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본받을 것인가?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에베소 5:1.
1. 다른 사람을 본받는 일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른 사람을 본받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본받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당히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잠언 13:20의 영감받은 필자는 이렇게 경고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느니라.]”—요한 3서 11.
2. 우리는 누구를 본받아야 하며, 어떻게 본받아야 합니까?
2 우리에게는 본받을 만한 남녀들에 관한 성서의 뛰어난 본들이 있습니다. (고린도 전 4:16; 11:1; 빌립보 3:17) 그렇지만, 우리가 본받을 최상의 본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31-5:2에서 우리가 피해야 할 특성과 습관을 지적한 후에 ‘상냥하게 동정적이 되며, 서로 너그럽게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력히 권하였습니다. (「신세」) 그리고 나서 이러한 중요한 권면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3, 4.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어떻게 묘사하셨으며, 우리는 왜 그분을 공의의 하나님으로 고려해야 합니까?
3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방법과 특성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그분의 성품과 행위의 여러 부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이렇게 묘사하신 것에서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출애굽 34:6, 7.
4 여호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시는 분이므로, 우리는 그분의 성품의 이러한 면을 분명히 알고 본받아야 합니다. (시 33:5; 37:28) 그분은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인류의 최고 재판관이시며 법 수여자이시므로, 모든 사람에게 공의를 나타내십니다. (이사야 33:22) 그분이 공의를 요구하신 방법과 그 공의가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리고 후에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시행되게 하신 방법에서 그 점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다
5, 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하신 일에서 어떻게 공의가 분명히 나타났습니까?
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택하시면서 그들이 ‘그분의 말을 잘 듣고 그분의 계약을 지킬’ 것인지의 여부를 물으셨습니다. 시내(시나이) 산 기슭에 모인 그들은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출애굽 19:3-8) 참으로 심각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 600가지 법을 주셨으며, 그들은 그분께 헌신한 백성으로서 그 법들을 지킬 책임이 있었습니다.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하나님의 한 율법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확고하게 서 있었고 모든 범죄와 불순종이 공정한 갚음을 받았[읍니다.]”—히브리 2:2, 「새번역」.
6 그렇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인은 “공정한 갚음”, 곧 결함 있는 인간의 공의가 아니라 우리의 창조주로부터의 공의와 일치한 갚음에 직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 여러 가지 형벌을 규정하셨습니다. 가장 무거운 형벌은 ‘끊쳐지는 것’ 곧 사형 집행이었습니다. 우상 숭배, 간음, 근친 상간, 수간, 동성애, 자녀 희생, 살인 및 피의 오용과 같은 심각한 범법 행위에 대해 그러한 형벌이 적용되었습니다. (레위 17:14; 18:6-17, 21-29) 더욱이, 하나님의 어떤 법이든지 고의적으로, 회개하는 일 없이 범하는 이스라엘인은 누구나 “끊어”질 수 있었습니다. (민수 4:15, 18; 15:30, 31)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었을 때, 범죄자의 후손도 그 영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7. 하나님의 고대 백성 가운데서 공의를 집행하는 일로 인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7 그러한 형벌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의 심각성을 뚜렷이 보여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들이 술 취하고 탐식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는 장성한 재판관들 앞으로 불려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고의적이고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임이 밝혀진다면, 부모는 공의를 집행하는 데 동참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신명 21:18-21) 부모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이 참 숭배자들 사이에 퍼지지 않도록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음을 아셨습니다. (에스겔 33:17-19) 그러한 마련을 하신 분에 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모든 길은 공의로우시[다.] 충실하신 하나님, 그분에게는 불공정이 없으시며, 그분은 의로우시고 곧으시다.”—신명 32:4, 「신세」.
8.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회중을 대하신 일에서 어떻게 공의가 특징을 이루었습니까?
