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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93 10/1 15-20면
  •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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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소서’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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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3
파93 10/1 15-20면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소서’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 24.

1. 여호와께서는 자기 종들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우리 모두는 이해심이 있는 사람,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는 사람, 우리가 실수할 때 도와주는 사람, 우리에게 우리의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 사람과 상대하기를 좋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들을 그렇게 대하십니다. 시편 103:14은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완벽하게 반영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따뜻한 초대를 발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혹은 “나와 함께 나의 멍에 아래 들어오고”, 「참조주 신세」 각주]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 11:28-30.

2. 다음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와 인간의 견해의 차이를 대조하여 설명하십시오. (ㄱ) 예수 그리스도. (ㄴ) 그리스도의 추종자들.

2 종들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는 종종 인간의 견해와 아주 다릅니다. 그분은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시며 다른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할 부면을 고려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그분은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습니다. 그분을 메시야로 믿지 않은 사람들은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사야 53:3; 누가 23:18-21) 그렇지만 하나님의 눈에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사랑하는 자”였으며,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내가 너를 승인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3:22, 「신세」; 베드로 전 2:4)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 가운데는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많은 환난을 인내하기 때문에 멸시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의 눈에 그러한 사람들은 부자일 수 있습니다. (로마 8:35-39; 계시 2:9) 왜 그러한 견해 차이가 있습니까?

3. (ㄱ) 사람들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는 왜 종종 인간들의 견해와 아주 다릅니까? (ㄴ) 우리의 내면이 어떤 유의 사람인지 조사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예레미야 11:20(「신세」 참조)은 ‘여호와는 신장과 마음을 감찰하신다’고 대답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내면을 보시며, 다른 사람의 눈에는 숨겨져 있는 우리의 인간성의 부면들까지도 보십니다. 감찰하시면서, 그분은 그분과의 좋은 관계에 매우 중요한, 곧 우리에게 가장 지속적으로 유익이 되는 특성과 상태에 우선적인 주의를 기울이십니다. 그 점을 아는 것은 안심이 되게 하며, 또한 정신이 번쩍 들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내면에 주의를 기울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이 신세계에서 원하시는 유의 사람임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내면을 조사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가 그러한 조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히브리 4:12, 13.

하나님의 생각은 참으로 보배롭다!

4. (ㄱ) 무엇이 동기가 되어 시편 필자는 하나님의 생각이 자기에게 보배롭다고 선언하였습니까? (ㄴ) 하나님의 생각은 왜 우리에게 보배롭습니까?

4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에 대해 갖고 계신 지식의 넓이와 깊이에 대해 그리고 종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이라면 무엇이든 베풀 수 있는 하나님의 비상한 능력에 대해 묵상한 후에, 시편 필자 다윗은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라고 썼습니다. (시 139:17ㄱ)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계시되어 있는 그러한 생각들은 인간들의 어떤 생각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며, 인간의 생각이 아무리 훌륭해 보인다 하더라도 그러합니다. (이사야 55:8, 9)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그분의 봉사에서 열심을 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빌립보 1:9-11, 「신세」 참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문제를 하나님께서 보시듯 보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정직하고, 실제 속마음이 어떤 유의 사람인지를 솔직히 인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합니까?

5. (ㄱ)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어떤 것보다’ 무엇을 지키라고 강력히 권합니까? (ㄴ) 가인에 관한 성서 기록이 어떻게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까? (ㄷ) 우리가 모세 율법 아래 있지는 않지만, 그 율법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5 사람들은 외모에 너무 치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교훈합니다. (잠언 4:23) 교훈으로 그리고 본으로, 성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돕습니다. 성서는 가인이 하나님께 희생물을 바치는 시늉을 하기는 하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동생 아벨에 대한 분개심이, 이어서 증오심이 끓어오르고 있었다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성서는 우리에게 가인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강력히 권합니다. (창세 4:3-5; 요한 1서 3:11, 12) 성서에는 순종에 대한 모세 율법의 요구 조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또한 율법의 가장 중요한 요구 조건이, 여호와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해 그분을 사랑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임을 언명합니다.—신명 5:32, 33; 마가 12:28-31.

6. 잠언 3:1을 적용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자문해 보아야 합니까?

6 잠언 3:1에서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뿐 아니라 순종이 진실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강력한 권고를 받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대한 나의 순종의 경우도 그러한가?’ 하고 자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일에서 우리의 동기나 생각에 결함이 있음을—그리고 우리 중 아무도 흠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깨닫는다면, 우리는 ‘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고 자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잠언 20:9; 요한 1서 1:8.

7. (ㄱ) 마태 복음 15:3-9에 나오는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신 일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ㄴ) 어떤 상황이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징계하기 위해 단호한 조처를 취할 것을 요구할지 모릅니까?

