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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력이 가정에서 벌어질 때
    깨어라!—1993 | 2월 15일
    • 폭력이 가정에서 벌어질 때

      “사람이 휘두르는 폭력—뺨을 때리고, 난폭하게 밀어젖히고, 칼로 찌르며, 총을 쏘아 대는 일—은 우리 사회의 그 어느 곳보다 가정에서 자주 벌어진다.”—「굳게 닫힌 문 뒤에서」(Behind Closed Doors).

      미국의 어느 길을 가더라도, 올해 안에 한 집 건너마다 어떤 형태로든 가정 폭력이 적어도 한 번은 벌어진다. 그리고 네 집에 한 집꼴로는 폭력이 자주 벌어진다. 어처구니없게도, 밤거리를 무서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더 위험한 일을 겪는다.

      그렇다고 가정 폭력이 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어디에나 있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경우 세 건의 살인 중 두 건은 가족간에 벌어진다. 아프리카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나라마다 다르지만 모든 살인 건수 중 22퍼센트에서 63퍼센트는 가족간에 벌어진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많은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우악스런 남자들에게 천대를 받고 구타와 죽임을 당한다.

      캐나다에서도 해마다 약 100명의 여자가 남편이나 동거하는 남자의 손에 죽는다. 인구가 캐나다의 열 배에 가까운 미국에서도 해마다 약 4000명의 여자가 학대하는 남편이나 남자 친구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에 더하여 해마다 약 2000명의 어린이가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하며, 그와 비슷한 수의 부모가 자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러므로 세계 어디서나,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고, 아내가 남편을 때리며, 부모가 자녀를 때리고 자녀가 부모를 공격하며, 자녀끼리 서로 싸운다. 「가족이 다툴 때」(When Families Fight) 책은 이렇게 잘라 말한다. “성인이 살면서 겪는 가장 심한 분노와 폭력은 혈육간에 벌어진다. 그리고 이런 분노는 다른 어떤 관계에서 겪는 것보다 훨씬 심하다.”

      가족간에 벌이는 싸움

      배우자 학대: 흔히 남편들은 혼인 신고서를 아내를 때려도 좋다는 허가서로 본다. 사실 아내도 남편을 때리지만, 이 때 난 상처는 대개 남편이 아내를 때릴 때 나는 상처만큼 심하지는 않다. 「부모」(Parents)지는 이렇게 알려 준다. “[심한] 배우자 학대로 보고된 사례 중 95퍼센트 이상은 남편이 아내를 구타한 것이다.”

      뉴욕의 한 지방 검사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에 대한 폭력은 미국 사회에서 유행병과 같은 정도로 나타난다. FBI는 ·⁠·⁠· 해마다 무려 600만 명에 달하는 여자들이 구타를 당하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수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보도에 따르면, 대다수는 아니라도 꽤 많은 나라들에서 남성이 여성을 때리는 일이 유행병처럼 퍼져 있다.

      미국에서 어림잡아 “열 명의 여자 중 한 명이, 결혼 생활 기간중 언젠가 남편에게 심한 폭행(손찌검, 발길질, 물어뜯기 혹은 더욱 심한 일)을 당할 것”이라고 한다. 덜 심한 경우까지 합하면, “미국의 여자 두 명 중 한 명은 가정 폭력을 경험할 것”이라고 「가족 관계」(Family Relations)지는 말한다.

      사실, 뉴욕의 한 지방 검사는 “아내가 구타당해서 입원해야 할 정도로 다치는 사례는, 강간과 강도 및 자동차 사고를 전부 합한 것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말한다.

      로이스 G. 리비지 박사는 이렇게 지적한다. “분명한 사실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가족간의 폭력이 매우 흔하고 가해자들이 ·⁠·⁠·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 이것은 온갖 계층이나 인종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서 심각한 문제다.”

      이따금 피해자는 학대당한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열등감을 갖는다. 「부모」지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감이 없고 자신을 천하게 여기는 여자는 자신을 학대의 표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 학대당하는 여자들은 대개 자신의 유익을 위해 계획하고 행동하기를 두려워한다.”

      부부간의 폭력은 자녀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자녀는 다른 사람을 다루는 데 폭력을 써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일부 어머니들의 말에 따르면, 어떤 자녀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아빠한테 일러서 엄마를 때리게 할 거야”라고 어머니를 위협하기도 한다.

