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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에 대해 누가 가르쳐야 하는가?
    깨어라!—1992 | 3월 1일
    • 성에 대해 누가 가르쳐야 하는가?

      새 아기가 태어나면 얼마나 즐거운가! 부모는 아기를 보고 기뻐하며, 아기와 함께 놀고, 아기의 일거일동에 대해 벗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부모는 아기가 그들에게 새로이 크나큰 책임도 가져다 주었음을 깨닫는다. 그런 책임 중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은 날로 부도덕해지는 세상에서 자녀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부모는 어떻게 어린 자녀가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자녀 자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녀를 양육하도록 도울 수 있는가? 이 일을 감당하기 힘겨운 과업으로 보는 부모가 있을지 모르며, 따라서 그런 부모는 일부 제안들의 진가를 인식할 것이다.

      당신은 필시 부모에게 가르침받은 방법과 매우 비슷하게 자녀를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는 성에 관해 가르침받은 것이 별로 없다. 설령 당신이 잘 가르침받았다 하더라도, 세상이 변하였고, 따라서 자녀가 필요로 하는 것도 변하였다. 그에 더하여 본지의 여러 독자들은 보다 고상한 표준과 더 나은 생활 방식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내가 자녀를 가르치는 방식은 현재의 내 견해와 자녀의 점증하는 필요에 부응하는가?’

      일부 부모들은 자녀가 스스로 그런 지식을 얻게 내버려둔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의문을 일으킨다. ‘자녀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언제 배울 것인가?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배울 것인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여러 부모들은 “아, 아이들은 그것을 학교에서 배웁니다” 하고 말한다. 많은 학교가 실제로 성에 관해 가르친다. 그러나 도덕관을 가르치는 학교는 거의 없다. 미국의 전임 교육부 장관 윌리엄 J. 베닛은 1987년에 학교들이 “도덕적 견해를 표명하는 것에 대해 의도적인 반감”을 나타낸다고 말하였다.

      귀여운 두 딸의 아버지 톰은 자녀의 학교 대표자에게 “결혼 밖의 성관계가 나쁜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 보았다. 그 대표자는, 자신은 그렇게 가르치고 싶지만, 학교는 자녀의 결혼하지 않은 어머니나 그와 동거하는 남자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학교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는 거의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책을 사 준다’

      “아이들에게 책을 사 줍니다”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있을지 모른다. 좋은 책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는 것이 공감할 만한 것인지 매우 주의 깊이 확인해 보아야 한다. 이런 논제에 관한 책 중에서 도덕관을 다루거나 옳고 그른 것을 언급하기라도 하는 책은 거의 없다. 어떤 책들은 사실상 부도덕한 행위를 권한다. 그리고 성행위를 결혼 생활에 국한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책은 실로 드물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도덕관을 가르치는 책임은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맨 처음에 지우신 당사자—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에게 다시 돌아가야 한다. 성서는 아버지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네 자녀에게 [하나님의 법을]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신명 6:7.

      사실상, 부모는 자녀에게 최상의 교사가 될 수 있다. 어떤 책도, 어떤 학교도 부모의 강한 신념 혹은 건전한 가족의 본의 힘을 대치할 수 없다. 윌리엄 베닛이 이렇게 표현한 바와 같다. “여러 연구들은 부모가 성교육의 주된 근원일 때, 자녀가 성문제에 빠지는 일이 적을 것임을 보여 준다. ·⁠·⁠· 부모야말로 어느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일부 부모들은 지식이 실험을 유발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것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침받는가에 크게 달려 있음이 분명하다. 현실적으로 보건대, 청소년은 성에 관해 배워 알게 된다. 청소년이 거리나 학교 운동장의 누군가로부터 혹은 불결한 성향을 가진 성인들로부터 배우는 것보다, 도덕적이고 인자한 부모로부터 정확하고 품위 있는 방법으로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질문이 남는다. 어떻게 성에 관한 지식을 경건하고 품위 있게 가르칠 수 있는가? 청소년 자녀가 “누구나 그렇게 한다”는 말을 들을 때, 어떻게 그들에게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시킬 수 있는가? ‘음행을 피하라’는 성서의 규범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생활로 인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자녀가 깨닫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이어지는 기사들은 이런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가치 있는 답을 알려 줄 것이다.—I 데살로니카 4:3, 「공동번역」.

