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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적과의 싸움깨어라!—1987 |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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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적과의 싸움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평생에 가장 큰 시련이었읍니다. 다시 두 발로 설 수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합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제는 인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2세 된 이 여인은 다른 어떤 정신 장애보다도 더 큰 고통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진 적 곧 우울증을 물리쳤던 것이다.
알렉산더의 경우는 그처럼 결과가 좋지 못했다. 33세 된 이 남자는 심한 우울증에 빠진 나머지, 식욕도 잃고 그저 혼자서만 있고 싶어했다. 그의 아내 에스터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남편은 마치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생각했고 더우기 더 이상 살아 있을 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고 느꼈읍니다. 남편은 자기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라고 믿었읍니다.” 알렉산더는 개선될 가망이 전혀 없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자살을 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
엘리자베스와 알렉산더는 모두 매년 임상적으로 식별 가능한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는 전세계의 100,000,000명 가운데 포함되는 사람이었다. 미국인은 네명 가운데 한명이, 캐나다인은 다섯명 가운데 한명이 자신의 생애 중에 한번은 중우울증 발작을 경험한다. 우울증은 아프리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병으로 알려져 있으며, 독일 연방 공화국에서도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독자의 친구나 친척 중에도 현재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거나 이전에 걸렸던 적이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남편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 했던 알렉산더의 아내는 이렇게 경고한다. “어떤 사람이 우울하다거나 자신은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하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심각한 우울증은 일시적인 기분이나 단지 어쩌다가 느끼는 울적함 정도가 아니다. 우울증은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고, 사람을 절름발이나 불구자로 만드는 무자비한 적이 될 수도 있다. 우울증을 식별하느냐 못하느냐는 생사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다.
“뇌 속에 무서운 병이”
우리 모두는 손실, 좌절, 실망 등의 고통을 겪게 마련이다.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슬픈 감정은 막을 내리고, 상처는 치유되며, 마침내는 변화된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타개해 나가기 시작한다. 내일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며, 곧 다시 인생을 즐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중우울증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지난 여덟달 동안은 쇼핑을 하거나 그 어떤 일을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엘리자베스는 말하였다. 역시 우울증으로 고생한 캐럴은 이렇게 덧붙였다. “뇌 속에 무서운 병이 걸린 것만 같았읍니다. 시꺼먼 구름이 머리 위에 드리운 것 같았읍니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그런 끔찍스런 느낌은 멈추지 않았을 겁니다.” 한 남자는 ‘뿌연 안경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모든 것이 아무런 매력도 없어 보였으며, 또한 그 안경에는 확대경이 있어서 모든 문제가 자신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였다.
우울증은 슬픔에서부터 시작하여 절망감과 자살로 이어지는 감정의 연속 과정이다. (4면 네모 안 참조.) 울적함이 중우울증으로 발전하는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증세의 수, 그 강도 및 지속 기간이다.
언제나 식별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신체적인 증세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우울증은 종종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다리가 쑤시고, 때로는 온몸에 통증이 있었읍니다. 여러 의사를 찾아가 보았읍니다. 분명 의사들이 어떤 신체적인 병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니 나는 죽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읍니다.” 의료적인 도움을 구하는 우울증 환자의 약 50퍼센트는 엘리자베스처럼, 감정적인 증세보다는 신체적인 증세를 호소한다.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 대학교 정신 의학과 과장인 새무얼 거즈 박사는 이렇게 기술한다. “일반적으로 우울증 환자는 두통, 불면증, 식욕 부진, 변비 혹은 만성 피로 증세를 호소한다. 그러나 슬픔, 절망, 낙담 등의 감정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 일부 우울증 환자는 자기가 우울증에 걸려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다.” 만성적인 통증, 체중의 감소 혹은 증가 및 성욕 감퇴 역시 전형적인 증세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트란스카이에 있는 움침쿨루 병원의 E. B. L. 오푸가 박사는 아프리카의 우울증 환자들은 죄책감이나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고 과로, 금단 증세 및 신체적인 고통만을 호소한다고 보고한다. 세계 보건 기구가 발표한 1983년의 한 보고서에서는 스위스, 이란, 캐나다 및 일본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한결같이 즐거움의 상실, 근심, 기력 상실, 무력감 등 기본적으로 똑같은 증세를 갖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알콜 및 마약 남용 그리고 난잡한 성생활은 일부 사람들이 우울한 감정을 메워 보기 위해서 사용하는 몇 가지 방법에 불과하다. 그렇다.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을 수 있다. (잠언 14:13) 청소년들은 특히 그러하다. 미국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NIMH)의 도널드 맥뉴 박사는 「깰 때이다」지와의 회견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어른은 우울한 것이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어린이와는 한방에 함께 있어도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의 우울증은 오랫동안 식별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 어린이와 이야기를 해보면, 우울한 기분을 털어 놓을 겁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 우울증에 대한 이해와 치료에 있어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뇌의 화학 작용에 대한 신비가 벗겨지고 있다. 특정 형태의 우울증을 식별할 수 있는 검사들이 개발되었다. 우울증과의 싸움은 항우울증 약의 투약 치료법과 몇몇 특정 아미노산 같은 영양제 공급법에 의해 지원을 받아 왔다. 이에 더하여, 단기 대화 요법의 사용은 많은 효과가 있었다. NIMH 소속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울증 환자의 80 내지 90퍼센트는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러한 감정 장애의 원인은 무엇인가?