      자녀 학대: 해마다 수많은 자녀가 매를 몹시 맞아 심하게 다치거나 불구가 되거나 죽는다. 학대를 당했다고 한 건이 신고될 때 신고되지 않는 것은 200건이나 된다고 한다. “가정은 흔히 자녀에게 가장 위험한 곳”이라고 「결혼과 가족의 사회학」(Sociology of Marriage and the Family) 책은 주장한다.

      존 E. 베이츠 교수는 가정의 영향력 중에서 자녀가 나중에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학대라고 말한다. 수전 포워드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알게 된 바로 보건대, 인생에서 그 어떤 일도 학대만큼 사람들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남기거나 어른이 된 뒤에도 커다란 감정상의 어려움을 갖게 하는 것은 없다.” 네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이도 그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공격적인 태도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런 어린이 중에는 커가면서 마약 남용이나 알코올 남용, 범죄 행위에 빠지거나 정신 질환에 걸리거나 발육이 더딘 어린이가 많다.

      이해할 만하게도, 학대받는 많은 자녀는 자기를 학대한 부모에 대해 분노를 품는다. 그런데 흔히 그런 자녀는 직접 학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학대를 계속 못 본 체한 어버이에게도 분노를 품는다. 자녀의 눈에는 학대를 못 본 체한 것이 동조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노인 학대: 캐나다 노인 중 약 15퍼센트는 다 큰 자녀의 손에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한다. 한 의사는 “인구가 고령화할수록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며, 자녀가 져야 하는 재정적, 감정적 짐이 늘어갈 것”으로 내다본다. 이런 걱정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종종 나이 든 사람은 학대당한 사실을 입 밖에 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학대하는 사람에게 얹혀살기 때문에 못마땅한 형편일지언정 함께 살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나이 많은 한 여인은 언제 아들과 며느리를 당국에 고발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결같이 “다음 번에”라고 대답하였다. 아들과 며느리가 그 노인을 몹시 때려서 한 달 동안 입원한 적이 있다.

      동기간의 학대: 이런 형태의 가정 폭력이 널리 퍼져 있다. 일부 사람들은 “사내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라고 말하면서 그런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긴다. 하지만 한 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가정에서 만일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저질렀다면 법으로 처벌될 정도로 심한 폭력을 동기에게 휘둘렀다.

      많은 사람들은 동기간의 학대는 고질적인 습성이 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어떤 경우에 부모가 서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본 것보다 동기간의 학대를 경험한 것이 나중에 부부간의 학대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위험한 싸움터

      한 공식 조사원이 한때 어림잡은 바에 따르면, 경찰에 들어오는 요청 중 가정 폭력을 해결해 달라는 요청 건수가 다른 모든 범죄 사건으로 요청받는 건수를 다 합한 것보다 더 많다. 그 조사원은 또한 다른 어떤 요청보다도 가정 불화 때문에 요청을 받고 갔다가 죽임을 당한 경찰관이 많다고 주장하였다. “적어도 강도 사건이라면 대비하고 갈 수 있지만, 누군가의 집에 그냥 들어갈 때는 ·⁠·⁠·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도리가 없지요” 하고 한 경찰관은 말하였다.

      미국의 한 조사단은 가정 폭력을 폭 넓게 조사한 뒤, 전쟁을 하는 군대를 제외하고, 실재하는 가장 폭력적인 사회 단위는 가족이라고 결론지었다.

      가정 폭력의 원인은 무엇인가? 가정 폭력이 끝날 때가 올 것인가? 가정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다음 기사는 이런 질문들을 살펴볼 것이다.

      [4면 삽입]

      “여자에 대한 폭력은 미국 사회에서 유행병과 같은 정도로 나타난다.”—한 지방 검사

      [5면 삽입]

      “가정은 흔히 자녀에게 가장 위험한 곳이다.”—「결혼과 가족의 사회학」

  • 가정 폭력의 원인은 무엇인가?
    깨어라!—1993 | 2월 15일
    • 가정 폭력의 원인은 무엇인가?

