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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의 소문 이야기의 힘
    깨어라!—1991 | 6월 15일
    • 남의 소문 이야기의 힘

      한 젊은 여자의 자살로 인해 영국의 조용하던 읍이 발칵 뒤집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죽게 된 것은 뜬소문 이야기 때문이었다!’는 검시 배심(檢屍陪審)의 결론이었다. 그 젊은 여자의 이름, 명성, 궁극적으로 삶 자체가 그 읍의 악의적인 한담으로 인해 파멸된 것임이 분명하다.—「소문과 남의 소문 이야기—풍문의 사회 심리학」(Rumor and Gossip—The Social Psychology of Hearsay), 랠프 L. 로스노와 개리 앨런 파인 공저.

      이렇게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지만, 남의 소문 이야기에는 무시무시한 힘이 있음에 틀림없다. 남의 소문 이야기는 유용한 정보를 교환하는 일반적인 수단이 되는 한편 정부 소요, 가정 분열, 경력 매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의 소문 이야기는 불면증, 마음의 상처, 소화 불량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필시 독자도 이따금 소문 이야기로 인해 개인적으로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논술가 윌리엄 M. 존스는, 사업계에서 “우리는 출세길에서 누군가 우리의 명성을 망쳐놓으려고 시도할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불건전한 남의 소문 이야기는 거의 어느 곳에서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미국 세미놀 인디언 사회의 경우, “누군가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은 거짓말, 도둑질과 같은 범주에 속한다. 서아프리카의 한 공동체의 경우,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은 입술을 잘리거나, 심하면 처형당할 위험마저 있었다! 참으로 역사를 통하여 남의 소문 이야기를 억제하려는 조처가 취해져 왔다.

      이른바 물고문 의자가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영국과 독일에서 그리고 후에는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남의 소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수치를 주어 해로운 잡담을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남의 소문 이야기를 한 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을 의자에 묶어 물 속에 여러 차례 집어 넣는 것이다.

      물고문 의자는 칼 형틀과 차꼬의 경우처럼 사라진 지 오래 되었지만, 남의 소문 이야기와의 싸움은 현시대까지 이어져 왔다. 예를 들어, 1960년대에 미국에서는 정부 활동에 해로울 법한 소문을 막기 위하여 이른바 유언비어 통제 센터를 설립하였다. 비슷한 기관들이 북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운영되었다. 특정 금융 기관에 재정 손실을 주기 위해 고안된 소문 이야기를 억제하려는 법들이 제정되기도 하였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의 소문 이야기는 여전히 나돈다. 활기차게 번성하고 있다. 이제까지 법이나 인간의 다른 어느 방법으로도 남의 소문 이야기의 지독한 힘을 제압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남의 소문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다. 동네 소문 이야기, 사무실 소문 이야기, 상점 소문 이야기, 파티 소문 이야기, 가정 소문 이야기가 있다. 남의 소문 이야기는 온갖 문화, 인종, 문명권에 걸쳐 있으며, 온갖 사회 계층에서 번성해 왔다. 한 전문가는 “남의 소문 이야기는 거의 숨쉬는 것만큼이나 일반화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그것은 인간 본성의 일부로 뿌리깊이 박혀 있다’라고 말하였다.

      남의 소문 이야기가 흔히 인간 본성의 매우 어두운 면, 명성을 더럽히고 진실을 왜곡하며 삶을 망쳐놓는 데서 쾌감을 맛보려는 면을 드러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의 소문 이야기가 본질적으로 사악한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이야기에도 밝은 면이 있다. 그리고 해로운 남의 소문 이야기와 무해한 남의 소문 이야기의 경계를 정할 줄 아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도 피해를 당하지 않는 비결이다.

      [4면 삽화]

      일부 정부들은 남의 소문 이야기를 퍼뜨리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물고문 의자를 사용하였다

      [자료 제공]

      Historical Pictures Service

  • 남의 소문 이야기—마음을 끄는 이유?
    깨어라!—1991 | 6월 15일
    • 남의 소문 이야기—마음을 끄는 이유?

      남의 소문 이야기(영어로는 가십[gossip])를 중국어로는 셴탄, 핀란드어로는 유오루, 이탈리아어로는 페테골레초, 스페인어로는 치스메라고 한다. 그렇다. 남의 소문 이야기는 세계 전역에 보편화되어 있다. 일부 언어들에서 남의 소문 이야기에 해당하는 말에는 순전히 불건전한 개념만 있을지 모른다. “남의 소문 이야기”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한담” 곧 사소한 이야깃거리에 대한 잡담을 뜻한다.