[4면 도표]
우울증의 진행 과정
단순한 울적함 중우울증
기분
슬픔, 정상적인 비애 압도적인 절망감
자기 연민, 낙담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
자책감 및 죄책감 해로운 죄책감과 자책감
얼마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음 즐거움을 발견할 수 없고, 관심도 사라짐
생각
뉘우침 혹은 후회 자살을 생각함
집중하기가 어려움
지속 기간
단기 지속 (며칠) 장기 지속 (2주 이상)
신체적 증세
정상 기능 지속적인 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
약간의 신체적인 문제 식사 및 수면 습관의 변화
(일시적)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왔다갔다함, 손을 비틂
말이나 몸놀림이 둔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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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모두 머리 속에서 생기는가?깨어라!—1987 |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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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모두 머리 속에서 생기는가?
한 남자는 200년 된 자기 집을 보수하기 시작하면서 바로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 그는 잠을 제대로 못잤으며, 정신적인 노력을 지속하기가 전에 없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들은 그 집이 귀신들린 집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는 실내의 목조 부분에서 오래된 페인트를 벗기는 일을 한 다음부터 복통을 포함한 가장 심한 증세들이 생겼다는 점에 유의하였다. 의사는 그가 오래된 페인트를 긁어낼 때 페인트 켜 속에서 나온 납에 중독되어 우울증이 초래되었음을 발견하였다.
그렇다. 때때로 독성 물질이 우울증을 초래하기도 한다. 사실상, 우울증은 여러 가지 신체적 원인에 의해 유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여러 해 전에, 연구원들이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 의학적인 문제로 어느 도시의 병원에 입원한 1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정밀 검사를 한 일이 있었다. 이 가운데 46명의 경우는, 감정적인 증세가 신체적인 병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이 발견되었다. 「미국 정신 의학지」(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에 실린 보고서에 의하면, 이러한 신체적인 병이 치료되자, 28명은 “정신 질환 증세가 극적으로 신속하게 사라졌다는 증거가 있”으며, 18명은 “실질적으로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체적 병이 우울증에 작용하는 역할은 복잡하다. 많은 의사의 경험에 의하면, 우울증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신에 문제를 일으키는 주원인이 되는 신체적인 병을, 우울증 환자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잠재해 있는 우울증도 대개 관심을 기울여 치료해야 한다.
일부 신체적인 병이 감정 장애를 초래하거나 악화시킬 수도 있지만, 정신병 증세는 이전에 앓았던 병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대수술 특히 심장 수술을 받은 후 회복중인 환자는 거의 대부분 우울증에 걸린다. 회복이 되면, 보통 우울증은 사라진다. 심각한 병으로 인해 신체에 무리가 올 때에도 역시 정신 장애가 초래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음식이나 다른 어떤 물질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역시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한 우울증을 초래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특정한 유형의 우울증에 걸리는가 여부에는 유전 역시 관련 요인이 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이 조울증에 걸리기 쉬운 경향을 가지게 만드는 것으로 믿어지는 유전적인 결함을 발견하였다는 연구 결과가 금년 초에 발표되었다.
이에 더하여, 일부 의료 전문가들은 첫아기를 낳은 산모의 10 내지 20퍼센트는 본격적인 임상적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애를 초래하는 것이 자녀 출산과 관련된 호르몬의 변화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되는 데 따르는 감정적 긴장인지에 관해서는 연구원들 사이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발견들은 또한 월경 전에 나타나는 증세나 피임약의 복용이 일부 여성에게 우울증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또한 일부 사람들에게는 계절적 정서 장애라고 불리는 계절적인 기분의 주기가 나타난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런 사람들은 가을과 겨울 동안에는 매우 심한 우울증 증세를 느낀다. 동작이 느려지고 일반적으로 늦잠을 자며, 친구와 가족들을 멀리 하고, 식욕이나 좋아하는 음식에 변화를 경험한다. 그러나 봄과 여름이 오면, 기분이 좋아지고, 활동적이 되고 원기 왕성해지며, 일반적으로 몸의 기능이 좋아진다. 어떤 사람들은 인공 조명을 정기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치료에 성공을 거두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우울증은 언제나 “머리 속에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울한 기분이 떠나지 않으면, 종합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신체적인 이유가 전혀 발견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6면 네모]
우울증을 초래하는 몇 가지 신체적 원인
의학 연구는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우울증의 발병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독성 금속 및 화학 물질: 납, 수은, 알루미늄, 일산화탄소 및 일부 살충제
영양 결핍: 특정 비타민류 및 일부 필수 무기물
전염병: 결핵, 단핵증, 바이러스성 폐렴, 간염 및 독감
내분비계 질환: 갑상선 질환, 쿠싱병, 저혈당증 및 진성 당뇨병
중추 신경계 질환: 다발성 경화증 및 파킨슨병
“기분 전환용” 마약: PCP, 마리화나, 암페타민, 코카인, 헤로인 및 메타돈
처방약: 바르비투르산염, 항경련약, 코르티코스테로이드 및 호르몬제. 고혈압, 관절염, 심장 혈관 장애 및 몇몇 정신 장애 치료에 사용되는 일부 의약품
(물론, 그러한 의약품이 모두 우울증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설사 위험성이 있다 하더라도, 의사의 적절한 감독하에 약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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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적 근본 원인깨어라!—1987 |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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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적 근본 원인
의사는 엘리자베스에게 이처럼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검사는 다 해보았지만,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 생각에는 심한 우울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자기의 문제는 신체적인 병이라고 생각했던 엘리자베스는 의사의 생각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몇년 동안 제멋대로 굴고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여섯살 난 아들과 날마다 실랑이를 벌인 일을 떠올렸다. 아들은 후에 주의력 결핍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털어 놓았다. “그칠 줄 모르는 매일매일의 스트레스와 근심으로 내 감정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읍니다. 절망감으로 자살을 생각할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읍니다.”