      “가정은 바깥 사회에서 겪는 스트레스, 긴장, 부조리에서 벗어난 안식처가 아니라 흔히 그런 긴장이 연속되는 곳, 아니 더 심한 곳 같다.”—「친밀한 환경—결혼과 가정을 살펴봄」(The Intimate Environment—Exploring Marriage and the Family).

      가정 폭력이라는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한 지가 그리 오래 된 편은 아니다. 요 몇 십년 사이에 비로소 폭 넓게 조사되었다. 그렇게 조사한 결과가 언제나 같지는 않겠지만, 그런 결과를 통해 가정 폭력의 원인이 되는 기본 요소들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중 얼마를 살펴보자.

      가정 환경은 무슨 역할을 하는가?

      여러 연구가들은 자신이 조사한 결과를 이렇게 말하였다. “회견에 응한 부부들이 난폭하면 할수록 그만큼 그들의 자녀도 서로 그리고 부모에게 난폭하게 행동한다.”

      가족간의 폭력을 보기만 해도 어린이는 크나큰 영향을 받는다. “어머니가 맞는 것을 보는 어린이는 자기가 맞는 것과 다름없는 영향을 받는다”고 치료 전문가 존 브래드쇼는 지적한다. 에드라는 한 소년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싫어하였다. 그렇지만 은연중에 에드는—비록 자신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남자가 여자를 지배해야 하며, 지배하기 위해서는 여자에게 겁을 주고, 손찌검을 하고 거칠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에드는 어른이 되자 그런 난폭한 방식으로 아내를 학대하였다.

      일부 부모들은 자녀가 텔레비전에서 폭력물을 보지 못하도록 주의 깊이 단속한다.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부모는 감수성이 예민한 자녀에게 좋은 본을 세우기 위하여 더 주의 깊이 처신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임신, 실직, 어버이 사망, 이사, 질병, 재정 문제 들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사람들은 대개 폭력을 쓰지 않고도 스트레스를 이겨낸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특히 여러 요소들이 뒤섞인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폭력을 쓰려고 한다. 예를 들어, 연로한 어버이—특히 병약한 어버이—를 모시는 사람은 가정에서 다른 책임 때문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을 때 종종 학대를 하게 된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 결과 가족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자녀 학대를 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자녀 때문에 배우자 학대 역시 잦을 수 있다. “자녀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쉽사리 부부 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굳게 닫힌 문 뒤에서」(Behind Closed Doors)는 알려 준다.

      성에 대한 부당한 견해

      캐나다에서 상담 그룹을 운영하는 댄 바조렉은 여자를 학대하는 남자들이 여자에 대해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문화에 속해 있든지, 그런 사람들은 남자가 제일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양육되었다.” 학대하는 남자들을 치료하는 프로그램의 책임자 하미시 싱클레어의 말에 따르면, 남자들은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며, “여자를 거칠게 다루고 야단치며 윽박지르는 것”이 남자의 권리라고 생각하도록 훈련받는다.

      많은 나라들에서 남자는 아내를 소유물이나 재산 다루듯이 마음대로 다룰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남자가 아내를 관리하고 지배하는 것은 남자다움과 영예의 척도로 여겨진다. 종종 아내가 몹시 맞거나 학대를 당하는데도 법 제도로 막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런 나라의 법에서는 남자가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며, 아내는 남편이 아무리 수치를 주든지, 난폭하든지, 변태적이든지, 이기적이든지 간에 남편에게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CBS 텔레비전 뉴스 해설자 몰리 세이퍼는 남아메리카의 한 나라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여기보다 더 두드러지게 남성 우위를 예찬하는 곳은 없다. ·⁠·⁠· 법정을 포함하여 사회 전체에 남성 우위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법정에서 남자는 자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살인을 해도 특히 자기 여자를 죽인 경우라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그는 이 나라처럼 “여자를 천대하는 나라는 세상에 없다”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남존 여비 사상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런 사상이 심한 나라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한 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뉴욕의 가정 폭력 단속 기관의 책임자 미나 슐먼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여성에게 힘과 권위를 과시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가 폭력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보기에 가정 폭력은 힘과 지배력을 잘못 쓰는 것이다.”

