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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늦기 전에 단란하게깨어라!—1991 |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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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늦기 전에 단란하게
“가정은 가장 오래 된 인간 제도다. 여러 가지 면에서 가정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가정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가정 생활의 강약에 따라 전체 문명이 존속하거나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월드 북 백과 사전」(1973년판).
가정은 자녀를 보호하는 일종의 우산이다. 오늘날 곳곳에서 그 우산은 구멍투성이다. 그런가 하면, 그 우산이 아예 접혀져 헛간에 있는 곳들도 많다. 전통 가정은 흔히 구식으로 일축당한다. 텔레비전 코미디에서 종종 아버지는 우둔하고, 어머니가 조금 낫고, 자녀들이 가장 똑똑한 것으로 묘사된다.
부부 관계의 불충실은 다반사다. 일부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첫 결혼의 두 쌍 중 한 쌍은 이혼으로 끝난다. 이혼율이 치솟음에 따라 홀어버이 가정이 급증한다. 갈수록 결혼의 혜택 없이 동거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고 있다. 동성애자들은 결혼 서약으로 자신들의 관계에 품격을 더하려고 한다. 성은 정상적이든 비정상적이든 영화와 비디오의 주된 자리를 차지한다. 학교에서는 순결을 비실용적인 것으로 보고 음행을 안전하게 하도록 콘돔—안전한 것이 아님—을 나누어 준다. 성매개 질환과 십대 임신이 엄청나게 늘고 있다. 어쩌다 태어난 아기들은 피해자가 된다. 전통 가정이 붕괴됨에 따라 주로 해를 당하는 쪽은 자녀다.
여러 해 전, 노벨상 수상자 알렉시스 카렐은 저서 「인간, 그 미지의 것」(Man, the Unknown)에서 이렇게 경고하였다. “현대 사회는 가정 교육을 전적으로 학교 교육으로 대치하는 심각한 과오를 범하였다. 어머니들은 직업, 사회적 야망, 성적 쾌락, 문학적·예술적 취향에 관심을 쏟기 위해 혹은 단순히 카드 놀이를 하고, 영화를 관람하고, 쓸데없이 바쁜 일로 시간을 낭비하기 위해 자녀를 유치원에[이제는 더 일찍 탁아소와 유아원에] 맡긴다. 그런 어머니들 때문에 어린이가 어른들과 계속 접하고 어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는 가족 그룹이 사라진다. ··· 사람은 온전한 힘에 달하기 위해 상대 격리 그리고 가족으로 이루어진 제한된 사회 그룹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176면.
보다 최근에 코미디언 스티브 앨런은 텔레비전이 상스러운 말과 성적 부도덕투성이로 가정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평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 공격적 흐름은 우리를 바로 시궁창으로 몰고 간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바로 그런 부류의 말이 현재 억제되지 않는 유선 텔레비전 기업가들뿐 아니라 한때 고상하게 여겨진 방송국들에 의해 권장된다. 저속한 말을 사용하는 어린이와 그 외의 사람들을 묘사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미국 가정의 붕괴를 드러낼 뿐이다.”
사회는 이제 후손에게 무슨 유산을 물려주고 있는가? 신문을 읽어 보고, 텔레비전을 보고, 비디오를 보고, 저녁 뉴스를 들어 보고, 랩 음악에 귀기울여 보고 주위 어느 곳이든 성인들의 본을 살펴보자. 어린이는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불건전한 식품을 잔뜩 먹고 있다. 영국의 전임 교육부 장관 키스 조지프 경은 “나라를 망쳐 놓으려면 통화(通貨)를 타락시키면 된다”고 말하였다. 그는 “사회를 망쳐 놓는 길은 어린이를 타락시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타락시키다”는 말은 “덕이나 미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그렇게 타락시키는 행위가 범람한다. 청소년 비행에 관한 말들이 많다. 성인 비행에 관한 말은 더 많다.
자업자득
미국 가정 복지원의 원장이자 사무장인 저니바 B. 존슨은 금년초의 한 강의에서 “가정은 중병, 어쩌면 죽을 병에 걸려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그렇게 말한 다음 그것을 “많은 어린이의 음울한 실상”으로 부르면서 불길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가난한 집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며 교육도 별로 받지 못한 숱한 어린이를 국가에서 서슴없이 부유한 사회의 버림받은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은 자업자득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미 자업자득의 결과를 겪고 있다. 우리는 그 점에 대해 신문에서 읽어 볼 수 있고, 뉴스 방송에서 들어 볼 수 있으며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저돈은 총을 뽑아 저메인의 가슴에 세 방을 쏘았다. 저메인은 죽었다. 저메인은 15세, 저돈은 14세다.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여자 친구를 놓고 다투다 그렇게 되었다.
