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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함
    깨어라!—1991 | 7월 15일
    •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함

      거울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외모를 본다. 그러나 그 외모를 통해 자신이 참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가? 그 외모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여길 것인지를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참으로 아는가? 우리는 자신의 행실이 시초에 어떻게 틀잡히게 되었는지 아는가? 요컨대 우리의 인격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시간을 내어 자신의 성품을 형성시킨 모든 요소들을 분석해 보면 다른 사람들에 의한 것이든 그 외의 요인에 의한 것이든 여러 가지 요소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음에 유의할 수 있다. 초기 형성기에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습관과 품행을 틀잡기 위해 한 일이 별로 없다. 그러므로 성품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 중 우리에게 영향을 준 것 몇 가지를 살펴보자. 그런 것 중에는 우리가 자신의 행실에 관해 무엇인가 손쓸 기회를 갖기 오래 전에 영향을 미친 것도 있다.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유전 현상

      유전 현상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쳤는가? 유전 형질을 전수하는 염색체에서 볼 수 있는 DNA 청사진은 각 사람의 발육에 대해 묘사하는 정보와 지시하는 부호를 전달한다. 그렇다면 개인 행실은 어느 정도나 유전 현상의 영향을 받는가? 유전 인자와 성품 사이에 모종의 분명한 관련이 있음을 증명하는 데는 아직도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주목할 가치가 있는 듯한 얼마의 연구 조사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유전받은 특질 중 여러 가지는 실제로 행실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내성적인 기질을 유전받는가 하면 천성적으로 보다 외향적인 사람도 있다.

      임신부는 자신의 행동, 생각, 감정으로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유익을 주거나 해를 줄 수 있다. 우리는 모태에 있을 때 과연 어느 정도나 평안 혹은 불안의 영향을 받았는가? 부모의 목소리 음조, 부모가 즐겨 들은 음악으로부터 어느 정도나 배웠는가? 어머니가 섭취한 음식으로부터는 어느 정도나 영향을 받았는가? 술을 마시거나 약물을 복용한 어머니라면 그러한 것으로 인해 어느 정도나 영향을 받았는가? 우리가 태어날 때쯤에는 우리의 성향 중 많은 부분이 정해져서 변화시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음식물, 알레르기, 환경은 어떠한가?

      우리가 자랄 때, 음식물 속의 특정 성분이 우리의 행실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감미료, 인공 색소, 방부제 등 모든 것이 행실에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활동 항진, 긴장 증가, 과민성, 신경통, 절도 없고 자제하지 못하는 행동은 그로 인한 결과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자동차 배기 가스에서 나오는 오염 물질, 산업 방출물 및 환경상의 여러 유독 물질들 역시 행실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가 하면 개인 차원에서, 자신에게는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전혀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알레르기가 있을 수 있다.

      영향을 미치는 그러한 것들에 더하여 부모의 행실과 호불호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부모의 편견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우리의 성품을 어느 정도 형성해 놓았다. 그로 인해 우리의 품행 중 많은 부분과 전반적인 인생관은 부모의 것을 그대로 표방하게 된다. 우리는 부모가 언짢게 여긴 것을 언짢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부모가 용납한 것을 용납하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 우리에게 아버지나 어머니와 똑같이 행동한다고 지적해 주기 전에는 부모의 행실을 따라 한다는 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입장 역시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이웃과 학습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의 벗들과 동료들 역시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어쩌면 (우리 혹은 가까운 벗에게 임한) 불의의 사고나 일부 지역에서 있게 된 재난, 심지어 고난을 가져오는 세계 사건들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혼이나 중병과 같은 비극들이 우리의 성품에 흠집을 남겼을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할 때, 자신에게 그런 영향을 준 것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는가?

      종교는 무슨 영향을 미치는가?

      이론상 종교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고 도덕적 행실, 윤리, 일상 생활 방식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과연 우리의 가치관과 행동은 어느 정도나 종교의 영향을 받았는가? 종교가 무책임한 범죄 행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도 많은 사람은 종교를 접하면서 다른 면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 내에서 많은 위선을 보며 영적 가치관보다 물질에 역점을 두는 것을 분별하고는 씁쓸해 한다. 그들은 무종교인이 되며 영성과 희망을 잃기도 한다.

      그 외에도 행실을 형성시키는 외부 영향력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 지금까지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을 법한 것들을 생각해 보자. 그것을 열거할 수 있는가? 객관적인 입장으로 그 점에 대해 생각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가?

      사실 우리가 자신의 행실에서 어느 정도 소극적인 경향을 띠게 한 특정한 영향력이나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것을 명확하게 끄집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을 제어하는 데 아니 고치기까지 하는 데 더 나은 입장에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력을 제어할 수 있다면, 아니 아주 없앨 수 있다면 딴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처신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도전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행실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 혹은 우리가 전혀 조절할 수 없는 환경에 의해 있게 된 것이므로 솔선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직접 무엇인가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것이 향상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4면 삽입]

      임신부의 행동과 감정은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영향을 미친다

  • 왜 변화해야 하는가?
    깨어라!—1991 | 7월 15일
    • 왜 변화해야 하는가?

