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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에 대한 사랑—일만 악의 뿌리
    깨어라!—1994 | 4월 1일
    • 돈에 대한 사랑—일만 악의 뿌리

      어느 세대에 속한 사람이든지 간에, 지구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희구하는 것—돈!—을 자기 세대보다 더 열렬히 추구한 세대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어느 세대든지 간에, 재화(財貨)를 얻으려고 전쟁을 치른 일과 그 전쟁의 길이가 흔히 돈을 댈 수 있는 기간에 좌우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돈 때문에 살해된 사람이 허다하다. 잘사는 사람의 자녀를 납치하여 볼모로 잡아 두고 몸값—부모가 자녀를 무사히 돌려 받기 위해 내놓는 돈—을 요구한다. 의심하지 않다가, 평생 모은 돈을 사기꾼에게 빼앗긴다. 사람들의 집을 샅샅이 뒤져 돈을 털어 간다. 앞뒤를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한 은행을 터는 바람에 “공적(公敵) 제1호”로 분류되었다. 어느 세대든지 간에, 그러한 수치스러운 행동을 자기 세대만이 경험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한 비열한 인간이 절친한 벗,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돈 30냥 때문에 배신하는 것을 본 세대가 있는데, 그보다 더 욕심 사납게 돈을 추구하는 것을 목격한 세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이 세대에, 좀처럼 잡기 어려운—한 미국 작가가 “전능한 달러, 만인이 정성을 쏟는 그 위대한 대상”이라고 부른—이 교환 매개물을 잡으려는 추세가 이전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은행 강도들이 요즘 세대보다 더 앞뒤를 가리지 않았던 세대는 없다. 성인 남녀뿐 아니라 청소년까지도 출납계원에게 총을 겨누고 수백만 달러를 가로채어 가니 말이다. 이제는 그러한 도둑질이 널리 퍼져 별로 보도 매체의 주목을 끌지도 못한다. 금융 기관이 수십 개나 파산했다. 탐욕스런 소유자가 자기 개인 용도로 예금자의 돈에서 수백만 달러를 불법적으로 조작 인출하여, 은행 자산을 바닥 나게 하고 많은 예금자를 사실상 망하게 했기 때문이다.

      유명 인사의 생활 방식을 맛보려고 고용주에게서 수백만 달러를 횡령하는 오늘날의 사무직 근로자는 어떠한가? 어둑한 거리에 숨어 있다가 행인의 손가방과 지갑을 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낮에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앞뒤를 가리지 않는 노상 강도, 살해되고 돈을 빼앗기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일부 도시 지역의 주민들은 이렇게 불만을 털어놓는다. “거리에서 습격을 당하게 될 것인가가 아니라 그런 일이 얼마나 자주 있을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강도를 달래어 목숨을 건지기 위해 ‘강도 무마용 돈’을 지니고 다니기까지 한다. 불행하게도, 20세기의 이 결정적인 세대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냉혹하게 돈 추구를 경험하고 있다.

      가정 생활에 미치는 돈의 힘

      돈 때문에 날마다 벌어지는 부부 싸움을 들여다보자. “돈은 우리의 삶에서 모든 욕구 불만을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다”고 한 연구가는 기술했다. “돈에 대한 싸움을 그치려면 자신과 배우자가 돈을 어떻게 여기며 사용하는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부유한 가정이든 가난한 가정이든 아니면 중간층이든 간에, 부부들이 대개 돈 때문에 싸운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가 의견을 같이한다. 또 다른 연구가는 이렇게 말했다. “돈을 쓰거나 모으는 일과 관련하여 어찌나 많은 싸움이 벌어지는지 놀랍다.” 예를 들어, 아주 잘사는 부부를 고려해 보자. 흔히 한푼이라도 아끼는 쪽은 돈을 모으려고 하지만, 낭비하는 쪽은 돈을 쓰려고 한다. 부자인데도—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풍부해서—싸움이 벌어진다. 돈 때문에 결혼하고, 꿈꾸어 보지도 못한 생활 방식을 누리다가, 마침내 엄청난 위자료를 받고 이혼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에 미친 이 사물의 제도에서, 돈은 힘과 긍지를 상징한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많이 벌 때 흔히 분개심이 인다. 아내가 돈을 많이 벌 경우 남편은 힘과 긍지를 잃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은밀한 훼방꾼이 아니라—그토록 탐내는 전능한 돈이 서로를 갈라 놓아, 질투가 추한 모습을 드러낸다. 돈과 사랑의 싸움에서, 대개 돈이 쉽게 이긴다.

