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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98 11/1 13-18면
  •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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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가십시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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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8
파98 11/1 13-18면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가십시오!

“사랑하는 이들이여, ·⁠·⁠·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가십시오.”—빌립보 2:12.

1, 2. 널리 퍼져 있는 무슨 개념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결국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되었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가?” 최근에 이러한 질문이 한 대중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였습니다. 이 표제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와 있었습니다. “최신 연구에 의하면, 성품, 기질, 심지어 살면서 무엇을 선택하게 될 것인지까지도, 대부분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주장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2 그런가 하면 부모의 잘못된 양육 방법이나 교사들의 형편없는 교육 방식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불행한 삶을 살도록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부모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자신에게 있는 가장 나쁜 기질대로 행동하며 여호와께 불충실하게 되도록—간단히 말해서 나쁜 선택을 하게 되도록—정해져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것이 성서에서 가르치는 점입니까? 성서에서 그와 같은 교리, 즉 예정설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종교인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교리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오래 전에 당신의 생애에 일어날 모든 일을 일일이 예정하셨다고 합니다.

3. 우리의 장래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우리의 능력과 관련하여, 성서에는 무슨 격려적인 내용이 들어 있습니까?

3 서로 다른 이 모든 개념에는 한 가지 공통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 다시 말해서 당신이 결국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를 스스로 통제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낙담하게 하는 생각이며, 낙담은 문제를 가중시킬 뿐입니다. 잠언 24:10(「신세」 참조)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환난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너의 힘이 부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도록 권고받고 있습니다. 즉 성서에 의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빌립보 2:12) 우리는 어떻게 성경의 이러한 격려적인 가르침에 대한 확신을 강화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 ‘건축’하는 일

4. 고린도 첫째 3:10-15에서 내화 재료로 건축하는 일에 관해 언급하기는 하지만, 이 내용이 무엇을 시사하는 것은 아닙니까?

4 고린도 첫째 3:10-15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예를 고려해 보십시오. 거기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건축 활동에 대해 말하는데, 그의 예에 나오는 원칙은 회중 안팎에서 수행하는 봉사의 직무에 모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제자 한 사람이 결국 여호와를 섬기기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라 계속 행하는 것의 여부는 그를 가르치고 훈련시킨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가르치는 사람이 가능한 한 최상의 건축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앞 기사에서 알게 된 것처럼, 바울은 연구생이나 제자가 이 문제에 있어서 선택의 자유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바울의 예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 우리 자신을 세우는 일 즉 건축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닙니다. 그 점은 분명한데, 바울이 건축자 자신은 구원을 받지만 날림 공사를 하듯 건축한 일은 파괴된다고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성서에서는 때때로 그와 동일한 수사적 표현을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하는 일에 적용시키기도 합니다.

5.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자신 안에 ‘건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5 예를 들어, 유다 20, 21의 이러한 말씀을 고려해 보십시오. “여러분 사랑하는 이들이여, 여러분의 가장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세우고 성령으로 기도하여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십시오.” 유다가 여기에서 사용한 ‘세우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바울이 고린도 첫째 3장에서 ‘짓다, 건축하다’로 사용한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하지만 유다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우리가 자신의 믿음의 기초 위에 우리 자신을 세워야 즉 건축해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누가는 집의 기초를 바위 위에 놓은 사람에 관한 예수의 예를 기록하면서, 바울이 그리스도인 건축에 관한 예에서 사용하는 “기초”에 해당하는 같은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합니다. (누가 6:48, 49) 더욱이 바울은 “기초” 위에 세워 나간다는 개념을 사용하여,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으로 진보할 것을 권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세워야 한다고 즉 우리 자신 안에 ‘건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에베소 3:15-19; 골로새 1:23; 2:7.

6. (ㄱ) 그리스도인 제자 한사람 한사람이 어떻게 공동 건축 작업의 결과인지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ㄴ) 제자 개개인에게는 무슨 책임이 있습니까?