      [3면 삽입]

      “부모가 자녀에게 심어 주는 가치관이야말로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 같다.”—「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 언제 시작하고, 얼마나 말해 줄 것인가?
    깨어라!—1992 | 3월 1일
    • 언제 시작하고, 얼마나 말해 줄 것인가?

      성실한 여러 부모들은 13세 된 자녀와 10분 간 숲속을 거닐며, 거북스런 성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성교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불충분한 것일 뿐 아니라 너무 늦은 것임이 증명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사랑이 많은 한 어버이가 “아이들은 내가 이야기해 주려는 것을 이미 거의 다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가르치는 더 나은 방법이 있는가? 있다면, 부모는 언제 시작해야 하며,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지혜로운 방법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이 중요한 교육을 시행할 기초를 놓는 것이다. 자녀가 어렸을 때 교육을 시작하면, 자녀가 알아들을 만한 정도로 이해하기 쉽게 조금씩 차분하게 지식을 전해 줄 수 있다.

      부모는 자녀를 목욕시키면서, “이것은 가슴 ·⁠·⁠· 배 ·⁠·⁠· 무릎”이라는 식으로 신체 부위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다. 배와 무릎 사이를 건너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사이에 있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단지 내보이지 않는 부위일 뿐인가? 물론 우리는 속된 어휘로 그런 은밀한 부분을 묘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음경” 혹은 “음문”이라고 말하면 어떤가?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심히 좋았더라”고 표현하신 창조물의 일부다.—창세 1:31; 고린도 전 12:21-24.

      그후,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을 자녀가 보게 될 때, 남자에게는 음경이 있고 여자에게는 음문이 있음을 품위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런 부위는 내보이지 않는 것임을 부드럽게 설명할 수 있다. 이런 부위에 대해서는 가족끼리만 이야기해야 하며, 다른 아이들 혹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이야기해서는 안 됨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자녀가 그런 부위에 대해 부끄러워하기 전에 일찌감치 시작하여 자녀의 이해력이 자람에 따라 점진적으로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출산을 설명함

      자녀가 세 살 내지 다섯 살이 되면,a 출산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하여 “아기는 어디서 와요?” 하고 물을지 모른다. 그럴 때는 “엄마 뱃속의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서 자란단다”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다. 한동안 그 대답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후에 자녀가 “아기는 어떻게 나오나요?”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기가 나오도록 특별한 문을 만드셨지.” 어린이는 주의력을 기울이는 기간이 짧으므로 간단하고 직접적인 대답이 가장 좋다. 필요한 지식을 한 번에 조금씩 알려 주면서 나중을 위해 좀더 남겨 두는 것이 좋다.

      깨어 있는 부모는 가르칠 기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가까운 친척이 아기를 낳을 때가 다가올 경우, 어머니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모가 곧 아기를 낳을 거란다. 엄마도 너를 낳기 몇 주 전에 배가 저만했지.” 그의 동생을 임신한 상태라면 흥미있고 즐거운 교육을 여러 달 베풀 수 있다.

      후에 자녀는, “아기는 어떻게 생기기 시작했나요?” 하고 궁금해 할지 모른다. 이렇게 간단히 대답할 수 있다. “아빠에게서 나온 한 씨가 엄마의 알세포와 만나면, 아기가 자라기 시작하는데, 마치 땅에 씨를 심으면 꽃이나 나무로 자라는 것과 같단다.” 그런가 하면, 자녀가 “아빠의 씨가 어떻게 엄마 속으로 들어가나요?” 하고 물을 때가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품위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않니. 남자에게는 음경이 있지. 엄마의 몸에는 그 음경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이 있단다. 그래서 씨가 심어지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아기는 훌륭하고 따뜻한 곳에서 자라 혼자 살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된단다. 그런 다음 귀여운 새 아기가 태어나게 되지!”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을 마련하신 놀라운 방법에 대해 경이감을 품은 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b