16세 된 마이클 힐리어드의 장례식에 100명이 모였다. 힐리어드는 농구 경기 때 언쟁을 벌인 후 걸어 나오다 머리 뒤에 총을 맞았다.
뉴욕(미국) 브루클린에서 십대 세 명이 집 없이 노숙하는 어느 부부에게 불을 질렀다. 그들은 소독용 알코올로 불이 붙지 않자 휘발유를 사용하였다. 그러자 불이 붙었다.
플로리다(미국)에서 다섯 살 된 아이가 아장거리는 아기를 5층에서 계단통으로 밀어뜨려 죽였다.
텍사스(미국)에서 열 살 된 소년이 놀이 친구를 총으로 쏜 후 시체를 지하실에 버려두었다.
조지아(미국)에서 15세 된 소년은 징계받는 도중 교장을 칼로 찔렀다.
뉴욕 시에서 십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불량배들이 방망이, 파이프, 도끼, 칼, 식칼을 가지고 무주택자들의 움막 근처에 가서 “들놀이”라는 행패를 부리면서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고 한 사람의 목을 베어 부상을 입혔다. 동기는 무엇인가? 한 조사가의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무주택자를 공격하는 짓을 재미삼아 하였다.”
미시간 주(미국) 디트로이트에서 11세 된 소년과 15세 된 소년이 함께 두 살 난 여아를 강간하였다. 두 소년은 그 아이를 대형 쓰레기통에 버려두었다고 한다.
오하이오 주(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여섯 살에서 아홉 살 사이의 소년 네 명이 한 국민 학교에서 아홉 살 된 소녀를 강간하였다. 칼럼니스트 브렌트 라킨은 클리블랜드의 「플레인 딜러」지에서 이 사건에 관해 이렇게 평하였다. “이 사건은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를, 우리의 가치 체계가 어떻게 시궁창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역력히 보여 준다.”
클리블랜드 주립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레슬리 피셔 박사는 텔레비전을 탓하였다. 그는 텔레비전을 “커다란 성행위 기계”라고 부르면서 “여덟 아홉 살 된 아이들이 그런 일들을 시청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미국 가정의 퇴락을 부모들 탓으로 돌렸다.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은 자신의 문제에 골몰한 나머지 자녀를 보살피기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한다.”
인과 응보
사회의 여러 요소들, 특히 보도 매체, 연예인, 오락 산업—인간성의 가장 나쁜 점을 이용하여 수익을 올리는 요소들—은 성, 폭력, 부패를 쏟아 내서 젊은층과 가정을 심하게 타락시킨다. 그러므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원칙, 인과 응보의 원칙, 죄는 지은 데로 간다는 원칙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는 끔찍스런 것이다.
사회는 양심 없는 어린이 세대를 산출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악명 높은 “들놀이” 만행 사건이 있은 후 제기되었다. 당시 28세 된 한 여자가 십대 불량배들에 의해 구타당하고 강간당한 뒤 죽도록 버려졌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십대들은 “잘했다는 듯이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으며 체포되었을 때 “농담하고 수다를 떨고 흥얼거렸다.” 그들은 그렇게 한 이유를 대면서 “재미있더군요”, “좀 따분했거든요”, “해볼 만한 일이더군요”라고 말하였다. 「타임」지는 그들을 “양심이라는 심적 부속물을 잃었거나 어쩌면 전혀 발전시키지 않은” “심리적 불구자”라고 불렀다.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이 나라는 양심 없는 또 다른 어린이 세대를 낳지 않기 위해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하였다. 저명한 심리학자 켄 머기드 박사와 캐럴 매켈비는 폭발적 동요를 일으킨 그들의 저서 「위험 천만: 양심 없는 어린이」(High Risk: Children Without a Conscience)에서 바로 그 위험성을 부각시킨다. 많은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제시하는 실제 사례들과 증거는 머기드의 주장을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즉 근본 원인은 출생시와 그후의 형성기에 부모와 자녀간의 유대가 튼튼하지 않은 데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가정은 너무 늦기 전, 형성기에 단란하게 가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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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사랑을—그리고 영원히!깨어라!—1991 |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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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사랑을—그리고 영원히!