      상태는 그렇게 계속된다. 참으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다. (디모데 전 6:10) 하지만 돈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크게 고통을 겪고 고생을 한다.

      어디서나 돈, 돈

      흔히들 돈이 있어야 돈을 번다고 한다. 광고주가 제품을 선전하여 구매 충동을 일으키는 데 엄청난 돈—수백만 달러—을 들이는 것을 보라.

      현재 미국의 여러 주에서 복권 당첨자에게 지급하는 금액이 수백 수천만 달러로 치솟기도 하는 것을 고려해 보라! 수백만 달러는 그다지 큰 금액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한 번의 복권 당첨으로 5000만 달러 내지 1억 달러를 탈 수 있다. 최고 상금의 한도액은 끝이 없어 보인다. 많은 나라에서는 여러 세대에 걸쳐 국민 복권을 발행해 왔다. 사람들은 거액의 돈을 얻으려고 한 번의 기회에 주급 전부를 건다. 가족들은 충분한 식품과 의복이 없이 살아가면서도 “운수 신”에게 돈을 바친다.—이사야 65:11, 난외주 참조.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을 주의해 보라. 세계 도처의 도박장에서 허황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고려해 보라. 주사위를 한 번 던지고, 카드를 한 장 뽑고, 슬롯머신의 손잡이를 한 번 당기면서, 그들은 꿈을 이루어 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손으로 기름을 움켜잡는 것이 언제나 더 쉬울 것이다.

      따라서 좀처럼 잡기 어려운 돈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일, 바람을 잡으려는 노력이 줄기차게 계속된다. 일부 사람들은 재산을 모았지만 뜻하지 않은 순간에 갑자기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므로 현명한 왕 솔로몬의 이러한 말은 그들에게 의미 심장할 것이다.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순식간에”, 「오늘날의 영어 역본」] 날아가리라.”—잠언 23:5.

      대조적인 측면

      마지막 남은 돈까지 도박에 사용하여 자신과 가족에게 큰 고통을 초래하는 사람들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개 그들은 겨우 살아갈 정도밖에 벌지 못해, 가진 것이 별로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빈둥거리면서 도박으로 불로 소득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들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의 피해자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자기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기울어 가는 지방 경제로 인해 빈곤 수준의 소득밖에 얻지 못한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조차도 취직 신청 시 퇴짜 맞는 일을 겪는다. 생산품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 대기업들에서 생산량을 줄임에 따라,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는다. 그들은 어떻게 대처하는가?

      부정직한 수단으로 돈을 얻을 수 있는 기회에 마음이 끌릴 수 있다. 그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것이 재정적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태도이다. 부정직한 수단은 여자의 경우 매춘 행위, 남자의 경우 도둑질 등 여러 가지다. 부정직, 도둑질, 도박—불로 소득을 추구하는 일—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세상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웅대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가? 그분은 짐을 그분께 맡기라고, 궁핍할 때 그분의 지원에 의지하라고 교훈하신다. 약 25년간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한 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쓸 수 있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 4:12, 13) 분명히 바울은 비천에 처했을 때 부정직한 수단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신뢰하며 지탱해 나갔다.

      따라서 가난하고 궁핍해도 부정직한 이득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틀림없이, 돈을 정직하게 버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 바로 예수께서도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말씀하셨다. (누가 10:7) 부자가 되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자기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도덕적으로 타협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웅대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워 나가고, 생활상의 고난과 문제에 대처하도록 도움을 주시는 그분을 의지하자.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I 베드로 5:6, 7, 「새번역」.

  • 일꾼이 받는 삯—합당한가?
    깨어라!—1994 | 4월 1일
    • 일꾼이 받는 삯—합당한가?

      이 사람들을 보라! 이들은 대개 누추한 집에서 겨우 끼니를 때우면서 근근이 연명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부유한 나라에서 살면서 가족을 부양하는데도 그러하다. 그들은 미국에서만도 무려 500만 명이나 되는 이주 근로자인데, 국내 굴지의 기업을 위해 과일과 야채를 수확한다.