      아내를 구타하는 일부 남편들은 열등감에 시달리며, 아내에게 열등감을 심어 주려고 한다. 이런 남편들은 아내가 열등감을 갖게 될 때 흡족해 하며, 다른 사람을 지배했다는 우쭐해진 느낌을 꽤 갖게 된다. 이렇게 하여 남자다움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남자다움을 증명한 것인가? 신체적으로 약한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정말 강한 남자라는 증거인가, 아니면 비이치적인 남자라는 증거인가? 힘센 남성이 약하고 무방비 상태인 여성을 때리는 것이 과연 남성다운 것인가? 도덕성이 강한 남자는 약하고 무방비 상태인 여자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에 대해 사려 깊음과 동정심을 나타낸다.

      학대하는 남편의 생각이 비이치적이라는 또 다른 증거는 그가 종종 아내를 때리는 이유를 아내 탓으로 돌린다는 사실이다. 그런 남편은 ‘이것을 제대로 안 했으니 때릴 수밖에’라든가 ‘저녁이 너무 늦었잖아. 꼭 맞을 짓을 한단 말이야’라는 암시를 주거나 그런 말을 한다. 학대하는 남편이 보기에 잘못은 늘 아내에게 있다. 하지만 배우자에게 있는 어떤 약점도 구타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알코올이 영향을 미치는가?

      알코올이 들어가면 제어력이 약해지고 충동에 따라 행동하려는 경향이 커지므로, 일부 사람들이 술 때문에 학대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흔히 정신이 멀쩡할 때는 난폭한 감정을 제어하는 사람도 술이 몇 잔 들어가면 행패를 부린다. 알코올은 정신력을 둔하게 하고 감정을 제어하는 힘을 약하게 한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은 알코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술을 마시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폭력을 쓰는 사람과 같은 부류에 속한다. 이 말로 볼 때 술을 마시는 사람은 취했을 때나 취하지 않았을 때나 마찬가지로 아내를 학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점과 관련하여 어떻게 추리하든지, 술은 감정을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개 방해가 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대중 매체가 행동에 미치는 영향

      영화와 텔레비전은 주로 거칠게 지배하는 남성상을 그리며 다툼과 분노를 해결하는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가르친다고 일부 사람들은 주장한다. 가정 문제 상담가 한 사람은 이렇게 털어놓는다. “영화 람보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매료되었습니다. 법을 준수하는 어른다운 [속] 사람은 람보가 사람을 마구 죽이는 것을 끔찍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어린이 같은 [속] 사람은 람보를 응원했지요.”

      많은 어린이가 수천 수만 시간이나 텔레비전 앞에서 사람들 특히 여자가 폭력, 강간, 천대를 당하는 것을 수없이 보기 때문에 자라서 다른 사람에게 그런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어린이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어른도 영향을 받는다.

      또한 특히 요즘 들어,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폭력, 부도덕, 여성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갈수록 더 많아진다. 이러니 가정 폭력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한 조사 그룹에서 알게 된 바와 같이, “폭력물을 보는 것과 공격적인 행동은 ·⁠·⁠· 분명히 관련”되어 있다.

      고립의 영향

      오늘날 많은 사람은 훈훈한 인간미 없이 쌀쌀하게 살아간다. 인정 있는 이웃의 식료품 가게 대신 슈퍼마켓과 염가 판매점이 들어섰다. 도시 재개발, 경제 문제, 실직 때문에 가족이 나그네처럼 지낸다. 사회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정 폭력이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제임스 C. 콜먼은 그가 지은 책 「친밀한 관계, 결혼, 가족」(Intimate Relationships, Marriage, and the Family)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콜먼은 남과 사귀지 않다 보면 의미 있는 대화를 하지 않게 되고, 학대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신뢰할 만한 벗에게 도움을 구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한다. 성품을 다듬어 줄 수 있는 벗이나 가까운 친족이 없는 사람은 훨씬 쉽사리 이기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그의 그릇된 생각을 날마다 다듬어 줄 친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잠언 18:1의 이러한 말과 같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가족간의 폭력을 겪는 사람을 위한 도움

      우리는 지금까지 가정 폭력에 대해 제시된 설명 중 일부만 살펴보았다. 다른 설명도 있다. 가정 폭력의 몇 가지 원인을 살펴보았으므로 이제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볼 차례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지내는 사람은 자신에게 학대하는 습성이 배지 않도록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성서의 견해는 무엇인가? 가정 폭력이 끝날 날이 올 것인가? 10면에 나오는 기사는 그런 질문을 다룰 것이다.