엘리자베스처럼 우울증에 걸린 많은 사람들은 이례적인 정도의 감정적인 압박을 직면하였다. 사실 영국의 연구원들인 조지 브라운과 타이릴 해리스는 한 독특한 연구에서, 우울증에 걸린 여자들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여자들보다 좋지 않은 주거 환경이나 긴장된 가족 관계와 같은 “심각한 어려움”을 세배 이상 더 많이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어려움들이란 적어도 2년 이상 “상당히 심각하고 대개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고통”을 초래하는 것들이었다.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의 죽음, 심각한 병이나 사고, 충격적인 나쁜 소식 혹은 실직 등과 같은 견디기 어려운 생활상의 경험도 우울증에 걸린 여자들 사이에서는 네배나 더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브라운과 해리스는 역경만으로는 우울증이 초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다분히 개인의 정신적 반응과 감정적 취약성에 달려있었다.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였읍니다”
예를 들면, 열심히 일하는 아내이자 어린 세 자녀의 어머니인 세라는 직업과 관련된 사고로 허리를 삐게 되었다. 의사는 그에게 디스크 즉 추간 연골이 파열되었기 때문에 신체적인 활동을 많이 줄여야 된다고 말하였다. 세라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이제는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나는 언제나 활동적이었고, 아이들과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읍니다. 나는 이러한 손실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했으며, 결코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읍니다. 곧 생활상의 모든 기쁨이 사라졌읍니다.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였읍니다.”
그 사고에 대한 세라의 반응은 그의 생활 전반에 대한 절망적인 생각으로 발전하였으며, 결국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 브라운과 해리스가 그들의 공저 「우울증의 사회적 기원」(Social Origins of Depression)에서 이렇게 언급한 바와 같다. “그러한 일[세라가 당한 사고와 같이 짜증나는 사고]은 생활 전반에 대한 절망감으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가 믿는 바로는, 우울증과 같은 장애를 일으키는 핵심적인 요소는 그와 같은 절망감의 일반화이다.”
그러나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스런 손실로 인한 피해를 복구할 수 없다고 느껴 중우울증에 빠지게 만드는가? 예로서, 세라는 왜 그처럼 부정적인 일련의 생각에 그토록 쉽게 빠졌는가?
‘나는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세라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는 언제나 자신감이 부족했읍니다. 자신을 매우 비하시켰지요. 나는 어느 모로 보나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꼈읍니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인식 부족과 관련된 고통스러운 감정이 대개 결정적인 요인이다.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고 잠언 15:13은 언급한다. 성서는 외적인 압력에 의해서만 아니라 내적인 불안으로 인해서도 우울한 영을 가지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무엇이 자기 비하를 초래할 수 있는가?
우리의 사고 방식의 일부는 양육 과정에서 형성된다. 세라는 이렇게 털어 놓았다. “어렸을 적에 부모로부터 칭찬을 받아 본 적이 없읍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따뜻한 칭찬의 말 한마디 들어본 기억이 없읍니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을 받고자 했읍니다. 나에게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심한 두려움이 있읍니다.”
세라가 나타낸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자하는 강렬한 욕구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많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연구 결과,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성취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는 사랑과 인정에 의해서 자기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거나 중요한 정도에 근거해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기도 한다. 어느 연구 팀이 보고한 바와 같이, “그와 같은 후원의 상실은 자기 비하 감정을 갖게 하며, 심하게는 우울증의 발병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완벽주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대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표현된다. 세라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어려서 받지 못한 인정을 받아 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려고 애썼읍니다. 세속 직장에서도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했읍니다. 나는 ‘완벽한’ 가정을 이루어야 된다고 생각했읍니다. 나는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읍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하자,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였다. 세라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내가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믿었으므로, 내가 거동을 못하게 되면 가족들은 엉망이 되고 사람들은 ‘그 여자는 나쁜 어머니에다 악처’라고 말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읍니다.”
