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은 생명을 어떻게 사용할 것입니까?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으신] ···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린도 후 5:15.
1. 사람들이 어떠한 감사의 말을 하는 일이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감사합니다.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화재가 난 집에서 구출을 받았거나 물에 빠져 익사 직전에 구조된 사람들이 자기를 구해 준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인식 깊은 그리스도인 청소년들도 부모에게 그와 같이 감사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한 청소년들은 단순히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의 생명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특히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 ··· 곧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가도록 인자한 보살핌과 교훈을 베풀어 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요한 1서 2:25.
2. 자신의 생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무슨 내용에 비추어 고려해야 합니까?
2 사랑의 동기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원한 생명, 곧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셨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디모데 전 6:19; 요한 1서 4:10) 또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나타내신 사랑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요한 15:13) 지금까지 말한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명을 어떻게 사용할 것입니까?
3. 사람들이 그들의 생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흔히 무엇이 관련되어 있읍니까?
3 청소년들은 종종 학교의 상담 교사나 그들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서 여러 형태로 그러한 질문을 받는 일이 있읍니다.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까? 단순히 개인적 취향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까? 결정적 요인은 여러분이 세상에서 안전한 지위를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조언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생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좀더 높은 차원을 고려할 것입니까? 영감받은 말씀은 다음과 같이 생각나게 해줍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사체로는 본지에서.) (고린도 후 5:15)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사용하는 방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하늘에 계신 그분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해 감사함을 나타내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인기있는 본
4.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본은 누구입니까?
4 그러나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인물들, 청소년들이 일반적으로 본으로 삼는 인물들은 누구입니까? 어떤 도덕 표준을 가지고 있든지간에 이 세상에서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많은 청소년의 방을 들여다보면 벽에 누구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까? 흔히 음악가, 영화 배우, 운동 선수의 사진이 아닙니까? 청소년들은 흔히 언젠가 세상에서 그같은 성공을 거두거나, 어쩌면 그들과 닮은 사람하고 결혼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생명을 어떻게 보람있게 사용하기를 원합니까?
5, 6. (ㄱ) 세상에서 성공을 해도 참다운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참다운 만족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5 자기가 동경하는 유명인처럼 세상에서 성공한다면 참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것입니까? 할리우드에서 크게 성공한 한 여배우는 이렇게 말했읍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부와 모든 물질을 손에 넣었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하찮은 것에 불과합니다. 이곳에 있는, 수영장을 갖춘 호화 주택마다 정신병 의사가 따르게 마련이며, 이혼 그리고 부모를 싫어하는 자녀 문제는 말할 나위도 없읍니다.”—전도 5:10; 디모데 전 6:10.
6 1981년에 뉴욕에서 열린, 한 여자 10킬로미터 주요 경주에서 우승했던 한 뛰어난 학생 운동 선수는 환멸을 느낀 나머지 자살을 기도하였읍니다. 후에 그 여학생은 이렇게 썼읍니다. “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삶에 관한 진리를 많이 터득하게 되었읍니다. 한 가지는, 완벽에 도달하고, 업적을 세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법으로는 참다운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전과목 A학점을 받는 우등생이 되어도, 주에서 달리기 우승자가 되어도, 미모를 갖추어도 만족을 느낄 수 없었읍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참다운 만족이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짐으로써만 온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읍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시 23:1, 6; 16:11.
7. 실제로 참다운 만족을 느끼는 일과 관련하여, 대학 교육과 세상적 성공은 어느 정도나 중요합니까?
7 그러므로 분명히 여러분은 부와 명성만을 얻으려고 분투하는 사람들을 본받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이 세상의 저술가들도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참다운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컬럼니스트인 빌 릴은 이렇게 썼읍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대학을 졸업한다. 슬프게도, 그러한 포부의 대부분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음과 같은 진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즉 우리가 그렇게도 갖고 싶어하던 물건을 갖게 된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렇게도 추구하던 분야에서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러한 것들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승리의 기쁨에 도취하게 되리라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충족감이 아니라 공허감을, 하늘을 나를 듯한 기분이 아니라 우울한 기분을, 평온한 느낌이 아니라 초조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뉴욕 데일리 뉴스」, 1983년 5월 26일자.
