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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의가 하나님의 모든 길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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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의가 하나님의 모든 길의 특징이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9
  • 소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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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9
파89 3/1 19-23면

공의가 하나님의 모든 길의 특징이다

“반석, 그분의 활동은 완전하시다. 그분의 모든 길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이다. 충실하신 하나님, 그분에게는 불공정이 없으시며, 그분은 의로우시고 곧으시다.”—신명 32:4, 신세.

1. 모세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한 노래에서 여호와의 무슨 특성을 강조하였으며, 그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최고 재판관이시며, 법률의 수여자이시며, 왕이신 여호와께서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시 33:5; 이사야 33:22) 율법 계약의 중보이며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예언자인 모세는 여호와의 공의로운 길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게 되었읍니다. (신명 34:10; 요한 1:12) 모세는 죽기 직전에 여호와의 탁월한 특성인 공의를 강조하였읍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듣는 가운데, 모세는 다음과 같은 가사의 노래를 외쳐 불렀읍니다.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찌어다 ·⁠·⁠·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찌어다.” “반석, 그분의 활동은 완전하시다. 그분의 모든 길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이다. 충실하신 하나님, 그분에게는 불공정이 없으시며, 그분은 의로우시고 곧으시다.”—신명 32:1, 3, 4, 신세.

2. 어떻게 공의가 언제나 하나님의 모든 활동의 특징이 되어 왔으며,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공의는 여호와의 모든 활동의 특징으로서, 언제나 그분의 지혜, 사랑 및 능력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면서 시행됩니다. 욥기 37:23에서, 하나님의 종 엘리후는 욥에게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켰읍니다.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또한 다윗 왕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시 37:28) 얼마나 위안이 되는 보증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길에서, 성도 곧 충성스러운 자들을 한 순간도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그것을 보증합니다!

공의가 결여된 이유

3.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 무엇이 결여되어 있으며,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 왔읍니까?

3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 공의를 사랑하는 분,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이신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 공의가 그토록 결여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사야 40:28) 모세는 신명기 32:5(신세)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파멸적으로 행동하였다. 그들은 그의 자녀가 아니고, 흠은 그들 자신의 것이다.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이다!” 인간은 파멸적인 행동으로 인해 창조주와 아주 멀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사람의 생각과 길과는 다르다고 묘사되어 있읍니다.—이사야 55:8, 9.

4. 인간은 무슨 행로를 걸어왔으며, 그로 인해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었읍니까?

4 사람이 창조주로부터 독립해서 행동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예레미야는 이러한 말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올바로 평가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예레미야 10:23) 인간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길과 통치권을 배척한 결과로, 전혀 다른 종류의 보이지 않는 매우 강력한 세력 곧 사단 마귀와 그와 한패인 악귀들 아래 놓이게 되었읍니다. 사도 요한은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합니다.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 이들 악귀 세력은 인류 가운데 공의를 옹호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읍니다.—요한 1서 5:19.

5. 오늘날 세상에 공의가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예를 들어 보십시오.

5 1984년에 미국 법무 장관 윌리엄 프렌치 스미스는 현 사물의 제도가 끝나가는 시대에 공의가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실례를 강조하였읍니다. 1977년에서 1983년 사이에 선고된, 미국 12개 주의 금고형에 대한 조사에 대해 논평하면서, 스미스 장관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대중은 흉악범들—살인범, 강간범, 마약 밀매범들—이 상당한 기간을 복역할 것이라고 당연히 여겨 왔다. 관계 부서의 연구에 의하면 ·⁠·⁠· 상습적인 범죄자들이 거리로 돌아와서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알게 된다.” 워싱턴 법률 재단의 폴 카미너가 “사법 제도[곧 공의를 시행하는 제도]가 해이해지는 일이 너무 빈번하다”라고 말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6. (ㄱ) 포로가 되기 전의 유다의 도덕 상태는 어떠하였읍니까? (ㄴ) 하박국은 무슨 질문들을 하였으며, 그 질문들은 오늘날에도 적용됩니까?

6 기원전 607년에 유다 나라가 바벨론 군대에 의해 무너지기 전, 유다 나라 전역에서는 공의가 해이해져 있었읍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예언자 하박국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하박국 1:4) 이처럼 불공정한 상황 때문에 예언자 하박국은 여호와께 이렇게 질문하였읍니다.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하박국 1:13) 오늘날의 사람들 역시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에 불공정이 행해지는 것에 영향을 받아, 이렇게 질문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왜 지상에서 자행되는 불공정한 일을 방관하시는가? 그분이 “공의가 굽게 행”하는 것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분은 왜 “잠잠”하신가?’ 이것은 중요한 질문들이며, 오직 하나님의 귀중한 말씀인 성서만이 참되고 만족스러운 답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 불공정을 허락해 오신 이유

7. (ㄱ) 왜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낙원을 상실하였읍니까? (ㄴ) 무슨 쟁점들이 에덴에서 제기되었으며, 하나님의 공의와 부합되려면 그러한 쟁점들이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였읍니까?