“태어난 아기들을 지켜보면” 하면서 뉴욕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 대학의 시실리아 매카턴 박사는 이렇게 지적한다. “아기들은 예민하게 깨어 있으면서 환경을 의식한다. 아기들은 어머니의 자극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얼굴을 응시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기와 눈 접촉을 한다. 첫눈에 사랑하게 된다. 그것도 둘 다 같이!
어머니와 아기가 유대 관계를 맺는 이 순간은, 임부와 아기의 감각을 둔하게 하는 약물의 영향 없이 자연 분만한 경우라면 자연스레 있게 된다. 아기의 울음은 모유 생성을 자극한다. 산모가 아기와 피부 접촉을 하면, 산모의 산후 출혈을 감소시키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아기는 애착을 확보하도록 즉 어머니의 주의를 끌기 위해 울고 젖을 빨고 옹알거리며 꼴록꼴록 소리를 내고 웃고 버둥거리는 일을 하도록 프로그램된 뇌를 지니고 태어난다. 주로 어머니에 대한 애착은 아기가 사랑과 돌봄, 신뢰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아버지는 신속히 애착을 가질 중요한 인물이 된다. 아버지와 아기의 관계는 어머니와 아기의 친밀도에는 못미치지만 중요한 부면 즉 가볍게 찌르고 간질이고 부드럽게 장난치는 일을 더해 준다. 그렇게 할 때 아기는 깔깔대고 웃고 몸을 흔든다.
리처드 레스택 박사는 신생아를 꼭 껴안아 주는 것은 영양제와 같다고 보고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접촉은 정상아 발육에 음식과 산소만큼이나 꼭 필요하다. 어머니가 팔을 벌려 아기를 껴안으면, 수많은 정신 생물학적 작용이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대하는 일로 인해 심지어 뇌의 “주름살 모양이 다르게” 발달한다.
격리되지 않게 조심함
일부 사람들은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그런 애착이 출생시에 있지 않으면, 비극이 따른다고 지적해 왔다. 그렇지만은 않다. 사랑 넘치는 어머니 역할을 하여 유대를 공고하게 할 긴밀한 기회는 생후 여러 주일에 걸쳐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친밀한 관계를 오랫동안 갖지 못하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레스택 박사는 이렇게 알려 준다. “우리는 모두 평생토록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생애 첫해에 그런 필요를 매우 절실하게 느낀다. 아기에게서 빛을 차단한다면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바라볼 기회와 누군가 안아 일으켜서 꼭 껴안으며 속삭여 주고 극진한 관심을 쏟아 주고 만져줄 때 오는 기쁨이 없다면 아기는 그런 박탈을 견뎌내지 못한다.”
아기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운다. 일반적으로 관심을 얻기를 원한다. 한참 울어도 반응이 없으면 울지 않을지 모른다. 보살펴 주는 사람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시 운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으면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불안해 한다. 다시 심하게 운다. 그런 상태로 오랫동안 지나고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아기는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처음에는 화가 나고 격분하다가 결국 포기한다. 격리감이 일어난다. 아기는 사랑을 받지 않았으므로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도덕심이 자라지 않는다.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으며 누구에 대해서도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런 아기는 문제아가 되며, 극단적인 경우 범죄 행위에 대해 후회할 줄 모르는 정신병적 성품의 소유자가 된다.
첫눈에 사랑하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후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 1서 3:18) 수시로 껴안고 입맞추는 것이 좋다. 일찍부터, 너무 늦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의 참다운 가치관을 가르치고 교육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러한 가치관이 디모데에게 있었듯이 우리의 자녀에게도 있게 될 것이다.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 후 3:15) 자녀의 어린 시절과 십대 시절 전체에 걸쳐 날마다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신명 6:6, 7.
