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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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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5
파95 4/15 2-6면

종교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스웨덴의 대학 도시인 웁살라에서, 영적 호기심이 많은 한 남자는 그 도시에 있는 다른 여러 종교들의 신앙을 연구해 보고 그 숭배 장소들도 방문해 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여러 종교 교직자들의 설교를 주의 깊이 들었으며, 일부 성원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이 남자는 유독 여호와의 증인들만이 “진리를 발견하였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주목하게 되었다. 그는 현존하는 다양한 종교적 견해들을 고려할 때 증인들이 어떻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였다.

당신 자신은 종교와 관련하여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절대적 진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결정하는 일이 가능하기라도 한 일인가?

철학과 진리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인류가 절대적 진리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발전시켜 왔다. 당신은 철학이 “존재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노력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철학이 그 정도까지 설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웨덴의 저술가 알프 알베르그는 「철학사」(Filosofins Historia)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많은 철학적 문제들은 그 성격상 확답을 하기가 불가능하다. ·⁠·⁠· 많은 사람들은 [사물의 근본 원리와 관련된]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가 이 ·⁠·⁠· 부류에 속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철학을 통해 생명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 온 사람들은 흔히 불만족이나 번민에 빠지고 만다. 스웨덴의 저술가 군나르 아스펠린은 저서 「사조(思潮)와 신앙」(Tankelinjer och trosformer)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알 수 있는 한 가지 점은, 자연이 나비나 모기에게보다 인간에게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 우주와 우리의 내부 세계에서 상호 작용하는 그러한 자연의 힘 앞에서 우리는 무력한, 완전히 무력한 존재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진보에 믿음을 두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어 온 세기의 말엽에 문학에서 매우 자주 등장한 인생관이다.”

진리에 대한 계시가 필요한가?

생명에 관한 진리를 발견하는 일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며,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하느님의 계시가 어떤 형태로든 필요하다고 결론 내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흔히들 자연의 책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느 정도의 계시를 준다. 자연의 책이 생명의 기원에 대해 결정적인 세부점들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해도, 그것은 생명을 순전히 유물론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만족스러운 어떤 설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풀 한 포기는 실제로, 무너지는 구덩이 속에 있는 돌무더기를 지배하는 법칙과는 다른 법칙을 따른다. 자연 속에서 생물은 무생물과는 다른 방법으로 스스로 성장하고 조직한다. 따라서 법과 종교에 관한 저명한 학자의 이러한 결론은 근거가 있는 것이다. “세상의 창조 이래,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은] ·⁠·⁠· 그 만들어진 것들을 통하여 지각되고 명확히 보[입니다].”—로마 1:20.

하지만 이 모든 성장과 조직 이면에 누가 있는지를 알아내려면 또 다른 계시가 필요하다. 그러한 계시가 존재하리라고 기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상에 있는 생명체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 자기를 피조물들에게 밝히시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이 아니겠는가?

성서는 성서 자체가 그러한 계시라고 주장한다. 본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일 만한 타당한 근거들을 자주 제시해 왔으며, 생각 깊은 많은 사람들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이, 자기가 기록한 내용의 저자가 자기 자신이 아님을 명확히 밝히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성서에서 예언자들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과 같은 표현을 300회 이상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사야 37:33; 예레미야 2:2; 나훔 1:12) 대개 책이나 기사를 쓰는 남녀들이 저작물에 자기 이름을 내기를 몹시 열망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은 자기를 표면에 내세우지 않았으며, 어떤 경우에는 성서의 특정 부분을 누가 기록하였는지 알기가 어렵다.

의미 심장하게 느껴지는 성서의 또 한 가지 면은 성서의 내부적인 조화이다. 성서 66권이 1600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기록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실로 놀라운 점이다. 공공 도서관에 가서 16세기라는 기간에 걸쳐 기록된 66권의 종교 서적을 골랐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다음 이 낱개의 책들을 한 권으로 묶었다고 하자. 이렇게 묶어진 책이, 동일한 주제와 서로 조화되는 소식을 담고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게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기적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해 보라. 성서의 책들은 실제로 그처럼 동일한 주제를 담고 있으며 서로 확증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한 명의 뛰어난 인도자, 즉 저자가 틀림없이 계시며 그분이 성서 필자들의 기록을 지도하셨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하지만 성서가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다른 무엇보다도 잘 증명하는 것이 있다. 예언—미래에 분명히 발생할 일에 대해 미리 기록된 정보—이다. “그 날에 ·⁠·⁠· 할 것이라”나 “말일에 ·⁠·⁠· [할] 것이라”와 같은 표현은 성서에 나오는 독특한 표현이다. (이사야 2:2; 11:10, 11; 23:15; 에스겔 38:18; 호세아 2:21-23; 스가랴 13:2-4)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나타나시기 수백 년 전에,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예언들은 그분의 생애에 대한 세부점들을—그분의 탄생부터 사망까지를—알려 주었다. 합리적인 결론은 성서가 생명에 관한 진리를 알려 주는 근원이라는 결론뿐이다. 예수께서는 직접 “당신의 말씀은 진리입니다”라고 말씀하심으로 그 점을 확증하신다.—요한 17:17.

종교와 진리

성서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조차도 절대적 진리에는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교직자 존 S. 스퐁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 우리가 진리를 소유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견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절대적 진리에는 아무도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로마 가톨릭의 저술가 크리스토퍼 데릭은 진리를 찾는 일과 관련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되는 한 가지 이유를 이렇게 제시한다. “종교적 ‘진리’라고 말하는 것 자체는 알고 있다는 일종의 주장을 암시한다. ·⁠·⁠· 다른 누군가가 아마 잘못되었을 것이고 그 견해를 전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 깊은 사람이라면, 관련된 몇 가지 질문들을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진리에 도달할 수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예수의 사도 중 하나가 하느님의 뜻이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정확한 지식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진리”라는 단어가 믿음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100회 이상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리에 도달할 수가 없다면, 진리라는 단어가 그렇게 많이 언급된 이유가 무엇인가?—요한 8:32; 디모데 첫째 2:3, 4.