      그들이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상처 입고 아픈 몸으로 일하는 것을 보라. 먼 데 있는 가게·슈퍼마켓의 진열대와 저장소에 놓이게 될 야채를 수확하기 위해 장시간 몸을 구부려 일한 후 허리를 펴려고 하는 것을 보라. 그들은 매주 6, 7일간,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일한다. 어린이가 부모 그리고 흔히 연로한 조부모 곁에서 함께 일하는 것을 보라. 어린이 중 상당수는 부모가 수확철을 맞는 농작물을 따라 이리저리 철 따라 옮겨 다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둔다. 이 모든 일은 단지 입에 풀칠하기 위한 것이다.

      이 노동자들이 밭에서 고되게 일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항공기가 낮게 날면서 끊임없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가? 그 비행기에서 유독한 살충제를 내뿜는 바람에 눈이 맵고 살갗이 따끔거리며 가려운가? 그것이 조만간 그리고 먼 앞날에 미칠 위험이 걱정스러운가? 이주 근로자의 처지가 그러하다. 뿜어진 살충제가 그들의 옷에, 코와 폐 속에 언제나 박혀 있다. 그들은 그 해로운 화학 물질이 자녀와 연로한 부모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아 왔다. 그들은 가족과 동료가 이른 나이에 살충제 중독으로 무력해지는 것을 보아 왔다.

      지금은 십대 초인 한 어린이는 넓적다리 한쪽이 탈구되고 오른쪽 가슴 근육이 없고 얼굴 한쪽이 마비된 채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 딸의 기형이 어머니의 임신 중 딸기 밭에 뿌려진 살충제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살충제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일 년에 30만 명의 근로자가 해를 입는데, 이주 근로자가 불구가 되는 비율은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비해 다섯 배나 된다고 한다.

      밭에서 수고하는 그들의 모습이나 그들의 비참한 생활 조건을 보는 것만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그들의 말을 들어 보라. 일곱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밭에서 하루 종일 고되게 일한 후 한숨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 일을 하고 나면 피곤해 죽을 지경이에요. 몸을 씻고 잠자리에 들기가 바쁘지요. 오늘은 새벽 4시가 넘도록 자는 바람에 점심 장만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굶었어요. 지금은 너무 지쳐서 먹을 수가 없네요.” 그의 손에는 물집이 잡혀 있다. 식사할 때 포크나 스푼을 잡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또 다른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자녀는] 주말에 때때로 우리를 도와 주므로, 밭일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아이들은 그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하지 않아요. ·⁠·⁠· 지난 겨울에 귤을 따다가 찔린 가시가 아직도 내 손에 박혀 있습니다.” 그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매주 엿새 동안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일하지요. ·⁠·⁠· 그런데 평생 이 일을 해야 되나 봅니다. 우리가 달리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 부부는 두 사람이 일 년에 고작 1만 달러—미국에서는 최저 생활비—를 번다.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봐 마음대로 불평하지도 못한다. 한 사람은 “불평하면 그들이 다시는 부르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주 근로자 중에는 농작물을 따라 이동하기 위해 가족을 남겨 두고 떠나야 하는 남편과 아버지가 많이 있다. 대개 경량 골재를 사용하여 지은 임시 건물에 근로자가 300명이나 들어가므로 그들의 가족이 함께 살기에는 너무 지저분하고 비좁기 때문이다. 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일 년 내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미 맨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내려가려 해도 내려갈 수가 없겠지요.” 설상가상으로, 그들 중 많은 사람은 받는 봉급도 최저 수준이다. 근로자 한 가족에게 지급되는, 일 년에 1만 달러의 봉급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많아 보인다. “농장주들은 제삼 세계 수준의 임금을 지불하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근로자가 있으면 그냥 쫓아내기도 한다”고 「피플 위클리」지는 기술했다.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누가 10:7) 틀림없이 이주 근로자들은 이 원칙이 자기들의 생활에 언제 적용될 것인지 궁금해 할 것이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사람들

      이제 어린이와 어른에게 읽기, 쓰기, 철자법, 산수, 기본 과학, 작업장에서의 행실—기본 교육 부문—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고려해 보자. 고등 교육 기관에서, 교육자들은 법률, 의학, 화학, 공학, 첨단 기술, 그리고 이 컴퓨터·우주 시대에 더 유리한 직업을 갖는 데 필요한 분야들을 가르친다. 가르치는 분야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이 교육자들은 매우 가치 있는 활동에 맞게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한 사람들로서 많은 봉급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종사하는 일에 걸맞지 않게 터무니없이 많은 삯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사회는 가르치는 직업에 대해서 낮게 평가해 온 것처럼 보인다.