7 모세가 증언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일은 완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낙원에 두셨던 완전한 인간 부부의 경우에도 그것은 참되었읍니다. (창세 1:26, 27; 2:7) 그러한 마련 전체는 인류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완전한 것이었읍니다. 거룩한 기록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 1:31) 그러나 에덴의 평온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읍니다. 한 반역적인 영적 피조물의 영향을 받아, 하와와 그의 남편 아담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통치하시는 방법과 관련하여 그분과 대립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읍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명령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읍니다. (창세 3:1-6) 하나님의 통치권의 공정성에 대한 이 도전은 중대한 도덕적 쟁점을 일으켰읍니다. 충실한 사람인 욥에 관한 역사 기록은 이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의 충절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공의가 충족되려면, 그와 같이 우주적 중요성을 띤 쟁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이 주어져야 하였읍니다.—욥 1:6-11; 2:1-5; 또한 누가 22:31 참조.

8. (ㄱ) 현재 사람은 재난으로 가득한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읍니까? (ㄴ) 무슨 희망의 빛을 모세의 노래에서 엿볼 수 있읍니까?

8 하나님의 공의로운 길을 버림으로 인해서 인류가 처한 재난으로 가득한 상황을, 바울은 로마서 8:22에서 요약하였읍니다. 그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읍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느니라.]” 그러한 “탄식”과 “고통”은 대부분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동안에, 사람들 사이에 공의가 결여되었기 때문이었읍니다. (전도 8:9)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그와 같이 공의가 왜곡되는 것을 무한정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모세가 자신의 노래 가운데 신명기 32:40, 41에서 더 언급한 이러한 내용에 유의하십시오. “나의 영원히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여호와]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잡고 나의 대적에게 보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할 것이라.”

9. 인간이 반역하였을 때, 어떻게 여호와의 손이 “심판을 잡”았는지 설명하십시오.

9 과거 에덴에서 여호와의 손이 “심판을 잡”은 적이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명령에 고의로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공의롭게도 지체하지 않고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세 3:19) 여러 세기 후에, 사도 바울은 아담의 죄 지은 행로가 인간 가족 전체에 미친 비참한 결과를 요약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썼읍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 5:12.

10. 아담이 반역한 이래 무슨 두 종류의 씨가 발전해 왔으며,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대응하셨읍니까?

10 인간이 반역을 일으킨 뒤에,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렇게 언명하셨읍니다. “내가 너와 여자 사이와 네 씨와 그 여자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겠다. 그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며,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창세 3:15, 신세, 17-19) 이 두 종류의 씨는 6,000년에 걸쳐서 발전해 왔으며, 둘 사이에는 언제나 “적의”가 존재하였읍니다. 그러나 지상의 모든 상황이 변하는 동안 내내, 여호와의 공의로운 길은 변하지 않았읍니다. 예언자 말라기를 통하여,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느니라.]” (말라기 3:6) 이것은 불완전하고 반역적인 인류를 다루는 하나님의 방법이 언제나 공의로 특징을 이룬다는 것을 보증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높고 의로운 원칙에서 결코 한번도 벗어나지 않으셨으며, 그러한 원칙을 자신의 놀라운 특성인 지혜, 사랑 및 능력과 조화시켜 오셨읍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출하시다

11, 12. 시편 49편은 어떻게 인간이 처한 곤경을 잘 묘사합니까?

11 사단의 악한 영향력은 거대한 문어발처럼 인간 가족 전체를 휘감기에 이르렀읍니다. 아, 참으로 인간은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로부터뿐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 통치권의 불공정한 제도로부터도 구출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였읍니다!

12 사형 선고를 받은 이후로 인간이 처하게 된, 어찌할 수 없는 곤경이 고라의 아들들의 다음과 같은 시에 잘 기술되어 있읍니다.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찌어다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라.]” (시 49:1, 2, 7-9)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표현으로 인해 일어난 것입니다!

13, 14. (ㄱ) 누구만이 인간을 구출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분을 택하신 것이 그토록 적절한 일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어떻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에 대해 “예”가 되셨읍니까?

13 그러면, 어디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읍니까? 누가 사람을 죽음의 권세에서 구출할 수 있읍니까? 시편 필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 내 영혼을 음부[스올, 신세]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시 49:15) 오직 하나님의 크신 사랑만이, 그분의 공의와 조화롭게 역사함으로써, 사람을 “스올의 권세”에서 구출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수와 신중한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밤에 나누었던 대화에서 더 얻을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6) 하나님의 아들은 땅에 오시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하늘에 살고 계셨읍니다. 인간 이전의 그분의 존재에 관하여, 그분이 ‘사람의 아들들을 좋아하였다’고 언급되어 있읍니다. (잠언 8:31, 신세)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이 특별한 영적 피조물—자신의 독생자—을 택하신 것은 얼마나 적절한 일입니까!