‘우리가 울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것이어요’
징계는 많은 경우 매우 논란이 되는 문제다. 하지만 징계는 적절히 행해질 때, 어버이 사랑의 필수 부분이다. 한 소녀는 그 점을 깨달았다. 그는 “훌륭한 분이신 어머니께”라고 적힌 카드를 어머니에게 보냈다. 그 카드에는 황금빛 태양과 나는 새들과 붉은 꽃이 크레용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만든 거예요. 우리는 카드를 만들어서 우리의 고마움을 나타내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점수 낮은 성적표를 받아 왔을 때 확인 서명을 하시지요. 우리가 옳지 않은 일을 할 때 매를 드시지요. 우리가 울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어머니를 정말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해주신 그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사랑과 입맞춤. [서명] 미셸.”
미셸은 잠언 13:24의 이러한 말씀에 동의한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권위를 상징하는 매를 사용하는 것에는 매질을 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으나 많은 경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자녀에 따라서, 잘못된 행위에 따라서 징계를 달리해야 한다. 친절하게 꾸짖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완고한 태도를 나타낼 때는 보다 따끔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개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이느니라.” (잠언 17:10) 또한 이런 원칙도 적용할 수 있다. “종[곧 자녀]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청종치 아니함이니라.”—잠언 29:19.
성서에서 “징계”라는 말은 교훈하는 것, 훈련시키는 것 그리고—행동을 시정하는 데 필요하다면 매를 대는 것을 포함하여—벌주는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12:11은 징계의 목적을 이렇게 알려 준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느니라.]” 부모는 징계를 너무 심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 (골로새 3:21) 반면에 너무 방임해서도 안 된다.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잠언 29:15) 방임적인 태도는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귀찮게 굴지 말고’라고 말하는 것이다. 징계는 ‘옳은 것을 해라, 네게 관심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1989년 8월 7일자에서 이렇게 바른 말을 하였다. “심하게 벌주지 않으면서도 확고한 지침을 세워 놓고 그에 고착하는 부모는 성취도가 높은 그리고 다른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는 자녀를 산출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그 기사는 결론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어쩌면 모든 과학 자료 중에서 가장 놀랄 만한 것으로 등장하는 주제는, 각 가정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사랑과 신뢰의 본 및 받아들여질 만한 한계를 세우는 것이지 수많은 기술적 세부 사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징계(징계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discipline]는 제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disciple]와 라틴어 어근이 같음)의 참다운 목표는 자녀를 사납게 벌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가르치고 인도하며 내적 제어력을 심어 주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가 하는 말을 듣고 부모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한다
「월간 애틀랜틱」(The Atlantic Monthly)지의 징계에 관한 기사의 서두는 이러하였다. “부모가 자신이 가르치는 가치관대로 생활해야만 자녀의 품행이 좋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 기사는 내적 제어력의 가치를 이렇게 보여 주었다. “품행이 좋은 십대들에게는 대개 책임감 있고 곧으며 자기 징계를 하는 부모가 있다. 그런 부모는 자신들이 신봉하며 자녀들에게 따르도록 권하는 가치관에 따라 생활하였다. 착한 십대들은 조사 과정의 일부로 문제 있는 십대들과 접하게 되었을 때에도 품행에 지속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부모의 가치관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삼았다.” 잠언의 이런 말대로였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
자녀에게 참다운 가치관을 심어 주려고 노력하면서도 자신은 그 가치관대로 살지 않는 부모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런 부모의 자녀는 “그런 가치관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었다.” 그 연구는 “차이를 가져온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치려고 한 가치관을 부모 자신이 얼마나 밀접히 따르느냐였다”는 점을 증명하였다.
저술가 제임스 볼드윈이 이렇게 말한 그대로다. “어린이는 결코 연장자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데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어김없이 연장자들을 본받았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로서 자녀에게 참다운 가치관을 가르치기를 원한다면, 최상의 방법 즉 몸소 자신의 가르침의 본이 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예수께서 위선자로 정죄하신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 같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느니라.]” (마태 23:3) 혹은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며 질책한 사람들과 같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로마 2:21.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서를 시대에 뒤떨어진 책으로 취급하며 성서의 지침을 비실용적인 것으로 일축한다. 예수께서는 그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에게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는다는 말씀으로 도전을 제기하신다. (누가 7:35) 다음 기사에 실린 여러 나라의 가정에서 보내온 내용은 그분의 말씀이 참됨을 증명한다.
