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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없어요!”깨어라!—1987 |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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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없어요!”
“그날 1982년 5월 31일은 푸른 하늘 아래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화창한 날이었기에, 정원을 깨끗이 청소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읍니다. 우리는 최근에 중국산 느릅나무를 베어 냈는데, 잔디 위에는 토막 가지들이 아직 남아 있었읍니다. 그때 나는 이 일을 좀더 손쉽게 해줄 기계를 갖고 있는 친구 조지가 생각나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읍니다.
“조지는 경력있는 조종사였고 비행기 타는 것을 즐겼읍니다. 그래서 조지는 여느 때처럼, 몇몇 친구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한바퀴 돌아올 계획이라며 우리보고 함께 타지 않겠느냐고 말했읍니다. 내 아내 다이앤과 나는 정원을 청소한 후에 좋은 기분 전환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 함께 타기로 하였읍니다. 세살 난 우리 딸도 함께 데리고 갔읍니다. 짙은 갈색 머리카락과 눈을 가진 귀엽고도 또랑또랑한 우리 딸 머리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읍니다.
“우리가 공항에 갔을 때 또 다른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우리는 4인승 비행기에 함께 다 탔읍니다. 우리는 호수 위를 지나 산악 지대로 향했읍니다. 화창한 날씨였읍니다. 밖을 내다보며 낯익은 지형들을 살펴보았읍니다. 산으로 소풍 나온 사람들도 있었읍니다. 머리어는 기분이 들떠 있었읍니다. 그런데 우리가 산마루를 넘어갈 때 갑작스런 급강하 기류가 비행기를 휘감았읍니다. 엔진이 꺼지면서 비행기가 추락하기 시작했읍니다!
“내가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곤, 무릎에 머리어를 앉히고 있던 아내와 앞 좌석 사이로 가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비행기는 산허리에 부딪히고 말았읍니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읍니다. 도움을 청하는 아내의 소리가 들렸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읍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는 일뿐이었읍니다.
“마침내, 응급 치료 팀이 와서 우리를 산에서 옮겨 주었읍니다. 우리가 불시착할 때의 비상 방법을 따르긴 했지만, 조지와 그 친구는 사망하였읍니다. 나머지 우리도 중상을 입었읍니다. 머리어는 머리와 내부 손상을 입었읍니다. 장인은 병원 침상에 있는 나에게 와서 우리 딸 머리어가 죽었다는 하기 힘든 말을 해주었으며—내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읍니다. ‘왜 우리 딸이?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머리어 같은 아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나는 생각했읍니다. 비행기를 타자는 제의를 받아들이지만 않았던들 ···
“아내는 척추 골절로 매우 심각한 상태였읍니다. 사고가 난 지 3주 후에 아내 역시 사망하였읍니다. 나는 한꺼번에 어린 자녀와 아내를 잃고 말았읍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읍니다.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미국, 뉴멕시코 주, 제스 로메로의 체험담.
“내 아들 조너선은 롱아일랜드에 사는 친구들을 방문하러 떠났읍니다. 나의 아내 발렌티나는 조너선이 그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읍니다. 아내는 자동차를 몰고 여행하는 것에 대해 늘 신경이 예민하였읍니다. 그렇지만 조너선은 전자 공학을 좋아했고 그의 친구들이 공작실을 갖고 있어서 실습을 해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집은 웨스트맨해튼에 있었읍니다. 아내는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친정 집에 가고 없었읍니다.
“나는 TV를 보다 꾸벅꾸벅 졸고 있었읍니다. ‘조너선이 곧 돌아오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읍니다. ‘그 아이가 왔구나’ 싶었는데, 그 아이가 아니라 경찰관과 준의료원이었읍니다.
“‘이 운전 면허증을 알아보시겠읍니까?’ 하고 경찰관이 물었읍니다. 그래서 나는 ‘그럼요, 그건 우리 아들 조너선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읍니다.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만, 사고가 났읍니다. ··· 댁의 아들이, ··· 댁의 아들이 사망했읍니다.’ 나의 첫 반응은 ‘노 페데 세르! 노 페데 세르!’—그럴 리가 없어요!—였읍니다.
“그 충격적인 일로 상처난 내 마음은 거의 2년이 지난 지금도 아물지 않았읍니다.”—미국, 뉴욕 주, 아구스틴 카라바요소의 체험담.
“1960년대에 우리 가족은 스페인에 살면서, 비록 증인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박해는 받았지만 단란한 편이었읍니다. 우리 식구는 아내 마리아와 세 자녀 곧 열 세살 난 다비드, 열 한살 난 파키토, 아홉살 난 이사벨이었읍니다.