6 그리스도인을 건축하는 일은 혼자서 하는 작업입니까? 당신이 집을 한 채 짓기로 결정하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당신은 설계도를 작성하기 위해 건축사를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많은 일을 직접 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함께 일하면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 줄 건축업자를 고용해야 할 것입니다. 건축업자가 튼튼한 기초를 놓고, 설계도를 이해하도록 도와 주고, 가장 질이 좋은 자재를 구입하도록 제안하고, 실제 건축하는 일에 대해서도 많은 점을 가르쳐 주기까지 한다면, 필시 당신은 그가 일을 잘해 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의 조언을 무시하고 질이 나쁜 싸구려 자재를 구입하고 심지어 건축사의 설계와 다르게 짓기까지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집이 무너질 경우, 분명히 당신은 건축업자나 건축사를 탓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 제자 한사람 한사람은 공동 건축 작업의 결과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유능한 건축사이십니다. 그분은 충실한 그리스도인을 지원하시며, 그러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동료 일꾼”으로서 연구생을 가르치고 세워 줍니다. (고린도 첫째 3:9) 그러나 연구생 역시 관련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는 자신의 인생 행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로마 14:12) 그가 훌륭한 그리스도인 특성들을 갖기 원한다면, 그러한 특성들을 획득하기 위해, 다시 말해서 그러한 특성들을 자신 안에 건축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베드로 둘째 1:5-8.

7.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무엇이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까?

7 그렇다면 유전 인자나 환경이나 우리를 가르치는 사람의 특성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런 말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러한 요소들 하나하나가 중요하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죄로 향하는 좋지 않은 많은 경향들은 타고난 것이며, 그러한 경향과 싸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시 51:5; 로마 5:12; 7:21-23) 부모의 훈련과 가정 환경은 청소년에게—좋게든 나쁘게든—참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잠언 22:6; 골로새 3:21) 예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쳐 왔기 때문에 그들을 정죄하셨습니다. (마태 23:13, 15) 오늘날에도 그러한 요소들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는 고통스럽게 보낸 유년 시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친절과 감정 이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부모의 잘못을 반복하거나 불충실하게 되도록 결코 예정되어 있지 않다는 성서의 소식으로부터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고대 유다의 몇몇 왕들의 예가 어떻게 그 점을 잘 예시해 주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유다의 왕들—그들은 스스로 선택하였다

8. 요담은 아버지의 무슨 나쁜 본을 보았으며, 하지만 그는 어떤 선택을 하였습니까?

8 웃시야는 16세라는 어린 나이로 유다의 왕이 되어 52년간 통치하였습니다. 통치 기간의 많은 부분에 걸쳐 그는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열왕 하 15:3) 여호와께서는 그가 일련의 전쟁에서 눈부신 승리를 거두도록 해주심으로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성공 때문에 웃시야는 자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교만해져서, 제사장에게 맡겨진 임무인 성전 제단에서 분향하는 일을 하려고 함으로 여호와께 반역적인 행동을 하였습니다. 웃시야는 책망을 받았으나, 오히려 그에 대한 반응으로 분노를 나타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나병에 걸려서 여생을 격리된 채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역대 하 26:16-23) 그의 아들 요담은 이 모든 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젊은이였던 요담은 아버지에게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었고 여호와의 시정에 대해 분개할 수도 있었습니다. 일반 백성이 그릇된 종교 의식들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열왕 하 15:4) 그러나 요담은 스스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역대 하 27:2.

9. 아하스가 받은 좋은 영향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었으며, 그러나 그는 결국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9 요담은 16년 동안 통치하였으며, 그동안 내내 여호와께 충실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아들 아하스에게는 충실한 아버지의 훌륭한 모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아하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아하스는 충실한 예언자 이사야와 호세아와 미가가 그 나라에서 활동하면서 예언하던 시대에 사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쁜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바알의 형상을 만들었고 그것들을 숭배하였으며, 심지어 자신의 친아들들을 불살라 이교 신들에게 희생으로 바치기까지 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있었는데도, 그는 왕으로서 또한 하느님의 종으로서 참담하게 실패하였습니다.—역대 하 28:1-4.

10. 아하스는 어떤 아버지였으며, 하지만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어떤 선택을 하였습니까?