8. 세상적 성공을 추구하지 말아야 할 어떤 강력한 이유가 있읍니까?
8 그러나 성서 예언에 비추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를 깨어 살피는 우리에게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인생에서 으뜸가는 자리에 두지 말아야 할 훨씬 더 강력한 이유가 있읍니다. (마태 24:3-14)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폐업”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는 한 회사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 비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그 회사에 취직을 하려고 할 것입니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 회사의 근무자였다면,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제도는 어디를 보나 “폐업—끝이 임박!”이라는 표지가 분명히 붙어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성서에서는 ‘이 세상이 지나’간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읍니다. (요한 1서 2:17) 그러므로 우리는 현명하게도 세상에 깊이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을 본으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야 할 조언
9. 청소년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적인 조언을 하는 수가 있읍니까?
9 청소년의 인생은 그들이 존경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너희가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친척이나 친구들에 의해서도 틀잡혀 집니다. 그들은 ‘너도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보수가 좋은 직업을 가질 준비를 하려면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할지 모릅니다. ‘성서 필자 누가는 의사였고, 사도 바울은 율법 선생인 가말리엘에게서 배웠다’고 그들은 지적할지 모릅니다. (골로새 4:14; 사도 5:34; 22:3) 그러나, 그러한 조언을 주의 깊이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10. 누가와 바울은 어떤 조언을 하였으며,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하던 일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10 의사 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의사가 되어 자기의 이전 직업을 본보기로 따르라고 격려한 적이 결코 없었읍니다. 그와는 반대로, 누가는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의 생활을 따라야 할 본으로서 제시하였읍니다. 분명히 누가는 그리스도에 관해 알게 되기 전에 의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알고 나서는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생활에서 첫째 자리에 두었읍니다. 바울의 경우도 상황이 비슷하였읍니다. 바울은, 자기가 가말리엘을 본받았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자기를 본받으라고 격려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사체로는 본지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매우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자기가 이전에 추구하던 것을 그것과 비교해 볼 때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하였읍니다.—고린도 전 11:1; 빌립보 3:8.
11. (ㄱ) 베드로는 예수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읍니까?
11 기억해야 할 것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감상에 젖어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봉사하는 동안에 자신에게 일어날 일에 관해 말씀하셨을 때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사랑하였으며, 그분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셨읍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반대자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죽임을 당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마태 16:21-23.
12. 청소년에게 좋은 의도로 무엇이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런 조언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그와 마찬가지로, 일부 부모와 친구들은 여러분이 자기 희생적인 행로를 걸으려는 것을 실망시키려고 할지 모릅니다. 분별없는 감상에 젖어, 그들은 여러분이 전 시간 파이오니아 봉사 임명을 받아들이거나, 선교인으로 봉사하거나, 여호와의 증인의 지부에서 자진 봉사를 하도록 격려하기를 주저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그보다는 결혼을 해서 우리 가까이에 정착을 하는 것이 어떤가?’라고 말하거나, ‘알겠지만, 벧엘에서 봉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니까,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그리 말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13. (ㄱ) 베드로는 바로잡아진 어떤 견해를 말했읍니까? (ㄴ)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에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13 때때로 여호와의 종들도 자기 생각을 조정할 필요가 있읍니다. 베드로도 생각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는 견해를 바로잡아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 전 2:21) 참다운 그리스도인 생활을 하는 데는 자기 희생이 포함됩니다. 그렇습니다. 심지어 고통까지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쉬운 행로는 아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 그런 행로를 걷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 행로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다시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자를 위하여 사는 것’이 포함됩니다. (고린도 후 5:15) 훌륭한 본들을 계속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자기 희생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계속 염두에 두어야 할 본
14. 예수께서는 어떤 본을 보여주셨읍니까?