세라의 생각은 중우울증으로 발전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인성에 대한 연구는, 세라가 유별난 경우에 속한 것이 아님을 밝혀준다. 역시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생했던 마가렛은 이렇게 인정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려했읍니다. 완벽주의자에다 항상 조바심을 내고 걱정거리를 만들어서 걱정하는 사람이었읍니다.” 비현실적으로 높은 목표를 세우거나 지나치게 양심적이 되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 많은 경우 우울증의 근본 원인이 된다. 전도서 7:16은 이렇게 경고한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완벽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은 감정적, 신체적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 좌절감은 또한 해로운 유형의 자책감을 가지게 만들 수도 있다.
“무엇 하나 올바로 하는 게 없단 말이야”
자책감은 긍정적인 반응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위험한 지역을 혼자서 걸어다녔기 때문에 강도를 만났을지 모른다. 그는 스스로 그러한 상황에 빠진 자신을 책망하고 이후로는 변화를 하여 비슷한 문제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나는 부주의한 사람이니까 이런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사람 됨됨이 자체를 탓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유형의 자책감을 느낄 때 자신의 성품을 흠잡게 되고 자기 비하를 하게 된다.
그처럼 해로운 자책감의 실례로서, 32세 된 머리아의 경우가 있다. 6개월 동안 오해로 인해서 그는 자기 언니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전화로 언니에게 심한 말을 하고 말았다. 그의 어머니는 머리아가 한 일을 알고는 그를 불러서 심하게 꾸짖었다.
머리아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는 어머니 때문에 몹시 화가 났지만, 언니가 심하게 상심했다는 것을 알고는 나 자신에 대해 더욱 화가 났읍니다.” 그후에 곧바로 아홉살 된 아들이 잘못을 하자 머리아는 마구 고함을 질렀다. 매우 당황한 그 아들은 후에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엄마, 꼭 나를 죽이기라도 하려는 듯한 소리였어요!”
머리아는 크게 낙담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내가 아주 몹쓸 사람이라고 느꼈읍니다. 나는 ‘무엇 하나 올바로 하는 게 없단 말이야!’라고 생각했읍니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읍니다. 그러자 실제로 심한 우울증에 빠지기 시작하였읍니다.” 머리아의 자책감은 해로운 것임이 증명되었다.
이상의 말은 중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모두 자기 비하를 한다는 뜻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성서에서 “마음의 근심”이라고 부르는 결과가 초래되는 경우에도, 그 원인은 풀어지지 않은 분노, 적의, 죄책감—실제든 과장이든—및 다른 사람과의 불화 등 여러 가지 감정이 포함된다. (잠언 15:13) 이 모든 것이 상한 심령 즉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세라는 상당 부분은 자신의 사고 방식이 우울증의 근본 원인임을 알고, 처음에는 크게 낙심하였다. 그는 이렇게 털어 놓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상당히 안도감을 느꼈읍니다. 왜냐하면, 나의 사고 방식이 우울증의 원인이라면 또한 사고 방식을 바꾸면 우울증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라는 이러한 생각이 자기에게는 고무적인 것이었다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는 특정한 문제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면, 앞으로 계속해서 나의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세라는 필요한 변화를 하였으며, 그러자 우울증이 사라졌다. 머리아, 마가렛 및 엘리자베스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우울증과 싸워 이겼다. 그들은 어떠한 변화를 하였는가?
[10면 삽입]
‘나의 사고 방식이 우울증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울증을 고칠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오히려 어느 정도 안도감을 느끼고 위로가 되었읍니다.’
[8, 9면 네모]
유년기 우울증: “죽었으면 좋겠어요”
이 문제를 20년 동안 연구해 온, 미국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의 도널드 맥뉴 박사와의 회견.
「깰 때이다」: 이 문제가 어느 정도나 만연해 있다고 봅니까?
맥뉴: 최근 뉴질랜드에서 천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연구를 통해 어린이의 약 10퍼센트가 아홉살이 되기 전에, 이미 우울증 발작을 경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읍니다. 또한 우리는 학령기 어린이의 10 내지 15퍼센트는 감정상의 장애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읍니다. 소수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읍니다.
「깰 때이다」: 어린이가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는지의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맥뉴: 한 가지 주된 증세는 어린이들이 어떤 일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밖에 나가서 놀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가족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읍니다. 집중력의 상실을 볼 수가 있읍니다. 숙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정신을 고정시키지 못합니다.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이나 죄책감을 볼 수 있읍니다. 자기는 아무 쓸모도 없다거나 아무도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식의 생각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합니다. 잠을 못자거나 늦잠을 자기도 하며, 식욕을 잃거나 과식을 합니다. 이에 더하여, “죽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식으로 자살에 대해 생각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읍니다. 이러한 증세들이 집합적으로 나타나고, 한두 주일씩 계속되면, 그 어린이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것입니다.
「깰 때이다」: 유년기 우울증을 유발하는 주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맥뉴: 우울증에 걸린 어린이마다 생활 가운데 특이한 요인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 주원인은 무언가의 손실입니다. 보통은 부모를 사별하는 손실의 경우가 많지만, 친구나 가까운 친척을 사별하거나 애완 동물을 잃는 일까지도 포함될 수 있읍니다. 그러한 손실 다음으로는 무시나 배척을 당하는 일을 들 수 있읍니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어린이가 부모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자기는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읍니다. 때때로 어린이가 잘못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기도 합니다. 잘못을 했든 안했든, 집안에서 무슨 일이 잘못되기만 하면 어린이의 탓으로 돌리는 겁니다. 그 때문에, 자기는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부모의 감정상의 장애를 들 수 있읍니다.