8 여러 세기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버리셨고 그리스도인 회중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공의를 고수하셨고 “소멸하는 불”로 묘사되실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 12:29; 누가 18:7, 8) 그러므로 그분은 범죄자들을 추방하심으로써 회중 전체에 경건한 두려움을 심어 주기 위한 마련을 계속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가 된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제명 처분되어야 하였습니다.
9. 제명 처분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무슨 일을 달성합니까?
9 제명 처분에는 무엇이 관련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제1세기에 문제가 다루어진 방법에서 교훈이 되는 실례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린도의 한 그리스도인은 아버지의 아내와 부도덕한 관계를 가졌으며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바울은 그를 그 회중에서 추방시킬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깨끗함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기 때문입니다. 그를 추방하는 것은 그가 저지른 악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모두에게 불명예를 돌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제명 처분하는 이러한 엄한 징계는 또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충격을 받고 정신을 차리게 하며 그 사람과 회중에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두려움을 심어 줄 수 있었습니다.—고린도 전 5:1-13; 비교 신명 17:2, 12, 13.
10. 어떤 사람이 제명 처분된다면, 하나님의 종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10 만일 악한 사람이 추방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자와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a 따라서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고 그 법에 따라 걷고자 하는 충성스러운 사람들과의, 사교를 포함한 교우 관계로부터 끊어지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는 직계 가족이 아닌 친척으로서 한집안 식구가 아닌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친척인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지시를 적용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모세에 의한 율법 아래 있는 히브리 부모들이 악한 아들에 대한 형 집행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하며, 따라서 우리는 제명 처분이 공정한 일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고린도 전 5:1, 6-8, 11; 디도 3:10, 11; 요한 2서 9-11; 참조 「파수대」 1981년 11월 15일 호 19-23면; 1988년 4월 15일 호 28-31면.
11. 하나님의 성품의 다양한 부면들이 제명 처분과 관련하여 어떻게 분명히 나타날 수 있습니까?
11 그러나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일뿐 아니라 “인자[“사랑의 친절”, 「신세」]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민수 14:18) 그분의 말씀은 제명된 사람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럴 경우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경험이 많은 감독자들은 그 사람이 제명 처분을 받게 했던 범죄 행위에 대해 회개의 증거를 보이고 있는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조심스럽게 알아보기 위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비교 사도 26:20) 만일 그러한 증거를 보인다면, 그 사람은 회중에 복귀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2:6-11에서 고린도에 있는 사람에게 있었던 일을 지적하는 바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추방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회중으로부터 여러 해 동안 떨어져 있은 사람들이 있으므로, 그런 사람들이 돌아오는 길을 알도록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자비로 균형 잡힌 공의
12, 13.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것에는 왜 그분의 공의를 반영하는 것 이상이 포함되어야 합니까?
12 이제까지 설명한 내용은, 출애굽기 34:6, 7에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의 특성들 중 주로 한 가지 부면만 다룬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절은 하나님의 공의만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것을 설명하며, 그분을 본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공의를 시행하는 일에만 치중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모형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성전 기둥 하나만 연구하겠습니까? (열왕 상 7:15-22)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서는 성전의 특성과 역할에 대해 균형 잡힌, 전체 상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방법과 특성들 중 다른 부면들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분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사랑의 친절과 진실이 많은 하나님, 사랑의 친절을 천대까지 베풀며 악을 용서’하는 분입니다.
13 자비와 용서가 하나님의 기본 특성입니다. 그분이 이스라엘을 대하신 방법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반복적인 과오에 대해 그들이 처벌을 면하게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풍부한 자비와 용서를 나타내셨습니다.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103:7-9; 106:43-46) 그렇습니다. 그분이 수백 년에 걸쳐 일을 처리하신 방법을 회고해 보는 것은 그 말씀이 참됨을 증명합니다.—시 86:15; 145:8, 9; 미가 7:18, 19.
