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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라—격려의 근원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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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9
파99 2/15 26-29면

실라—격려의 근원

그리스도교 역사 초기부터 충실한 여행하는 감독자들의 활동은 하느님의 백성의 회중들을 격려하는 일과 좋은 소식을 땅의 가장 먼 곳까지 알리는 일에서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가장 초창기에 임명된 감독자들 중에는 예언자이며 예루살렘 회중의 지도적인 성원인 실라가 있었습니다. 그는 전파 활동의 주요 발전 과정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유럽 구역에서 최초로 복음을 전파한 선교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실라가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특히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해 준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의 성품의 어떤 특성들을 본받는다면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까?

할례 문제

기원 49년경에,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는 할례 문제가 일어나자, 예루살렘의 통치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에게 명확한 지침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루아노라고도 하는 실라가 성서 기록에 등장합니다. 실라는 그 결정을 내린 사람 중 한 명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당시 “사도들과 연로자들”의 특사로 선택되어 그들의 결정을 ‘안티오크와 시리아와 실리시아에 있는 형제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안티오크에서, 실라와 유다(바르사바)는 바울과 바르나바와 함께 자신들이 가져간 편지를 전해 주었고, 필시 예루살렘의 모임에서 있었던 일과 내려진 결정과 그 편지의 내용을 구두로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많은 강연으로 형제들을 격려하고 강하게 하”였습니다. 행복한 결과가 있었는데, 안티오크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하였”던 것입니다.—사도 15:1-32.

그처럼 실라는 이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맡은 임명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티오크 회중에서 결정 사항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사도들이 편지에 쓴 내용을 설명할 매우 지혜롭고 재치 있는 사람이 필요하였다”고 한 주석가는 지적합니다. 실라가 이처럼 세심한 주의를 요하는 임명을 수행할 사람으로 선택된 것으로 보아 그가 어떤 사람이었을 것인지를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그는 통치체의 지시를 충실하게 전달할 것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회중이 논쟁으로 인해 위기에 처할 때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지혜로운 감독자였음이 분명합니다.

바울과 함께 여행하다

실라가 그 임무를 수행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요한 마가를 두고 바르나바와 바울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기자 바울은 당시 안티오크에 있던 실라를 택하여 여행을 하였는데, 처음 의도는 자신이 첫 번째 선교 여행 중에 전파하였던 도시들을 다시 방문하려는 것이었습니다.—사도 15:36-41.

실라를 택한 데는, 그가 이방인들과 관련된 임무에 대해서 보인 적극적인 태도와, 그가 예언자이자 통치체의 대변자로서 시리아와 실리시아에 있는 믿는 사람들에게 통치체의 결정을 전할 때에 제시할 수 있었던 권위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매우 훌륭하였습니다. 성서 사도들의 활동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도시들을 두루 여행하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연로자들에 의해 결정된 법령들을 그 곳 사람들에게 전하여 지키게 하였다. 그리하여 회중들은 참으로 믿음 안에서 계속 굳건해지고 그 수가 날마다 증가하였다.”—사도 16:4, 5.

그 선교인들이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그들이 계획한 여정을 성령이 변경하는 일이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사도 16:6, 7) 리스트라에서는 디모데가 중도에 일행에 가담하는데, 그는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자신에 관한 “예언”을 받은 후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디모데 첫째 1:18; 4:14) 바울 역시 예언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었는데, 바울이 받은 환상을 통해 그 일행은 배를 타고 유럽의 마케도니아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사도 16:9, 10.

매를 맞고 투옥되다

마케도니아 “지역의 중심 도시”인 빌립보에서 실라는 잊지 못할 시련을 겪었습니다. 바울이 어떤 하녀에게서 점치는 영을 쫓아내자, 그 하녀의 주인들은 자신들의 수입원을 잃게 된 것을 보고는 실라와 바울을 도시의 행정관들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 결과, 이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행악자로 지목되었고 겉옷이 찢겨 벗겨진 다음 장터에서 매를 맞는 수치를 당하였습니다.—사도 16:12, 16-22.

그러한 매질은 인간의 인내심을 한계점까지 몰고 가는 끔찍한 형벌이었을 뿐만 아니라 바울과 실라의 경우에는 불법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로마의 법에서는 로마 시민에게 매질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였습니다. 바울에게는 로마 시민권이 있었고, 필시 실라도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많은 구타’를 당한 후에 감옥에 집어넣어져 발에 차꼬가 채워졌습니다. 그러한 차꼬는 “죄수의 다리를 원하는 만큼 넓게 벌릴 수 있는 잔혹한 도구로서, 그런 방법으로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다”고 구스타프 스탈린은 설명합니다. 그러나 한밤중에, 상처투성이가 된 등 때문에 틀림없이 고통스러웠을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며 노래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사도 16:23-25.

