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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식간에 사라지다!
    깨어라!—1990 | 4월 1일
    • 순식간에 사라지다!

      십 오층 높이로 솟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사이로 녹색빛이 어슴프레 비치는 곳을 거닐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머리 위에는 온갖 생명체가 가득한, 지상에서 가장 조밀하고 풍요한 호흡 대기권이 있다. 길이가 수십 미터 혹은 심지어 수백 미터에 달하는 덩굴들이 나무에 얽혀 있으며, 줄기와 가지 곳곳에 단단히 붙어 자라는 식물들이 나무를 둘둘 감고 있다. 만발한 열대 꽃들이 고요한 온실 대기에 향기를 내뿜는다.

      이것이 열대 우림이다. 그러나 열대 우림은 아름다운 장소에 불과하거나, 지붕을 이룬 듯 우거진 숲 사이로 빛줄기가 스며들어오는, 안개 자욱한 오솔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열대 우림은 여러 부분이 활기차고 정교하게 상호 작용하는, 믿을 수 없이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곳에는 생명체가 굉장히 많아서, 지표면의 다른 어느 곳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우림은 지구 육지의 6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동식물 종류 전체의 절반이 그곳에 있다. 우림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육지에서 나는 모든 물품의 약 3분의 1을 생산한다. 머리 위로 높게 덮인 삼림 지붕은 진귀한 곤충과 새들, 원숭이와 그 외 포유 동물들의 보금자리다. 대부분은 결코 땅에 내려오지 않는다. 동물들은 나무에서 먹을 것을 얻고 나무에 기거하면서, 그 대가로 나무들에게 수분을 하거나 과일을 먹고 배설물을 통해 씨를 퍼뜨린다.

      날마다 비가 와서 삼림을 흠뻑 젖게 하고 생물의 정교한 순환에 활기를 더해 준다. 비는 나뭇잎을 씻으며, 나무에 붙어 자라는 착생 식물이라는 것에 양분을 주는 영양가 풍부한 액체로 줄기를 훑어 내려간다. 한편 착생 식물은 나무가 대기에서 주요 식품인 질소를 빨아들이도록 돕는다. 많은 착생 식물에는 수십 리터의 물을 저장하는 잎으로 된 “물탱크”가 있어서 산청개구리와 도롱뇽과 새들이 살 수 있는 작은 못을 높은 공중에 만들어 준다.

      삼림 바닥에 도달하는 양분은 무엇이든 신속히 흡수된다. 포유 동물과 수많은 곤충 및 세균이 합동하여 견과류와 동물 시체와 나뭇잎을 썩게 만든다. 그런 다음 지면 자체가 그것을 열렬히 흡수한다. 발 밑의 부스러기들을 치워 보면 흰 섬유로 된 두껍고 푹신푹신한 깔개 같은 것 곧 뿌리와 균류로 짜여진 직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균류는 빗물이 양분을 씻어가기 전에 뿌리가 양분을 빨리 흡수하게 한다.

      그런데, 이제 미식 축구장만한 크기의 제한된 작은 구획 내에서 우림 속을 거닌다고 생각해 보자. 갑자기 그 삼림 구획 전체가 사라진다. 단 일초 만에 파괴된 것이다! 그리고 섬뜩한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같은 크기의 바로 다음 구획도 단 일초 만에 없어지고 그 다음 구획도 차례로 계속 사라진다. 마침내 남은 것이라고는 텅빈 벌판, 뜨겁게 내리쬐는 열대 태양 아래 몹시 달구어진 땅뿐이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바로 그런 속도로 세계의 열대 우림이 파괴된다. 그보다 더 빨리 파괴된다고 추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뉴스위크」지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미국)의 절반만한 지역이 매년 완전히 파괴된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 1989년 9월호는 그러한 지역의 크기가 스위스와 네덜란드를 합한 것만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크기가 얼마만하든 간에, 손실은 아연 실색할 정도다. 삼림 벌채는 세계적으로 횡행해 왔지만, 주로 한 나라에 집중된다.

      대표적인 예: 브라질

      1987년에 아마존 분지를 찍은 위성 사진은 이 지역의 삼림 벌채율이 일부에서 추산하는 지구 전체의 삼림 벌채율보다 더 높음을 알려 주었다! 사람들이 삼림을 태워 없앰에 따라 수많은 불꽃이 밤을 밝혔다. 연기 구름의 규모는 인도 크기만하였는데, 너무 짙어서 일부 공항을 폐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추산에 따르면, 아마존 분지에서는 매년 벨기에만한 크기의 우림 지역을 잃는다.