      자신에게 두드러진 약점이 있음을 털어놓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코틀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스의 이러한 말은 과연 참되다. “오 우리에게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듯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면!”a 그렇다.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의 흠을 찾아내며, 그들에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재빨리 충고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행실을 변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조금이라도 들을 경우 기분 나빠할 수 있다. 당신은 그러한 제안에 기분이 상하는가?

      잠깐 멈추어서 이런 완전한 세상을 생각해 보자. 즉 모든 사람이 깨끗하고 건강하고 행복하며 정직한 세상. 권위를 가진 사람도 친절하고 사려 깊으며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데 관심을 갖는 세상. 탐욕도 동료 인간을 착취하는 사람도 전혀 없는 세상. 자녀가 따뜻하고 잘 보살펴 주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세상. 분노를 터뜨리는 일, 폭력, 범죄, 부도덕이 결코 없는 세상. 사람들이 천성적으로 신뢰할 만하며 호감이 가는 세상. 안전감과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세상.

      만일 이러한 이상적인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면, 자신이 그런 세상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성서의 좋은 소식은 그런 세상이 분명히 이 땅에 곧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에게는 그런 이상적인 공동체에 속할 수 있는 자격에 도달하지 못하게 할 만한 행실상의 특질이 있는가? 당신은 그런 낙원에서 살 자격을 갖추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이사야 65:17-25; 베드로 후 3:13.

      그러한 신세계가 오기 전인 지금이라도 우리의 행실과 태도를 조절한다면 우리의 삶이 향상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변화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초에 특정한 영향력이 우리의 행실을 형성하고 틀잡았으므로 좀더 제어하고 관심을 갖는다면 지금이라도 우리의 행실을 재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렇지만 내가 과연 변화할 수 있을까?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냥 내 방식대로 지내련다.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자. (로마 7:18-21)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반대한 폭력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이었지만 변화하여 그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참으로 원하였기 때문에 변화한 것이다. 그는 실패나 유전 영향이 있었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옛 성품이 변할 수 없이 굳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그는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갈라디아 1:13-16.

      어디서 그런 도움을 받았는가?

      [각주]

      a 원문은 이러함: “O wad some Pow’r the giftie gie us to see oursels as others see us!”—「옥스퍼드 인용문 사전」(The Oxford Dictionary of Quotations).

  • 바람직하지 않은 변화 방법
    깨어라!—1991 | 7월 15일
    • 바람직하지 않은 변화 방법

      일단 행동 양식이 자리잡혔다면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무슨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가?

      오늘날 사용되는 몇몇 극단적인 조처를 살펴보자.

      정치적 압력

      오늘날 수많은 사람은 이념과 행실 규범을 지배하려는 정권 아래서 생활한다. 그러한 정부들은 권력을 사용하여 변화시키려고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교묘한 방법으로, 다른 경우에는 강압적 방법으로 그렇게 한다. 흔히 위협, 투옥, 고문을 수반하는 세뇌 기술을 사용하는 정부도 있다. 그들은 뉴스 매체와 여타 교육계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함으로써 기존의 모든 개념을 현 집권층이 원하는 것으로 대치하려고 한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모두 억압한다. 재교육받기를 꺼리는 사람은 누구나 흔히 정신이 파괴되는 끔찍한 취급을 당할 수 있다.

      정신 수술과 전기 자극

      뇌의 어느 부분은 특정한 행동 경향과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 수술에는 뇌의 그 부분에 있는 뇌 조직을 실제로 제거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관련된다. 뇌의 그 부분은 일단 제거되면 다시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으며,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행동은 모두 사라진다.

      그러한 수술이 상당히 행해져 왔으며 특히 변태적이고 위험한 성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행해졌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뇌 속 깊이 작은 전극을 삽입하였으며, 전류가 흘렀을 때 그 부분의 뇌 활동을 자극하거나 봉쇄하였다. 이것이 뇌의 그 부분의 지배를 받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충격파를 조절한다는 주장이 있다.

      약물

      정신 의학에서는 약물을 매우 널리 사용하며 종종 필요로 한다. 진정제, 수면제, 각성제 및 뇌의 화학적 불균형을 시정하는 약들이 있다. 교도소나 그 외 교화 기관에서 처벌용으로 사용하는 약도 있다. 그러한 약 중 두 가지는 아포모르핀과 아넥틴이다.