10 순결한 숭배의 관점에서 볼 때, 아하스보다 더 나쁜 아버지를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직접 자신의 아버지를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하스가 바알에게 희생으로 바치기 위해 죽인 어린 아들들은 필시 히스기야의 친형제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끔찍한 배경 때문에 히스기야는 여호와께 불충실한 생애를 보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까? 그와는 반대로, 히스기야는 유다의 몇 안 되는 참으로 위대한 왕들 중 한 사람—충실하고 현명하며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열왕 하 18:3-7) 사실, 히스기야가 아직 젊은 왕자였을 때 영감을 받아 시편 119편을 지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히스기야가 다음과 같이 쓴 이유를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괴로와 잠 못 이루[옵니다].” (시 119:28, 「공동번역」) 극심한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말씀이 자신의 삶을 인도하게 하였습니다. 시편 119:105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렇습니다. 히스기야는 스스로 선택을 하였고, 그것도 올바른 선택을 하였습니다.

11. (ㄱ) 아버지의 좋은 영향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는 얼마나 극심하게 여호와께 반역하였습니까? (ㄴ) 므낫세는 말년에 어떤 선택을 하였으며,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1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유다의 가장 선한 왕 중 한 사람에게서 가장 악한 왕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우상 숭배와 영매술과 무차별적인 폭력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널리 퍼뜨렸습니다. 기록은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 백성에게 [“계속”] 이르셨”다고 알려 주는데, 아마도 그분은 예언자들을 통해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역대 하 33:10, 「신세」 참조) 유대인 전통에 의하면, 므낫세는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이사야를 톱으로 동강내어 죽였다고 합니다. (비교 히브리 11:37)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므낫세는 하느님의 경고를 한 번도 듣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자기 할아버지 아하스가 했던 것처럼, 친아들들을 산 채로 불살라 희생으로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 악한 사람은 말년에 호된 시련을 만나 회개하였고 자신의 행로를 바꾸었습니다. (역대 하 33:1-6, 11-20) 그의 예는 우리에게 최악의 선택을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구속(救贖)받는 것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한 사람도 변화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12. 여호와를 섬기는 일과 관련하여, 아몬과 그의 아들 요시야는 서로 상반되는 어떤 선택을 하였습니까?

12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아버지가 회개한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릇된 선택을 하였습니다. 아몬은 사실상 “더욱 범죄”하다가 결국은 암살을 당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요시야는 참으로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대조를 이룹니다. 요시야는 할아버지에게 있었던 일로부터 배우는 쪽을 택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겨우 여덟 살에 통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불과 16세가 되었을 때부터 여호와를 찾기 시작하여, 그 후로 모범이 되는 충실한 왕임을 증명하였습니다. (역대 하 33:20-34:5) 그는 선택을 하였고, 그것도 올바른 선택을 하였습니다.

13. (ㄱ) 우리는 유다 왕들을 살펴봄으로써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ㄴ) 부모의 훈련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13 유다의 일곱 왕을 이처럼 간략하게 검토해 본 것으로도 한 가지 강력한 교훈점을 배우게 됩니다. 몇몇 경우에는 가장 악한 왕들에게 가장 좋은 아들들이 있었으며, 그와는 반대로 가장 선한 왕들에게 가장 나쁜 아들들이 있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비교 전도 2:18-21) 하지만 이러한 예들 때문에 부모의 훈련의 중요성이 약화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의 길을 따라 자녀를 훈련시키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여호와의 충실한 종이 될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신명 6:6, 7) 그러나 어떤 자녀들은 충실한 부모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그릇된 행로를 따르기로 선택합니다. 그런가 하면 부모가 더없이 나쁜 영향을 미치는데도, 여호와를 사랑하고 섬기기로 선택하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베푸시는 축복을 통해 성공적인 삶을 영위해 나갑니다. 당신은 때때로 ‘나는 과연 어느 쪽이 될 것인가?’ 하고 궁금해합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가능함을 친히 확신시켜 주시는 여호와의 말씀 얼마를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믿으신다!

14.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한계를 이해하고 계심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4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잠언 15:3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다윗 왕은 여호와에 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 139: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고투하고 있는 좋지 못한 경향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는데, 당신이 그러한 경향을 유전받았든 아니면 당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영향력들 때문에 얻게 되었든 그에 대해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그러한 경향들이 당신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 자신보다도 당신의 한계를 더 잘 이해하고 계십니다. 게다가 그분은 자비로우십니다. 그분은 결코 우리가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우리에게 기대하시지 않습니다.—시 103:13, 14.

15. (ㄱ) 다른 사람들이 고의로 저지른 잘못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근원이 되는 한 가지 점은 무엇입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무슨 책임을 부여하심으로 우리 개개인을 존중해 주십니까?