      브라질의 환경 보호론자, 주세 루첸베르게르는 그것을 “생명 역사상 최악의 대학살”이라고 불렀다. 세계 도처에서 환경 보호론자들은 격분한다. 그들은 우림이 처한 곤경에 대중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심지어 티셔츠와 록 음악회를 통해서도 “우림을 구하자”는 외침이 있었다. 그에 더하여 재정상의 압력도 있었다.

      브라질은 천억 달러가 넘는 외채를 지고 있으며, 단지 이자를 갚기 위해서도 수출 소득의 약 40퍼센트를 사용해야 한다. 브라질은 외국의 원조와 차관에 상당히 의존해 있다. 그러므로 국제 은행들은 삼림 훼손에 사용될 수 있는 차관은 거절하기 시작하였다. 선진국들은 브라질이 환경 보호를 개선한다면 부채를 일부 탕감해 주겠다고 제의하였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브라질이 처녀림을 뚫고 지나가는 도로를 건설하는 데 자금을 대주지 말 것을 일본에 요청하였다.

      세계적으로 난처한 상황

      많은 브라질인에게 그 모든 압력은 위선투성이로 보인다. 선진국들은 오래 전에 자국의 삼림을 없앨 대로 없앴으며, 그렇게 하는 것을 다른 어느 나라도 감히 가로막지 못하게 하였다. 미국은 현재 자체 우림의 마지막 부분을 없애고 있다. 물론 그것은 열대 우림이 아니라 북서 태평양의 온대 우림이다. 그곳에서도 여러 종(種)의 생물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삼림 벌채는 세계적인 문제이지, 단지 브라질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열대 우림 손실은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한 손실의 반 이상은 브라질 밖에서 일어난다. 세계에서 대규모 우림 지역이 있는 다른 두 곳은 중앙 아프리카와 동남 아시아인데, 그곳에서도 삼림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삼림 벌채가 미치는 영향 역시 세계적인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에게 굶주림과 갈증과 죽음을 초래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것은 우리가 먹는 식품, 우리가 사용하는 의약품, 우리가 사는 곳의 날씨—어쩌면 인류의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림이 어떻게 그토록 광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일부 전문가들의 말대로, 앞으로 몇십 년 안에 우림이 실제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참으로 대참사가 될 것인가?’

      그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우선 무엇 때문에 우림이 파괴되는가?’하는 질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5면 지도와 도해]

      사라지는 우림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삼림 벌채 전

      현재 상태

      오늘날의 삼림 벌채율로 계산해 본 2000년

  • 누가 우림을 파괴하는가?
    깨어라!—1990 | 4월 1일
    • 누가 우림을 파괴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에는 흔히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탓하는 말이 따른다. 여러 세기 동안 열대 나라의 농부들은 화전식 농경법으로 토지를 경작해 왔다. 그들은 삼림의 일부를 벌채하여 불사르는데, 불을 지르기 직전이나 직후에 작물을 심는다. 삼림의 재는 작물에 양분이 된다.

      이런 형태의 농경법은 오래 전에 열대 우림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밝혀 주었다. 열대 우림의 약 95퍼센트는 아주 메마른 토양에서 자란다. 우림은 양분을 매우 빨리 재순환시키므로 대부분의 양분은 비로 인해 토양에서 쓸려가는 일 없이 지면 위의 초목에 잘 보존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림은 그 환경에 꼭 알맞다. 이러한 사실은 농부에게는 그다지 희소식이 아닐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곤경

      비는 삼림을 불태우고 남은 재에 담긴 양분을 너무도 빨리 씻어간다. 서서히 농사는 악몽처럼 된다. 그 점에 관해 볼리비아의 한 가난한 농부는 이렇게 말하였다. “첫해에 벌목을 하고 불태웠다. 그리고 재가 덮인 곳에서 옥수수가 크고 달게 자랐다. 우리 모두는 마침내 해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 그런데, 그때 이후 사태가 점점 악화되었다. 토양이 자꾸 메말라가고 잡초 외에는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다. ·⁠·⁠· 그러면 병충해는 어떠한가? 병충해가 그렇게 많은 것은 처음 보았다. ·⁠·⁠· 우리는 그야말로 망할 지경이다.”