[7면 삽화]
아기와 어머니와의 친밀한 유대는 아기의 감정 발육에 도움이 된다
[8면 삽화]
아버지가 아기와 보내는 시간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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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처의 자녀 양육—사랑, 징계, 본, 영적 가치관을 통한 부모의 역할깨어라!—1991 |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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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처의 자녀 양육—사랑, 징계, 본, 영적 가치관을 통한 부모의 역할
부모들이 자녀를 어릴 때부터 십대까지 성공적으로 양육한 것에 관해 여러 나라에서 보고를 보내왔다. 그 부모들 모두는 여호와의 증인이며, 그들의 보고는 위의 제목에 열거한 네 가지 부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를 강조한다. 그들의 보고 중 일부를 발췌하여 실은 이 내용은 그들의 자녀 양육 방식의 단지 몇 가지 면을 보여 준다.
하와이로부터
“성서에서 알려 주듯이, 사랑이야말로 ‘제일가는’ 특성입니다. 온갖 귀중한 면을 지닌 사랑은 가정과 가족 전체에 그 빛을 발해야 합니다. 캐럴과 저는 우리의 결혼 생활에서 하나님의 그 특성을 함께 나타냈습니다. 우리는 매우 친밀합니다. 우리는 함께 있기를 좋아합니다. 성공적인 자녀 양육의 주된 비결은 행복한 부부 관계를 영위하는 것이라는 저의 신념을 한껏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아기가 태어난 후 몇 날 몇 주일 동안 제 마음에 솟아오른 강력한 느낌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새로운 생명체의 시작에 대한 경이로움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아기 레이철에게 젖을 먹이면서 매우 행복해 하고 만족스러워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아내의 모습을 보고 기뻤지만, 약간 섭섭한 기분, 약간의 질투심도 들더군요. 아기가 아내에게만 들러붙어 있으니 제 역할은 무엇이겠습니까? 마치 제가 가정의 중심 위치에서 밀려난 듯한—아주 부드럽게지만, 어쨌든 밀려난 듯한—느낌이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도움으로 아내에 대한 느낌과 관심을 표현할 수 있었으며, 아내는 내게 많은 동정심과 지원을 나타냈습니다.
“그후 어느 정도 내키지 않는 일—더러워진 기저귀를 빠는 일은, 약소한 표현으로 특이한 경험임!—을 포함하여 아기와 관련된 온갖 허드렛일을 해줌으로써 아기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레이철 뒤로 아기를 다섯이나 더 두었습니다. 리베카가 막내인데 지금 여덟 살입니다. 우리는 각 자녀와 함께 성서 연구를 하였습니다.
“어릴 때의 자녀 양육에 대해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내와 저는 아기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아기들과 이야기하기를 즐겼습니다. 우리는 온갖 사물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종종 여호와와 그분의 아름답고 훌륭한 일에 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우습고 장난기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자녀에게 단지 유쾌하고 기분 전환을 가져오는 한가한 시간을 함께 갖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부모-자녀간의 유대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봅니다. 그런 이야기는 우리 가족 내의 훌륭한 의사 소통을 이루고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영적인 것, 자신을 주는 것이 더 가치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내와 저는 결코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물질을 추구하거나 물질을 아쉬워한 적이 없습니다. 재물의 노예가 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여호와와 가족에게 바쳐야 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옳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다음은 아내인 캐럴의 설명임)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것은 아기와 어머니 사이의 유대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기를 품에 안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므로 아기와 가까워지지 않을 수 없지요. 어머니는 두 시간 내지 네 시간 이상 아기 곁에서 떠나 있을 수 없지요. 언제나 남편과 저는 아기를 탁아모에게 맡기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하였습니다. 저는 언제나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 볼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직장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자녀와 가까워지는 주된 방법은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자녀와 함께 집에 있는 것을 대신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떠한 물질도 부모를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십대 자녀를 키우기가 어려웠던 것은 다만 아기들의 성장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십대 자녀가 저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고 점점 독립적이 되어 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가 매우 어렵더군요. 이 때는 두려움이 앞서는 시기며, 우리가 자녀를 가르치고 징계하며 틀잡아 온 모든 일이 시험받는 시기입니다. 자녀가 십대일 때 시작하는 것은 참으로 너무 늦습니다. 십대 자녀에게 도덕관, 인류에 대한 사랑, 특히 여호와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는 것은 너무 늦은 것입니다. 그런 것은 태어났을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12년 간 양육한 뒤 자녀는 중대한 사춘기 시절을 맞이합니다. 그렇지만 성서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 부모에게는 이제 십대 자녀가 마음으로부터 여호와를 섬기고 싶어하는 결정을 할 경우 즐거움과 평화를 거둘 시기인 것입니다.”—에드워드 오언스와 캐럴 오언스.