      질문을 듣고 당황한 나머지 “좀더 크면 이야기해 주마”라고 답변을 얼버무리는 일이 결코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녀의 호기심이 더 커질 수 있으며, 다른 부적합한 근원에서 지식을 구하려는 마음이 생길지 모른다. 그런 질문을 할 만큼 큰 자녀는 간단하고 품위 있는 답변을 들을 나이가 된 것이다. 대답해 주지 않으면, 자녀는 실망하여 더는 부모에게 지식을 구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나 일찍 시작해야 하는가?

      여러 부모들은 늦어도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그런 것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들어가면 다른 아이들로부터 별로 정확하지 않은 지식을 상당히 듣게 될지 모른다.

      한 할아버지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는 질문을 전혀 안 했다. 그런데도 여섯 살이 되자, 아버지는 아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설명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아버지는 자녀를 산출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결합은 식사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결혼한 사람들만 그렇게 결합할 수 있음을 언명하셨다고 말하였다. 그래야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있게 된다고 말하였다.” 그 할아버지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버지는 제때에 설명한 것이었다. 나는 여섯 살 된 아이들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도덕한 그림을 그리면서 웃는 것을 본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런 설명을 수치스러운 것인 양 할 것이 아니라 은밀한 것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는 다른 아이들에게 혹은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 되고, 가족끼리만 은밀히 해야 함을 다시 말해 줄 수 있다. 자녀가 무심코 그런 이야기를 입 밖에 내면 부드럽게 타이를 수 있다. “쉬! 그것은 은밀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지. 가족끼리만 이야기해야 하는 거야.”

      충격적인 것이 아님

      이런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충격을 받는 독자가 있다면, 그런 문제에 대해 자녀에게 설명해 줄 품위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성실한 젊은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단란한 가정에서 솔직하게 설명하는 것이 여러 부모들이 처음에 그런 것을 배워 알게 된 방식보다, 즉 가정 밖의 불결한 근원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부모가 실제로 귀기울여 듣고, 간단하고 품위 있는 방법으로 질문에 대답하면, 자녀가 나이가 들고 지식을 점점 더 필요로 함에 따라 다른 질문들도 부모에게 가지고 오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각주]

      a 어린이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본 기사에서 연령에 관해 언급한 것은 단지 일반적인 것으로서, 그렇게 점진적인 방식으로 가르쳐야 함을 보여 줄 뿐이다.

      b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길」 책은 이런 것과 그 외에 도덕적 자녀 양육과 가정 생활의 여러 부면을 다룬다. 독자에게 본지를 전해 준 사람에게 혹은 본지 5면의 주소에 있는 발행소에 그 책을 요청할 수 있다.

      [6면 삽화]

      출산을 기다리는 때는 가치 있는 교훈을 할 기회가 된다

  • 일찍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깨어라!—1992 | 3월 1일
    • 일찍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에게는 신체 기능이 어떠한지에 대해 그리고 부도덕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이치적인 정도로 철저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그러면 언제 그런 교훈을 시작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것보다 일찍 시작해야 한다.

      청년기는 성적으로 성숙해 가는 표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나이인 사춘기에 시작된다. 소녀는 10세나 그보다 일찍 혹은 16세나 그보다 늦게 초경을 경험한다. 소년은 11세 혹은 12세 때 처음으로 설정을 경험할 수 있다. 당신의 자녀는 그때가 되기 전에, 그러니까 아홉 살쯤에는 준비가 다 된 상태일 것인가?a 자녀는 또한 그 나이에 동정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 것인가?