      아포모르핀은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수감자들에게 투여되었다. 그것은 심한 구역질과 구토를 일으킨다. 수감자는 또다시 못되게 굴 때는 아포모르핀을 더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는다. 이것을 혐오 요법이라고도 한다. 아넥틴은 행동이 좋지 않은 수감자에게 투여하여 천식성과도 같이 숨막히는 느낌을 초래한다. 그런 수감자는 죽는 것같이 느낀다. 다시 나쁜 행동을 하면 아넥틴을 더 맞게 된다.

      우리는 그런 방법으로 행동 양식을 변화시킬 것인가?

      위에 언급한 방법은 대부분 자유 의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런 방법들은 또한 언제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영향력과 관련이 있다. 위정자는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가, 다른 사람의 이익을 구하는가? 정신 수술을 할 때 수술용 칼을 누가 쥐고 있는가? 전기 자극을 사용할 때 누가 스위치를 조작하는가? 혐오 요법은 얼마나 지속되는가? 요법가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

      좀더 받아들일 만한 방법을 고려해 보자.

  •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깨어라!—1991 | 7월 15일
    •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제까지 살펴본, 행실을 틀잡고 변화시키는 방법에서 빠진 것은 무엇인가? 사람 자신의 소원과 의지력의 사용이다! 지식을 통한 선택에 의해 자신의 자유 의지를 행사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의 자제 즉 자기 제어가 빠진 것이다!

      행동 요법가들은 치료받는 사람이 자신의 행동 목표를 정하는 데 결정권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들이 지속적인 결과를 이룩할 확률이 더 많음을 알게 되었다. 밴스 패커드는 저서 「인격 형성 요소」(The People Shapers)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어느 정도 영리한 사람은 누구나 지금도 약간의 조언이 주어지면 자신의 행동을 수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자기 관리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어느 정도 자기 제어를 할 경우 두드러진 향상이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자기 제어 곧 자제가 필요할 경우 유리한 점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인 자제를 행사하는 법을 배워 알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참조)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활동력이 우리의 행동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우리가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행실에 관해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가? 참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하는가? 원한다면 무엇을? 무엇으로? 그리고 이유는? 우리는 자신의 제어력을 신뢰할 수 있는가? 오로지 유익만을 가져오는 도움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가?

      행동 양식을 변화시키는 몇 가지 방법과 세부점을 살펴보자.

      1단계: 자신이 참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한다

      우리는 자신이 되려고 하는 사람의 원형이다. 새로운 우리는 과거의 우리를 변화시킴으로써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자신의 행실의 어느 부면을 변화시키고 싶은지 꼭 집어낼 수 있는가?

      자신의 행실을 평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존중받고 신뢰할 만한 표준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표준으로 추천되는 것이 성서다. 성서를 사용해 보자. 그러면 이제까지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이 보게 된 것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한 모습임을 확신할 수 있다.

      성서는 거울에 비해졌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들여다볼 것을 강력히 권고받는다.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 1:23-25)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고 사용할 경우 성서에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밝혀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동기와 태도를 드러내는 깊고 예리한 분석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썼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느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옳은 것과 참으로 그릇된 것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히브리 4:12; 5:14.

      성서는 예리한 지각력을 소유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므로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시편 139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감찰하시며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신다. 1절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잉태된 때부터 우리를 관찰해 오셨다. 그분은 우리를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 그분은 인간 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온갖 사실들을 성서에 기록해 놓으셨다. 우리는 성서의 지면 어디에선가 밝은 면이나 어두운 면으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참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2단계: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결정한다

      변화하려고 한다면 그렇게 변화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인지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은지를 확인해야 한다. 향상된 무슨 행동 목표를 정해야 하는가? 바람직한 행동 특질에 관한 올바른 충고를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이 점에 있어서도 성서가 추천된다.

      성서는 우리에게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하도록, “새 성품”을 받아들이도록 강력히 권한다. 바울은 이렇게 교훈하였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성품”, 「신세」]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성품”]을 입으라.” (에베소 4:22-24) 성서는 이러한 더 나은 특질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앞서 묘사된 완전한 세상이 생각나는가? 그러한 세상에 속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골로새서 3:12-17(「신세」 참조)에 묘사된 특성들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음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특성들 중에는 동정심, 친절, 겸손, 온유, 참을성, 용서, 사랑, 평화, 감사하는 태도가 있다.

      그러므로 성서를 조사한 후 목표를 정하는 것이 좋다. 그 목표들을 적어 보자. 각 목표에 우선 순위를 정하자. 그에 따라 실천하자!

      3단계: 가치 있는 본들을 찾는다

      우리의 행실의 많은 부분은 다른 사람—벗, 동료, 부모, 교사—들을 본떠서 틀잡힌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바람직하게 여기는 행동 목표를 정한 후 본받고 싶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런 다음 그 사람의 도움을 구하자. 성서의 잠언은 지혜롭게도 이렇게 지적한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언 13:20.