“1963년 3월 어느날, 파키토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머리가 심하게 아프다고 칭얼거렸읍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얼마 안 있어 알게 되었읍니다. 파키토는 3시간 후에 죽고 말았읍니다. 뇌일혈로 죽은 것입니다.
“파키토가 죽은 지 24년이 지났읍니다. 하지만 그 아이를 잃은 뼈아픈 슬픔은 지금도 남아 있읍니다. 자녀를 잃은 부모라면, 세월이 얼마나 흐르든지 또 슬하에 자녀가 얼마나 많든지 간에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느낌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스페인, 바르셀로나, 라몬 세라노의 체험담.
이상은 전세계 수많은 가정에 닥치는 비극 중 몇 가지에 불과하다. 슬픔에 잠긴 대부분의 부모가 증언할 수 있듯이, 자녀가 죽는 경우 실로 사망은 원수이다.—고린도 전 15:25, 26.
그렇지만 방금 인용한 경우의 유가족들은 그 일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그처럼 자녀를 잃고난 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가? 사별한 가족을 다시 만날 희망이라도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과 그외 관련된 질문들을 계속되는 기사들에서 고려할 것이다.
[3면 사진 자료 제공]
The Daily Herald, Provo, Ut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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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슬픔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깨어라!—1987 |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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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슬픔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봅크리치와 다이앤 크리치는 18년 전에 비극을 당했다. 그들의 여섯살 난 아들 데이비드는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있었다. 다이앤은 이와 같이 말한다.
“의사는 우리가 1년 정도 안에 검사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우리도 그 말에 동의했읍니다. 데이비드는 아주 활발했고 활동 항진이라고 생각될 정도였어요. 1월 25일이었다고 기억되는데, 데이비드가 제 누나 방을 어지럽히며 누나를 괴롭혔지요. 그러더니 밖에 나가서 놀아도 되느냐고 묻길래 그러라고 했읍니다.
“얼마쯤 지나서 앰뷸런스 소리가 났는데, 이웃집 사람이 달려오면서 ‘다이앤, 데이비드가 다쳤어요. 나와봐요!’하고 소리치더군요. 밖에 나가보니 데이비드를 친 승용차 앞뚜껑 위에 그 아이가 눕혀 있는데, 발이 떨어지질 않더군요. 전신이 마비되는 것 같았읍니다.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앰뷸런스에 싣고 갔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읍니다. 그 아이의 연약한 심장은 멎었고, 끝내 숨지고 말았지요.”
「깰 때이다」: “자녀를 잃은 이 쓰라린 일로 인해 어떠한 영향을 받았읍니까?”
다이앤: “정신이 멍해지면서 믿어지지가 않았고 죄책감도 들면서 또 그 아이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지 못한 남편과 의사가 원망스러워지는 등 갖가지 반응이 스치더군요. 그날 따라 데이비드 때문에 몹시 짜증이 났었지요. 손님이 와서 식사 준비를 하는데다 10주된 아기를 돌보아야 했지요. 정신 없이 바빴거든요. 그러다가 사람들이 우리 데이비드를 병원에 데려 가려는 것을 알게 된 거지요.
“데이비드가 죽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더군요. ‘죽음’이나 ‘사망’이란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내게 있어서는 그 아이가 여행을 떠난 것이었고, ‘데이비드는 하나님의 기억 속에 살아 있으며, 다시 돌아올거야’ 하고 생각했읍니다. 그래서 데이비드가 죽은 지 약 7주 후에 나는 그 아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13년 동안 편지를 썼읍니다!”
슬픔은 얼마나 오래 가는가?
다이앤이 오랫동안 슬퍼한 일은 아서 프리즈 박사가 그의 저서 「슬픔을 위한 도움」(Help for Your Grief)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를 지지한다. “자녀를 잃는 일은 부모에게, 특히 어머니에게 끊이지 않는 허탈감을 일으킨다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생각한다.”
“슬픔은 세월 따라 돌아온다”고 시인 셸리는 읊었다. 사별한 가족에 대한 추억들은 해마다 아픔을 새로이 자극한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은 그 점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으며, 사실상 ‘이 슬픔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하고 질문한다. 하지만 슬픔은, 결코 끝나지 않겠지만 치료가 가능한 과정이다. 상실감이 남기는 하지만, 비통한 슬픔은 분명히 줄어든다.
영국의 해럴드 버드와 마저리 버드는 그러한 견해가 옳음을 확신을 가지고 증언할 수 있는데, 그들은 10년 전에 익사 사고로 19세된 아들 스티븐을 잃었다. 더욱더 마음 아픈 점은, 그 아들이 독자였고 그의 시체를 끝내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해럴드는 자신이 경험한 슬픔의 진행 과정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세월이 약이라고 합니다만, 실제로는 가족에 대한 기억이 무뎌지는 것뿐입니다. 유일한 치료책은 부활을 통해 그 아이를 다시 만나는 길뿐일 것입니다.”