      그렇지만 흥미롭게도 남의 소문 이야기라는 말은 불건전한 개념을 내포하게 되었다. 그러하기에 “남의 소문 이야기”라는 말 앞에는 종종 “악의적인” 혹은 “해를 입히는”이라는 말이 붙는다. 한담은 아주 흔히 해를 입히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완전히 중상이 되기도 한다. 중상은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시키며 손상시키는 거짓 비난 혹은 허위 설명”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므로 고대의 한 잠언에서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남의 소문 이야기’, 「오늘날의 영어 역본」]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킨다고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말이 아니다.—잠언 25:23.

      그렇다면, 남의 소문 이야기가 손상을 줄 수 있음을 생각할 때, 남의 소문 이야기가 그토록 못견딜 정도로 매력적이고 그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무해한 남의 소문 이야기와 해로운 남의 소문 이야기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다 그을 것인가?

      남의 소문 이야기—정보 교환

      남의 소문 이야기를 하는 데는 매우 기본적인 이유가 있다. 즉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류학자 맥스 글럭먼이 한때 이렇게 언명한 바와 같다. “우리 대부분은 날마다 그리고 각 날의 상당 시간 동안 남의 소문 이야기를 한다. 추측컨대,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계속 기록해 본다면 남의 소문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우리 중 일부 사람들의 경우—‘직업’에 사용하는 시간 다음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일상적인 이야기는 절도 있고 친절한 것일 경우, 최근의 사건들을 알 수 있는 수단으로서 유용한 정보 교환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 중에는 아무개가 결혼했다거나 아기를 가졌다거나 사망했다거나 하는 무해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으며, 혹은 악의적인 의도가 없는 그야말로 우스갯소리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한담이 합당하고 품위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실들이 재미있게 꾸며지고 과장되거나 왜곡된다. 창피한 일을 웃음거리로 삼는다.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 은밀한 이야기를 누설한다. 명성을 해치거나 훼손시킨다. 칭찬받을 만한 것을 불평이나 트집, 흠잡는 일로 모호하게 한다. 해를 입힐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말은 소문의 대상이 된 사람에게 거의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해로운 남의 소문 이야기는 깨끗한 벽에 던져진 진흙 덩어리에 비해졌다. 진흙 덩어리가 벽에 붙어 있지 않을지라도 그 더러운 자국은 언제나 남아 있다.

      사교 수단

      우리가 남의 소문 이야기에 쉽게 빠져드는 다른 이유는 다른 사람의 호의와 인정을 받으려는 자연스런 욕망이다. 심리학자 존 서바이니와 모리 실버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우리에게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이야기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남의 소문 이야기는 그 의무를 이행하는 유쾌하고 쉽고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방법이다.” (「일상 생활의 도덕률」[Moralities of Everyday Life]) 그러므로 남의 소문 이야기는 어느 정도 유용한 대화 소재이며, 사교 수단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건전한 정보보다 불건전한 정보에 훨씬 흥미를 갖는 경향이 있다는 데 있다. 일부 사람들은 심지어 대단한 화제거리나 엉뚱한 이야기로 인해 충격을 받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소문 이야기는 실제로 관심을 끄는 수단이다. 흥미 진진한 이야깃거리는 보다 유별나거나 추문이 될 만한 것일수록 관심을 더 끈다. 증거 없는 충격적인 주장을 확인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도 매체 소문 이야기

      이런 종류의 소문 이야기는 또 다른 인간적 약점—무절제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마음을 끈다. 우리는 비밀을 캐내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정보에 밝은 사람이 되는 것을 즐긴다. 일찍이 1730년에 벤저민 프랭클린이 「펜실베이니아 거젯」에 소문 이야기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할 때에도 이미 사람들이 소문 이야기에 대가를 지불할 것이라는 사실이 간파되었다.

      보도 매체 소문 이야기는 끊임없이 살아 남았고, 창궐한다. 유럽의 경우 신문·잡지 판매소들은 사실상 왕족, 자동차 경주자 및 여러 국제적 유명 인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실은 타블로이드판 신문투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신문 기사는 남의 소문 이야기를 대기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사람들의 사생활에 속하는 가정, 침실, 정신 성향이 어떠한지에 대해 지나치게 호기심을 갖는 것은 유익한가? 색욕을 자극하기 위한 내용을 읽거나 보는 것은 건전한 것일 수 있는가? 보도 매체 소문 이야기는 호기심을 합리적인 한계 이상으로 끌고 가는 것임이 분명하다.

