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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인은 평등하다—어떻게?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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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5
파85 10/1 4-6면

만인은 평등하다—어떻게?

모든 나라의 남녀가 서로 동등하게 여기며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현 세계 질서의 상태를 보고 판단할 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가능한 일임을 증명해 온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참 그리스도교가 평등으로 결합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로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더는 유대인도 헬라인도 노예도 자유자도 심지어 단순한 남녀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동일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갈라디아 3:28, 리빙 바이블) 그러나 그것은 이상적인 말에 불과하였는가?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살았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 말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는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가르침받은 형제애를 발전시켰을 때 그들 시대의 세상에 끼친 지대한 영향에 관한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에버하아드 아아놀드는 「사도들 사후의 초기 그리스도인들」(The Early Christians After the Death of the Apostles)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동료 인간 모두를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심판과 동일한 부름을 받은 형제들로 보는 평등한 평가는 모든 일에서 평등과 우의를 낳았다. 이러한 평등한 평가는 모두에게 평등한 칭호, 일에서의 평등한 의무 및 모두에게 생활에서 평등한 기회를 갖게 하였다. ·⁠·⁠·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가졌던 그러한 존경심은 사회를 결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그것은 완전히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것을 근거로 사랑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베푸신 연합의 찬란한 증거였는가!

연합체 내에서의 평등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사람들은 타고난 능력과 재능을 다양하게 지니고 있었다. 음악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기억력이 더 좋거나 체력이 더 강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한 다양성 외에도 성령은 여러 가지 선물과 능력을 안겨 주었는데, 그럴지라도 그것들은 상호 보충하였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렇게 기록할 수 있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느니라.]” (고린도 전 12:11-13) 회중을 돌볼 사람들에 관해 예언적으로 묘사된 것처럼 “사람들로 된 선물”이 실로 다양하긴 했지만, 모두는 전파자였다.—에베소 4:8, 신세; 시 68:18.

감독자들은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들이었고, 희랍어로 에피스코포이라 불리었다. 관련된 동사 에피스코페오(감독하다)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W. E. 바인은 이와 같이 말한다. “이 단어는 그러한 책임의 시작이 아닌 완수를 의미한다. 이것은 직책의 위임이 아닌 의무의 이행에 관한 문제이다.” 이들 임명된 감독자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희랍어 디아코노이로서 “봉사자”, “봉사의 종” 또는 “집사”로 번역되었다. W. E. 바인은 이 단어가 “일의 성격에 대한 특별한 언급없이, 비천한 일을 하거나 보수없이 시중들어 주는 종을 주로 지칭한다”고 말한다. 두 가지 직무 중 어느 것이든, 봉사의 특권이 주된 것이었다. 직책은 강조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숭배자들로서 그들은 평등했고, 모두는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사도로 택하신 12명은 남자들이었지만, 여자들도 그들과 교제를 즐겼다. 이들은 매우 활동적이었는데, 특히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및 수산나는 예수께 봉사한 여자들로 알려졌다. 또한 여자들도 기원 33년 오순절 날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공개적으로 외국어를 말하며 자신들의 그리스도인 믿음의 진리에 관하여 증거할 수 있었다. 물론 그리스도인 자매들이 회중에서 가르치는 일을 인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형제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전파하는 일에 참여하였다.—누가 8:1-3; 사도 1:14; 2:17, 18; 18:26.

또한, 보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돕는 일에 전례를 세워 놓았다. 이를테면, 기원 33년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온 방문객들은 사도들의 기적 행하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예정보다 오래 머물러 음식과 돈이 떨어졌다. 그렇지만 성경 기록에 따르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지시하에 자유로이 분배하였다고 한다. 제 1세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사랑과 평등이 실제로 실현되었음을 보여 주는 참으로 훌륭한 영이 아닌가!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사도 4:32, 34, 35.

오늘날에도 실용적인 평등

오늘날 세상의 분열 및 사회 구조 속에서, 그러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본받고자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언제나 ‘여호와의 증인’의 목표가 되어 왔다. 그들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캐나디아나 백과사전」은 이렇게 논평한다.

