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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에 따르는 도덕적 도전에 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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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에 따르는 도덕적 도전에 응하는 법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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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0
파90 11/15 5-7면

가난에 따르는 도덕적 도전에 응하는 법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한 의사의 주장이다. “도시는 부랑자들로 가득하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로 일자리를 원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오늘날은 아무도 가난할 필요가 없다.”

일부 사람들이 게으르고 또 게으름 때문에 가난해질 수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잠언 24:33, 34)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결코 게으르지 않은 사람도 많다. 예를 들어,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다고 기록한 사람의 경우를 고려해 보자. (고린도 전 4:11) 그 사람은 구제 불능의 부랑자였는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해서 제한된 경제 수단으로 생활하는 쪽을 택하였다. 또한 바울이 궁핍했던 것은 종교적 박해와 같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전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를테면, 교육 부족, 지역 경제의 실패, 정치적 소요—의 피해자다. 많은 사람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지만 근근이 생계를 꾸려 나갈 뿐이다. 그러므로 부정직한 수단을 통해 재정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매력적인 것, 더 나아가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성서에서 때로는 도덕적 잘못을 정당화하기도 한다고 추리할지 모른다! 아무튼, 성서는 실제로 “도적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적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치는 아니”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 현인은 ‘나로 가난하여 도적질하게 마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잠언 6:30; 30:8, 9.

정직성—성서의 입장

이러한 성구는 실제로 부정직을 묵인하는 것인가? 그러면 그 성구들의 문맥을 살펴보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도둑질한 사람은 사람들의 멸시를 당하지 않을 것임을 인정한 다음에, 잠언 6:31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들키면 칠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어 주게 되리라.” 다시 말해서, 도둑은 잡히게 되면 법이 정한 모든 벌을 받게 된다. 도둑은 자신의 범죄의 대가를 치른다! 그러므로 그 구절은 도둑질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둑질이 더 큰 경제적 손실, 자신과 가족에 대한 불명예, 자존심의 손상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인의 기도는 어떠한가? 그는 자신이 가난하게 되어 “도적질하고 내[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요청하였다. (잠언 30:9) 그렇다. 여호와를 섬긴다고 공언하는 사람이 부정직한 일을 하면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백성의 회중에 모독이 돌아갈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고 기록하였다. 만일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이 실제로 도둑질을 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로마 2:21, 24.

그러므로 성서에서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사곡히 행하는 부자보다 나으니라”고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잠언 28:6) 사도 바울은 때때로 궁핍한 입장에 처했지만, 부정직을 묵인하거나 부정직한 일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에베소 4:28.

해결책: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열심히 일하지만 자기 가족을 돌볼 만큼 벌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런 사람들의 경우, 특히 가족이 병에 걸리거나 그 밖의 긴급한 일이 생길 때는 부정직이나 도둑질까지도 정당화되는가? 일부 사람들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한 주민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정직해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살아 남으려면 생활 방식을 어느 정도 구부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전역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문구가 트럭에 페인트로 적혀 있고, 벽걸이 액자에 쓰여 있고, 판박이 도안과 범퍼 스티커에 인쇄되어 있는 것을 흔히 본다. 성서에서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신뢰, 신세]하”라고 말한다. (잠언 3:5) 부정직은 성서의 권면과 결코 조화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참으로 가난에 따르는 도덕적 도전에 대한 실용적 해결책인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주리며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는’ 것 같은 난관을 겪었다. (고린도 후 11:27) 분명히, 바울은 자신이 과연 살아 남게 될 것인지 의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약 25년 간의 경험을 한 후에, 바울은 이렇게 기록할 수 있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 4:12, 13) 그렇다. 바울은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바울은 성경 원칙들이 공허하고 이상주의적인 말이 아님을 인식하였다. 그러한 원칙들은 그것을 적용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돕고 지원하기를 열망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교훈이다. 고대의 한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느니라.]”—역대 하 16:9.

하나님을 신뢰할 때 오는 축복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그토록 어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그들의 종교에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교회는 하나님을 이름 없고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이고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인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은 성서 연구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추상적인 힘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인격체이심을 알게 되었다. (시 83:18; 히브리 9:24) 그들은 그분이 신뢰할 만한 특성들을 가지신 분임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34:6에 의하면,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시다. 증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이 ‘진실이 많으신’ 분임을 인식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금 인류의 상당수를 괴롭히는 혹심한 가난이 없어질 신세계를 가져오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한다.—베드로 후 3:13.

그러므로 수백만 명에 달하는 여호와의 증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실용적임을 증명하였다. 예를 들면, 시에라리온에 사는 증인, 로절라인은 자신과 여섯 자녀의 식품과 옷을 마련하기 위해 아침 다섯 시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은 정직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압니다. 때로는 문제들이 생기고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생활을 하면 만사가 형통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나는 여호와를 불쾌하시게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한 문필가는 이렇게 말하였다.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 빵보다 희망이다.” 그렇다. 절망, 좌절, 만성적 불행 등은 배고픔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는 고민거리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는 사람은 좌절할 필요가 없다. 로절라인은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지금 고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고생하지 않을 때가 다가옴을 알기 때문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지금은 나와 가족의 식품을 얻기 위해 일하지만, 여호와의 신세계에서는 먹을 것이 풍부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여호와를 알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희망과 즐거움을 가지고 있습니다.”—비교 이사야 25:6; 계시 21:3, 4.

물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도 사도 바울처럼 아직은 경제적 압력을 겪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적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길 필요가 전혀 없다. 시편 필자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5)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생활에서 그분의 권익을 첫째 자리에 두는 사람들을 보살피시고 축복하신다.—마태 6:25-33.

그러므로 비록 가난하더라도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데살로니가 후 3:13) 결코 도덕상의 타협을 하지 말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워 나가고 또한 생활상의 문제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그분에게 의지하여 도움을 구하라. 여호와를 섬기고 그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러한 권고의 말씀이 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베드로 전 5:6, 7.

[6면 삽입]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 빵보다 희망이다”

[7면 삽화]

여호와의 증인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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