사별의 허탈감에 대한 한 과학 연구는 슬픔의 진행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유가족의 감정적 상태는 극적이고도 신속하게 변할 수 있으며, 고인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피하려는 태도와 얼마간 의도적으로 추억을 되새기려는 태도를 번갈아 나타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는 상태에서 점차 그같은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프리즈 박사는 이와 같은 침울한 문제에 서광을 던져 준다. “우리는 항상 올바른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즉 슬픔과 사별의 허탈감을 겪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 자녀 없이도 살아가며 슬픔으로 인한 고통과 괴로움이 시작될 무렵의 신체적 상태와 거의 비슷한 상태로 잘 회복해 간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상,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더 강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슬픔을 경험하면 감정 이입 곧 가족을 잃은 사람에 대한 더 나은 이해심과 동류감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 이입은 동정심을 능가하는 것이기에 슬픔을 견뎌낸 사람은 가족을 잃고 애태우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자산, 조언자, 위안자가 될 수 있다. 일례로, 심부전증으로 아들 데이비드를 잃은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슬픔을 헤쳐나가도록 다른 사람들을 돕다 보면 우리 자신이 평온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죄책감, 분노, 서로 비난하는 일이 생기는 이유
슬픔 분야의 전문가들은 흔히 사별의 아픔과 관련이 있는 죄책감, 분노, 서로 비난하는 일과 같은 반응이 이러한 상황에서는 정상이라고 본다. 유가족들은 종종 아무런 근거도 없고 비논리적인 이유를 찾느라고 애쓴다. ‘하필이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 하기만 했더라도’ 하는 식의 반응들이 흔히 따른다. 어떤 사람은 ‘어째서 하나님은 이런 일을 허용하셨는가?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하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품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여기서, “시기와 우연[예기치 않은 일, 신세]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한다는 성서의 대답을 생각하게 된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고 일어날 수 있으며, 죽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분명히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데려가는 일로 부모를 괴롭히지 않으신다.—전도 9:11; 요한 1서 4:8.
서두 기사에서 언급한 아구스틴과 발렌티나는 조너선의 사망에 관하여 본지와 회견할 때에도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서로 비난했는가? 발렌티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나는 그 아이가 다른 사람의 차를 타고 롱아일랜드로 가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구스틴에게 책임을 돌렸읍니다. 지금은 그런 반응이 비합리적인 것이었음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아버지가 그 아이를 가게 내버려 두지만 않았다면, 그 아이는 살아 있을 텐데’하고 생각했읍니다. 계속 남편에게 책임을 돌렸지요. 나는 툭하면 그 일을 들먹였는데, 말 안하고 가만히 있기가 괴로왔기 때문이예요.”
데이비드가 비명에 죽은 일로 인해 화가 난 다이앤 크리치는 심지어 동물을 보고 분개하기까지 했다. 그는 본지에 이렇게 말하였다. “거리에 걸어다니는 개나 고양이를 보면 ‘저 동물은 튼튼한 심장을 갖고 있는데, 왜 내 아들은 튼튼한 심장을 가질 수 없었단 말인가? 동물도 걸어다니는데 왜 우리 데이비드는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전문가들은 이 모든 반응들이, 불합리한 경우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확언한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성적 사고의 한 형태로서 현실과 조화시키는 과정의 일부이다. 결국 안정된 견해를 갖게 되며 분별력을 되찾는다. 프리즈 박사가 이처럼 말한 바와 같다. “바람직한 슬픔의 시험—애도와 슬픔의 감정적 문제를 적절히 타개해 나가고,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그에 따른 모든 감정을 정직하게 직시하는가에 관한 시험—은 애도자가 고통이라든가 유약하고 나약한 슬픈 생각에 압도되지 않으면서 그 심란한 때를 끝내 참고 견딜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평정을 안겨 준다. 프리즈 박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움과 즐거운 생각 즉 고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애정어린 이야기를 하며 뼈를 깎는 듯한 고통과 슬픔 및 고난을 마침내 해소하는 능력이야 말로 이상적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추억은 슬픔보다는 애정을 더 촉진시킨다.
사산으로 자녀를 잃은 슬픔을 극복함
모나는 여러 자녀를 두고 있으면서도, 멀지않아 태어날 아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출산하기도 전에, 모나는 그 “아기와 놀며 이야기하고 또 꿈에서도 만났다”고 한다.