「깰 때이다」: 박사가 공저한 「왜 조니는 울지 않는가?」(Why Isn’t Johnny Crying?)라는 책에서는 우울증에 걸린 일부 어린이는 마약이나 알콜을 남용하거나 비행을 저지르기도 한다고 언급하고 있읍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맥뉴: 우리는 어린이가 우울증을 숨기려고 애쓴다고 믿습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숨기려고 합니다. 어린이가 우울증에 대처하는 방법은 대개 자동차를 훔치거나, 마약을 복용하거나,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이 다른 일로 바쁘게 지내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나빠진 감정을 위장하려고 합니다. 사실상, 우울증을 감추려고 하는 점이 어른과 어린이의 가장 명백한 한 가지 차이점입니다.
「깰 때이다」: 어린이가 단순히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에 걸려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맥뉴: 이런 어린이와 대화를 해서 그 마음을 열게 하면, 대개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읍니다. 또한 우울증을 적절하게 치료하면, 행동이 개선됩니다. 표면적으로는 또 다른 어떤 현상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항상 우울증이 도사리고 있읍니다.
「깰 때이다」: 어떻게 우울증에 걸린 어린이가 마음을 열도록 할 수 있읍니까?
맥뉴: 무엇보다도,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택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무슨 골치 아픈 일이 있니?’ ‘슬프거나 울적한 기분이 든 적이 있니?’ ‘너 화났니?’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을 사별한 경우라면, 상황에 따라서 ‘너도 나처럼 할머니가 보고 싶니?’라는 식으로 질문을 할 수 있읍니다. 어린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털어 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깰 때이다」: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어린이에게 어떻게 하라고 권하겠읍니까?
맥뉴: 부모에게 그 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처럼 문제를 알리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린이 자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나 교사는 대개 그 점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부모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는 청소년을 여러 명 본 적이 있읍니다.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요. 도움이 필요해요.” 그들은 도움을 받았읍니다.
「깰 때이다」: 부모는 우울증에 걸린 자녀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읍니까?
맥뉴: 만약 우울증이 심해지는 것 같으면, 폐렴을 집에서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집에서 다루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심한 우울증의 경우라면 전문가를 찾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약물 치료가 필요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최저 다섯살 된 어린이에게까지, 환자의 절반 이상은 약물 치료법을 사용합니다. 또한 어린이의 사고 방식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러한 방법들을 사용하면 우울증은 눈에 띄게 치료될 수 있읍니다.
「깰 때이다」: 병세가 심하지 않은 경우에, 부모는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맥뉴: 자신과 가정을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별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그에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는 심각한 손실을 겪었을지 모릅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자녀가 느끼는 슬픔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자녀에게 슬픔을 스스로 극복할 자유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자녀에게 특별한 주의, 칭찬 및 감정적 지원을 베풀어야 합니다. 자녀와 단 둘이서만 보내는 가외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따뜻한 접촉을 갖는 것이 최상의 치료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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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싸워 이김깨어라!—1987 |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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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싸워 이김
“너는 모략[기술있는 지도, 신세]으로 싸우라”고 잠언 24:6은 언급한다.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는 단순히 좋은 의도만이 아니라 기술도 필요하다. 분명히,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본의 아니게 감정이 더욱 악화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1984년에 실시한 어느 연구에 의하면, 우울증에 걸린 일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과음을 하거나 과식을 해서 긴장을 풀며, 안정제를 더 많이 복용’함으로써 우울증을 극복해 보려고 애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결과 “더욱 심한 우울증과 신체적인 증세”가 초래되었다.
일부 우울증 환자들은 정신력이 약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술있는 지도를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우울증은 정신력의 약함의 표시도 영적인 실패의 표시도 아니다. 연구 결과는 뇌 속에 어떤 화학적인 기능 장애가 있을 때에도 이런 심각한 장애가 생길 수 있음을 지적한다. 신체적인 병이 우울증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두 주일 이상 심한 우울증이 있으면 의료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문제의 원인이 되는 신체적 병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에도, 대개의 장애는 적절한 약물 치료나 영양 보충을 받으면서 사고 방식을 조정하면 개선이 가능하다.a 우울증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다시는 우울한 기분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슬픔은 생활의 일부이다. 하지만, 기술있게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면, 우울증에 더 잘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의사는 종종 항우울증 약을 처방해 준다. 이것은 화학적인 불균형을 없애 주기 위해서 고안된 약이다. 앞서 언급된 엘리자베스는 이 약을 사용하였다. 그랬더니 몇 주일 안 되어서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효과를 보려면 약을 복용하면서 동시에 긍정적인 태도를 배양해야 합니다. 약의 ‘지원’으로 회복되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읍니다. 또한 매일의 운동 계획을 꾸준히 지켰읍니다.”