짐바브웨로부터
“자녀는 ‘여호와의 주신 기업.’ 성서는 시편 127:3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은 우리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그 기업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역점을 두고 노력한 것 한 가지는, 무엇이든지 함께하는 것—함께 기도하고, 함께 성서를 연구하며, 함께 숭배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벗들을 방문하고,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 징계가 필요하였습니다. 한번은 십대 초인 아들아이가 집에 늦게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걱정을 하였지요. 아이는 우리를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있음을 눈치챘지만, 다음날 아침에 거론하기로 하였습니다. 자정쯤 침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군요. 아들아이였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까지 네 시간 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이 모든 것은 두 분이 나쁜 교제에 관해 성서를 통해 베푼 교훈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방과후 몇몇 아이들이 함께 수영하러 가자고 압력을 넣더군요. 그중 한 아이가 저를 끌어당겨 물에 빠뜨렸습니다. 다른 아이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익사했을 거예요. 아이들은 저를 비웃으며 겁쟁이라고 불렀습니다. 곧장 집으로 왔지만 죄책감이 들어 집 밖에 있었어요. 두 분이 성서에서 알려 주는 대로 나쁜 교제에 관해 경고해 주신 것을 잘 듣지 않아 죄송합니다.’—고린도 전 15:33.
“아들아이는 울었고 저희도 울었습니다. 아이가 교훈을 배운 것이 기뻤으나 보다 깊은 인상이 남도록 징계를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4:6, 7은 여호와께서 자비로우시며 과실을 용서하시지만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심을 알려 줍니다.”—데이비드 무푸루리르와와 베티 무푸루리르와.
브라질로부터
“저는 남편을 여의고 혼자 아들아이를 키웁니다. 아울러 교사 일도 합니다. 어린이를 교훈하며 징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일관성 있는 교훈, 균형 잡힌 징계 및 부모의 훌륭한 본입니다. 확고함과 아울러 동정심을 나타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듣는 기술, 특히 마음으로 듣는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였습니다. 단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 소통을 하며 자녀를 관련시키고 자녀가 감정적으로 반응을 나타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아들아이를 가족 예산에 관련을 갖게 함으로 가족의 일부임을 느끼게 해주려고 하였습니다. 전기세나 수도세가 나올 때, 혹은 의류나 신발 값이 오를 경우 우리는 함께 그 문제를 의논하였습니다.
“잘한 일에 대해서는 진실하게 칭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면 하나님의 법과 원칙을 따르는 것의 가치를 아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몇 차례 교훈한 후에 실제로 매를 사용한 적도 있습니다. 참 어렵더군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결과는 참으로 축복이었습니다! 아이가 사춘기일 때, 순조로운 시기와 그렇지 못한 시기가 있습니다만, 교훈과 징계의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들아이는 내게 개인 문제를 털어놓고 자신의 느낌을 표현합니다.
“훌륭한 의사 소통을 유지하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아들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세속 일에 너무 몰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이와 문제가 있을 경우 저는 매우 주의 깊이 들으려고 하며 여호와의 도움으로 우리는 문제를 극복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저 자신도 실수를 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한번은 제가 하도 화가 나서 ‘입다물어라’하고 말했지요. 아들아이는 ‘입다물라’는 말은 사랑의 부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아이가 옳았습니다. 그날 오후 우리는 정말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욜란다 모라에스.
한국으로부터
“저는 가정 생활에서 성서 원칙을 열심히 적용하였습니다. 특히 신명기 6:6-9을 명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대로 자녀와 함께 있으면서 자녀를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을 자녀의 정신과 마음에 새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전 시간 봉사를 하는 선교인들과 벧엘 가족 성원을 집으로 초대하여 자녀에게 전 시간 봉사에 대한 의욕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자녀가 문제를 일으킬 때 부모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영의 열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녀 때문에 속이 상해서 화를 내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참을성 있고 본이 되는 행실을 나타내야 합니다. 자녀를 존중해 주며 자녀에게 상황을 설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쁜 짓을 한 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없다면 자녀를 믿고 언제나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자녀를 징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 먼저 자녀와 추리하면서 그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그의 행동이 여호와께 그리고 부모에게 얼마나 불쾌한 것인지를 지적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징계를 해야겠지요. 종종 저의 아들들은 징계를 받은 후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제가 왜 그처럼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는지 알 수 없군요. 제가 참 어리석었습니다.’ 아들들은 그들을 징계할 정도로 관심을 나타내는 부모에 대해 고마워합니다.
