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을 전함—융통성을 나타냄으로
1 융통성을 나타낸다 함은 “여러 가지 주제, 분야, 혹은 기술들을 망라하는 것, 한 가지 일에서 다른 것으로 용이하게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12월과 그 후 계속해서 왕국과 왕국의 축복을 말하는 일에 이 특성을 더 온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가?
2 예를 들어, 많은 숙련된 음악가들은 매우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여 듣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다. 이러한 음악가들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에 있어서 융통성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 시편 필자는 시편 146:2에서 이렇게 선언하였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음악을 연주하리로다”, 바잉튼 역].”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듣기에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해 주셨는데, 그것은 누구도 악기로 연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공하는 일에 융통성을 발전시켜 왔다면, 우리는 좋은 소식을 능률적으로 전하여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 우리가 융통성을 나타내면 나타낼수록, 우리가 양 같은 사람들의 마음에 이를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진다.
3 우리는 최근에 야외 봉사를 시작한 사람이 여러 해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만큼 융통성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새로운 전도인은 그가 직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처하는 면에서 제한되어 있거나, 매우 소심할지 모른다. 경험과 사랑스러운 도움을 통해서, 그는 호별에서 직면하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곧 배우게 될 것이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1, 2년 사이에 호별 방문에서는 물론, 재방문과 성서 연구에서도 능숙해질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은 노력과 흔히 어느 정도의 도움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4 한 가지 성공의 비결은 준비하고 있다가 집 주인이 우리가 말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재빨리 주제를 바꾸거나, 다른 토론 제목을 제시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왕국의 축복은 다가왔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여 시편 72:12-14, 16을 읽어 주려다가, 그 가족이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하여 슬픔에 싸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경우 최근의 대화를 위한 제목을 고집하여 끝을 맺는다면 집주인의 관심을 붙잡아 둘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신이 성서 요한 5:28, 29; 계시 21:3, 4; 요한 11:25이나 다른 성귀에 있는 여호와의 약속들을 펴 보여 준다면,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 우리의 임무를 제대로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고린도 후 1:4; 마가 13:10.
5 소개의 말을 하고 나면, 우리는 흔히 상투적 이의나 이견을 직면하게 되며 집주인은 우리를 돌려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은 심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들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집주인이 “나는 나 자신의 종교를 가지고 있읍니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어느 종교의 사람들 하고도 이야기하고 있읍니다” 하고 말하고는, 계획한 연설 제공을 계속 하는가? 그보다는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는 외판 사원이나 교회의 자선 사업을 위해 나온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왕국을 통해서 ‘평강의 풍성함’이 곧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잠깐 방문한 것입니다. 시편 72:7에 이것이 어떻게 예언되어 있는지 살펴보실까요.” 이것은 그러한 이의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답해 줄 수 있는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6 언제인가는 지상의 전 인류가 연합된 숭배로서 여호와를 찬양하여 그분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므로, 이 희망은 지금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에 융통성을 나타내고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도록 우리를 고무한다. 그렇게 한다면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찬양하도록 더 많은 사람들을 돕는 일에 더 큰 몫을 담당하게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