어머니와 태어나지 않은 아기 사이의 유대 관계는 그 정도로 강하였다. 모나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내 뱃속에서 역사를 시작한 우리 아기 레이철 앤 때문에 나는 밤잠을 못잤지요. 아직도 아기가 그 부드럽고 귀엽게 쿡 찌르는 듯한 발길질을 처음으로 한 때를 기억할 수 있읍니다. 앤이 움찍거릴 때마다 나는 그지없는 사랑으로 가득 찼었지요. 나는 앤을 아주 잘 알았기 때문에, 앤이 언제 고통을 느끼고 언제 병이 나는지를 알았읍니다.”
모나의 계속되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의사는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더니만, 결국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요. 그는 나보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거든요. 나는 앤이 죽은 것을 감지했읍니다. 앤은 별안간 아주 심하게 요동을 치더니 그 다음날 죽었어요.”
모나의 경험은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저술가 프리드먼과 그래드슈타인의 공저 「유산의 슬픔을 이겨냄」(Surviving Pregnancy Loss)이라는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만도 해마다 약 100만명의 여자가 임신하지만 자녀를 갖지 못하는 아픔을 겪는다고 한다. 종종 사람들은 유산이나 사산이 여자에게는 비극이며, 그로 인해 여자가 평생 슬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예로서, 뉴욕 시의 베로니카는 현재 50대의 나이인데도 유산된 아기들을 기억하는데, 특히 몸무게가 약 6킬로그램 나간 9개월짜리 사산아를 잊지 못해 한다. 그는 이미 죽은 아기를 2주 동안이나 몸 안에 가지고 있었다. “죽은 아기를 낳는 일은 산모에게 참혹한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처럼 낙망한 어머니들의 반응을 사람들이 항상 이해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다른 여자들까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유산을 하여 자녀를 잃은 경험이 있는 한 정신병 의사는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내가 아주 고통스럽게 배운 것은, 이러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기 전에는, 친구들이 견뎌야 했던 일들에 관하여 실제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다는 점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지금 나를 대하는 것처럼, 친구들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냉담했었지요.”
슬픔에 잠긴 아내에게 있어 또 다른 문제는, 남편이 자기처럼 자녀를 잃은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 일이다. 한 아내는 그 점을 이와 같이 말했다. “그때 나는 남편에 대해 완전히 실망했어요. 그이에 관한 한, 임신은 실제로는 없었던 일이었지요. 그이는 내가 겪고 있던 슬픔을 경험할 수 없었어요. 내가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서는 매우 동정심을 나타냈지만, 내가 느끼는 슬픔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더군요.”
이러한 반응은 남편의 경우에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즉 남편은 임신한 아내와 똑같이, 태아와의 신체적 및 감정적 유대 관계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남편 역시 자녀를 잃은 아픔을 겪는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비록 차이는 있을지언정 함께 괴로와한다는 점을 서로 인정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들은 슬픔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남편이 슬픔을 감추면, 아내는 남편이 냉담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12면 참조.) 그러므로 함께 눈물을 흘리며 생각을 나누고 꼭 껴안아 줄 필요가 있다. 이전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나타내라.
유아 급사의 의혹과 슬픔
수많은 어머니는 매일 남모르는 두려움 속에 지낸다. 한 어머니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나는 밤마다, 우리 아기가 다음날 아침에도 살아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유아 급사 즉 SIDS(Sudden Infant Death Syndrome: 유아 급사증)이다.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대학교의 병리학 교수인 마리 발데스 대페나 박사는 미국에서만도 연간 SIDS 사례가 6,000 내지 7,000건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의심할 바 없이 이것은 매우 실제적인 공공 보건 문제”라고 그는 부언한다.
유아 급사로 인해 흔히 생후 2개월에서 4개월 사이의 아기가 밤 사이에 사망한다. 아직 과학적으로 만족할 만한 설명이 나오지 않고 있으며, 사체 부검을 해보아도 급사의 원인을 밝히기가 어렵다. 그 병은 의혹에 싸여 있다.a
유아 급사에 뒤따르는 것은 흔히 혹심한 죄책감이다. 그렇다면 유아 급사를 당한 부모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그들이 그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SIDS는 예측 불허이며, 대개 불가피하다. 따라서 죄책감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둘째로 부부가 서로 지원하고 신뢰하며 이해심을 나타낸다면 슬픔에 함께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기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라. 자신의 감정을 털어 놓으라.
조부모도 슬퍼한다
조부모도 남달리 가슴 아파한다. 자녀를 잃은 한 아버지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조부모는 손자녀의 죽음뿐 아니라 자녀가 느끼는 슬픔에 대해서도 애태웁니다.”