“부모는 나쁜 행실이 싹트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장남이 중학교 3학년일 때 그 아이 방에서 록 음악 소리가 크게 들리더군요. 그 아이가 학교 규율부에 가입하였고 세상적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규율부원들이 계속 압력을 가하고 또 호기심도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흡연을 하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흡연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였으며 아들아이는 규율부에서 나오겠다고 스스로 결정하더니 그렇게 하였습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학교 활동에서 벗어남으로 있게 된 공백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가족과 회중 성원들과 함께 건전한 오락을 마련하였습니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훌륭한 본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언제나 두 아들에게 제가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봉사자로서 전 시간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이 학업을 마쳤을 때, 저는 잠사(蠶絲) 회사에서 사직하고 전 시간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두 아들은 저의 결의를 보고 제 뒤를 따랐습니다. 두 아들 다 중립 문제를 충실히 지킨 후 전 시간 봉사에 들어섰으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심유기.
스웨덴으로부터
“우리는 5남 2녀를 키웠습니다. 현재 다 자라서 모두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 매우 활동적입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회중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우리와 함께 야외 봉사에 갔습니다. 차차 전파 활동을 하는 법을 배웠는데, 초인종을 누르는 일, 인사하는 일, 이름을 밝히는 일, 초대장이나 전도지 혹은 잡지를 전하는 일을 배웠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신권 전도 학교에서 연설을 하였습니다.
“때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였습니다. 그럴 때는 소리를 지르거나 입씨름을 할 것이 아니라 사랑과 참을성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들은 함께 추리하고 여호와의 견해를 강조함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우리는 금전 문제에 있어서 자녀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자녀들은 나이가 좀더 들었을 때 신문 배달이나 이탄 채취, 정원 손질 등의 일을 하였습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조부모를 찾아 뵘으로써 자녀들은 연로한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알게 되고 그런 분들에 대해 동정심을 나타낼 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결혼 30주년 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부모님께서 베푸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부모님이 저희에게 아낌없이 나타내 주신 따뜻한 사랑, 저희에게 심어 주신 순수한 믿음, 저희에게 안겨 주신 훌륭한 희망—이 모든 것은 말이나 돈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작은 기념품을 통하여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저희가 두 분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는지를 이해하실 것으로 여깁니다. [서명] 두 분의 자녀들이.’
“지난 그 모든 ‘20년 계획’을 돌이켜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 여호와께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매우 자비로우셨습니다.”—베르틸 외스트베리와 브리타 외스트베리.
부모들의 갖가지 표현들
“모유로 아기를 키우는 것은 아기가 어머니와 신체적으로 친밀한 접촉을 갖게 하는 여호와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흔들의자 역할로 그런 접촉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거의 매일 밤 자녀들을 안고 흔들어 주며 잠을 재우는 데서 기쁨을 얻었습니다.”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실제로 젖을 먹일 수는 없었지만 밤마다 목욕시켜 주는 일을 함으로 친밀한 신체 접촉을 하였습니다. 저와 아이들에게 흥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따금 아이들을 하나씩 따로 데리고 나가 외식을 합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유와 책임을 조금씩 늘려 주었습니다. 손에 움켜 쥔 용수철이 튀어 달아나지 않도록 서서히 풀어 주어야 합니다.”
“애정을 풍성히 나타내십시오. 안아 주고 입맞추는 일이 많아서 죽은 아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없으면 아이들의 감정이 죽을 수 있습니다.”
“참을성을 나타내고 아이들의 사기를 꺾지 마십시오. 항상 잔소리를 되풀이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이 자부심을 발전시키게 하십시오. 충고 한 마디에 칭찬 네 마디를 하십시오!”
“자녀에게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자녀를 될 수 있는 한 훌륭하게 키우십시오.”
[9면 삽화]
리베카 같은 어린이에게는 순수한 애정이 필요하다
[10면 삽화]
함께 일하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튼튼한 가족 유대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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