이 사실은 실라의 성품에 관하여 또 다른 점을 알려 줍니다. 그는 자신과 바울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뻐하였습니다. (마태 5:11, 12; 24:9) 필시 그와 동일한 영이 실라와 그의 동료들이 이전에 안티오크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 회중을 격려하고 강화시키는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이며,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기쁨을 주었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의 기쁨은, 지진이 나서 그들이 기적에 의해 감옥에서 풀려나고 자살하려는 간수와 그의 가족이 하느님께 믿음을 나타내도록 도울 수 있었을 때 분명히 더욱 커졌을 것입니다.—사도 16:26-34.

바울과 실라 두 사람 모두 매질과 투옥 때문에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놓아 주라는 전갈이 전해지자, 바울과 실라는 행정관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수치스러워하면서 몰래 빌립보를 떠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그 거만하고 제멋대로인 관리들에게 역공을 가하였습니다. “그들이 로마인인 우리를 유죄 판결도 내리지 않고 공개적으로 매질하여 감옥에 집어넣더니, 이제는 우리를 비밀리에 내보내겠다는 것입니까?”라고 바울은 질문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게 하십시오.” 그 일의 결과를 두려워한 행정관들은 이 두 사람에게 그 도시를 떠나 달라고 간청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사도 16:35-39.

바울과 실라는 이처럼 당국자들의 정신에 자신들이 가진 로마인의 권리에 대해 깊은 인상을 남긴 후 행정관들의 요청에 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떠나기 전에 벗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실라와 그의 짝은 그때까지 모든 전파 여행에서 그렇게 한 것처럼 다시 한 번 형제들을 “격려”한 다음 떠났습니다.—사도 16:40.

마케도니아에서 바빌론으로

바울과 실라와 동료들은 하마터면 불쾌한 경험이 될 수도 있었던 일 때문에 사기가 꺾이지 않고 새로운 선교 밭을 향하여 계속 나아갔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그들은 또다시 어려움에 직면하였습니다. 세 안식일 기간에 걸친 바울의 봉사가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질투를 느낀 반대자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선교인들은 지혜롭게 밤에 그 도시를 떠나야 하였습니다. 그들은 베레아로 갔습니다. 그 도시에서 바울과 동료들이 달성한 결과에 대해 들은 반대자들은 데살로니가에서 그곳까지 왔습니다. 바울 혼자만 떠나고, 실라와 디모데는 베레아에 남아서 새로 관심을 나타낸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사도 17:1-15) 실라와 디모데는 고린도에서 바울과 재회하였는데, 좋은 소식과 함께 아마도 마케도니아의 충실한 벗들이 보낸 선물을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궁핍했던 그 사도는 그 덕분에 그동안 해 오던 세속 일을 그만둘 수 있었을 것이며, 다시 활기 있게 전 시간 전파 활동을 수행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18:1-5; 고린도 둘째 11:9) 고린도에서 실라와 디모데는 또한 복음 전파자들이며 바울의 동료들이었던 것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활동은 분명히 이 도시에서도 둔화되지 않았습니다.—고린도 둘째 1:19.

그 시기에 고린도에서 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낸 두 개의 편지 전체에서 “우리”라는 대명사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실라와 디모데가 그 편지를 쓰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실라가 편지를 쓰는 일에 관여했다는 생각은 주로 베드로가 자신의 편지 중 하나에 관해 말한 바에 근거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첫 번째 편지를 ‘충실한 형제, 실루아노를 통하여’ 바빌론에서 썼다고 말합니다. (베드로 첫째 5:12, 13) 이것은 단지 실루아노가 그 편지를 전달한 사람임을 의미할 수 있지만, 베드로의 두 편지 사이에 나타나는 문체상의 차이로 보아 베드로가 첫 번째 편지는 실라가 대필하게 하고 두 번째 편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실라가 받은 다양한 재능 중 하나이자 신권적 특권 중 하나는 아마 서기로 일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본받아야 할 모범

실라가 한 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그에 대한 기록은 감명을 줍니다. 그는 오늘날의 선교인과 여행하는 감독자들에게 뛰어난 모범이 됩니다. 그는 물질적 이득이나 명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상당한 희생을 치르면서 비이기적으로 매우 먼 거리를 여행하였습니다. 그의 목표는 지혜로우면서도 재치 있는 교훈과 잘 준비된 따뜻한 강연, 그에 더하여 야외 봉사에서 나타내는 자신의 열심을 통해서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여호와의 조직된 백성 가운데서 맡은 역할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와 같이 적극적이 되려고 노력한다면—심지어 역경에 직면해서도 그렇게 한다면—당신도 동료 신자들에게 격려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29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바울의 두 번째 선교 여행

대해

안티오크

데르베

리스트라

이코니움

트로아스

빌립보

암피폴리스

데살로니가

베레아

아테네

고린도

에베소

예루살렘

카이사레아

[자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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