14 예수에 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느니라.]” (고린도 후 1:20) 예언자 이사야가 기록한 그러한 약속들 가운데 하나가 마태 복음 12:18, 21에 언급되어 있읍니다. 거기서 우리는 예수에 관하여 이러한 내용을 읽게 됩니다.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터이니 그가 심판[공의, 신세]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참조 이사야 42:1-4.

15, 16. 어떻게 예수께서 아담의 후손들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실 수 있었읍니까?

15 예수께서는 지상 봉사 기간에,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바라고 하나님의 공의로부터 유익을 누리게 될 것임을 분명히 알려 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 20:28) 이스라엘 나라에 주어진 하나님의 완전한 법은 “생명은 생명으로”라고 언급하였읍니다. (신명 19:21) 따라서, 예수께서 자신의 완전한 생명을 버리고 죽었다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부활되어 다시 하늘로 가신 다음에, 그분은 자신의 완전한 인간 생명의 가치를 여호와께 제공하고 그 대신 아담의 생명의 권리를 받는 입장이 되셨읍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예수께서는 “마지막 [혹은 두번째] 아담”이 되셨으며, 현재는 믿음을 가진, 아담의 모든 후손의 “영원한 아버지”로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으셨읍니다.—고린도 전 15:45; 이사야 9:6, 신세.

16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이라는 인자한 마련에 의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 곧 길을 ‘이방이 알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그 길은 과연 하나님의 공의로 특징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구속하실’ 길을 마련하셨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할 만한 일입니까!

대속을 옹호함

17, 18. C. T. 러셀은 1870년대에 어떤 동반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그러나 1878년에 바버는 어떻게 러셀을 놀라게 하였읍니까?

17 제 1세기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에 대한 가르침을 항상 옹호해 왔읍니다. 워치 타워 협회의 초대 회장인 찰스 테이즈 러셀이 한때 「아침의 전령」(The Herald of the Morning)이라고 불린 종교 잡지의 공동 편집인 겸 재정 후원자였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는 것은 흥미있는 일입니다. 이 잡지는 원래 미국, 뉴욕, 로체스터의 재림교도인 N. H. 바버에 의해 발행되던 것이었읍니다. 러셀은 20대였지만, 바버는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읍니다.

18 1878년까지는 두 사람의 동반 관계가 순조로운 것처럼 보였지만, 그해에 바버는 놀랍게도, 대속 교리를 부정하는 기사를 발행하였읍니다. 일어난 일을 기술하면서, 러셀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바버 씨는 ·⁠·⁠· 「전령」지에 대속 교리를 부정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담과 그 후손의 대속의 값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핀으로 파리의 몸을 꿰뚫어 고통을 주어 죽게 하는 것이 자기 자녀의 비행에 대한 정당한 해결이라고 생각할 부모가 없듯이 우리 주의 죽음이 인간의 죄에 대한 형벌로서 지불되는 대가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19. (ㄱ) 러셀은 대속에 대한 바버의 견해에 어떻게 대응하였읍니까? (ㄴ) 「파수대」에 대해 러셀이 바라던 바는 실현되었읍니까?

19 러셀은 나이 많은 동료에 의해 흔들릴 수도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읍니다. 수개월간, 대속을 부인하는 바버와 대속을 옹호하는 글을 쓰는 러셀 사이의 논쟁이 잡지 지면에서 계속되었읍니다. 마침내 러셀은 바버와의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본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한 다음, 그것을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Zion’s Watch Tower and Herald of Christ’s Presence)이라고 불렀읍니다. C. T. 러셀은 새로운 잡지에 대한 감회를 이렇게 표현하였읍니다. “본 잡지는 처음부터 대속의 특별한 대변자 역할을 해왔으며, 하나님의 은총으로 끝까지 그렇게 되기를 우리는 바란다.” 편집인인 러셀의 희망은 실현되었읍니까? 분명히 실현되었읍니다! 그 점을 설명하는 것으로 바로 본지 2면에 보면, 이 잡지는 “지금 통치하는 왕 예수 그리스도 곧 피를 흘려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길을 열어 주신 분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격려”한다고 되어 있읍니다.

20. 무슨 질문들이 아직 대답되지 않았읍니까?

20 이제까지 고려하면서 우리는 인간 가족이 처한 죄와 사망의 단죄로부터 인류를 구출하는 수단을 필요로 하는 점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행로를 관심있게 살펴보았읍니다. 사랑이 그 수단을 마련하였읍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아직 대답되지 않았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의 유익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그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으며, 얼마나 속히 얻을 수 있는가? 다음 기사에서는 공의가 하나님의 모든 길의 특징이라는 우리의 확신을 틀림없이 증가시켜 주는 대답을 제공할 것입니다.

어떻게 대답하겠읍니까?

◻ 하나님께서는 공의에 어떤 중요성을 부여하십니까?

◻ 인류 가운데 불공정이 그토록 많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인간을 사망으로부터 구출하는 마련을 하셨읍니까?

◻ 「파수대」는 어느 정도로 대속을 옹호해 왔읍니까?

[20면 삽화]

모압 평야에서 노래 가사를 읊는 모세

[23면 삽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느니라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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