      [9면 네모와 삽화]

      감정적 폭력—말로 치는 것

      신체적 학대는 주먹으로 치는 것이다. 감정적 학대는 말로 치는 것이다. 선택한 무기만 다를 뿐이다. 잠언 12:18의 이러한 말과 같다.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감정적 폭력은 이렇게 ‘칼로 찌르는 것’을 포함하여 얼마나 위험한가? “결과는 [신체 학대와] 같다”고 수전 포워드 박사는 썼다. 감정적인 말을 들으면 “신체 학대와 다를바 없이 겁에 질리게 되고 손쓸 도리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많은 고통을 겪는다.”

      배우자에 대한 감정적 폭력: “부부간의 폭력은 신체적 폭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주로, 어쩌면 대부분 언어와 감정으로 휘두르는 폭력이다.” 오랫동안 폭력에 시달려 온 한 사람은 그렇게 말하였다. 학대에는 욕설, 고함치는 일, 끊임없는 비평, 비열한 모욕, 때리겠다고 위협하는 일이 포함될 것이다.

      깎아 내리고 멸시하며 윽박지르는 악담은 심한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비꼬는 말로 인격을 무시하는 것은 바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처음에는 아무런 해가 안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얼마 안 있어 자긍심을 약하게 한다. “신체적 학대와 말로 당하는 학대 중 선택하라면 언제나 신체적 학대를 택하겠어요”라고 한 여자는 말하였다. 이 여자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맞으면 자국이라도 남으니까 적어도 사람들의 동정이라도 받지요. 말로 학대를 당하면 정말 미칠 것 같아요. 상처를 볼 수 없으니까 아무도 모르는 거에요.”

      자녀에 대한 감정적 폭력: 이런 학대에는 자녀의 외모, 지능, 실력, 인격의 가치를 끊임없이 비평하고 깎아 내리는 말이 포함될 것이다. 비꼬는 말은 특히 해를 끼친다. 어린이는 흔히 진담과 “농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꼬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가정 문제 치료 전문가인 숀 호건 도니는 이렇게 지적한다. “어린이 자신은 감정이 상해 있는데 모두가 웃고 있다. 그러면 어린이는 자기 감정을 종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에, 스코틀랜드의 역사가이자 수필가인 토머스 칼라일이 한때 이렇게 한 말이 꼭 맞는다. “비꼬는 말은 대개 마귀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전에 나는 그런 말과 인연을 끊었다.”

      자녀 학대 문제 전문가인 조이 바이어스는 이렇게 말한다. “신체적 학대로 자녀를 죽일지 모른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정신을 죽일 수도 있다. 부모가 끊임없이 부정적인 말을 하면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가정 교육」(FLEducator)지는 이렇게 설명한다. “몸에 난 상처는 알아볼 수 있고 아물 수 있지만, 감정적 학대는 자녀의 정신과 인간성을 보이지 않게 바꾸어 놓아, 자녀의 본성과 대인 관계를 아주 바꾸어 놓는다.”

      [7면 삽화]

      폭력에 노출된 어린이는 커서도 행동에 큰 영향을 입는다

  • 가정 폭력이 끝나다
    깨어라!—1993 | 2월 15일
    • 가정 폭력이 끝나다

      “가정 폭력을 막고 가족간의 폭력을 줄이려면 사회와 가정 모두의 구조가 크게 달라져야 한다.”—「굳게 닫힌 문 뒤에서」(Behind Closed Doors).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은 형제간에 범한 것이다. (창세 4:8) 그 뒤 수천 년간 사람은 온갖 형태의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 갖가지 해결책이 제안되었지만, 많은 해결책에는 결함이 있다.

      예로서 자신에게 있는 문제를 인정하는 가해자만 교정할 수 있다. 아내 학대 습관을 고쳐 나가는 한 남편은 이렇게 한탄하였다. “[교정중인] 우리 같은 남자 하나에 ‘아내를 휘어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남자는 셋이나 됩니다.” 그러므로 학대를 일삼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왜 학대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자신의 결함을 시정하기 위해 도움을 받음으로써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 적다. 그런 까닭에 미국에서 벌어진 자녀 살인 사건 중 90퍼센트 정도는 살인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가정 분위기가 험악하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회 사업 단체와 경찰 조직이 그 정도밖에 일할 수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따로 있다.