사실상, 예수께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지적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숭배가 하느님의 승인을 얻으려면 진리를 찾는 것이 요구됨을 보여 주셨다. 한 사마리아 여자가 참 숭배의 형태가 어떠한 것인지—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드리는 숭배인지 아니면 그리심 산에서 사마리아인들이 드리는 숭배인지—궁금해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말씀으로 대답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 숭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를 숭배할 [것입니다]. ·⁠·⁠· 사실, 아버지께서는 자기를 그와 같이 숭배할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숭배해야 합니다.”—요한 4:23, 24.

많은 사람들은 ‘성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무엇이 진리인지를 확실히 아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성서는 정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게 기록되었는가? 물론, 예언적이고 상징적인 어떤 표현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예를 들어,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다니엘에게 예언적인 표현이 많이 들어 있는 다니엘의 책이 “마지막 때”까지는 온전히 이해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니엘 12:9) 그리고 분명히 어떤 비유와 상징들은 해석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진리로 하느님을 숭배하는 데 꼭 필요한 기본적인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도덕관에 대해서는, 성서가 매우 솔직하다는 점이 명백하다. 성서는 상충되는 해석을 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에베소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하나”라고 일컬어지며, 그 말은 여러 가지 믿음이 있어서는 안 됨을 보여 준다. (에베소 4:4-6) 아마 당신은 이렇게 의아스러워할지 모른다. ‘성서를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다면,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들이 그토록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의 사도들이 사망한 직후, 참 그리스도교의 믿음으로부터 배교가 발전하던 당시로 거슬러올라가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밀과 잡초’

예수께서는 밀과 잡초의 비유에서 이러한 배교를 예언하셨다. 예수께서는 직접, “밀”은 참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고, “잡초”는 거짓, 즉 배교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셨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적”이 밀밭에 잡초를 뿌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씨 뿌리는 일은 사도들이 죽어 잠든 후에 시작되었다. 이 비유는 참 그리스도인과 거짓 그리스도인이 뒤섞여 구별하기 어려운 상태가 “사물의 제도의 종결”까지 계속될 것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여러 세기에 걸쳐,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적인 밭을 장악해 왔기 때문에 참 그리스도인을 식별하기가 모호해졌다. 하지만 “사물의 제도의 종결”이 되면 상황이 바뀔 것이었다. “사람의 아들”은 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분리하도록 “자기의 천사들을 보낼” 것이었다. 이것은 그 때가 되면 그리스도인 회중이 사도 시대와 같은 상태가 되어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임을 의미하였다.—마태 13:24-30, 36-43.

이사야와 미가의 예언은 둘 다 “말일에” 참 숭배자들을 그처럼 다시 모으는 일에 대해 예고한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한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라].” 사실을 명확히 직시하면, 이사야의 예언이 우리 시대에 성취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이사야 2:2, 3; 미가 4:1-3.

하지만 그리스도인 회중은 어떤 인간의 노력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모아들이는 일을 행하도록 “자기의 천사들을 보낼”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그분은 또한 이 일과 관련된 매우 특별한 목적을 이렇게 지적하셨다. “그 때에 의로운 사람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왕국에서 해와 같이 밝게 빛날 것입니다.” (마태 13:43) 이 말씀은 계몽시키는 활동, 즉 교육 활동이 그리스도인 회중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수행될 것임을 보여 준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오늘날 232개 나라와 지역에서 그들이 수행하는 교육 활동을 통해 이 예언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증인들의 신앙, 행동 표준 및 조직을 성서와 비교해 본다면, “편견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점들이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상태와 일치한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증인들은 자기들의 믿음이 “진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우월감에서 나온, 다소 주제넘은 표현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광범위하게 연구하였고, 종교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로 성서를 따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믿음을 “진리”라고 불렀다. (디모데 첫째 3:15; 베드로 둘째 2:2; 요한 둘째 1) 그들에게 진리였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진리일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가 직접 성서를 연구하여 그 점을 확인해 보도록 권한다. 독자 역시 성서를 연구함으로 다른 종교보다 뛰어난 종교를 발견한 기쁨만이 아니라 진리를 발견한 기쁨을 누리게 되기 바란다!

[5면 네모]

일부 철학 대 진리

실증주의: 종교적인 성격의 모든 개념들은 실증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생각이며, 철학의 목적은 실증되는 과학을 통합하여 하나의 총체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견해.

실존주의: 이 사상의 옹호자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참상에 매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따라서 비관적인 인생관을 갖게 되었다. 이 사상은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고뇌와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고찰을 강조한다. 실존주의자 저술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절대적으로 냉담한 우주 속에 버림받은 상태로 실존한다고 말하였다.

회의론: 관찰과 추리를 통해 존재에 대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어떤 지식에—어떤 진리에—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견지한다.

실용주의: 교육, 도덕 및 정치를 개선하는 일과 같은 인류의 유익과 관련하여 실용적일 때에만, 우리의 신념이 참다운 가치가 있다고 평한다. 진리 그 자체로는 아무 가치가 없다고 간주한다.

[2면 사진 자료 제공]

3면: 왼쪽에서 두 번째: Courtesy of The British Museum; 오른쪽: Sung Kyun Kwan University,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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