      과거에 농부는 단지 새로운 삼림지를 벌채하고, 전에 사용한 지역은 묵혀 두었다. 일단 삼림이 원래 상태로 회복되면 다시 벌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려면, 벌채된 지역 주위를 본래의 삼림이 둘러싸고 있어서 곤충과 새와 동물들이 씨를 퍼뜨리고 새로 자란 나무들을 수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구 폭발 역시 상황을 변화시켰다. 농부들이 밀집됨에 따라 토지를 묵혀 두는 기간이 점점 짧아진다. 종종, 이주 농부들은 몇년 안에 토지를 못쓰게 만들며, 삼림으로 이동하여 인접한 널따란 삼림을 태운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소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저개발국 사람들 중 약 3분의 2가 취사와 난방용 연료로 나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십억이 넘는 사람은 현재 나무를 다시 심는 속도보다 훨씬 빨리 화목을 베어야만 필요한 연료를 충당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요인

      가난한 사람들을 탓하기는 쉽다. 그러나 생태학자 제임스 D. 네이션스와 대니얼 I. 코머가 묘사한 바와 같이, 그렇게 하는 것은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병사들을 탓하는” 격이다. 네이션스와 코머는 이렇게 덧붙인다. “병사들은 장기판의 졸에 지나지 않는다. 삼림 벌채에서 이주자들이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이주자 가족들이 우림에 들어오는 이유를 물어보아야 한다. 대답은 간단하다. 즉 그들에게는 발붙일 땅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열대의 한 나라의 경우, 불과 2퍼센트의 지주들이 토지의 약 72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한편, 농부들의 약 83퍼센트는 먹고 살 만한 토지가 부족하거나 아예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도처에서 그러한 양상이 되풀이된다. 광활한 사유지를 사용하여 지방민의 식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온대의 부유한 나라들에 팔 수출용 작물을 재배한다.

      벌목업은 또 다른 이름난 범인이다. 벌목이 삼림에 초래하는 직접적인 피해 외에도, 벌목으로 인해 우림은 불과 인간의 침해를 받기가 더 쉬워진다. 처녀림에 불도저로 닦아 놓은 벌목로는 이주 농부 무리가 진출할 길을 열어 놓는다.

      그리고, 흔히 그렇듯이, 농부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면 목장주들이 토지를 사서 방목지로 만든다. 이러한 상황은 남아메리카와 중앙 아메리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 지역에서는 사육하는 육우 대부분을 보다 부유한 나라들에 수출한다. 연간 미국 일반 가정의 고양이가 먹는 소고기 양은 중앙 아메리카 일반 사람이 먹는 양보다 많다.

      결국, 바로 선진국들이 물릴 줄 모르는 욕심을 채우려고 열대 우림을 소멸시키도록 돈을 대주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열대 나라에서 진귀한 열대 목재와 농산물과 소고기를 열심히 사들이는 데에는 모두 삼림을 대체하거나 훼손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미국인과 유럽인이 코카인을 갈구하는 탓에 페루에서는 수십만 에이커에 달하는 우림을 벌채하고 돈벌이가 좋은 작물인 코카를 재배하게 되었다.

      실망스러운 소득

      많은 정부는 삼림 벌채를 적극 장려한다. 그들은 목장주와 목재 회사 및 수출 농업에는 세금을 감면해 준다. 일부 나라들은 삼림을 벌채하여 토지를 “개량”한다는 조건으로 농부에게 토지를 준다. 동남 아시아의 한 나라는 수많은 이주 농부를 오지의 우림으로 운송해 주었다.

      그러한 정책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혹은 침체하는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삼림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구실이 따른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이해하는 바와 같이, 그러한 단기 소득조차 허황한 것이다. 이를테면, 농부들이 농사짓기에 부적합한 토지라면 목장주들이 방목하기에 적합할 리가 없을 것이다. 방목지는 흔히 십 년이 지나면 쓸모없게 된다.

      목재 산업 역시 그다지 나을게 없다. 전혀 앞을 내다보지 않고 열대 활엽수를 삼림에서 베어낼 경우 삼림은 급속히 줄어든다. 세계 은행은 현재 열대 목재를 수출하는 33개 국 중 20여 개 국은 십 년 안에 목재가 바닥날 것이라고 추산한다. 타이에서는 삼림 벌채가 하도 심하여 모든 벌목을 법으로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리핀의 삼림은 1990년대 중반이 되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가장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것이다. 즉 연구 결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우림 지역은 그대로 둔 채 그 산물—이를테면 과일과 고무—을 거둬들일 경우 더 많은 수입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렇다. 같은 땅에서 농사를 짓거나 방목을 하거나 벌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입을 가져온다. 그런데도 삼림을 파괴하는 행위는 그칠 줄 모른다.