      “새 인간성”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가족 성원끼리 화목한 관계를 다시 세워 나가는 것”이라고 한 연구 팀은 말한다. 가정 폭력은 단지 주먹 문제가 아니라 첫째로 정신 문제다. 이 문제는 가족 성원—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 자매—에 대해 서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관계를 다시 세워 나가는 것은 성서에서 말하는 “새 인간성”을 입는 것을 뜻한다.—에베소 4:22-24, 「새번역」; 골로새 3:8-10.

      그리스도와 같은 새 인간성은 가족 성원 사이에 더 나은 관계를 이루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새 인간성을 입는 데 도움이 되는 성서 원칙 중 가정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살펴보자.—참조 마태 11:28-30.

      자녀에 대한 견해: 부모가 자녀를 낳아 놓기만 하면 할 일을 다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녀를 짐으로 보기 때문에 부모 역할을 책임감 있게 하지 않는다. 이런 부모는 장차 자녀를 학대할지 모른다.

      성서는 자녀를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고 말한다. (시 127:3) 부모는 창조주 앞에서 이 기업을 돌볼 책임이 있다. 자녀를 성가신 짐으로 여기는 부모는 이 면에서 새 인간성을 발전시켜야 한다.a

      자녀에 대한 현실적 기대: 학대하는 많은 어머니들은 자녀가 한 살 때부터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기를 기대한다고 한 연구 결과는 밝혔다. 조사에 응한, 학대하는 어머니 중 3분의 1은 아기가 여섯 달 만에 그렇게 할 것을 기대한다고 지적하였다.

      누구나 불완전하게 태어난다고 성서는 알려 준다. (시 51:5; 로마 5:12) 성서는 사람이 분별력을 갖고서 태어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서는 사람의 지각력은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게 된다고 말한다. (히브리 5:14; 사체로는 본지에서) 더 나아가 성서는 ‘어린아이의 특성’, 아이의 “미련한 것”, 청년의 ‘헛된 것’에 대해 말한다. (고린도 전 13:11, 「신세」 참조; 잠언 22:15; 전도 11:10) 부모는 이런 한계를 이해하고 자녀의 나이와 능력에 맞는 것 이상을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자녀를 징계하는 일: 성서에서 “징계”로 번역된 희랍어 단어는 “교육하다”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징계의 주된 목적은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훈련시키는 것이다. 어떤 때는 매를 들 필요가 있겠지만 많은 경우 매 없이도 징계할 수 있다. (잠언 13:24) 성서는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고 말한다. (잠언 8:33; 사체로는 본지에서) 바울 역시 우리에게 “참을성이 있어야” 하며 “오래 참음”으로 책망해야 한다고 썼다. (디모데 후 2:24, 「새번역」; 4:2) 이 말로 보건대, 매를 댈 때에도 화를 터뜨리거나 가혹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성서 원칙을 생각할 때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이 좋다. ‘나는 징계를 하여 가르치는가, 아니면 아프게 하여 말을 듣게 하는가? 내가 하는 징계는 올바른 원칙을 심어 주는가, 아니면 단지 두려움을 갖게 하는가?’

      어른의 행동 한계: 아내를 학대하는 한 남편은 단순히 “자제력을 잃고” 아내를 때리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한 상담가는 그 사람에게 아내를 칼로 찌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하고 그는 대답하였다. 그 사람은 자신이 실제로 정해진 한계 안에서 행동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한계가 올바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당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당신은 의견 대립이 학대 행위로 변하기 전에 말다툼을 중단하는가? 아니면 감정이 끓어올라 고함을 지르고 모욕하는 말을 하며 난폭하게 밀치고 물건을 내던지거나 구타하는가?

      새 인간성에는 엄격한 한계가 있어서 정신적 학대나 신체적 폭력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라고 에베소서 4:29은 말한다. (사체로는 본지에서) 31절은 이렇게 덧붙인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욕설”, 「새번역」]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 “분냄”에 해당하는 희랍어 단어는 “충동적 성향”을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유독성 부모」(Toxic Parents) 책은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충동을 제어하는 힘이 너무 약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새 인간성은 신체적·언어적 충동에 대해 확고한 한계를 정한다.