그렇지만 조부모가 느끼는 손자녀를 잃은 슬픔을 덜어 주는 방법들이 있다. 우선 조부모를 고려하는 것이다. 손자녀는 그들의 대를 이을 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조부모 나름대로의 슬퍼하는 과정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부모가 부모의 동의도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조부모가 관여하기를 원한다면 보통 그렇게 할 수 있으며, 또 기꺼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지금까지 슬픔에 관하여 간략히 살펴보면서, 우리는 유가족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부면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특히 말로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그리고 남편은 자신의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다음 기사를 보도록 하자.
[각주]
a 본지는 앞으로 나올 기사에서 SIDS에 관하여 좀더 상세히 검토할 것이다.
[7면 네모]
슬픔의 진행 과정
이 말은 슬픔에 어떤 정해진 계획표나 진행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슬픔의 반응은 개인에 따라 비슷한 면도 있고 기간이 다양할 수도 있다.
초기 반응:
시초의 충격; 믿지 않으려는 태도, 거부 반응; 얼떨떨함; 죄책감; 분노
비통한 슬픔을 겪는 동안 있을 수 있는 일:
기억 상실과 불면증; 극도의 피로감; 급작스런 기분 변동; 결함 있는 판단력과 생각; 눈물이 북받쳐 올라 소리 내어 우는 일; 식욕 변화로 체중 감소 또는 증가; 건강에 이상이 있음을 보이는 여러 가지 증상; 무기력; 작업 능력 감퇴; 죽은 사람을 보고 감지하며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환각 상태
평정기
그리움어린 슬픔; 죽은 사람에 대한 보다 즐거운 추억, 심지어 유머가 곁들여지기까지 함
(아서 프리즈 박사의 「슬픔을 위한 도움」 23-6면에 근거한 것임.)
[9면 네모]
슬픔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
사람에 따라 자신의 방식대로 슬픔을 대처해 나가야 한다. 중요한 점은 자기 중심적인 침체 상태와 자기 연민을 피하는 것이다. 본지와 회견한 유가족들의 경험을 토대로 한 몇 가지 제안은 이러하다:
◼ 자신의 일과와 활동을 계속 바쁘게 영위하라. 여호와의 증인인 회견자들은 그리스도인 집회 참석과 봉사에 참여하는 것의 가치를 특히 강조하였다. 많은 사람은 기도를 통하여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 슬픔을 억제하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나타내라. 슬퍼하며 우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비통한 슬픔의 기간은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 고립되려고 하지 말라.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그들도 당신과 어울리게 만들라. 도움이 된다면 사별한 가족에 대하여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라.
◼ 가능한 한 빨리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라. 다른 사람을 도우려고 힘쓰라. 그러면 당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10면 네모]
다른 사람들이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본지 통신원들은 여러 나라에서 자녀를 잃은 부모들과 여러 차례 회견을 하였다. 슬픔에 잠긴 가족에게 도움이 되었던 몇가지 제안을 아래에 싣는다. 물론, 이러한 점들을 적용할 때는 유가족의 느낌에 따라 융통성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1. 그런 일이 있은 바로 그날부터 그 가족과 연락을 취하고, 또 당신의 집으로 초대도 하라. 그들에게 식사를 마련해 주라. 단지 처음 몇 주 동안만이 아니라 필요로 할 때까지 계속 그렇게 하라.
2. 죽은 자녀의 옷이라든가 기타 생각나게 만드는 물품을 간직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치울 것인지는 부모가 결정하게 한다.
3. 유가족이 원하는 기색을 보이면, 죽은 자녀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라. 죽은 자녀의 성품과 생활에서 재미있고 유모가 풍부했던 면들을 회상하라. 그저 묵묵히 있지만 말라.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할지 모른다.
4. 직접적인 도움을 베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면, 격려와 위로가 되는 편지를 쓰라. 죽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지 말라.
5. 적절하다면, 그 부모가 전과 같이 계속 활동하도록 격려하라. 그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게 만들라.
[10면 네모]
한 할머니가 보낸 글
“나는 사랑하는 부모, 오빠, 언니, 그리고 열 세살에 만나 사랑하여 평생을 바쳐 보필한 나의 벗이자 연인인 내 남편 짐”과 사별하는 경험을 하긴 했지만, 내 귀중한 어린 손자 스튜어트 제이미의 죽음만큼 슬픔과 고통과 쓰라린 비애를 느끼게 한 일은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읍니다.
—2년 9개월된 손자의 죽음에 관하여, 영국의 에드나 그린.