하지만, 항우울증 약을 사용한다고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난처한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설사 화학적인 기능 장애가 시정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사고 방식이 시정되지 않으면 우울증은 재발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일을 기꺼이 하고자 한다면 많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털어 놓으라
세라는 가족적인 책임의 짐을 혼자서 일방적으로 지는 데다가 세속 일의 압력까지 받는 것에 대해 매우 분개하고 있었다. (7면 참조.) 세라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나는 가슴 속에 감정을 쌓기만 했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심한 절망감을 느끼고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읍니다. 난생 처음으로 감정을 털어 놓기 시작했읍니다. 그것이 전환점이 되었읍니다. 그 전화를 한 것이 위안이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이 있으면 마음에 있는 것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감정 이입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보라. 결혼 배우자, 가까운 친구, 친척, 전도 봉사자, 의사 혹은 훈련받은 상담가가 좋을 것이다. 「결혼 생활과 가정지」(Journal of Marriage and the Family)가 보도한 어느 연구에 의하면, 우울증을 물리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 하나는 “인생의 시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후원자의 도움”이라고 한다.
우리의 정신이 문제나 손실을 당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함으로써 해결되지 않은 채로 문제를 방치하지 않도록 막아 주는 치료 방법은,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감정을 털어 놓아야 한다. 거짓된 자존심 때문에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려고 자신을 억제하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잠언 12:25은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감정을 털어 놓아야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근심”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비로소 격려의 “선한 말”을 해줄 수가 있다.
세라는 이렇게 회상하였다. “나는 단지 동정심이나 구하려는 생각으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인데, 더 많은 유익을 얻었읍니다. 동생은 내 생각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도와주었읍니다. 동생은 내가 혼자서 너무 많은 책임을 떠맡고 있다고 말했읍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동생의 충고를 적용하기 시작하자 커다란 짐이 벗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읍니다.” 잠언 27:9의 이러한 말은 과연 참되다.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솔직히 이야기해 주고 사물을 올바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나 배우자가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때로는 한번에 한 가지 문제에만 집중하도록 도와주고자 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방어적이 되지 말고, 그와 같은 “기술있는 지도”를 소중히 여기라.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감정적인 압박을 원천적으로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변화시키거나 얼마간 바꾸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단계들을 지적해 주는 얼마의 단기적인 목표를 제시해 줄 사람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b
우울증과 싸우는 데는 대개 자기 비하 감정과 싸우는 것이 요구된다. 어떻게 그와 같은 감정을 기술있게 물리칠 수 있는가?
자기 비하 감정과의 싸움
예를 들면, 앞 기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머리아는 집안에서 다툼이 있은 후에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결론내렸다. ‘나는 아주 몹쓸 사람이야. 무엇 하나 올바로 하는 게 없단 말이야.’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머리아가 자신이 내린 결론을 분석해 보기만 했더라면, 이렇게 추리함으로써 그러한 생각에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일은 올바로 하고 어떤 일은 잘못하지. 몇 가지 실수를 하였으니, 보다 신중하게 일을 할 필요가 있겠군. 하지만 이런 일을 지나치게 확대하지는 말아야지.’ 그처럼 추리했더라면 그는 자기 비하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정죄하는 지나치게 비평적인 마음의 소리는 종종 잘못된 것이다! 우울증을 낳는 왜곡된 생각의 몇몇 전형적인 예가 다음 면의 네모 안에 열거되어 있다. 그처럼 잘못된 생각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고 그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37세 된 홀어머니인 진 또한 자기 비하 감정의 피해자였다. 그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는 아들 둘을 기르느라 압박을 많이 받았읍니다. 그러나 다른 홀어버이들이 재혼하는 것을 볼 때면, ‘나는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읍니다. 부정적인 생각만 하다 보니 이러한 생각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읍니다. 결국 우울증으로 인해 입원하게 되었읍니다.”
진은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퇴원 후에, 1981년 9월 8일호 「깰 때이다」(한국어판은 1981년 12월 15일호)지에 실린 ‘우울증에 걸리게 할 수 있는 생각들’의 목록을 읽어 보았읍니다. 매일 밤 그 목록을 읽었읍니다. 몇몇 잘못된 생각으로는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있다,’ ‘나는 결코 상심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행복하고 침착해야 한다,’ ‘나는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와 같은 것들이 있었읍니다. 나는 완벽주의자가 되려는 경향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식의 생각이 들면, 그런 생각을 멈추도록 도와 달라고 여호와께 즉시 기도했읍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자기 비하 감정에 빠지게 하여, 온통 생활상의 어려움만 보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들은 보이지 않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특정한 잘못된 생각들을 피하려고 스스로 노력함으로써, 나는 우울증을 극복하였읍니다.” 당신의 생각 가운데도 의문을 품어 보거나 버려야 할 것들이 있는가?
내 잘못인가?
알렉산더는 심한 우울증에 걸리기는 하였지만, 그럭저럭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는 하였다. (3면 참조.) 자기가 가르치던 학생들 중에 몇몇이 중요한 읽기 시험에서 낙제를 하자, 그는 자포 자기하게 되었다. 그의 아내, 에스터는 이렇게 말하였다. “남편은 자기는 실패했다고 느꼈읍니다. 나는 남편에게 그것은 남편의 잘못이 아니며, 100퍼센트 성공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해 주었읍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죄책감에 압도되어 정신의 문을 닫았으며,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대개, 지나친 죄책감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비현실적인 책임감을 느낄 때 초래된다.