      자녀에게 신체 변화를 알려 주라

      딸아이에게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변화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주기를 언급할 수 있으며, 자신이 사용하는 보호 수단이 어떤 것인지 딸에게 보여 줄 수 있다. 어머니는 이런 변화가 신체의 정상적인 작용임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어머니는 딸아이의 몸이 지금부터 여러 해 후 결혼하여 어머니가 될 때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임을 매우 건전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머니는 딸에게, 신체가 자궁에서 아기를 위해 혈관이 많은, 특별히 부드럽고 푹신푹신한 내막을 준비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아기가 수태되지 않으면 그 내막은 폐기되고 질을 통해 나가며, 이런 과정을 월경이라고 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와 비슷하게, 아들아이도 설정 혹은 몽정에 대해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신명 23:10, 11) 이따금 꿈을 꿀 때, 미끈미끈한 액체를 배출하는 것은 누적된 정액을 방출하는 신체 작용에 불과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아들과 딸 모두 몸의 그런 변화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몸은 앞으로 결혼하여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b

      부모는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는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교사다.

      안전 성교란 무엇인가?

      어느덧 세월이 지나 자녀가 십대로 접어들면, 부모는 자녀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성관계가 괜찮다는 말을 듣는다 할지라도 그런 관계가 위험한 것임을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AIDS를 포함하여 성 매개 질환은 세계적인 역병이 되었다. 그런 질병은 불임증, 선천성 결손, 암, 심지어 죽음까지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런 병은 자신이 감염되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전염될 수 있다.

      자녀는 임신을 방지하거나 질병 전달을 막는 데 완전히 효과적임이 증명된 피임법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실, 갖가지 피임법을 사용하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소녀들이 임신한다. 그리고 콘돔이 감염된 성관계 상대에 의해 AIDS에 걸리지 않도록 막아 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뉴잉글랜드 의학지」(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는 콘돔이 AIDS 바이러스 전달을 막는 데 무려 17퍼센트나 실패한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므로 「뉴욕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레이 케리슨은 콘돔이 ‘AIDS에 걸릴 위험을 최소로 줄여 준다’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이렇게 기술한다. “대단한 최소다. 권총에 탄알을 넣고 약실을 돌려 러시아 룰렛을 하는 사람은 여섯 번 중 한 번은 죽게 된다. 콘돔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다섯 번 중 한 번은 AIDS에 걸린다. 이제 우리는 콘돔-AIDS 속임수에 진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것은 성 룰렛이다.”

      자녀는 성 매개 질환의 해결책이 간단한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해결책은 출산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사용하는 데 하나님의 마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실로 성적 능력을 안전하게 사용하는 길은 결혼 관계 내에서, 이상적으로 말해서, 그 역시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지 않는 사랑하는 한 사람과 평생토록 결합하는 것이다.

      보호책인 하나님의 교훈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 그 아내와 연합[할찌로다.]” “간음치 말라.” “음행[은] ·⁠·⁠·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음행하는 자[는] ·⁠·⁠·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왕국”, 「신세」]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창세 2:24; 마태 5:27; 에베소 5:3, 5.

      이런 교훈은 압제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교훈을 따르면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 태어나지 않은 아기는 그의 권리를 누리게 된다. 부모 즉 아버지와 어머니를 갖게 된다. 부모는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자녀의 삶에 기여할 수 있다.

      부모는 가르침과 본을 통하여 성서에 근거한 원칙을 자녀의 마음과 정신에 확고하게 심어 주어야 한다. 부모는 견고한 재료인 내화 재료로 건축해야 한다. 성서에서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다.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부모가 견고하게 건축하여 그 공력이 불에 견딘다면, 부모는 풍부한 상을 받게 될 것이다.—고린도 전 3:13.

      그러나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다. ‘자녀가 십대와 성인으로 자라갈 때, 어떻게 그런 훈련을 강화할 수 있는가?’

      [각주]

      a 미국 매릴랜드 주 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리언 로젠버그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어린이가 9세가 될 때까지는, 이미 부모와 함께 앉아서 성과 도덕의 세부점에 대해 충분히 세세한 논의를 했어야 한다. 어린이가 부모로부터 더 많은 지식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만큼 더 좋다.”

      b 더 자세한 점은 본지 발행소를 통해 받아 볼 수 있는, 「청소년기—보람있게 사용해야 할 시기」 책의 “소년기에서 성년기로의 성장”과 “소녀기에서 성숙기로” 장들에서 볼 수 있음.