      현 20세기 말에, 가르치는 일은 일부 지역의 경우 고등 학교에서뿐 아니라 국민 학교에서도 매우 위험한 직업이 되었다. 일부 지역의 교사들은 난폭한 어린이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교실과 놀이터에서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도록 지시를 받는다. 모든 연령층의 학생이 총과 칼을 몸에 품거나 도시락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남녀 교사들이 학생들에 의해 신체 상해를 입는다. 근년에 중등 학교에서, 4만 7000여 명의 교사와 250만 명의 학생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 교사 신문인 「NEA 투데이」는 이렇게 보도했다. “어디서나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도시 지역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하여 해마다 교사 한 명이 학교에서 공격당할 확률이 50분의 1이다.” 학교에서 마약과 알코올이 널리 사용됨에 따라 교사들은 점점 더 낙담하게 된다.

      이런 부담에 더하여, 일부 지역에서는 교사들이 교직에 종사하는 동안 계속 교사로서 자질을 발전시키고, 방학 때를 이용하여 상급 과정을 익히고 자기 분야의 교사들을 위한 대회나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의 일부 대도시에서는 학교 잡역부—학교를 청소하고 수리하는 일을 맡은 사람—의 연봉이 교사의 연봉보다 2만 달러나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놀라지 않겠는가?

      교사의 봉급은 나라마다, 주마다, 지역마다 다르다. 일부 나라에서는 교사의 봉급이 국내 최저 수준이다. 부유한 나라들에서조차, 교육자가 짊어지는 책임을 고려할 때 그들이 얻는 삯은 불공정한 것임을 보고들은 지적한다.

      「뉴욕 타임스」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교사·교육자의 봉급 수준에 대해 비평적인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교직과 같은, 사명감을 요하는 직업은 ·⁠·⁠· 그 보답이나 대가가 언제나 매우 보잘것없었다. 일반 사람들은 언제나 ‘뭐, 그것은 그들의 [일], 그들이 좋아해서 하는 일인걸’ 하고 생각해 왔다. 나는 그러한 사고 방식이 온당치 않으며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뉴욕 타임스」에 실린 이러한 보도를 고려해 보라. “1991-92학년도에 대학 교직원 봉급은 20년 만에 가장 낮은 비율로 [평균 3.5퍼센트] 올랐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여 3.5퍼센트 증가를 계산하면, 봉급이 겨우 0.4퍼센트 오른 셈이다”라고 한 연구가는 지적했다. 책임 있는 교육자들이 낮은 봉급을 받기 때문에, 상당수가 어쩔 수 없이 교직을 버리고 보수가 나은 직업을 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늘고 있다.

      스포츠 분야

      규제할 수 없는 봉급의 한 대조적인 예는 스포츠계다. 최저 생활비를 받는 이주 근로자들과 불공정한 봉급을 받는 교육자들은 스포츠 선수들이 받는 엄청난 실수령액을 어떻게 여길 것인가?

      순찰 구역을 도는 일반 경찰관과 경종에 따라 살아가는 소방관—직업상 날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은 직업 선수들이 스타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엄청난 연봉을 받는 것을 달갑게 여길 것인가? 미국에서 지난 10년간 700여 명의 경찰관이 공무를 수행하다가 살해되었다. 소방관의 인명 피해율도 높다. 하지만 이렇게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대개 형편없이 낮은 봉급을 받는 사람들로 인식된다. 그들은 사회가 자기들의 직업과 생명에 부여하는 가치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야구—미국, 캐나다, 일본에서 스포츠 팬들의 주요 인기 종목—를 고려해 보자. 미국에서 200명이 넘는 메이저 리그 선수들은 일 년에 100만 달러 이상 번다. 1992년 야구 시즌 끝에, 100명의 선수가 5억 1600만 달러를 보장하는 계약에 서명했다. 그들 중 23명은 연봉 300만 달러 이상의 계약에 서명했다. 더욱 각광받는 선수들이 맺은 계약은 덜 유명한 선수들이 받는 그러한 엄청난 삯을 무색하게 한다. 좀더 각광받는 선수들 중에는 6년간의 경기에 대해 4300만 달러 이상, 5년간의 경기에 대해 3600만 달러 이상의 계약에 서명한 선수들도 있다. 해마다 연봉이 계속 치솟고 있으며 야구 사상 최고 연봉에 대한 신기록이 수립된다. 미식 축구 선수들의 연봉도 평균 50만 달러로 치솟았다.