7 유대의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체하면서 이기심이 동기가 된 관습을 간교하게 조장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선자라고 비난하시면서 그들의 숭배가 헛된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태 15:3-9) 예수께서는 또한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겉으로는 도덕적인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정욕적인 쾌락을 즐기기 위해 부도덕한 생각에 끊임없이 빠지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정신과 마음을 징계하기 위해 단호한 조처를 취할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잠언 23:12; 마태 5:27-29) 또한 우리의 세속 일이나 교육 목표 혹은 오락 선택의 결과로 우리가 세상을 본받는 자가 되어 세상의 표준이 우리를 틀잡게 할 경우, 그러한 징계가 필요합니다. 제자 야고보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공언하지만 세상의 벗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부른 것을 결코 잊지 않기 바랍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야고보 4:4; 요한 1서 2:15-17; 5:19.

8. 하나님의 보배로운 생각으로부터 온전히 유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8 이러한 그리고 그 외의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으로부터 온전히 유익을 얻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읽거나 듣기 위해 시간을 따로 떼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 더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연구하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파수대」 독자들은 성서를 논의하는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기 위해 다른 일들로부터 시간을 삽니다. (에베소 5:15-17) 그리고 그들이 그 대가로 받는 것은 물질적 부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9.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는 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진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9 그러나 이러한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더 빨리 진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생활에서 진리를 더 온전히 적용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흔히, 주된 요인은 근면한 개인 연구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며, 매일의 영적 양식은 물질적 양식을 정기적으로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함을 인식합니다. (마태 4:4; 히브리 5:14)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매일 적어도 얼마간 성서나 성서를 설명하는 출판물을 읽는 데 시간을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회중 집회를 위한 준비를 하면서, 다룰 내용을 미리 연구하고 성구들을 찾아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용을 읽는 것 이상의 일, 곧 그 내용을 묵상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한 방식의 연구에는 배우고 있는 내용이 자신의 생활에 미칠 영향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영성이 자라면서, 그런 사람들은 시편 필자가 이렇게 쓴 바와 같이 느끼게 됩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 주의 증거[“생각나게 하는 것들”, 「신세」]가 기이하[나이다.]”—시 1:1-3; 119:97, 129.

10. (ㄱ)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연구하는 것은 얼마나 오랜 기간 유익할 것입니까? (ㄴ) 성경은 그 점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0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 지 1년이 되었든, 5년이 되었든 혹은 50년이 되었든지 간에, 연구가 결코 반복에 불과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에게 보배로운 것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이 성경으로부터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웠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이여 ·⁠·⁠·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하고 다윗은 말한 다음, 계속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셀 수 있는 한계를 넘을 정도로 많습니다. 우리가 하루 종일 하나님의 생각들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잠이 들 때까지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생각할 것이 여전히 더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라고 썼습니다. (시 139:17, 18) 여호와와 그분의 길에 관해 배울 것이 영원 무궁토록 우리에게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아는 정도에 결코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로마 11:33.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함

11. 하나님의 생각을 알 뿐 아니라 그분의 느낌에 공감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단지 우리의 머리에 사실들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침투되게 할 때,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느낌에 공감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느낌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그 결과 어떻게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성서에서 말하는 것을 입으로 되풀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금지된 것을 바람직한 것으로 볼 수 있거나 요구되는 것을 짐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쁜 것을 미워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 불완전성 때문에 싸워야 할지 모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로마 7:15)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내면이 옳은 것과 일치되도록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마음을 연단”하시는 분인 여호와를 기쁘시게 할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잠언 17:3.

12. 경건한 사랑과 경건한 미움은 어느 정도나 중요합니까?

12 경건한 미움은 악행에 대한 강력한 보호책입니다. 경건한 사랑이 옳은 일 행하기를 즐기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 1서 5:3) 거듭거듭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과 미움을 모두 배양하라고 강력히 권합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시 97:10)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로마 12:9)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13. (ㄱ) 우리는 악인의 멸망에 관한 다윗의 무슨 기도에 온전히 동의합니까? (ㄴ) 다윗의 기도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다윗이 하나님께 멸망시키시기를 기도한 그 악인이란 누구입니까?

13 여호와께서는 땅에서 악인을 뽑아내고 의가 거하는 새 땅을 가져오실 목적을 가지고 계심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시 37:10, 11; 베드로 후 3:13) 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들은 시편 필자 다윗의 이러한 기도에 온전히 동의합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정녕히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찌어다 저희가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헛되이 주의 이름을 칭하나이다.” (시 139:19, 20) 다윗은 그러한 악인들을 직접 죽이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징벌이 여호와의 손에서 오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신명 32:35; 히브리 10:30)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인가 단지 개인적으로 다윗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못 대표하였으며, 헛되이 그분의 이름을 칭하였습니다. (출애굽 20:7) 부정직하게도,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공언하였지만, 그분의 이름을 자기들의 음모를 진척시키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기를 택한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14.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악인들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까?

14 여호와를 모르는 수십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지 가운데 있는 그러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악한 것이라고 알려 주는 일들을 행합니다. 만일 그들이 그러한 길을 계속 고집한다면, 그들은 큰 환난중에 죽는 사람들 가운데 포함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우리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에스겔 33:11)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이 여호와의 길을 배우고 적용하도록 도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 강한 미움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어떠할 것입니까?