      [8면 삽화]

      자녀를 신체 변화에 대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 동요하는 십대
    깨어라!—1992 | 3월 1일
    • 동요하는 십대

      십대들은 성욕을 자극하는 메시지에 둘러싸여 있다. 신발에서 청바지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을 판매하는 데 성이 이용된다. 현대 음악은 성적인 암시를 주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텔레비전에서 매혹적인 성인들은 이 사람 저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다. 그러면 그것이 합당한 일인가?

      미국의 한 주요 신문은 TV의 황금 시간대에 “성적 내용물을 대량으로 쏟아 놓는 것”은 “당혹스럽고 몹시 무책임한 프로그램 추세”라고 말하였다. 「미국 의학 협회지」(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는 그것을 “오락과 광고 매체로 청소년을 착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부모는 누구나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아님을 자녀가 알도록 해야 한다. 설령 미국의 17세 소녀 중 절반이 이미 성경험을 했다는 주장이 있을지라도, 여전히 나머지 절반은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미국의 전임 교육부 장관 윌리엄 J. 베닛이 “‘누구나’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는 그러한 청소년—17세 청소년의 절반—에게 지원과 후원도 베풀고 싶다”고 말한 바와 같다.

      그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그레이디 기념 병원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16세 미만의 소녀 10명 중 9명은 “‘싫다’고 말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했다.” 부모는 자녀가 어떤 부도덕한 제의에 대해서도 약하고 불투명한 반응이 아니라 단호하고 명확하게 싫다고 말하는 것이 유일하게 옳은 반응임을 확신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품위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거절하는 사람을 존경할 것임을 자녀가 깨닫도록 도울 수 있는가? 십대 소녀 에멀리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신문에 “매우 존경받는 사람들은 성관계를 갖지 않아요”라고 말한 바와 같다.

      부모는 자녀가 성에 강력한 힘—인류 전체를 산출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음을 인식하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제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와는 달리, 성은 고성능 스포츠 카와 같이 도로 규칙에 따라 올바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바람 부는 산악 지대의 도로에서 규칙을 무시하면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 성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을 무시하면 그와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애지중지하는 자녀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깨우칠 수 있는가?

      순결이 가치 있는 것임을 가르치라

      성서의 훌륭한 본인 어여쁜 술람미 소녀에 대해 십대 자녀와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술람미 소녀는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그는 도덕적으로 말해서 접근할 수 없는 망대들이 있는 요새의 오를 수 없는 성벽 같았다. 그리고 그의 남편될 사람이 보기에 그는 “화평을 얻은 자” 같았다. 그렇다. 후회로 괴로워하는 일 없는 정신의 평화는 순결로 인한 풍성한 유익이다.—아가 8:10.

      그러면 어떻게 청소년이 도덕적으로 성벽처럼 견고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 부모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부도덕을 초래할 수 있고 종종 초래하는 상황을 피함으로써 예방 조처를 취할 필요가 있음을 성숙해 가는 자녀가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녀는 음주 운전이 재난을 초래할 수 있는 것처럼, 여러 사람들이 술을 가지고 오거나 책임감 있는 성인이 아무도 없는 십대들의 파티 역시 재난을 초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이성인 다른 청소년과 집에 단둘이 있는 것은 유혹의 문을 여는 것임을 인식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청소년은 배우자가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의 가슴을 포함하여 국부를 만지게 허용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위험한 것임을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 성적 유혹은 흔히 그런 신체 부위를 성적으로 자극시키고 만지는 일로 시작된다는 것을 자녀에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비교 고린도 전 7:1, 「신세」 참조.