      “근거 없는 소문”

      근거 없는 소문과 그릇된 정보 역시 해로운 소문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 왔다. 소문은 공황, 사망, 대소동을 초래하였다. 사업계에 끼친 피해만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한 즉석 식품 연쇄점은 그 연쇄점의 햄버거에 벌레가 있다는 거짓 소문과 싸워 이기는 데 1년 이상이 걸렸다. 한 비누 제조 회사는 그 회사의 기장(記章)이 사단의 표장이며 그 회사 자체가 악귀 숭배와 다소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을 누그러뜨리는 데 여러 해를 보냈으며 수백만 달러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소문으로 인해 가장 큰 마음의 상처와 손상을 입는 것은 개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유별난 이야기에 매혹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진실인지 혹은 그로 인해 초래될 결과가 어떠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퍼뜨리고 싶어한다.

      악의적인 남의 소문 이야기—중상

      시기와 증오는 흔히 가장 파멸적인 형태의 남의 소문 이야기 즉 악의적인 남의 소문 이야기인 중상의 근본을 이룬다. “중상자”에 해당하는 희랍어 단어는 디아볼로스인데, 이 단어는 성서에서 마귀로 번역되었다. (계시 12:9) 그것은 사단에게 잘 어울리는 칭호다. 사단은 하나님의 대중상자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사단처럼 다른 사람에 관해 사악한 의도를 품고 이야기한다. 때때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동기는 감정이 상했거나 질투심으로 인해 앙갚음하려는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좋은 이름을 망쳐놓음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꾀하려고 한다.

      악의적인 남의 소문 이야기 즉 중상이 가장 비난받을 만한 형태의 남의 소문 이야기임에 틀림없지만 여하한 형태로든 해를 입히고 문제를 일으키는 남의 소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며 무책임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해한 이야기가 해로운 중상으로 변질되지 않게 할 수 있는가?

      [5면 삽화]

      호의적인 남의 소문 이야기는 종종 유용한 정보를 교환하고 대화의 소재를 더해 준다

      [6면 삽화]

      해로운 남의 소문 이야기는 깨끗한 벽에 던져진 진흙 덩어리와 같다. 진흙 덩어리가 벽에 붙어 있지 않을지라도 더러운 자국은 언제나 남아 있다

      [7면 삽화]

      일부 사람들은 관심의 중심이 되기 위해 소문 이야기를 한다

  • 남의 소문 이야기—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방법
    깨어라!—1991 | 6월 15일
    • 남의 소문 이야기—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방법

      사람들이 있는 한 소문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성서에 예언되어 있는 완전한 신세계에서도 남의 소문 이야기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a (베드로 후 3:13) 벗들과 아는 사람들에 대한, 허물없는 일상적인 이야기는 우리가 서로 의사 소통을 하고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해를 입히는 악의적인 남의 소문 이야기 즉 중상에 대해서는 결코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해치는 것이고 손상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삶, 관계, 명성을 완전히 망쳐놓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합당한 정도를 넘어서서 해로운 남의 소문 이야기에 빠져드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런 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관해 이제까지 제공된 것 중 최상의 조언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 조언 중 몇 가지만 함께 살펴보자.

      입술을 깨물고 참으라: “대화는 정신 운동이지만 소문 이야기를 하는 것은 혀 운동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참으로 해를 끼치는 말은 대부분 악의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말하기 전에 생각하지 않고 한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비밀을 무심코 누설한다. 그런 사람들은 결과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야기에 흥취를 곁들이고 과장하며 왜곡한다. 벗들, 배우자, 자녀의 흠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 그로 인해 당사자들이 무슨 손상을 입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성서는 이러한 조언을 한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언 10:19) 다시 말해서 말하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관해 무엇인가 말하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자문해 보자. ‘나는 그 사람 앞에서도 이 말을 할 것인가? 이런 말이 나에 관한 것이라면 내 기분은 어떨 것인가?’ (마태 7:12) 시편 39:1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

      물론 입술을 깨물고 참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이나 가족에게 가해진 심각한 범죄에 대해 강한 의혹을 품을지 모른다. 뚜렷한 증거는 전혀 없지만 그 점에 대해 무엇인가 조처를 해야 할 필요를 느낄지 모른다. 신뢰할 만한 벗이나 권위 있는 누군가와 그것에 대해 상의하는 것은 중상인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찾아가는 것은 악의적으로 남의 소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음이 분명하다. 성서는 은밀한 이야기가 지혜로운 것임을 인정한다. 물론 신중을 요하는 그런 상황을 처리하는 데는 좋은 판단력과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잠언 15:22.

