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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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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4
파94 1/15 2-4면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전쟁은 우울하게도 뉴스의 한 부분을 장식한다. 독자는 그런 만행에 대한 보도에 접하면 틀림없이 언짢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런 보도에 접하다 보면 왜 꼭 무기를 사용하여 그토록 많은 분쟁을 해결해야만 하는지 의아스러울지 모른다. 사람은 평화롭게 사는 법을 결코 배울 수 없는가?

전쟁이라는 역병을 치료하는 것이 에이즈를 치료하는 것보다 더 아득해 보인다. 20세기에 나라들은 모두 전시 체제로 바뀌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전선에 투입되었고, 수백 개의 도시가 폐허가 되었다. 대량 살육의 끝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수지 맞는 무기 거래를 통해 세계의 군대들—그리고 게릴라들—은 계속 가공할 화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전쟁 무기가 한층 치사적이 됨에 따라, 사상자 수가 급증하였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싸운 6500만 명의 군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죽거나 부상당하였다. 30여 년 뒤, 단 두 발의 원자 폭탄으로 일본 민간인이 15만 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2차 세계 대전 이래 분쟁은 갈수록 국지전 양상을 띠어 왔다. 그렇지만 특히 민간인에게 위험이 가중되었는데, 현재 사상자 수의 80퍼센트를 민간인이 차지할 정도다.

어처구니없게도, 전쟁을 막기 위해 유례 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시대에 이런 대량 무차별 살육이 국가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행되어 왔다. 최근에 냉전이 끝남에 따라, 평화로운 신 세계 질서가 태동할 것이라는 희망이 고조되었다. 그렇지만 세계 평화는 여전히 환상으로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생물학적 필연인가?

일부 역사가와 인류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전쟁은 순전히 진화 과정에서 생존 투쟁의 일부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심지어 필연적인—것이라고 한다. 그런 사고 방식에 영향을 받은 군사 분석가 프리드리히 폰 베른하르디는, 전쟁은 “생물학적, 사회적, 도덕적 진보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라고 1914년에 주장하였다. 그 이론에 의하면, 전쟁은 나약한 개인이나 나라를 제거하는 수단인 동시에 적자 생존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런 주장은 수많은 전쟁 과부나 고아에게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도덕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런 사고 방식은 현대 전쟁의 참상을 가볍게 보아 넘기는 것이다. 기관총은 적자(適者)라고 해서 피해가지 않으며 폭탄은 강자든 약자든 가리지 않고 멸절시킨다.

1차 세계 대전의 생생한 교훈을 무시하고, 아돌프 히틀러는 군사 정복을 통해 지배 인종을 만들려는 꿈을 꾸었다. 그는 저서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인류는 영원한 투쟁 속에서 크게 발전해 왔다. 인류는 영원한 평화 속에서만 소멸한다. ·⁠·⁠· 강자는 약자를 지배해야 하며 약자와 뒤섞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히틀러는 인류를 향상시키기는커녕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켰으며 하나의 대륙을 온통 황폐시켰다.

그러면 전쟁이 생물학적 필연이 아니라면, 인류를 자멸로 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무슨 힘이 나라들을 이런 “야만인의 짓”으로 몰아넣는가?a 평화 조성자들의 선의의 노력을 방해하는 근본 요인 몇 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전쟁의 원인

국가주의. 정치가와 장군들이 흔히 부추기는 국가주의는 전쟁을 조장하는 매우 강력한 힘이다. 많은 전쟁은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국가의 명예”를 수호하기 위해서 일어난다. 옳든 그르든 내 조국이라는 사고 방식이 만연할 때, 공공연한 침략마저도 선제 공격이라고 둘러댈 수 있다.

민족간의 적대감. 인종간, 부족간, 민족간의 해묵은 증오심이 많은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부채질하였다.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옛 유고슬라비아와 라이베리아 그리고 소말리아의 비참한 내전이 그 실례다.

경제적·군사적 경쟁.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 표면상 평화로운 기간에, 유럽의 열강은 실제로 군대를 대규모로 증강하였다. 독일과 대영 제국은 전함 건조 경쟁에 돌입하였다. 결국 대량 살육에 휘말린 강대국들은 제각기 전쟁이 자국의 힘을 더하고 불로 소득을 안겨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바야흐로 분쟁이 일어날 여건이 무르익었다.

종교적 반목. 특히 인종간의 분열로 뒷받침될 때, 종교적 차이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레바논과 북아일랜드에서의 분쟁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전쟁은 종교적 적대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전쟁 선동자. 성서는 “이 세상 신”인 사단 마귀가 현재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활동적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고린도 후 4:4) 살인적인 분노에 가득 찼고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에, 사단은 지상의 비참한 상태를 악화시킬 셈으로 전쟁을 포함하여 상황을 조장하고 있다.—계시 12:12, 「새번역」.

전쟁을 초래하는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들을 제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000여 년 전에, 플라톤은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플라톤의 자조 섞인 이 말은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쓰디쓴 진리인가? 아니면 언젠가는 전쟁 없는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는가?

[각주]

a 전쟁을 “야만인의 짓”으로 표현한 사람은 나폴레옹이었다. 그는 성인 시절의 대부분을 군에서 보내고 거의 20년 동안 군 최고 사령관을 지냈기에 전쟁의 야만성을 직접 체험하였다.

[2면 사진 자료 제공]

표지: John Singer Sargent’s painting Gassed (detail), Imperial War Museum, London

[3면 사진 자료 제공]

Instituto Municipal de Historia,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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