      부모는 진실한 사랑이란 성관계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의미하며, 결혼 밖의 성관계는 그릇된 것임을 사랑스런 자녀가 깨닫도록 도와야 한다. 일부 청소년은 결혼 서약을 하기 전에 성관계를 갖는다. 그런 청소년은 결혼하는 일 없이 여러 상대와 성관계를 가질지 모른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정작 결혼 배우자가 필요하게 되면, 함께할 사람 없이 버림받은 상태임을 알게 된다. 아무도 그에게 서약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서약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자녀들은 그들의 동정이 매우 소중한 것이어서 폐수처럼 내버릴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성의 온전한 즐거움은 결혼이라는 신성한 마련 안에서만 올 수 있음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성서는 아름다운 시적 표현으로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잠언 5:15, 16, 18.

      사랑 많은 부모는 그런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일은 오늘날 특별히 도전이 된다. 그 이유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임신이 널리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산과 간호사인 릴리언은, 자랑스러워하는 조부모가 15세 미혼부의 팔에 갓 태어난 아들을 안겨 줄 때, 준비되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그에게서 두려워하는 눈빛을 보는 것은 더는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 텔레비전 해설자는 “남편 없이 자녀를 둔 소녀들” 다수가 학업을 마치지 못하거나, 직장에 다닐 수 없거나, 자녀를 적절히 부양할 수 없는 경우가 흔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이런 십대 미혼모들이 “자신의 개인적 비극에 갇혀 있다. ·⁠·⁠· 빈곤은 거의 필연적으로 따르며 비참한 악순환이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였다.

      부모 자신의 본

      부모 자신의 행동은 자녀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 때때로 부모가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교묘한 방법으로 영향을 미친다. 아버지가 이성에게 쉽게 눈길이 끌리는 경향이 있다면 어떠한가? 혹은 눈길을 끄는 남자가 지나갈 때, 어머니가 “야 멋지다!” 하고 말한다면 어떠한가? 그런 부모는 십대 자녀가 순결을 지키도록 격려하는 것인가? 부모가 신체적 특징을 특히 칭송한다면, 자녀가 도덕관이나 친절, 참된 사랑 혹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보다 외모를 앞세운다고 해서 놀랄 일이겠는가?

      그러므로 자녀에게 성에 관해 알 필요가 있는 것을 가르치는 데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포함된다. 그것에는 부모의 태도, 부모가 가정에서 조성하는 영, 자녀를 일찍부터 가르치려는 자진성 및 부모가 세우는 본이 포함된다. 이 모든 일에는 시간과 노력이 요구됨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상은 크다!

      아직도 가르치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자녀가 거의 다 자랐는데도, 아직 그런 것에 대해 자녀와 이야기하지 않은 부모가 있는가? 그런 부모는 간단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네게 이런 사실에 대해 말하려고 너무 오래 기다린 것이 잘못이구나. 그렇지만 네가 가능한 한 최상의 삶을 누리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

      사실, 자녀가 나이 들은 다음에 이런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자녀에게 도덕적 교훈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책임이자 특권이다. 뉴욕 대학교의 론 몰리아는 이렇게 말하였다. “자녀에게 성에 관해 이야기할 권리를 포기하는 어버이는 그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훌륭한 경험을 포기하는 것이다.”

      부모가 최근에 하나님의 도덕적 요구 조건을 인식하게 되었고, 자녀는 부모가 과거에 그런 요구 조건에 따라 생활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경우, 부모는 이제 변하게 된 이유를 반드시 자녀가 이해하게 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본지를 읽어 보고 이 내용에 대해 이야기 나눌 마련을 할 것을 제안할 수 있다. 부모는 청소년 자녀가 “아, 저는 다 알아요!”라고 말하더라도 결코 낙담하지 않아야 한다. 학교에서 떠도는 통념도, 같은또래 아이들의 이야기도, 심지어 성기능의 경험도 건전한 도덕적 지침을 대신하지 못한다. 무지가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은 진리다.

      자녀를 훈련시키는 데는 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상은 비길 데 없이 훌륭한 것일 수 있다! 성서에서 이렇게 간단 명료하게 언명하는 바와 같다. “완전히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잠언 20:7.

      [9면 삽화]

      텔레비전은 성에 관해 무엇을 가르치는가?

      [10면 삽화]

      운전 규칙을 무시하면 흔히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듯이, 경건한 행동 규칙을 무시하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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