[8면 삽화]
슬픔을 터놓고 이야기하면, 대처하는 데 서로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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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위로가 되지는 않는 표현들깨어라!—1987 |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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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위로가 되지는 않는 표현들
독자가 깊은 슬픔을 겪어 보았다면, 다른 사람이 한 말 때문에 이따금 마음의 상처를 입은 적은 없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많은 유가족은 도움이 되지 못한 말들을 기억해 낼 수 있다. 우어술라 몸젠 헤네베르거는 독일 신문 「키엘러 나히리히텐」에 기고하기를, 어떤 부모는 “주위 사람들이 ‘다른 자녀들이 있는데 뭘 그러십니까?’라고 말할 때 몹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고 하면서, “다른 자녀가 위안이 될지는 몰라도 죽은 자녀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유가족 상담가인 캐스린 캐피툴로는 본지에 이와 같이 말했다. “삼가야 할 또 다른 표현은 ‘당신의 기분을 압니다’라는 말입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일을 실제로 알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느끼는 바를 수긍해 주면서, 그같은 느낌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그들을 안심시킬 수 있읍니다.”
「자녀를 잃는 슬픔으로부터 회복하는 일」(Recovering From the Loss of a Child) 책에 보고된 바와 같이, 아베 말라우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자녀를 잃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는 자녀를 잃어 본 사람만이 안다고 나는 확신한다. 자녀가 열 다섯명이나 있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결단코 잃은 자녀를 대체할 수는 없다.”
유산이나 사산의 경우에도, 진심으로 한 말이기는 하지만 격려가 되지 않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있다. “조만간 또 임신하게 될테니까 지난 일은 모두 잊어 버리세요.” “차라리 잘 되었읍니다. 어쨌거나 아기는 불구가 되었을 테니까요.” “사실은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요.” 아기를 잃은 쓰라린 시기에 이같은 상투어들은, 그 의도가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고통을 덜어 주지 못한다.
일부 교직자들이 표현하는 종교적 상투어들 역시 유가족을 짜증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천사를 원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을 잔인하고도 이기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며 신성 모독적인 말이기도 하다. 더우기, 그 말에는 논리적인 근거나 성서적인 뒷받침이 없다.
그리스도인이 애도해야 하는가?
자녀를 사망으로 잃은 그리스도인의 경우는 어떠한가? 때때로 어떤 사람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한 말, 곧 ‘여러분은 희망을 가지지 못한 외부 사람들처럼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인용한다. (I 데살로니가 4:13, 새번역) 바울은 슬픔과 애도를 금한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희망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희망없는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슬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요한 5:28, 29.
이 점을 예시하는 것으로, 마리아가 예수께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했을 때 예수께서는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셨는가? 기록은 이러하다. “예수께서 그[마리아]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시더라.]” 이어서 시체 있는 곳으로 가시게 된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렇다면, 슬퍼하는 것이 그릇된 일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부활에 대한 믿음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요한 11:30-35; 비교 요한 20:11-18.
마음을 크게 아프게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표현으로 ‘세월이 최상의 약이랍니다’와 같은 유가족을 안심시키려는 어설픈 동정의 말이 있다. 또한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세요?”라는 질문도 삼가해야 한다. 영국의 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사람은 자녀처럼 친밀한 누군가를 잃는 것이 실제로 어떠한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녀가 부활을 받아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이러한 문귀가 어울릴지 모른다. “슬픈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슬픔을 제어할 수 있다.”
때로는 생각없는 태도로 인해 아버지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자녀를 잃은 한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이 “부인은 좀 어떤가요?”하고 물을 때면 화가 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남편이 어떤가는 전혀 묻지를 않습니다. ··· 아주 잘못되고 부당한 처사예요. 남편도 아내와 다를 바 없이 느끼며, 슬퍼합니다.”
‘윗 입술을 굳게 하라’?
많은 문화권에서는, 남자들은 특히 자신의 감정이나 슬픔을 나타내지 않아야 한다고 즉 ‘윗 입술을 굳게’ 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르친다. 18세기 영국의 저술가 올리버 골드스미스는 “슬픔에 대한 과묵한 남성다운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꼭 과묵한 남성다운 태도만이 자신의 슬픔을 해소하는 최선책인가?
해리엇 서노프 시프는 그의 저서 「자녀를 잃은 부모」(The Bereaved Parent)에서 자기 남편의 경우를 이렇게 언급한다. “여기 아이가 매장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한 아버지는 사회가 요구하는 관례대로 ‘윗 입술을 굳게 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부언한다. “그는 윗 입술을 굳게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희생을 감수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는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깊은 슬픔에 빠져들었다.”
그 남편은 자신의 감정을 묘사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의 말에 공감할지 모른다. “나는 눈 덮인 북극 지방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우 피곤합니다. 쉬려고 누우면 잠들겠지요. 잠들면 얼어 죽고 말겠지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이 피로를 버틸 수 없읍니다.”