아무리 자녀라 하더라도, 부모가 자녀의 생활에 강한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만일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이렇게 자문해 보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예기치 않은 어떤 일에 직면했는가? (전도 9:11)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능력의 한도 내에서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였는가? 나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지는 않았는가? 보다 합리적이 되고 겸허해질 필요가 있는가?—빌립보 4:5.
그러나 당신이 심각한 실수를 범하였으며, 더우기 자신의 잘못이라면 어떠한가? 자신을 정신적으로 계속해서 질타한다고 실수가 개선되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 기꺼이 “널리” 용서해 주시지 않는가? (이사야 55:7) 하나님께서는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는데, 스스로를 정죄하여 그러한 잘못으로 인해 평생토록 정신적인 고통을 주어서야 되겠는가? (시 103:8-14) 끊임없이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단계를 취할 때,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우울증 또한 덜 수가 있다.—고린도 후 7:8-11, 신세 참조.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라’
우리의 감정적인 문제들 중 일부는 지나간 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수가 있다. 부당한 대우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이런 것들은 기꺼이 용서하고 잊어버려야 한다.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쉽지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을 자꾸 생각하여 남은 인생을 망치는 것보다는 잊어버리는 편이 낫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립보 3:13, 14) 바울은 살인을 승인한 일을 포함하여 그가 유대교에서 추구했던 잘못된 행로만 계속 생각하지 않았다. (사도 8:1) 그런 것이 아니라, 바울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는 미래의 상을 위하여 자격을 갖추는 일에 자신의 힘을 집중하였다. 머리아 역시 지나간 일만 계속 생각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한때는 자기를 잘못 길렀다고 어머니를 탓하기도 하였다. 머리아의 어머니는 탁월해 지는 것과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였고, 그 때문에 머리아는 완벽주의자가 되었고 매력적인 외모를 갖춘 여동생에 대해 질투하는 경향이 있었다.
“잠재해 있는 이러한 질투심이 갈등의 근본 원인이었는데도, 나의 행동 방식을 가족의 탓으로만 돌렸읍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와 같은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읍니다. ‘누구의 잘못이든 간에 실제로 무슨 차이가 있는가?’ 혹 어머니가 나를 잘못 길렀기 때문에 내가 얼마의 나쁜 기질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요점은 무언가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계속 행동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머리아가 정신적으로 필요한 조정을 하여 우울증과 싸워 이기는 데 도움이 되었다.—잠언 14:30.
사람의 진정한 가치
모든 요인을 고려해 볼 때, 우울증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갖는 것이 요구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편지하였다. “여러분 각자에게 말하는데, 진정한 가치 이상으로 자신을 평가하지 말고 자신을 냉철하게 평가하시오.” (로마 12:3, 찰스 B. 윌리엄스역) 거짓된 자존심, 자신의 한계의 무시 및 완벽주의는 모두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극단으로 흐르는 것도 피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 각자의 개인적인 가치를 강조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가 12:6, 7) 우리는 하나님께 그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 대해서 아주 사소한 점까지도 유의하신다. 그분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 대해서 우리 자신이 모르는 것까지도 아신다.—베드로 전 5:7.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세라가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감정을 개선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창조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분이 한 인격체로서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든,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엄마 아빠가 나를 어떻게 길렀든 간에, 여호와와의 개인적인 벗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자존심이 실제로 생기기 시작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우리의 가치는 다른 사람의 인정 여부에 의존하지 않는다. 물론 배척당하는 것은 불유쾌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이 인정하는 일이나 인정하지 않는 일을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로 삼을 때, 우리는 우울증에 걸리기가 쉬울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던, 다윗 왕도 한번은 “비루한 자,” 달리 말하자면 “무가치한 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부르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고, 그러한 말을 자신의 가치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으로 보지 않았다. 사실 사람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시므이는 나중에 사과하였다. 설사 어떤 사람의 비평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그러한 비평은 우리가 한 특정한 일을 겨냥한 것이지 한 인격체로서의 우리의 가치를 비평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사무엘 하 16:7; 19:18, 19.
세라에게는 성서와 성서에 기초한 출판물을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기초를 놓는 데 도움이 되었다. 세라는 이렇게 회상하였다. “하지만, 기도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읍니다. 나는 커다란 일들에 대해서만 하나님께 기도해야지 사소한 문제들로 하나님을 귀찮게 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곤 했읍니다. 이제는 무슨 일이라도 하나님께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신경이 날카로와질 때는, 차분하고 합리적이 되게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시며 매일매일의 견디기 어려운 모든 상황들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알 때, 더욱더 그분께 이끌리게 됩니다.”—요한 1서 5:14; 빌립보 4: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의 한계를 이해하시고, 우리에게 매일의 문제를 타개해 나갈 힘을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우울증과 싸우는 열쇠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해봐도 우울증이 좀처럼 떠나지 않는 수가 있다.
‘시시 각각’으로 인내함
여러 해 동안 중우울증과 싸워 왔던 47세 된 어머니인 에일린은 이처럼 한탄한다. “영양 보충에 항우울증 약에, 모든 것을 다 해보았읍니다. 잘못된 생각을 조정할 줄도 압니다. 이것이 보다 합리적인 사람이 되는 데는 도움이 되었읍니다. 하지만 우울증은 여전합니다.”