      물론 새 인간성은 남편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적용된다. 아내는 남편을 화나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남편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에 대해 고마움을 나타내고 남편에게 협조해야 한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 모두 누구도 나타낼 수 없는 것 즉 완전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것이 아니라 서로 베드로 전서 4:8의 이러한 말을 적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연로한 사람을 존경함: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고 레위기 19:32은 말한다. 연로한 부모가 병에 걸려 있거나 요구하는 것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디모데 전서 5:3, 4은 부모에게 “경대”하고 “보답”하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존경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봉양도 포함될 것이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기였을 때 부모가 우리에게 베푼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우리 역시 필요한 경우 부모에게 배려를 나타내야 한다.

      동기간에 경쟁심을 버림: 가인은 적의를 품고 동생 아벨을 죽이려고 하기 전에 이런 충고를 들었다.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창세 4:7) 우리는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 “오래 참으며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고” 서로 참는 법을 배워야 한다.—에베소 4:2, 「새번역」.

      마음을 털어놓는 법을 배움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은 말없이 고통을 참기만 한다. 그러나 존 라이트 박사는 이렇게 강력히 권한다. “얻어맞은 아내는 믿음직한 제삼자로부터 감정적·신체적 보호책을 찾아야 한다.” 학대받은 가족 성원은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한다.

      학대를 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튼 사회의 가장 친밀한 단위—가족—에서 신뢰가 무너졌으니까. 하지만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다고 잠언 18:24은 말한다. 그런 벗을 찾아 슬기롭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야말로 필요한 도움을 얻는 귀중한 방법이다. 물론 학대하는 사람 역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해마다 수십만 명의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이 된다. 이들은 새 인간성을 입어야 하는 도전을 받아들인다. 이들 중에는 지난날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던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이전 습관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물리치기 위해 성서에 있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에 유익한’ 내용을 계속 적용해야 한다.—디모데 후 3:16.

      새로 증인이 된 이 사람들의 경우 새 인간성을 입는 일은 계속되는 과정이다. 골로새서 3:10(「신세」)에서 말하듯이, 새 인간성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속 노력해야 한다. 감사할 만하게도 여호와의 증인은 수많은 영적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의 지원을 받는다.—마가 10:29, 30; 또한 히브리 10:24, 25 참조.

      그런가 하면 세계 곳곳에 7만 개에 달하는 여호와의 증인의 모든 회중에는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은 인자한 감독자들이 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이 감독자들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다. (이사야 32:2, 3) 그러므로 오래 된 증인뿐만 아니라 새로 여호와의 증인이 된 사람들 역시 새 인간성을 입으려고 노력할 때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훌륭한 도움을 넉넉히 받을 수 있다.

      동정심 많은 감독자들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에 있는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에게 교훈을 청하려고 올 때, 이 감독자들은 훈련을 받았기에 모두에게 차별없이 귀기울인다. 감독자들은 모든 사람, 특히 심하게 학대받은 사람들에게 동정심과 이해심을 한껏 보여야 한다.—골로새 3:12; 데살로니가 전 5:14.

      예로서 구타당한 아내는 심하게 다쳤을 수 있다. 오늘날 여러 나라의 경우, 가족이 아닌 사람을 그런 식으로 구타하였다면 학대한 사람은 교도소에 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학대받은 사람을 각별히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성적 학대 같은 갖가지 형태의 학대를 당한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범한 사람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회중이 깨끗하게 유지되며 무고한 사람들이 보호를 받는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의 영의 흐름이 막히는 일이 없게 된다.—고린도 전 5:1-7; 갈라디아 5:9.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

      여호와의 증인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칙에 따라 살기로 동의한다. 증인들은 남자가 가장으로서 참 숭배에서 가정을 인도하게 되어 있음을 안다. (에베소 5:22) 그러나 가장이라고 해서 아내를 가혹하게 대하거나 아내의 인간성을 억압하거나 아내가 원하는 것을 무시할 권한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남편에게 분명히 이렇게 말한다.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느니라.]” (에베소 5:25, 28, 29)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내가 “귀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고 명확히 밝혀 준다.—베드로 전 3:7; 또한 로마 12:3, 10; 빌립보 2:3, 4 참조.