      지구는 이러한 취급을 영원히 견딜 수 없다. 「열대림 구조」(Saving the Tropical Forests) 책에서 이렇게 기술하는 바와 같다. “우리가 현재대로 계속 파괴한다면, 문제는 과연 우림이 사라질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 사라질 것인가이다.” 그러면 우림이 모두 파괴될 경우 세계는 참으로 고통을 당할 것인가?

      [7면 삽화]

      삼림을 파괴하는 요소

      댐에 의한 수몰

      벌목 행위

      방목

      화전식 농경

  • 왜 우림을 구해야 하는가?
    깨어라!—1990 | 4월 1일
    • 왜 우림을 구해야 하는가?

      관중은 축구 경기를 구경하면서 요란하게 환호한다. 경기가 한없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관중은 선수들을 계속 총으로 쏘아 죽인다. 선수들이 죽어서 하나씩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온다. 관중은 경기 속도가 느려지자 격분하게 된다.

      삼림 벌채도 그와 매우 비슷하다. 인간은 삼림을 즐기며, 사실 삼림에 의존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선수들에 해당하는 것 곧 복잡한 상호 작용을 통해 삼림을 계속 살아 있게 하는 여러 종류의 식물과 동물을 계속 죽인다. 하지만 이것은 경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삼림 벌채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우림을 본 적이 없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생활의 질에 영향을 준다.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 우림의 최대 자산은 엄청나게 다양한 생물인데, 과학자들은 그것을 생명 다원체라고 부른다. 말레이시아 우림 반 평방 킬로미터 안에는 약 835종의 나무가 자라는데, 이는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것을 합한 것보다 많은 수다.

      그러나 이처럼 풍성한 생명 복합체는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 한 과학자는 각 생물을 비행기 리벳에 비하였다. 리벳이 자꾸 빠져나갈수록 남아 있는 리벳도 압력을 더 크게 받아 견디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비교가 타당한 것이라면 지구는 문제에 봉착한 한 “비행기”인 셈이다. 일부 사람들의 추산에 따르면 우림이 없어짐에 따라 해마다 만 종의 동식물이 사라지며, 현재 멸종 속도는 지구 역사 이래 이제까지의 속도보다 약 400배나 빠르다.

      과학자들은 생명 다원체가 이렇게 감소하는 데 따르는 지식의 무참한 손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들은 이것이 마치 도서관의 책들을 읽기도 전에 도서관을 불사르는 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좀더 분명히 볼 수 있는 손실이 더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처방되는 의약품 중 약 25퍼센트는 열대림 식물을 원료로 한 것이다. 그러한 의약품 중 한 가지로 인해 소아 백혈병 회복률이 1960년대에 20퍼센트였던 것이 1985년에 80퍼센트로 증가하였다. 그러므로 세계 야생 생물 기금에 따르면, 우림은 “방대한 약방과 같다.” 그리고 의료용으로 가능한지를 시험해보기는커녕 발견되지도 않은 식물이 아직도 무수히 많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먹는 농작물 중 원산지가 우림인 식물에서 얻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11면 네모 안 참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은 삼림에서 자라는 강인한 그 갖가지 식물에서 유전자를 모아 그 후손격인 한층 연약한 재배 작물에 질병 저항력을 키워주는 데 사용한다. 과학자들은 그런 식으로 농작물이 손실되지 않게 하여 수억 달러를 건졌다.

      뿐만 아니라, 우림에서 나는 식품이 세계에서 알아주는 진미가 될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북아메리카인 대다수는 단지 백 년 전만 해도 선조들이 바나나를 낯설고 진귀한 과일로 보았으며, 낱개로 포장된 바나나 한 개에 2달러를 지불했다는 것을 모른다.

      세계적 상황

      삼림 벌채의 궁극적 피해자는 사람 자신이다. 세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온 세계를 휘감을 때까지 번져 나간다. 어떻게 그러한가? 전형적인 열대 우림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자.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우림의 두드러진 특징은 비다. 하루에 20센티미터 이상, 일 년에 9미터 이상 비가 내리기도 한다! 우림은 그렇게 억수같이 오는 비에 대처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다.