그러면 해리엇 시프의 충고는 무엇인가? “켸켸묵은 앵글로색슨의 극기 윤리는 모두 잊어버리고 울라. 눈물을 흘리라. ··· 눈물은 슬픔을 씻어 준다.” 「유산의 슬픔을 이겨냄」의 저술가들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러한 교훈을 한다. “혹자는 극기를 높이 평가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슬픔과 맞서야만 결국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체로는 본지에서.) 그렇지 않으면 “부적합한 슬픔”이라는 것에 빠져버릴 위험이 있는데, 그러한 슬픔은 여러 해에 걸친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부적합한 슬픔은 미흡한 슬픔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 경우에 사람은 애도 과정을 거치면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애도하게 된다. 이것은 적어도 세 가지 방식 곧 억압된 애도, 연연한 애도, 만성 애도로 나타날 수 있다. 도움이 되는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는가?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할지 모른다. 가정 주치의나 영적인 조언자가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지각력있는 가족 성원이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슬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 분발케 하는 도움이 필요하다.
따라서 제스 로메로는 비행기 사고로 딸과 아내를 잃었을 때 거침없이 울었다고 말한다. 그는 본지에 이렇게 말했다. “몇 주 후에 누이들이 나를 퇴원시켜 집으로 데려다 주었는데, 방에 들어가면서 벽에 걸려있는 딸 아이 사진을 보았읍니다. 매형은 내가 그 사진 때문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보고는 ‘실컷 울게나’ 하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울었읍니다. 억눌려 있던 슬픔이 좀 풀어지더군요.”
슬퍼하는 과정이 마음의 상처를 어느 정도 치료해 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유가족들에게 항구적인 유일한 해결책은 사별한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에게 희망이 있는가? 부활이 있을 것인가? 이 연속 기사의 마지막 기사인 다음 기사를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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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위한 희망, 슬퍼하는 사람을 위한 위로깨어라!—1987 |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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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위한 희망, 슬퍼하는 사람을 위한 위로
서두 기사에서 언급된 제스 로메로는 결국 재혼하였다. 아구스틴 카라바요소와 발렌티나 카라바요소는 조너선이 사망한 일로 인해 아직도 가슴아파 하지만 차츰 평정을 찾고 있다. 스페인의 라몬 세라노와 마리아 세라노는 파키토가 죽은 지 24년이 흘렀는데도 눈물을 그칠 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들이 견디는 데 힘이 된 것은 무엇인가? 대답은 “부활에 대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부활”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가 부활될 것인가? 언제 부활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부활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가르치신, 죽은 자를 위한 희망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봉사하시는 동안 몇 사람을 부활시키셨다. (마가 5:35-42) 이러한 사실은, 수많은 사람이 “나라[왕국, 신세]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고 기도로 요청하는 바대로, 이 땅이 다시 한번 완전히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될 때 대규모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증표이다.—마태 6:9, 10.
예수께서 친구인 나사로를 부활시키셨을 때 부활과 관련된 하나님의 능력이 예시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 기록은 죽은 자의 상태를 명확히 밝혀 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제자들은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나사로가 단지 잠자고 있다고 말하는 줄로 생각했는데, 사실상 그때 나사로는 죽어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게 하려고 “나사로가 죽었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예수께서는 다른 상태나 다른 영역으로 떠나가는 불멸의 영혼에 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분은 희랍 철학에 영향을 받지 않으시고 「히브리어 성경」에 있는 명백한 성서의 가르침을 고수하셨다. 나사로는 죽어 잠들었으며, 예수께서 오셨을 때 기념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났다. 그러면, 나사로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는가?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에게 말씀하시면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하셨다. 마르다는 뭐라고 응답했는가? 마르다는 오빠의 영혼이 이미 천당이나 기타 장소에 가 있다고 말하였는가? 마르다의 반응은 이러했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 역시 지상 생명으로 부활되는 것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옹호하였다.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라고 말씀하시므로 마르다가 믿음을 가질 더 큰 이유를 제시하셨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이 점을 증명하시기 위하여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셔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큰 소리로 부르신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역사 기록은 이러하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요한 11:1-44.
바로 여기에 본지와 회견한 많은 유가족에게 도움이 되었던 희망이 제시되어 있다. 그같은 희망에 힘입어 그들은 가까운 장래에 땅이 다시금 낙원으로 회복되고, 희망을 고무하는 예수의 이러한 말씀이 성취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한 5:28, 29.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귀는 ···”
본지는 자녀를 잃은 부모 및 친동기를 잃은 어린이들과 회견하였다.a 그들은 자신들의 슬픔에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설명하면서 거듭거듭,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귀를 말씀드리죠”라고 말했다. 독자도 슬픔에 잠겨 있다면, 그러한 성귀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서울의 열 네살 난 윤희는 1985년에 백혈병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아버지 전 광국 씨는 윤희가 죽기 전 몇 주 동안 윤희를 어떻게 위로하였는지 본지에 이와 같이 설명했다. “나는 윤희에게 나사로에 관하여 이야기 해주었읍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잠자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나사로를 부르신 것처럼 예수께서 ‘윤희야! 일어나라!’고 부르시면 윤희 역시 잠에서 깨어날 것이라고 말해 주었읍니다.”