15 한편,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가망 없는 환경의 희생자라고 여기시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좋지 못한 경험을 하였다 하더라도, 고의로 저지르는 그러한 해로운 행위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라는 확신을 통해 우리는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 11:5; 로마 12:19)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외면하고 뻔히 알면서 그릇된 선택을 한다면, 그런 경우에도 그분이 우리가 책임을 면하게 해주실 것입니까?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각자 자기 자신의 짐을 질 것[입니다].” (갈라디아 6:5) 여호와께서는 지성 있는 피조물들에게 옳은 일을 행하고 그분을 섬길 책임을 부여하심으로 그들 개개인을 존중해 주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신명 30:19) 여호와께서는 우리 역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 점을 알 수 있습니까?

16.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데 성공할 수 있습니까?

16 사도 바울이 쓴 이러한 말에 유의하십시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여, ·⁠·⁠·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가십시오. 하느님은 자기의 기뻐하시는 바를 위하여, 여러분이 의욕을 품고 활동하도록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빌립보 2:12, 13) 여기에서 ‘이루어 나가다’라고 번역된 원래 그리스어 단어는 어떤 일을 완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실패하거나 탈락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느님은 그분이 우리에게 하라고 주신 일—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을 우리가 완수할 수 있다고 분명히 확신하고 계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그러한 말을 기록하도록 영감을 주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면, ‘두려워하고 떨’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여호와께서는 ‘우리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의 성령이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서 작용하여 우리가 “의욕을 품고 활동하도록” 돕습니다. 그러한 사랑 넘친 도움이 있는데,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라 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럴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누가 11:13.

17.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으며,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어떻게 도와 주십니까?

17 우리는 극복해야 할 장애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나쁜 습관들과, 우리의 사고 방식을 비뚤어지게 할 수 있는 해로운 영향력들이 평생에 걸쳐 지속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의 영의 도움으로 우리는 그러한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바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은 “강하게 방비된 것들”까지도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합니다. (고린도 둘째 10:4) 사실상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철저히 변화시키도록 도와 주실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에게 “옛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참된 의와 충성 가운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성을 입”으라고 강력히 권합니다. (에베소 4:22-24) 여호와의 영이 우리가 그러한 변화를 하도록 실제로 도와 줄 수 있습니까? 분명히 도와 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우리에게서 열매를—우리 모두가 기르기를 원하는 아름답고 소중한 특성들을—산출합니다. 그러한 열매 중 으뜸 가는 것은 사랑입니다.—갈라디아 5:22, 23.

18. 이성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무슨 선택을 할 수 있는 온전한 능력이 있으며, 이 점은 우리가 무슨 결심을 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18 바로 여기에 참으로 중요하고 자유를 주는 진리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시는 능력에 있어서 한계가 없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창세 1:26; 요한 첫째 4:8)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사랑하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이전에 살던 생활 방식이나 살면서 얻게 된 결점이나 그릇된 일을 행하려는 유전받은 경향이 아니라—바로 그 사랑이 우리의 미래를 여는 열쇠입니다. 여호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에덴에 충실하게 계속 거하기 위해 아담과 하와에게 필요했던 특성입니다. 그러한 사랑은 아마겟돈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끝난 후에 있을 최종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특성이기도 합니다. (계시 7:14; 20:5, 7-10)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모두 다 그러한 사랑을 기를 수 있습니다. (마태 22:37; 고린도 첫째 13:13) 여호와를 사랑하겠다고, 그리고 그러한 사랑 위에 영원히 세워 나가겠다고 즉 건축해 나가겠다고 결심하도록 합시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널리 퍼져 있는 무슨 개념들이 개인의 책임과 관련된 성서의 격려적인 가르침과 상충됩니까?

□ 그리스도인 각자는 자기 자신 안에 어떤 건축하는 일을 해야 합니까?

□ 유다 왕들의 예는 개개인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분명히 알려 줍니까?

□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우리 주변으로부터 해로운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어떻게 확신시켜 주십니까?

[15면 삽화]

당신의 장래는 유전 인자에 달려 있는가?

[17면 삽화]

아버지가 나쁜 본을 남겼는데도 불구하고, 요시야 왕은 하느님을 섬기기로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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