14 청소년이 특히 염두에 두어야 할 본은 예수께서 보여주신 본입니다. 완전한 인간으로서 예수께서는 세상에 알려진 사람들 중 가장 위대한 운동 선수, 음악가, 의사, 또는 법률가가 되실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에 주의를 집중하셨으며, 심지어 어린 시절에도 그러하였읍니다. (누가 2:42-49) 후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 하나님의 나라 복음[왕국의 좋은 소식, 신세]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누가 4:43) 지난 여름에 「미니스트리」라는 교회 잡지에 실린 한 기사에서는 이렇게 설명했읍니다. “우리 구주께서는 군중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좋아하셨다. 그리고 나서는 집집으로, 영혼을 찾으러 다니셨다. 그분은 한명의 청중에게 말씀하시는 데서 기쁨을 느끼셨다. 그럴 때 그분은 진리—하나님의 사랑—를 쏟아 부어 주실 수 있었다.”—누가 10:1-16.
15. (ㄱ) 호별 방문 전파가 도전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청소년들의 호별 방문 봉사가 효과적임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15 물론, 호별 방문 전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왕국의 좋은 소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의미 깊은 제공 연설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할 필요가 있읍니다. 또한 이 봉사에는 담대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집주인들이 무관심하며, 적의를 나타내는 집주인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청소년의 호별 방문 봉사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탈리아의 교구 잡지인 「라 보체」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와 같습니다. 그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나는 여호와의 증인을 좋아 한다”고 하면서, 설명하기를 그들은 “당신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고 썼읍니다. 그는 이렇게 논평하였읍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나무랄 데 없는 예의를 갖춘 사람들이며, 상냥하게 말을 하며, 또한 아름다운 사람들이고, 대부분이 젊은이들이다. 아름다움과 젊음, 그것이 나타날 때 매우 설득력이 있다.”
16. (ㄱ) 어떤 활동에 대해 청소년들은 칭찬을 받을 만합니까? (ㄴ) 지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면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조직은 교회들과 어떻게 비교가 됩니까?
16 그리스도를 본으로 받아들이는 여러분 청소년은 확실히 칭찬받을 만합니다! 미국에서는 25세 이하의 청년과 청소년 12,000명 이상이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있으며, 그외의 지역에서도 수만명이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있읍니다. (시 110:3)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심지어 위에 언급된 교회 잡지에 글을 쓴 그 필자까지도 이렇게 말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 호별 방문—영혼을 찾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방문하는 일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나는 이 「미니스트리」지에서 이러한 활동을 언급하는 것을 별로 본적이 없다.” 우리는 전파 활동을 하신 예수의 본을 따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는 조직과 연합한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지 않습니까?
17. 디모데는, 아마도 십대였을 적에, 무슨 일을 수행하였으며, 무엇을 볼 때 당시에 그의 나이가 그 정도 되었을 거라고 할 수 있읍니까?
17 청소년이 생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그들이 동경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으므로, 또한 청년 디모데가 보여준 본에 대한 동경심을 키우도록 하십시오. 예수께서 죽으시기 얼마 전에 태어난 디모데는, 어린 시절에 가족을 떠나 사도 바울의 두번째 선교 여행에 동행하였읍니다. 몇달 후에 바울과 실라는 폭도들 때문에 데살로니가로부터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그 전에 그들은 얼마의 사람들로 제자를 삼았읍니다. (사도 16:1-3; 17:1-10, 13-15) 얼마 지나지 않아 바울은 그 위험한 구역에 디모데를 보내 시련을 당하고 있던 그 제자들을 위로하였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3:1-3) 당시에 디모데는 10대 후반이었을 가능성이 있읍니다. 왜냐하면 약 12년 내지 14년 후에도 바울은 디모데의 “연소함”에 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전 4:12) 여러분도 그와 같이 담대하고 자기 희생적인 청소년이 되기를 동경하고 있지 않습니까?