1966년에 열 세살 난 영국의 소녀 재닛 허코크는 암으로 사망했다. 그에게는 부모 및 두 오빠인 데이비드와 티머시가 있었다. 데이비드는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성귀를 본지에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사도 행전 17:31에 있는 이러한 말이었지요.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사체로는 본지에서.) 장례식에서 연사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일이 앞으로 있을 부활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라고 강조하였는데, 이 점은 내게 커다란 힘의 근원이 되었읍니다.”
1975년 12월에, 겨우 14세된 소년 조지는 아버지의 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조지의 아버지 러셀은 자살로 인해 아들을 잃어버린 슬픔을 어떻게 이겨냈는가?b
“특정한 성귀들이 나를 안정시켜 주었읍니다. 예를 들어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잠언 3:5의 말씀이 있지요. 나는 발생한 일을 감내하려고 애쓰면서 어느 정도 나의 명철을 의지하고 있었거든요.”
영국에 사는 모건 가족은 스웨덴에 가 있는 동안 아들 대럴이 갑자기 아프게 되었다. 스톡홀름에서 응급 수술을 받은 뒤 결국 비행기에 태워 영국으로 옮겨 왔으나 대럴은 만 24세가 되기 직전에 죽고 말았다. 그의 어머니 넬은 이렇게 말한다. “뚜렷하게 떠오른 한 성귀는 마태 복음 22:32인데, 거기 보면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곧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는 말씀을 인용하신 다음,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셨지요. 그 말로 볼 때 대럴은 하나님의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으며, 부활로 돌아올 것입니다.”
곧 실현될 죽은 자를 위한 희망
성서 예언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인류에게 평화와 영원한 생명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행동을 취하실 때는 가까왔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신다.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사망]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31:13-17.
그때에 여호와께서는 인류 역사 전체에 걸쳐 죽었던 사람들을 점차 부활을 통하여 생명으로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새 제도의 하늘 정부 아래서 그때의 생활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들에 순종하므로 영원한 생명을 택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서를 살펴본다면, 죽은 사람을 위한 참된 희망과 산 사람을 위한 위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사도 24:15; 계시 20:12-14; 21:1-4.
[각주]
a 본지는 앞으로 나올 잡지에서 친형제나 자매를 잃은 동기가 나타내는 반응을 고려할 것이다.
b 본지는 자살과 부모의 슬픔에 관하여 앞으로 나올 잡지에서 다룰 것이다.
[14면 네모]
본 호 두번째 기사에서 아들 데이비드의 사망을 이야기한 다이앤 크리치는 극도의 슬픔과 거부 반응을 경험하였다. 이 점은 그가 13년간이나 데이비드에게 편지를 쓴 사실로 실증된다. 그는 자기가 보살피던 아버지의 임종을 실제로 목격하자 편지 쓰는 일을 중단하였다. (본지는 해소책의 일환으로 편지 쓰는 일을 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후로 부활의 희망이 어떻게 그에게 안정과 힘을 주었는지 설명하기 위하여 그의 첫 편지를 인용하고자 한다.)
귀여운 데이비드,
네가 잠든 지도 46일이 지났구나. 너를 안아 본 것이 여러 해 전 일 같기만 하다. 하지만 네가 잠잘 날은 제한되어 있지. 하루하루 표시해 가다보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있을 거야. 이것이 우리에게는 길고, 고달프고, 적막한 기다림이겠지만 네게는 그저 짧은 시간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 점이 다행스럽기도 하구나. 우리는 여호와께서 잠자는 너를 새 질서에서 깨워 주실 날을 고대한단다. 그때는 네가 한번도 보지 못한 가장 성대한 파티를 열거야. 적어도 사흘 동안 말이다. 우리가 아는 사람을 모두 초대해야지. 그것은 너를 위한 파티란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데이비드, 너를 안아 주고 싶어 못견디겠구나. 우리는 너를 애타게 그리워한단다. 너 없는 이 집은 텅 비어 있다.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그 무엇도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래, 소중한 내 아들아,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참으며 여호와를 기다리마. 그러면서 네가 잠자고 있는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알려 줄 짧은 기록들을 편지로 쓰련다.
너를 한없이 사랑하는,
엄마가
[15면 삽화]
성서는 머리어나 데이비드 같은, 죽은 사람이 부활될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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