14.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본받았음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므로, 우리는 그분이 그와 비슷하게 자비를 보이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일 것으로 기대해야 합니다. (히브리 1:3) 다른 사람에 대한 그분의 행동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분은 분명히 그러하셨습니다. (마태 20:30-34) 그분은 또한, 우리가 누가 복음 15장에서 읽어 볼 수 있는 말씀을 통해 자비를 강조하셨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세 가지 예는 예수께서 여호와를 본받으신 분임을 증명하며, 우리를 위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잃은 것에 대한 염려
15, 16. 무엇이 계기가 되어 예수께서는 누가 복음 15장의 예들을 드시게 됩니까?
15 그러한 예들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자비로운 관심을 갖고 계심을 증거하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실제 태도를,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처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예들을 드시게 된 이러한 배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예수께]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누가 15:1, 2.
16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모세에 의한 율법에 철저히 고착한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율법주의적 의에 대해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칭 의를 승인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가 16:15) 언급된 세리들은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거두는 유대인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세리들은 많은 경우 동포 유대인들에게서 지나치게 많은 액수를 거두기 때문에 멸시받는 집단이었습니다. (누가 19:2, 8) 그들은 부도덕한 사람들, 심지어 매춘부까지 포함되는 “죄인”들로 분류되었습니다. (누가 5:27-32; 마태 21:32) 하지만 예수께서는 불평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17. 누가 복음 15장에 나오는 예수의 첫 번째 예는 무엇이었습니까?
17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종교 지도자들은 이 비유적인 묘사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양과 목자를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걱정이 되어, 99마리의 양을 잘 아는 목초지에 풀을 뜯도록 남겨 두고서 잃은 양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목자는 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계속 찾아 그 겁먹은 양을 양 떼에게로 부드럽게 데려왔습니다.—누가 15:4-7.
18. 누가 복음 15장에 나오는 예수의 두 번째 예에서 강조된 바와 같이, 무엇으로 인해 즐거워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18 예수께서는 두 번째 예를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천사들”, 「신세」]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누가 15:8-10) 드라크마는 대략 인부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 여자의 드라크마 동전은 상속 재산이었을지 모르며, 혹은 보석 세트의 일부였을지 모릅니다. 그것을 잃었을 때, 여자는 열심히 그 동전을 찾았으며, 찾은 후에 여자와 벗들은 기뻐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관해 무엇을 알려 줍니까?
하늘에서 즐거워함—무엇에 대해?
19, 20. 누가 복음 15장에 나오는 예수의 처음 두 예는 주로 누구에 관한 것이었으며, 그 예들의 주요점은 무엇이었습니까?
19 이 두 예는 예수를 비난하는 것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것이었으며, 예수께서는 몇 달 전에 자신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밝히신 일이 있습니다. (요한 10:11-15) 그렇지만, 이 예들은 주로 예수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배울 필요가 있는 교훈은 주로 하나님의 태도와 방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에 대해 하늘에서 기뻐하는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종교인인 체하는 사람들은 여호와를 섬긴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분을 본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예수의 자비로운 방법은 그분의 아버지의 뜻을 대변하였습니다.—누가 18:10-14; 요한 8:28, 29; 12:47-50; 14:7-11.
20 백 중의 하나가 기뻐할 근거가 되었다면, 동전 열 개 중 하나는 더욱 기뻐할 근거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동전을 찾아 즐거워하는 여자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예에서도, 교훈은 하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여호와와 함께 ‘회개한 죄인 하나’로 인해 즐거워한다고 한 점에서 그러합니다. “회개”라는 단어에 유의하십시오. 이 예들은 사실상 회개한 죄인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예는 다 그들의 회개에 대해 기뻐하는 것이 마땅함을 강조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21. 우리는 누가 복음 15장에 나오는 예수의 예들로부터 무슨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21 율법에 피상적으로 순응하는 것으로 자기 만족에 빠져 있는 이들 잘못 인도된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자비롭고 은혜롭고 ···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가볍게 보아 넘겼습니다. (출애굽 34:6, 7) 그들은 하나님의 방법과 성품의 이 부면을 본받아 왔다면, 회개한 죄인들에 대한 예수의 자비를 깊이 인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이 교훈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적용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의 세 번째 예에 유의하십시오.
