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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고라—고대 아테네의 심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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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고라—고대 아테네의 심장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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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테네에 광장이 생기다
  • 신전, 사당, 수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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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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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 아테네
    성경 통찰, 제2권
  • “하느님을 찾[고] 실제로 발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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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8
파98 7/15 25-28면

아고라—고대 아테네의 심장부

아테네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소란이 일었습니다! 그리스에 있는 그 도시의 아고라 즉 시장이 있는 광장은 항상 새로운 사상이 공개적으로 소개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매우 달랐습니다. 이 도시에 방금 도착한 유대인 남자가 있었는데, “타국의 신들을 널리 전하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그는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콧대 높은 에피쿠로스파 철학자들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스토아파 철학자들은 “이 떠버리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사실, 아테네의 아고라는 거의 모든 주제에 관해 공개 토론이 벌어지는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낯선 신을 소개하는 일은 도가 지나친 일이었습니다!—사도 17:17, 18.

사도 바울이 아테네의 아고라에서 처음으로 전파하기 시작했을 때, 아테네 사람들은 위와 같은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아테네의 문화는 개방적인 것 같은데, 아고라에서 그러한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특이한 일이었습니까?

아테네에 광장이 생기다

실제로 독특한 것은 아고라 자체와 아고라가 아테네 사람들의 종교 생활과 공공 생활에서 차지하고 있던 중추적인 역할이었습니다. 아테네의 아고라란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약 10헥타르 넓이의 완만하게 경사진 지역을 가리킵니다. 이 지역은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입법자인 솔론이 살고 있던 당시인 기원전 6세기 초에 그 도시의 광장 부지로 지정된 것 같습니다. 아테네에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도시 생활이 점점 중시되면서, 다음 세기 초에는 건축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고라는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좀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어 단어 아고라는 “모이다”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것은 아고라가 도시의 주된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사실과 잘 부합됩니다. 아고라는 사회 생활과 공공 생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도시의 행정부와 사법부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었고 장사와 거래가 이루어지는 주된 장소였을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연극을 상연하는 무대이자 운동 경기가 벌어지는 곳이었고, 지식인들이 토론을 벌이기 위해 애용하는 모임 장소였습니다.

아테네의 아고라에 남아 있는 신전, 주랑(柱廊), 조상(彫像), 기념비, 공공 건물 등을 둘러보고 싶지 않습니까? 현대 도시의 소음과 분주한 생활을 뒤로 하고, 정적이 감도는 대리석 건물 폐허와 석조상(石彫像), 잡초와 들풀이 무성한 허물어져 가는 건물 입구 사이사이로 난 자갈길을 따라 걸으면서 아고라의 과거를 되돌아봅시다.

신전, 사당, 수호신

방문객들에게는 여러 신에게 바쳐진 신전과 사당과 성역이 많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 모든 것은 아고라가 아크로폴리스에 버금가는 숭배의 중심지가 되게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고전기 아테네의 황금 시대에는 종교가 공공 생활의 모든 부면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아고라에는 정부 부처와 행정 기관의 “수호신”으로 지정된 다양한 신들을 위한 신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러한 건물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있었습니다. 아테나 여신은 헤파이스토스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 두 신은 모두 이 신전에서 예술과 공예의 수호신으로 숭배를 받았습니다. 이 신전 주위에서 발굴된 금속과 도기로 된 고대 유물을 조사해 본 결과, 이 신전은 불을 사용하도록 요구한 그리스의 예술의 신(神) 헤파이스토스에게 바쳐진 신전임이 밝혀졌습니다. 보존 상태가 훌륭한 이 신전이 그리스 정교회의 성(聖) 게오르기우스 교회로 바뀐 것은, 아마 기원 7세기경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교회로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아고라에도 수호신이 필요하였습니다. 제우스 아고라이오스가 바로 그 수호신이었습니다. 제우스는 웅변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신으로 생각되는데, 귀한 펜델리콘산(産) 대리석을 아름답게 깎아서 만든 제단은 제우스에게 바쳐진 것입니다. (비교 사도 14:11, 12) 그 제단 근처에는 신들의 어머니를 위한 제단이 있으며, 그 제단 옆으로는 영웅들을 위한 기념비들이 웅장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조금만 가면, 이오니아식으로 만든 작은 신전이 하나 있습니다. 지리학자인 파우사니아스는 이 신전이 시조신인 아폴론의 신전이라고 밝혔습니다. 아폴론을 시조신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대 그리스의 전설에 따르면, 아폴론은 이오니아족의 시조인 이온의 아버지였는데, 아테네 사람들도 이오니아족이었기 때문입니다.a 아폴론은 바로 이러한 자격으로 국가 행정 조직의 수호신 가운데 하나가 되었는데, 특히 그 도시에 있던 다양한 단체들과 관련해서 그러하였습니다.