      분명히 어떤 그리스도인 남편도 아내를 말로나 신체적으로 학대하면서 아내를 참으로 사랑한다거나 귀히 여긴다고 진심으로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한다면 위선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알려 주기 때문이다. (골로새 3:19)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아마겟돈에서 이 악한 제도에 심판을 집행하실 때, 위선자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반대한 사람들과 같은 결말을 당할 것이다.—마태 24:5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 자기 몸을 구타하거나 자기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자기 머리카락을 잡아채는 사람이 있는가? 다른 사람이 있는 데서 자신을 멸시하고 자신에 대해 비꼬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사람은 정신 이상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스도인 남자가 아내를 구타한다면 그가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 활동은 하나님 보시기에 무가치한 것이다. “구타”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특권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디모데 전 3:3; 고린도 전 13:1-3) 물론 남편을 때리는 아내 역시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19-21에서는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일 가운데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 분냄”을 꼽으며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왕국”, 「신세」]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배우자나 자녀를 구타하는 것은 결코 변명할 여지가 없는 행위다. 그런 행위는 대개 국가의 법을 어기는 것이고 분명히 하나님의 법도 어기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이 발행하는 잡지 「파수대」는 그 문제에 대해 성경의 견해를 제시해 왔으며,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구타하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반복적으로 그리고 회개함이 없이 폭력적인 분노를 나타내면 그는 제명[파문]당할 수 있읍니다.”—1975년 9월 1일 호 407면; 비교 요한 2서 9, 10.

      하나님의 법이 허용하는 것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법을 범하는 사람들을 결국에 가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배우자를 구타하는 사람이 마음을 바꾸지 않고 계속 구타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구타당하는 그리스도인 배우자에게 무슨 마련을 허용하는가? 무고한 피해자는 신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을 잃을 위험을, 심지어 생명을 잃을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가?

      「파수대」는 가정 폭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허용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적하여 이렇게 말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충고한다.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헤어졌거든 다시 결혼하지 말고 그냥 지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남편과 다시 화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면 안 됩니다.’” 그 기사는 이렇게 더 말한다. “학대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하거나 생명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는 경우라면, 믿는 배우자는 ‘헤어지’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절한 기회에 ‘다시 화해해’야 한다. (고린도 전 7:10-16, 「새번역」 참조) 하지만, ‘헤어지는 것’ 그 자체가 이혼이나 재혼을 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상의 이혼 또는 법률상의 별거는 보다 심한 학대에 대한 보호책이 될 수 있다.”—1983년 7월 1일 호 19면; 또한 1988년 11월 1일 호 22-3면 참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는 피해자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갈라디아 6:5) 누구도 그런 결정을 대신 내려 줄 수 없다. 그리고 아내의 건강, 생명, 영성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학대하는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아내에게 압력을 가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결정은 아내 자신이 자유 의지에 따라 해야지 남이 권해서 될 일이 아니다.—참조 빌레몬 14.

      가정 폭력이 끝나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 마지막 날에 있을 것으로 성서에서 예언한 것 중 가정 폭력이 전형적인 특징으로 손꼽힌다는 것을 배워 알고 있다. 이 마지막 날에 많은 사람들이 ‘학대하고 혈육간의 애정이 없으며 사나울 것’임이 예언되어 있다. (디모데 후 3:2, 3, 「신 영어 성서」)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날이 지나간 뒤, 사람들이 “아무 위협도 받지 않고 안심하고 살 수 있을” 평화로운 신세계를 가져다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에제키엘 34:28, 「공동번역」.

      그 놀라운 신세계에서 가정 폭력은 영원히 옛일이 될 것이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 37:11.

      우리는 독자가 앞날에 대한 성서의 약속을 더 배워 알도록 권한다. 진실로 독자는 성서 원칙을 가정에서 적용함으로써 지금도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각주]

      a 부모 역할을 효과적으로 하는 일에 대한 훌륭한 조언이 사단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발행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길」 책 제7장에서 9장, “자녀를 갖는 일—책임과 상급”, “부모의 역할”, “어려서부터 자녀를 훈련시키는 일”에 나와 있음.

      [10면 삽화]

      성서 원칙은 가정 불화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13면 삽화]

      학대를 당한 사람은 믿음직한 벗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필요가 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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