,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세계가 다시는 전쟁에 휘말려들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한 ‘국제 연맹’이 창설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그것은 사실상 잊혀져 버렸다. 그 다음 1945년에, ‘국제 연합’ 기구가 나타나서,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에게서 평화를 위한 인류의 희망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 공적은 어떠한가? 역사는 다시 한번 이같이 대답한다. “현재 4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42개의 전쟁, 반란, 시민 봉기에 가담하고 있다. ··· 백만 내지 5백만의 사람들이 그러한 투쟁에서 생명을 잃었다”고 「뉴우요오크 타임즈」지는 1984년에 보도했다. 오늘날 UN이 전쟁과 투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존재는 제3차 세계 대전 혹은 핵 참사에 대한 두려움을 거의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쌓이고 있는 위협과 긴장
‘국제 연합’과 같은 기관들이 전쟁을 막는 데 무력한 이유 한 가지는 전세계의 국가들이 국가의 주권과 권리에 몰두한다는 점 때문이다. 국가들은 국제적인 책임 또는 행동 규칙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부 국가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수단은 무엇이든지 사용해도 온전히 정당하다고 느낀다. 그 수단은 대학살, 암살, 강제 납치, 폭격 등으로서 흔히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세계의 대국들까지도 종종 자기 보존 및 국익이라는 명목으로 서로를 밀어붙여 극단에 이른다. 국가들이 서로의 몰지각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참는 것은 얼마 동안이나 지속될 것인가? 세계는 얼마나 되는 ‘포클랜드’ 사건, ‘아프가니스탄’ 사건, ‘그레나다’ 사건, 대한 항공 007기 사건 등과 같은 사건들에서 큰 대결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국가주의와 자결주의가 전쟁을 근절시키는 데 주요 장애가 되어 왔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무장과 태세
이제는 초강대국들의 무기고에 지상의 전 인류의 생명을 수차례 멸절시키기에 충분한 핵무기가 비축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은 어떤가? 미국 정부의 한 보고에 따르면, 세계 도처의 개발 도상국들은 경제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으면서도, 지난 십년간 입수 가능한 최신형 항공기, ‘미사일’, ‘탱크’를 확보하는 데 2,300억 ‘달러’를 족히 넘게 사용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이제는 많은 구매국들이 신형 장비들을 모두 수용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을 지경에 다다랐다.” 그 국가들은 격언에도 있듯이, 문자 그대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무장하고 있다. 그들이 소위 재래식 무기들만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그들이 그러한 무기를 사용하려는 충동과 태세는 그만큼 더 강해지고 있다.
희망을 가질 만한 이유가 과연 있는가?
전쟁을 근절시키려는 인간의 노력이 거듭 실패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성서 진리를 강조해 줄 뿐이다.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예레미야 10:23) 인간은 전쟁이 근절되기를 원하는 데도 그 일을 이룩하는 방법은 모르고 있다. 그러면,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시리라’는 약속은 어떠한가? 그 약속이 주어진 것은 그저 희망을 불러 일으키거나 우리를 놀리기 위한 것인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나 약속에 관해서 이처럼 보증하시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55:11) 그러면, 그 약속은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 인간이 거듭 실패해 온 일에 하나님께서 성공하실 것이라고 믿을 만한 어떤 건전한 근거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