행동으로 나타내는 회개와 자비
22. 간단히 말해서, 예수께서 누가 복음 15장에서 세 번째 예로 드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22 이 예는 종종 탕자의 예라고 불립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예를 읽으면서 왜 일부 사람들이 이 예를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비유라고 생각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예는 한 가정의 작은아들에 관한 것인데,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유산을 얻어냅니다. (비교 신명 21:17) 이 아들은 먼 지방으로 떠나 그곳에서 가진 것을 모두 탕진하며, 돼지 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돼지 먹이를 갈망할 정도로 굶주리는 신세가 됩니다. 마침내 이 아들은 정신을 차리게 되며, 아버지를 위해 품꾼으로라도 일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아들이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환영하는 적극적인 단계를 취하며 잔치를 열기까지 합니다. 집에 있으면서 일해 온 맏아들은 자비를 나타내는 것에 대해 분개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은 아들이 이제 살았으므로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누가 15:11-32.
23. 우리는 탕자의 예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23 일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작은아들과 같은 죄인들과 대조되는, 맏아들로 비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예의 요점을 파악하였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떠합니까? 그 예는 하늘에 계신 우리의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뛰어난 특성, 곧 죄인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회개와 전환을 근거로 기꺼이 용서하시는 특성을 강조합니다. 그 예는 그 예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회개하는 죄인들의 구속에 대해 기뻐하는 반응을 보이게 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문제들을 보시는 방법이자 행동하시는 방법이며, 그분을 본받는 사람들도 그와 같이 해야 합니다.—이사야 1:16, 17; 55:6, 7.
24, 25.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방법들을 본받으려고 해야 합니까?
24 분명히, 공의가 하나님의 모든 길의 특징이므로 여호와를 본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공의를 소중히 여기고 또 추구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단순히 추상적인 혹은 엄격한 공의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의 자비와 사랑은 대단히 큽니다. 그분은 진정한 회개에 근거하여 기꺼이 용서하심으로써 그 점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우리가 용서하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것과 연관시킨 것은 적절한 일입니다. “서로 용서 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에베소 4:32-5:2; 사체로는 본지에서.
25 참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여호와의 공의 그리고 그분의 자비와 기꺼이 용서하시는 태도를 본받으려고 해왔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이러한 면들에서 그분을 본받기가 그만큼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의 행로를 추구한 일로 인해 심한 징계를 공정하게 받은 사람에게 어떻게 이 점을 적용할 수 있습니까? 이제 살펴보도록 합시다.
[각주]
a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파문이란 어떤 단체가 한때 좋은 신분의 성원이었던 사람들에게 성원으로서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의도적인 행위다. ··· 파문은 종교 사회가 범법자들에게 성사, 집회 숭배 및 있을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사회적 접촉도 하지 못하게 하는 배척 행위를 가리키기 위해 그리스도교 시대에 생겨났다.”—「국제 표준 성서 백과 사전」(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무엇을 배웠습니까?
◻ 하나님의 공의가 이스라엘 회중에 그리고 그리스도인 회중에 어떻게 분명히 나타났습니까?
◻ 우리는 왜 하나님의 공의에 더하여 그분의 자비를 본받아야 합니까?
◻ 누가 복음 15장의 세 가지 예가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 예들을 통해 무슨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16, 17면 삽화]
시내 산(왼쪽 배경) 앞의 에르라하 평야
[자료 제공]
Pictorial Archive (Near Eastern History) Est.
[15면 사진 자료 제공]
Garo Nalbandian
[18면 사진 자료 제공]
Garo Nalban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