      해를 입히는 남의 소문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말라: ‘큰 귀’가 없다면 ‘큰 입’은 어떻게 되겠는가? 끊임없이 어리석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일부일뿐이다. 관심을 기울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단순히 귀기울이는 것은 무언의 승인을 표시하는 것이며, 해를 입히는 남의 소문 이야기를 널리 퍼지게 하는 것일 수 있다. 잠언 17:4은 이렇게 말한다. “악을 행하는 자는 궤사한 입술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그러므로 누군가에 관한 이야기가 거침없이 나오는 상황에 처할 경우 다소 용기를 내서 ‘화제를 바꿉시다’하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벗들이 고칠 수 없을 정도로 해로운 남의 소문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면 새로운 벗을 찾을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른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남의 소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결코 비밀을 지킬 줄 모른다. 말이 너무 많은 사람에게서 멀리하라.” (잠언 20:19, 「오늘날의 영어 역본」) 아마 당신 자신이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이다.

      소문 이야기에 대해 과잉 반응을 나타내지 말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문 이야기가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닌 한 소문 이야기를 즐긴다. 한편, 우리 자신이 나쁜 소문이나 거짓 이야기로 인해 피해를 당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야기의 출처를 추적하여 문제를 차분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화를 내는 것은 아무 것도 달성하지 못한다. 사실,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한다고 성서는 말한다. (잠언 14:17)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은 이렇게 충고한다.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전도 7:21, 22) 남의 소문 이야기는 삶의 현실이며, 필시 독자도 그런 소문 이야기에 적극 참여한 적이 가끔 있었을 것이다. 이야깃거리는 참으로 기분을 상할 만한 것인가? 십중팔구 얼마 후에는 사라져 버릴 것이 아닌가? “웃을 때”가 있으며, 어쩌면 자신에게 유머감이 있음을 보이면서 웃어넘기는 것이 소문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전도 3:4.

      불에 땔감을 더하지 말라: 소문 이야기가 도무지 누그러지지 않는다면 이렇게 자문해 보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 이야기의 근거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내가 의심스러운 방식으로 처신하여 그릇된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닌가?’ 다음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 어느 여자의 직장 동료들은 뒷전에서 그를 게으르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가 자신의 직무를 만족스러울 정도로 수행하는데도 말이다. 평판이 나쁜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는 그가 게으른 사람으로 쉽사리 오인될 수 있는 태평하고 안이한 태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의 몸차림은 그가 일하는 직장 분위기로 볼 때 너무 격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다가 개인 전화를 할 때는 무분별하게도 사무실 직원이 모두 쳐다볼 정도로 큰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소문 이야기에 오른 것이다!

      ◻ 어느 지방의 상점 주인은 그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가 아내에게 충실하지 않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는 그런 소문이 거짓이라고 펄펄 뛰었다. 소문이 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그가 여성 고객들과 부당하게 친밀하다는 평판 때문이었다.

      ◻ 한 십대 소녀는 방종하다는 평을 들었다. 일부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에게는 애인이 여럿 있으며 코카인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거짓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약계에 속한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옷차림과 머리 모양, 화장은 극단적이다.

      그러므로 악의적인 소문 이야기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은 자신의 행동,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 심지어 옷차림과 몸단장이 다소 불에 땔감을 더하는 격이 된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 생활 방식을 약간 조정하면 소문을 멎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진다]”고 성서는 말한다. (잠언 26:20) 그 외에도 우리의 행동이 부당한 행실에 근접해 있다면 사실상 범죄에 빠져들—소문이었던 것이 현실이 될—실제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비교 갈라디아 6:7, 8; 고린도 전 10:12.

      ‘자기 일을 하라’

      남의 소문 이야기는 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남의 소문 이야기가 파괴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이런 현명한 말씀을 따름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이 수많은 마음의 고통과 슬픔을 겪지 않게 할 수 있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계속’, 「신세」] 생각하라 ·⁠·⁠·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립보 4:8, 9; 사체로는 본지에서.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셨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 12:36, 37; 비교 시 52:2-5.

      독자는 다른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 정신의 평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훌륭한 신분을 누리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의 이러한 교훈을 따르는 것이 좋다. “종용하여[“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공동번역」] 자기 일을 하[라.]” (데살로니가 전 4:11)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나타내되 친절하고 정중한 방식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악의적이고 해로운 남의 소문 이야기를 멀리하게 될 것이다.

      [각주]

      a 더 자세한 점은 사단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책 제19장 참조.

      [9면 삽화]

      해를 입히는 이야기를 멀리해야 한다

      [10면 삽화]

      당신은 무분별한 행실로 인해 사람들에게 당신에 관한 소문 이야기를 할 근거를 주는가?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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