      삼림 지붕은 빗방울의 힘을 약화시켜 빗물이 땅을 쓸어갈 수 없게 한다. 많은 잎은 끝이 길쭉하게 되어 있어서 잎 끝에 무거운 빗방울이 부딪쳐 흐트러진다. 그러므로 내려치는 비가 차분한 빗방울로 변하여 부드럽게 땅으로 떨어진다. 잎의 끝은 또한 잎이 발산 작용을 다시 할 수 있도록 잎에서 물을 빨리 떨어뜨리면서, 대기에 습기를 되돌려준다. 뿌리 조직은 삼림 바닥에 이른 수분의 95퍼센트를 흡수한다. 전체적으로, 삼림은 거대한 스펀지처럼 빗물을 흡수한 다음 그것을 서서히 방출한다.

      그러나 삼림이 사라지면 비는 직접 세차게 토양으로 떨어져 토양을 엄청나게 쓸어간다. 예를 들어,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경우 완만하게 경사진 열대 우림 1헥타르에서는 일 년에 단지 토양 100분의 3톤을 잃는다. 삼림을 벌채한 경작지일 경우에는 같은 1헥타르에서 일 년에 90톤의 토양을 잃으며, 벌거숭이 대지일 경우에는 138톤을 잃는다.

      그런 식의 토양 유실은 농지나 방목지를 황폐시키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엄청나게 삼림을 벌채하여 만든 댐들이 삼림 벌채 때문에 못쓰게 된다. 댐들은 삼림이 벌채된 지역의 강들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미사가 흘러내려와 갑작스레 배수구가 막혀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해안 지역과 양식지 역시 미사로 뒤덮이고 만다.

      비와 기후 형태의 영향은 더 심한 재난을 초래한다. 열대 우림에서 흘러내려오는 강들에는 보통 연중 내내 물이 충분히 흐른다. 그러나 물이 강으로 흘러가는 것을 조절하는 삼림이 없다면 강들은 갑자기 비가 올 때는 범람하다가 그 후에는 바싹 마른다. 홍수와 한발이 번갈아 있게 된다. 주변 수천 킬로미터 지역에까지 강우 형태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런 지역은 대기 습기 중 무려 반 정도가 우림의 발산 작용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난 십 년 사이에 매우 많은 인명을 앗아간 방글라데시의 홍수와 에티오피아의 한발은 모두 삼림 벌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삼림 벌채는 또한 지구 전체의 기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림은 공기에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탄소를 사용하여 줄기와 가지와 나무껍질을 키워주기 때문에 지구의 녹색 폐라고 불린다. 삼림이 불탈 경우 탄소는 모두 대기로 들어간다. 문제는 사람이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화석 연료를 태우는 것과 삼림 벌채를 통해) 대기로 뿜어대어, 이미 온실 효과 곧 지상의 온도를 높게 하는 추세를 유발시켰을 것이라는 점인데, 그로 인해 지구 극지방의 만년설이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해안 지역이 침수될 위험이 있다.a

      그러므로 의심의 여지 없이 세계 전역의 사람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 사람들은 대처해 나가고 있는가? 해결책이라도 있는가? 이러한 암담한 상황에서 무슨 희망이 있는가?

      [각주]

      a 참조 「깰 때이다」, 1989년 9월 15일호.

      [11면 네모]

      우림의 풍부한 소산물

      지금 가까운 곳에 열대 우림 지역이 있는가? 세계 도처의 우림이 원산지인 식품 중 일부를 생각해 보면, 쌀, 옥수수, 고구마, 마니옥(카사바 혹은 타피오카), 사탕수수, 바나나, 오렌지, 커피, 토마토, 초콜릿, 파인애플, 아보카도, 바닐라, 그레이프프루트, 여러 가지 견과류, 향신료, 차 등이 있다. 세계의 농작물 수확 중 족히 절반은 우림에서 나는 식물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도 우리가 먹는 것의 일부일 뿐이다.