이 곳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기원전 4세기 중반에 석회석으로 만든 작은 신전의 유적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 곳에서는 제우스와 아테나 파트리오스를 숭배했는데, 이 두 신은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종교 단체에서 신봉하는 주요 신이었습니다. 이 종교 단체들에 가입하는 것은 아테네 시민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 길 건너에 보니, 12신을 위한 제단의 유적이 있습니다.

근처에 있는 제우스 엘레우테리오스 주랑에서는 그리스의 최고 신에게 다시 한 번 영광을 돌리는데, 이번에는 자유와 구출의 신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 주랑, 즉 기둥을 여러 개 나란히 세운 복도는 인기 있는 산책로이자 모임 장소였습니다.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 주랑에서 친구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 주랑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함께 산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테네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은 전사들의 방패와 같은, 이 주랑을 장식하기 위해 봉헌하거나 봉납한 물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물건들은 이 도시를 적들의 손에서 구출한 일이나 자유를 보존한 일과 직접 관련이 있었습니다.

파나테나이아로(路)

아고라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넓은 자갈길을, 파나테나이아로(路)라고 부릅니다. 이 길의 이름과 특징은 아테네의 국가적인 축제인 파나테나이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축제 중에는 행렬 가옥(도시의 출입문 바로 옆에 있음)에서부터 아크로폴리스까지 이 길을 따라 아테나 여신의 겉옷을 운반하였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 즉 벽면에 있는 띠 모양의 장식물에는 기병대, 경주용 전차(戰車), 제물로 바칠 소와 양, 제물을 바칠 때 사용할 도구를 나르는 젊은 남녀 등이 묘사되어 있어, 이 축제 행렬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행렬은 아테네 시민들과 방문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아고라를 설계할 때 구경하기에 편리하도록 충분한 시설을 갖춰 놓았습니다. 예를 들면, 앞면에 테라스와 계단이 있는 주랑들을 기술적으로 배치하여, 그 길로 지나가는 행렬을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한 주랑들의 앞면에는 계단이 많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서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우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토록 많은 신전과 조상과 기념비들이 한데 모여 있었으므로, 사도 바울이 “그 도시가 우상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속의 영이 격분”하게 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사도 17:16) 바울은 아고라에 들어가서 본 것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임이 분명합니다. 헤르메스 신의 남근상은 어찌나 많았던지, 그 남근상들을 보관하기 위해 헤르메스 주랑이라고 알려진 주랑식 현관 건물 전체가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그 외에도 헤르메스를 묘사한 그림에서 그 신이 입고 있는 옷에는 다산(多産)과 생명의 상징인 만자형 무늬나 역만자형 무늬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또한, 성애(性愛)의 여신 비너스 게네트릭스의 신상과, 십자가 모양의 남근상을 여러 개 지니고 있는 디오니소스의 신상도 있었습니다. 아고라의 경계에는 돌과 “성스러운” 물을 담아 놓는 물통을 두어서 아고라의 “신성함”을 표시했는데, 아고라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의식을 위해 그 물로 몸을 정결케 하였습니다.

종교적인 분위기가 매우 강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바울의 신변이 왜 그토록 위험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타국의 신들을 널리 전하는 사람”으로 의심을 받았는데, 그 당시 법에서는 ‘아무도 별개의 신 즉 새로운 신을 신봉해서는 안 되며, 공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한 낯선 신을 개인적으로 숭배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바울을 심문하기 위해 아레오바고로 데려간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사도 17:18, 19.

행정의 중심지

톨로스라고 하는 원형 건물에는 아테네 정부의 청사가 있었습니다. 도시의 여러 기관의 기관장들은 밤에 이 건물에서 잠을 자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책임을 맡은 관리들을 항상 만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한 톨로스에는 표준 도량형 세트도 한 벌 보관해 두었습니다. 근처에는 행정부의 여러 부서를 위한 시설이 있었습니다. 회의장은 톨로스 북서쪽에 있는 언덕을 깎아서 만든 평평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회의에 참석하는 500명 가운데 속하는 사람들이 모임을 열어, 위원회 활동을 하고 민회에 상정할 법안을 준비하였습니다.

도시의 또 다른 중요한 건물은 왕립 주랑이었습니다. 이 곳은 아테네의 왕실 아르콘, 즉 아테네의 세 명의 주요 집정관 가운데 한 사람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는 이 곳에서 종교 문제나 법적 문제와 관련된 많은 행정적인 책임을 수행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불경죄로 고발되어 출두하도록 요구된 곳도 바로 이 곳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 건물 맞은편에 있는 건물의 벽에는 아테네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법률을 새겨 놓았습니다. 아르콘들 즉 주요 집정관들은 매년 이 건물 앞에 놓여 있는 돌 위에 서서 집정관 선서를 하였습니다.