우울증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울증과 기술있게 싸우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도 이 장애를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답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 우울증은 어떤 심각한 병을 치료하기 위해 투여한 약물의 부작용으로 생긴다. 따라서, 그러한 약물의 사용은 이율 배반적이다. 그것은 그러한 약물이 다른 어떤 의학적인 문제를 치료하는 유익도 있지만, 그 부작용으로서 우울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를 해주는 다른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 놓는 것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깊이를 실제로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알고 도와주신다. 에일린은 이렇게 밝혔다. “여호와께서는 계속 노력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읍니다. 그분은 내가 포기하지 않게 도우셨고 내게 희망을 주셨읍니다.”
하나님의 도움과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감정적인 지원과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우리는 문제에 압도당하여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때가 되면 여타의 만성 질환에 적응했던 것처럼 우울증에도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인내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인내는 가능하다! 심한 우울증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온 진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그것을 매일매일이 아니라 시시 각각으로 부닥쳤읍니다.” 에일린과 진은 모두 성서에 약속되어 있는 희망으로 계속 견뎌 나갔다. 그 희망이란 무엇인가?
귀중한 희망
성서는 가까운 장래에 이러한 때가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인류의]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 21:3, 4) 그때에 하나님의 왕국은 지상의 신민 모두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전하게 치료해 줄 것이다.—시 37:10, 11, 29.
단지 신체적인 고통만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괴로운 고민과 고통까지도 사라질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신다.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이사야 65:17, 18) 인류가 지난날의 모든 짐에서 벗어나 매일 수정처럼 맑은 정신으로 깨어나 그 날의 활동을 열심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사람들은 더는 몽롱하고 우울한 기분으로 인해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다시 있지 않’을 것이며, 현재와 같이 우울증을 초래하는 비극적인 손실이나 매일매일의 감정적 압박이 사라질 것이다. 사랑의 친절, 진실 및 평화가 충만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서로 교제하기 때문에, 극한 대립은 사라질 것이다. (시 85:10, 11) 죄의 영향이 제거됨에 따라, 마침내 하나님의 의의 표준을 완전히 달하게 되어 내적으로 충만한 평화를 누리는 즐거움이 얼마나 훌륭할 것인가!
이러한 가슴 설레는 전망은 제아무리 심한 우울증과도 계속 싸우게 해주는 커다란 자극제이다. 하나님의 신세계에서는 완전해진 사람들이 우울증에 대해 완전 무결한 승리를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각주]
a 「깰 때이다」지는 어떤 특정 형태의 치료를 지지하거나 권장하지 않으며, 다만 도움이 되는 최신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본지 1982년 2월 1일호에 실린 “중우울증 격퇴—전문적 치료법”을 보라. 중우울증과는 완전히 다른 단순한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본지 1983년 1월 15일호에 실린 “어떻게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를 보라.
b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믿고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은, 죄책감이나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을 더해 줄 수 있는 단정적인 말을 피해야 할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으로 낙관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다음 호 잡지에서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다른 사람이 도울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지식이 제공될 것이다.
[13면 네모]
왜곡된 생각의 몇가지 유형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 사물을 흑백의 범주로 본다. 자신의 성과가 완전에 미치지 못하면, 자신은 완전히 낙오자라고 생각한다.
지나친 일반화: 하나의 부정적인 사건을 끝없는 실패의 연속의 한 형태로 본다. 예를 들면, 한 친구와 한번의 언쟁을 하고 나서 이렇게 결론 짓는다. ‘나는 친구를 전부 잃고 말거야.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니까.’
긍정적인 부면의 무시: 긍정적인 경험을 “별로 중요치 않다”거나 “나는 그만한 자격이 없다”는 주장으로 배척한다. 한 가지 사소한 부정적인 면만 계속 생각함으로써 전체적인 견해가 어두워진다.
결론의 비약: 어떤 사람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혼자서 결론을 내리고는 그것을 확인하기조차 귀찮아 한다. 혹은 언제나 나쁜 결과가 생길 것이라고 절대 확신한다.
확대 혹은 축소 해석: 어떤 것(자기 자신의 실수나 다른 사람의 성취와 같은 일)은 그 중요성을 과장하는가 하면, 어떤 것(자기 자신의 바람직한 특성이나 동료의 불완전한 특성)은 얕보아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만다. 흔히 있는 부정적인 사건을 끔찍스런 재난이나 되는 것처럼 여긴다.
자기 책임 의식: 사실상 본래 자신의 책임이 아닌 어떤 부정적인 외부의 사건을 자신이 원인인 것처럼 생각한다.
의학 박사, 데이비드 D. 번스 저 「상쾌한 느낌—기분 전환 요법」(Feeling Good—The New Mood Therapy)에 근거한 자료
[12면 삽화]
감정 이입할 줄 아는, 믿고 의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 놓는 것은 치료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으며 커다란 위안을 준다
[15면 삽화]
하나님께서 하찮은 참새도 가치있게 보신다면, 우리는 훨씬 더 가치있게 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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