      성서에는 우리 모두의 최상의 본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분이 온갖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하셨는지, 그분의 도덕적 행실, 지각력과 지혜, 위엄, 동료 인간에 대해 나타내신 생각 깊은 태도와 극진한 친절, 관심에 대해 읽어 보자. 그분의 이런 말씀은 참으로 새 힘을 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 11:28-30.

      모든 나라에 속한 수백만의 사람들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그들의 본으로 삼았으며,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예수 자신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교훈하신 대로 행하신 것처럼 말이다. 이들 수백만 명은 한때는 오늘날의 일반 세상 사람들의 나쁜 행실에 푹 젖어 있었지만 도움과 인도를 얻기 위해 여호와의 증인의 지방 회중을 찾아왔으며 실망하지 않았다. 증인의 왕국회관에는 그리스도를 닮은 훌륭한 본들이 많이 있으며, 자신의 개인 행실을 좀더 나은 면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한 도움이 베풀어진다. 물론 증인에게도 불완전한 인류에게 공통적인 결점이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또한 정신에 작용하는 적극적인 영적 힘이 있다.—에베소 4:23.

      4단계: 성공하는 데 필요한 힘을 얻는다

      자신의 품행을 변화시키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알 때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새 성품”은 “참다운 의와 충성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창조된” 것으로 묘사된다. (에베소 4:24, 「신세」) 이것은 초인간적인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베푸시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보증한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으뜸가는 방법은 개인 기도다. 기도는 자신의 품행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힘의 근원과 상담하는 매우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어느 때나, 위기에 처한 때라도 기도를 통해 자유로이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다. 실재하시고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께 그렇게 나아가는 것은 어떠한 인간의 도움을 구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며 즉각적인 효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이렇게 쓸 수 있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한 1서 5:14) 그리고 예언자 이사야의 이러한 말은 우리에게 격려가 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이사야 55:6, 7.

      성서 연구 역시 우리를 강건하게 하고 우리에게 새 힘을 주며 날마다 자신의 목표에 초점을 다시 맞출 수 있게 한다. 성서는 우리가 택한 행동 목표를 향해 노력할 때 적극적인 추진력을 공급한다. 그뿐만 아니라 성서는 자신의 이전 방식을 혐오하도록 자극한다. 날마다 성서와 그 내용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은 세상의 보도 매체와 교육계로부터 흘러들어 올 수 있는 그릇된 지식을 말끔히 씻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지방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그리스도인 집회는 성서 표준에 대한 교육을 제공할 뿐 아니라 단체 지원과 상호 격려를 통해 향상된 행실을 하게 한다. 회중을 통해 마련되는 이 지원은 많은 사람이 행실 변화에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잡지를 건네준 사람과 그러한 도움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5단계: 나쁜 품행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처한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품행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나쁜 품행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인해 낙담하였다. 그 결과 아주 포기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흔히 유일한 희망이라고 여긴 것에서 실패하였으니 이제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세상의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긴다. 그런 사람들은 종종 변화하려고 노력하기 전보다 더 악화된다.

      이전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로가 무엇이든 벗어날 가치가 있음을 자신에게 계속 상기시켜야 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전 행실과 생활 방식을 배설물로 묘사하였다. (빌립보 3:8) 그러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장애물로 인해 혹은 나쁜 품행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인해 실족할 경우 다시 일어나서 전진하자. 계속 전진하자! 계속 투쟁하자! 그렇게 할 가치가 있다!

      우리의 품행과 특질 중 많은 것은 우리가 선택하거나 조절할 수 없는 시기에 외부 세력에 의해 우리에게 자리잡힌 것임을 기억하자. 이러한 세력은 여전히 작용한다. 그러한 세력이 우리를 그들의 틀 속으로 밀어넣게 허용할 것인가? 허용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다양한 문화에 속한 수백만의 사람들은—심지어 범죄자와 부도덕한 행실에 깊이 관련된 사람들까지도—자신의 행실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향상된 표준을 유지해 왔고, 그들 중 다수는 수십 년 간 그렇게 해왔으며 칭찬받을 만한 자진적인 충절로 더 나은 품행에 고착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과 동기 부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 4:13.

      그들은 옳은 것을 하기 위한 투쟁에서 이기고 있다. 당신 역시 참으로 원한다면 변화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신세계에서 생명을 누릴 수 있다.—시 37:29; 베드로 후 3:13.

      [7면 삽화]

      1단계: 자신이 참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한다

      [8면 삽화]

      2단계: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결정한다

      [8면 삽화]

      3단계: 가치 있는 본들을 찾는다

      [9면 삽화]

      4단계: 성공하는 데 필요한 힘을 얻는다

      [9면 삽화]

      5단계: 나쁜 품행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처한다

      [10면 삽화]

      변화하는 사람은 또한 변화된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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