15. (ㄱ) 시편 필자가 “원수”로 여긴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ㄴ) 우리는 여호와를 배반하는 사람들을 “미워”한다는 것을 오늘날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15 그런 사람들에 관하여,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한하지[“싫어하지”] 아니하나이까 내가 저희를 심히 미워하니 저희는 나의 원수니이다.” (시 139:21, 22, 「공동번역」 참조) 그들이 여호와를 몹시 미워하였기 때문에 다윗은 혐오감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여호와를 배반함으로 그분께 대한 미움을 나타내는 사람들 가운데는 배교자들이 포함됩니다. 배교는 사실상 여호와께 대한 반역입니다. 일부 배교자들은 하나님을 알고 섬긴다고 공언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나와 있는 가르침이나 요구 조건을 배척합니다. 성서를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여호와의 조직을 배척하고 그 조직의 일을 적극 방해하려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옳은 것을 안 후에 고의적으로 그러한 악을 택할 때, 그들의 기질에서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 될 정도로 악에 깊이 젖어 있을 때, 그리스도인은 도저히 분리시킬 수 없을 정도로 악행에 빠져 있는 그런 사람들을 (성서적인 의미에서) 미워해야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배교자들에 대해 여호와께서 느끼시는 것에 공감하며, 배교적인 사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참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하나님의 원수가 된 사람들을 “싫어”하며, 그러나 복수를 집행하는 것을 여호와께 맡깁니다.—욥 13:16; 로마 12:19; 요한 2서 9, 10.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실 때

16. (ㄱ) 다윗은 왜 여호와께서 자기를 살피시기를 원하였습니까? (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과 관련하여 우리가 무엇을 분별하도록 도와주시기를 하나님께 요청해야 합니까?

16 다윗은 어떤 면으로든 악인과 같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의 내면을 숨기려 하지만, 다윗은 겸손히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불안하게 하는 생각”]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 139:23, 24, 「신세」 참조) 다윗은 여기서 마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그의 내면 곧 속사람을 언급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고 우리에게 어떤 부당한 욕망이나 애정이나 감정이나 의도나 생각이나 동기가 있는지 분별하시기를 원해야 합니다. (시 26:2)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유하십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언 23:26.

17. (ㄱ) 불안하게 하는 생각을 숨길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ㄴ) 우리 마음속에 나쁜 경향이 있음을 알고 놀라야 합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에 관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7 그릇된 욕망이나 그릇된 동기 때문에 혹은 우리의 어떤 그릇된 행실 때문에 우리 속에 어떤 고통스럽고 불안하게 하는 생각이 숨겨져 있다면, 확실히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가 문제를 시정하도록 도와주시기를 원할 것입니다. “무슨 악한 행위”라는 말 대신에, 모팻의 번역판은 “그릇된 행로”라는 표현을 그리고 「신 영어 성서」는 “당신[즉 하나님]을 근심케 하는 어떤 길”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안하게 하는 생각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지만, 그분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십니다. (로마 8:26, 27) 우리 마음 속에 나쁜 경향이 있다 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런 경향을 핑계삼으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창세 8:21) 우리는 그러한 경향을 뿌리뽑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여호와와 그분의 길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러한 도움을 받기 위해 그분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요한 1서 3:19-21.

18. (ㄱ)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십니까? (ㄴ) 만일 우리가 계속 여호와의 인도를 따른다면, 우리는 무슨 흐뭇한 칭찬을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18 여호와께서 영원한 길로 인도하시기를 구한 시편 필자의 기도와 일치하게, 여호와께서는 분명히 자기의 겸손하고 순종하는 종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들이 악행으로 인해 때 이르게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오래 사는 길에 있다는 의미에서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에 있다는 의미에서, 그분은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분은 예수의 희생의 속죄 가치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인상 깊게 심어 주십니다. 그분의 말씀과 조직을 통하여,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교훈을 베푸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 주장하는 유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분의 도움에 반응을 보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시 86:11) 그리고 그분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그분을 섬기는 데 사용할 영원한 생명과 함께 의로운 신세계에서의 완전한 건강의 전망으로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계속 그분의 인도에 충성스럽게 반응을 보인다면, 그분은 자기 아들에게 하신 바와 같이, 사실상 우리에게도 “내가 너를 승인하였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누가 3:22, 「신세」; 요한 6:27; 야고보 1:12.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 여호와의 종에 대한 그분의 견해와 인간들의 견해는 왜 종종 다릅니까?

◻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실 때 보시는 것을 우리가 분별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 어떤 유의 연구가 우리로 하여금 사실을 알고 우리의 마음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알 뿐 아니라 그분의 느낌에 공감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우리는 왜 개인적으로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16면 삽화]

연구하면서, 하나님의 생각과 느낌이 우리 자신의 것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라

[18면 삽화]

여호와의 생각은 “모래보다 많”다

[자료 제공]

Pictorial Archive (Near Eastern History)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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