“‘여호와의 증인’의 사업은 기원 제 1, 2세기 중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행한 본원적 그리스도교의 재연이자 재확립이다. ·⁠·⁠· 모두는 형제인 것이다.”

1,900년 전에 그러했듯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형제애는 험난한 시대에도 실용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1980년 11월에 이탈리아의 일부 지역이 심한 지진으로 흔들렸을 때, ‘증인’이 마련한 최초의 한 트럭분의 물품이 그 날 저녁 그 강타당한 지역에 도착했다. 한 공식 보고에 의하면 이러하다.

“형제들은 필요한 도움이 신속히 도착한 것에 놀랐다. 우리는 즉시 부엌을 마련했고 자매들은 요리를 하여 형제들에게 매일 나누어 주었다. 그 도시의 다른 주민들은 아직 원조를 받지 못했고 그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물론, 형제들은 이기적이 아니었기에 ‘증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도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1982년 8월에 스와질랜드 왕 소브후자 2세가 죽자, ‘여호와의 증인’은 전통적인 종교 애도 관습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영국에서 백인과 흑인으로 이루어진 두명의 ‘증인’이 사태를 완화시키고자 그 지방 ‘스와질랜드 고등 재판부’에 함께 진정을 하였다. 잠시 듣고 난 뒤에, 그 스와질랜드인 관리는 충분한 교육을 받은 행정관인 흑인 ‘증인’에게 “당신은 왜 이곳에 왔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증인’은 “나는 이 나라에 사는 나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평안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 관리는 그처럼 부유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방문해 본 일도 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인들과 동등하게 느낄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독자가 사는 지방 ‘왕국회관’이나 보다 큰 대회에 참석하여 직접 조사해 보지 않겠는가? 그곳에선 노소, 빈부를 막론하고, 또한 대학 교육을 받았든지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든지 간에 독자를 환영하는 사회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두는 형제나 자매라 불리며, 개인은 인종이나 배경 혹은 세속 지위로 평가되지 않는다. 모두는 그리스도인 성품과 특성을 존중한다.

임명된 장로와 봉사의 종 및 가르치는 방식은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구조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집회들은 세계적인 평등 즉 조화를 반영한다. ‘성공회’의 한 교직자는 이렇게 논평했다.

“모든 집회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간에, 집중적인 교훈을 받기 위한 집회이다. 성원들은 「파수대」 기사를 정독하고 참조 성귀들을 찾아보며, 지식을 발전시키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아내는 일을 통해 일요일 집회를 준비할 것이 기대된다. 그들의 집회에선, 훌륭한 회중적 참여가 행해진다. 그들은 동시에 전세계 어디에나 동일한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는 지식으로 양육받고 있다.”

독자가 본 잡지 2면에 나와 있는 날짜에 이 「파수대」를 가지고 지방 회중에 참석한다면, 그러한 토론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논의하는 것 가운데는 종종 회중 성원들의 희망, 곧 전쟁이 그치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건설적인 활동에 집중하면서 참으로 “그 손으로 일한 것”을 즐길 낙원이 된 땅에서의 생활에 관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순종하는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왕국’ 통치하에서 살게 될 것이다. 굶주리는 일은 사라지고, 풍성한 땅으로부터 풍부한 식품이 모두에게 공급될 것이다. 불행을 가져오는 질병은 옛일이 될 것이며, 땅의 모든 거민들은 완전한 건강의 활력을 평등하게 누릴 것이다.—이사야 2:4; 33:24; 65:22, 23; 스가랴 8:11, 12.

그렇다. 이러한 그리스도인 희망은 실제적이며, 그것은 현 구조의 그리스도인 회중이 지상 낙원으로 들어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사회 계층과 국가적 장벽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놓여진 견고한 토대가 확장될 것이다. 어떻게 그 점을 확신할 수 있는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계속 참 숭배를 드릴 것임을 성서가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신분을 갖게 될 것이다. 독자와 독자의 가족도 그들 가운데 포함될 수 있다.—계시 7:9, 10.

[6면 삽화]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서 평등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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