아탈로스 주랑

아고라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건물은 아탈로스 주랑입니다. 페르가몬의 왕(기원전 2세기) 아탈로스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여러 나라의 몇몇 왕족들처럼 젊었을 때 아테네에 있는 여러 학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왕위에 오르자 그는 아탈로스 주랑이라는 이 웅장한 선물을 자신의 모교가 있는 이 도시에 기증하였습니다.

아탈로스 주랑의 주된 기능은 비공식적인 교제나 교류를 할 때 비바람을 맞지 않고 거닐 수 있는 우아한 산책로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랑의 바닥과 테라스는 지나가는 행렬을 구경하기에도 아주 좋은 곳이었지만, 산책로로도 인기가 있어서 분명히 쇼핑 센터를 조성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을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이 건물이 수입원이 되도록 상인들에게 점포를 임대했을 것입니다.

원래 상태로 복원된 아탈로스 주랑은 기하학적인 설계의 매우 훌륭한 예가 됩니다. 건물의 전체적인 비율, 보기 좋게 배열된 아래층과 위층의 서로 다른 크기의 기둥들, 흥미를 끄는 빛과 그림자의 조화, 호화롭고 아름다운 건축 자재, 이 모든 것 때문에 아탈로스 주랑은 독특한 모습을 지니게 됩니다. 단조롭게 보이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는데, 특히 기둥머리를 세 가지 양식—도리스식, 이오니아식, 이집트식—으로 장식한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

아테네에서 열린 많은 문화 행사의 무대 역할을 한 건물은, 음악당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사위인 비프사니우스 아그리파가 기증한 건물이었습니다. 무대 앞자리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대리석을 깔았습니다. 1000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건물은 폭이 약 25미터나 되는데도 원래는 내부에 기둥을 전혀 설치하지 않고 지붕을 얹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고대 세계에 알려져 있던 지붕 얹는 방식 가운데서는 상당히 대담한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제공된 대부분의 오락은, 높은 도덕 표준을 가지고 있던 참 그리스도인들이 즐기기에는 의심스러운 것들이었을 것입니다.—에베소 5:3-5.

고대에 지식욕이 강했던 사람들이라면 판타이노스 도서관에 갔을 것입니다. 이 도서관의 벽면은 책장으로 꽉 차 있었는데, 이러한 책장에는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손으로 글씨를 써서 만든 두루마리들을 보관하였습니다. 이 도서관에서 가장 큰 방은 서쪽을 향해 있었으며, 그 방에서는 한 줄로 늘어선 기둥들 사이로 열주식(列柱式) 안마당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안마당은 산책을 하거나 글을 읽거나 사색을 하기에 좋은 장소였습니다. 이 도서관의 규칙 가운데 두 가지가 새겨져 있는 글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떤 책도 도서관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도서관] 개방 시간은 1시부터 6시까지”라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의 아고라

최근에 아고라는 미국 고전학 연구소에 의해 거의 전부 발굴되었습니다. 우뚝 솟은 아크로폴리스의 그늘 아래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는 아고라는, 고대 아테네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아고라와 아크로폴리스에서 여유 있게 걸어도 몇 발짝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 모나스티라키 벼룩 시장은, 또 다른 매혹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이 시장에 가면 그리스의 옛 풍습과 중동 지방의 동양적인 시장 분위기가 어우러진 신기하면서도 흥미있는 구경거리들이 있으며, 저렴한 값에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방문객들은 그 곳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증인들은 그 곳에서 1900여 년 전에 사도 바울이 했던 바로 그 일, 즉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을 공개적으로 전파하는 일을 즐겁게 수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각주]

a 이오니아라는 이름은 야벳의 아들이자 노아의 손자인 야완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창세 10:1, 2, 4, 5.

[28면 네모]

아테네의 상업

아고라는 아테네의 지식층 사회의 중심지이자 도시 생활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그 도시에서 가장 큰 시장이기도 하였다. 아테네는 아테네의 경화(硬貨)가 지닌 가치 때문에 그리고 집정관들의 청렴 결백함 때문에 유명해진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집정관들에게는 모든 상거래가 정직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게 할 권한이 있었다.

아테네는 포도주, 올리브유, 꿀, 대리석 그리고 도자기나 가공한 금속과 같은 공산품을 수출하였다. 그 대신, 주로 밀을 수입하였다. 아티카(아테네 주변 지역)에서는 그 곳 주민들이 먹고 사는 데 충분할 만큼 식량이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역 기준이 엄격하였다. 피레에프스(아테네의 항구)에 있는 시장에는 도시와 군대에 공급할 신선한 식품이 항상 충분히 갖춰져 있어야 하였다. 그리고 상인들은 공급이 달리는 때에 비싸게 팔기 위해 사재기를 해서는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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