      의약품을 생각해 보자. 덩굴 식물에서 나는 알칼로이드는 수술 전에 근육 이완제로 사용되며, 하이드로코르티손의 활성 성분은 염증 치료에, 퀴닌(키니네)은 말라리아 치료에, 디기탈리스는 심부전 치료에, 디오스게닌은 경구 피임약에, 토근(吐根)은 구토를 유도하는 데 사용하는데, 이 모두는 우림 식물에서 난다. 다른 식물들은 설사와 열병, 뱀에 물린 상처, 결막염과 그 밖의 눈병뿐 아니라 AIDS와 암 치료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 밖에도 무슨 치료제가 숨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과학자들이 시험한 우림 식물 종류는 전체의 1퍼센트도 안 된다. 한 식물학자는 “우리는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것들을 파괴하고 있다”고 개탄하였다.

      하지만 사라지는 삼림에서 얻는 산물은 더 많이 있다. 이를테면 유액, 수지, 밀랍, 산(酸), 알코올, 조미료, 감미료, 염료, (구명 재킷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섬유, (껌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고무, 대나무, 등나무 등이 있는데, 그 자체가 방대하고 세계적인 산업의 기초가 된다.

      [9면 삽화와 도해]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삼림의 역할

      삼림은 대기에 습기와 산소를 더해 준다

      삼림 지붕은 내려치는 비에서 토양을 보호한다

      식물은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한다

      뿌리 조직은 수분이 강으로 흘러가는 것을 조절한다

      [10면 삽화]

      삼림 벌채의 영향

      대기에 수분이 감소하므로 한발을 더 초래한다

      비는 무방비 상태의 토양을 침식한다. 홍수가 증가한다

      나무가 불타면 탄소가 방출되고 온실 효과가 가중된다

  • 앞으로도 삼림은 존재할 것인가?
    깨어라!—1990 | 4월 1일
    • 앞으로도 삼림은 존재할 것인가?

      남태평양, 이스터 섬의 거대한 인면 석상(人面石像)은 풀이 무성한 언덕 위에 우뚝 서서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본다. 석상을 세운 사람들은 수세기 전에 소멸되었다. 미국 서부, 적막한 황무지에 있는 고대 건물의 폐허는 그곳에 백인이 발을 딛기 오래 전에 사라진 사람들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한때 문명과 상업이 번창했던 성서의 땅 일부 지대는 현재 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세 경우 모두, 부분적 대답은 삼림 벌채에 있을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그 지역의 삼림을 없앴기 때문에 그곳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무가 없어지자 땅이 메마르게 되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이동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은 지구 전체에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르겠다고 위협한다. 실제로 그런 일을 저지를 것인가? 아무도 그 일을 막을 수 없는가?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여자들은 벌목꾼들이 나무를 베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나무를 부둥켜 안았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삼림 거주 부족민들은 벌목꾼들이 중장비를 가지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인간 사슬을 이루었다고 한다.

      우림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2억 명의 사람은 이러한 위기에 매우 직접적인 이해 관계가 걸려 있다.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원주민 부족들은 삼림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데, 때로는 반대편에서 오는 이주자들과 맞닥뜨릴 때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많은 부족은 외부인들의 질병으로 인해 일소된다. 강제로 외부 세계에 순응하게 된 사람들은 도시 빈민이 되어 소외되고 형편없는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세계는 그러한 사람들의 곤경을 깨닫고 있다. 환경 보호주의 분위기가 세계를 휩쓸어 왔다.

      환경 보호론자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열대림 구조」 책은 “세계 열대림을 구할 만한 지식과 과학 기술은 다 있다”는 말을 서두에 꺼낸다. 그러한 사실은 세계 도처의 공원들에서 분명히 나타났다. 코스타리카의 과나카스테 공원은 방대한 삼림 지대에 초목을 다시 심기 위한 곳이다. 케냐, 인도, 아이티, 중국과 같은 나라들은 수많은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나무를 심는 것이 삼림을 회복하는 것과 꼭 같은 것은 아니다.

      때때로 “재식림”은 사실상 상업용으로 한 종류의 나무를 심어 후에 수확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복합적인 우림의 생태계와 같을 수가 없다. 그 외에, 일부 사람들은 습기 많은 열대 우림은 결코 원래대로 복합적인 상태를 회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많은 환경 보호론자가 회복보다 보존이 낫다고 주장하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존은 말처럼 쉽지 않다. 삼림 지대는 규모가 너무 적으면 존속하지 못한다. 일부 환경 보호론자들은 세계 우림이 풍부한 다양성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10 내지 20퍼센트를 보호지로 정해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재 아프리카에서는 우림의 3퍼센트만 보호한다. 동남 아시아에서는 2퍼센트, 남아메리카에서는 1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러한 지역 중 일부는 서류상으로만 보호를 받는 실정이다. 계획이나 운영이 빈약할 경우 혹은 부패한 관리들이 공원 기금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 말 경우 공원과 보호지들은 쇠퇴하게 된다. 일부 관리들은 심지어 남몰래 벌목해 가도록 허락해 주고 돈을 벌기도 한다. 인력 역시 모자란다. 아마존 강에서는 감시원 한 사람에게 프랑스 크기만한 우림 지역을 지키도록 할당한다.