18.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디모데를 보내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을 강화시키는 임명을 받은 지 5년 후에, 바울은 에베소에서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했읍니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이를 인하여 내가 ···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 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린도 전 4:16, 17) 젊은 디모데는 이미 5년간을 바울과 함께 일하였으므로 바울의 행사, 곧 가르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에베소인들을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가르친 방법을 포함해서 그들에게 소식을 전한 방법을 알고 있었읍니다. (사도 20:20, 21) 그같이 전파하고 가르치는 방법에 있어서 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에, 디모데는 그 회중에 참으로 훌륭한 도움이 될 수 있었읍니다.
19.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봉사한 지 10년 이상 지난 후에 그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했읍니까?
19 다시 오륙년이 지나, 이제 바울은 로마에 수감되어 있읍니다. 바로 전에 감옥에서 석방된 디모데가 그와 함께 있읍니다. (히브리 13:23) 그 장면을 머리 속에 그려 보십시오. 바울은, 아마도 디모데를 비서로 사용해서, 빌립보인들에게 보낼 편지를 받아쓰게 하고 있읍니다. 바울은 신중하게 다음과 같이 말을 잇습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립보 1:1; 2:19-22.
20. 디모데는 무엇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동경할 만한 본이 됩니까?
20 분명히 청년 디모데는 동경할 만한 본입니다! 그는 바울에게 있어서 믿을 만하고 충실한 동료였으며, 시종일관 바울에게서 떠나지 않았으며, 바울의 전파 활동을 지원하였으며, 어디로 보냄을 받든지 기꺼이 섬겼읍니다. 그는 집에서 생활하는, 소위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하였지만, 하나님의 봉사를 하는 생활로부터 크나큰 만족을 얻었읍니다! 참으로 디모데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자기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았읍니다. (고린도 후 5:15) 여러분도 그의 본을 받으려는 감동을 받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신세계를 위하여 생활함
21. 디모데가 영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사실상 디모데는 하나님의 신세계를 위하여 생활한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현재만을 생각하지 않고, 지속적인 유익을 산출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사용하는 면에 대하여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태 6:19-21) 디모데의 아버지는 희랍인이었고 분명히 믿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므로, 그는 디모데에게 고등 교육을 받고 세상에서 성공하도록 강하게 요구하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경건한 교훈을 받은 결과, 디모데는 그리스도인 회중에 전념하는 생활을 하였읍니다. 그는 영적 관심사를 추구하였으며, 적어도 한동안은 독신으로 지냄으로 사도 바울과 함께 봉사하기에 적합한 입장에 있었을 것입니다.—디모데 후 1:5.
22. 「학교」 팜플렛은 오늘날의 청소년에게 디모데가 택했던 것과 비슷한 인생 행로를 어떻게 강조해 줍니까?
22 여러분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청소년기를 디모데처럼 사용할 것입니까? 「학교와 여호와의 증인」(영문)이라는 팜플렛에서는 증인 청소년에 관해 설명하면서, 그러한 인생 행로를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인생에서의 그들의 주된 목표는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효과적으로 섬기는 것이며, 그들은 학교 교육을 그러한 목적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반적으로 현대 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부양하는 데 도움이 될 과정을 선택합니다. 따라서 많은 청소년이 직업 훈련 과정을 밟거나 실업 학교에 다니게 되는 경우가 있읍니다. 학교를 마치게 되면, 그들은 천직인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에 전념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합니다.”
23.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이, 나는 내 생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렵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23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해주신 일에 대해 진정 감사하는 청소년들은, 나는 내 생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생명을 사용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디모데가 그랬던 것처럼, 영적인 사람으로서 생활할 것입니다.
복습 질문
◻ 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인생에서 첫째 자리에 두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 어떤 잘못된 조언을 한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신 말씀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 예수와 디모데는 어떤 면으로 청소년들에게 훌륭한 본이 됩니까?
◻ 영적인 정신을 갖는 데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12면 삽화]
누가는 의학 공부를 한 사람이었지만, 그리스도인 봉사를 생애에서 첫째 자리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