      환경 보호론자들은 또한 농부들에게 토양을 고갈시키지 않고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쳐 주어서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이동하여 삼림을 더 벌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일부 사람들은 밭 하나에 여러 작물을 골고루 재배함으로써 단일 종에 붙는 병충해를 막아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과일 나무는 토양이 열대 비에 쓸려가지 않게 보호할 수 있다. 과거의 영농법을 다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뜰에 있는 작은 밭 주위에 수로를 파서 수로에 남는 진흙과 이끼류를 작물에 양분이 되도록 밭에 퍼올린다. 수로에서 물고기를 키워 부수적인 식품원을 삼을 수도 있다. 그러한 방법은 이미 실험을 통해 크게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방법”을 가르치는 데에는 시간과 돈이 들며 기술이 필요하다. 열대 나라들에는 종종 당면한 경제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런 식의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없다. 하지만 기술상의 지식이 널리 보급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H. 로빈슨이 「열대림 구조」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우림은 무지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주로 가난과 탐욕 때문에 파괴된다.”

      문제의 뿌리

      가난과 탐욕. 삼림 벌채 위기는 인간 사회 구조 깊숙이, 우림의 나무들이 얇은 열대 토양 아래 뿌리를 내린 것보다 훨씬 깊숙이 뿌리를 내린 것 같다. 인류는 문제를 뿌리뽑을 수 있는가?

      지난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4개 국 정상 회담에서는 국제 연합 내에 글로브라고 하는 새로운 기관을 창설하자는 제의가 있었다. 런던 「파이낸셜 타임스」지에 따르면, 글로브는 “환경 표준을 세우고 시행하는 데 전례 없는 범위의 권한”을 가질 것이다. 글로브에 어느 정도 실권을 주기 위해서는 나라들이 자국의 소중한 국권을 일부 포기해야 되겠지만,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그러한 조직이 생길 것이라고 일부 사람들은 말한다. 오직 단일화된 세계 기관만이 세계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치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인간 정부 혹은 기관이 탐욕과 가난을 근절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해본 정부가 있는가? 너무도 흔히 정부들은 탐욕에 기초를 두었기에 가난을 끝없이 야기한다. 그렇다. 어떤 인간 기관이 삼림 벌채 위기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해야 한다면, 앞으로 삼림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인간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생각해 보자. 삼림은 그 자체가 광대한 지성을 소유한 존재자에 의해 설계되었음을 증거하지 않는가? 그렇다. 분명히 증거한다! 뿌리에서 잎까지 우림은 그것이 대설계자의 작품임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그 위대한 설계자는 사람이 우림을 일소하고 땅을 망하게 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성서에 나오는 뛰어난 예언은 그 질문에 직접 대답한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계시 11:18.

      그 예언에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첫째로, 그 예언은 사람이 사실상 온 땅을 망하게 할 수 있을 때를 지적한다. 거의 이천 년 전에 그러한 말이 기록될 당시, 사람은 달에 갈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땅을 망하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은 그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 둘째로, 그 예언은 사람이 땅을 완전히 망하게 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 답한다. 즉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알려 준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은 땅을 돌보고 경작하게 하려는 것이었지 땅을 헐벗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정복하면서 삼림 벌채를 하는 것에 제한을 가하셨다. (신명 20:19, 20) 그분은 가까운 장래에 온 인류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 것을 약속하신다.—요한 1서 2:17; 예레미야 10:10-12.

      성서는 희망 곧 사람이 불도저로 땅을 밀어 사막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낙원으로 경작하고, 땅을 못쓰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구며, 일순간의 이득을 보려고 땅을 혹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관리할 때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앞으로도 삼림은 존재할 것이다. 삼림과 온 땅을 망하게 하는 부패한 사물의 제도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13면 삽화]

      이곳 이스터 섬의 문명은 삼림 벌채로 인해 사라졌을 것이다

      [자료 제공]

      H. Armstrong Robe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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