      그러한 연봉을 고려하면, ‘일반 독자가 6만 2500달러의 주급을 받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하지만 연봉이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내셔널 풋볼 리그의 쿼터백 선수들 각자가 16주에 걸친 시즌 중 바로 그러한 주급을 받는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또는 연봉이 200만 달러에 달하는 야구 선수가 2주마다 7만 5000달러의 봉급을 받는 것은 어떠한가? 그러한 선수는 세금을 공제한 후에도 5만 달러로 그럭저럭 보름을 넘길 수 있다.” 스포츠 스타가 상품을 추천하고 야구공에 사인하고 팬들에게 사인해 주는 대가로 받는 돈 그리고 출전료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그러한 금액을 합하면 수백만 달러가 될 수 있다. 다시 묻건대, 낮은 봉급을 받는 교사는 자기가 일 년 동안 버는 돈이 운동 선수가 한 경기에서 버는 돈보다도 적을 때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텔레비전의 힘 때문에, 직업 골프·테니스·농구·하키 선수들도 엄청난 돈을 번다. 그러한 분야의 스타들도 수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한 일류 하키 선수는 6년간 4200만 달러의 계약에 서명했다. 또 다른 하키 선수는 5년간 2200만 달러를 보장받는다. 부상이나 병으로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해도 한 시즌에 평균 440만 달러를 버는 셈이다.

      정상을 달리는 두 직업 선수가 벌인—“남녀 대결”로 광고된—한 테니스 시합에서, 남녀 양 선수는 승자가 모두 차지하게 되는 50만 달러 상금을 타기 위해 경기장에서 겨루었다. 남자 선수가 상금을 받기는 했어도, 양 선수 모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각각 20만 달러 내지 50만 달러로 추산되는 상당한 출전료”를 받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일본과 같은 나라들에서, 직업 선수들의 연봉은 천정 부지로 솟아 올랐는데, 전례 없이 수백만 달러로 치솟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보고 한 정상급 직업 테니스 선수는 ’90년대의 연봉을 가리켜 “역겹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처럼 높은 연봉이 직업 선수 탓이라는 말은 아니다. 능력 있는 선수에게 값을 매기는 사람은 팀 운영자이다. 선수는 주는 것을 받을 뿐이다. 선수는 팀을 지지하는 팬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1992년 야구·축구 시즌에 많은 경기장에 기록적인 수의 관중이 몰렸다. 그로 인해 그리고 텔레비전 중계권으로 인해 팀 운영자들은 더 많은 수입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선수들이 정당한 몫을 받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농산물을 수확하기 위해 뙤약볕 아래서 장시간 고되게 일하는 이주 근로자들의 낮은 봉급과는 대조적으로, 네트 너머로, 작은 구멍 안으로, 혹은 구장 밖으로 공을 치는 것에 대해 지불하는 엄청난 연봉은 부유한 사회의 가치 감각을 보여 주는 서글픈 예다.

      대조적인 또 다른 예, 또 다른 유명한 전문가의 면모를 고려해 보자. 200만 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척수성 소아마비 예방 백신에 대한 연구에 종사하던 미국 과학자 조너스 솔크와 그의 동료 연구가들은 실험실에서 장시간 수고하면서 백신을 잇달아 만들어 내어 시험하고 또 시험했다. 1953년에 솔크는 시험용 백신을 개발했다고 선언했다. 백신 시험을 처음으로 받은 사람들 가운데 솔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 아들이 있다. 그 백신은 안전하고 효과적임이 판명되었다. 오늘날 척수성 소아마비는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

      솔크는 이 치명적이고 마비를 일으키는 질병을 예방하는 일에 탁월한 공헌을 하여 많은 영예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현금으로 주는 상을 조금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백신의 질을 높이려고 실험실로 돌아갔다. 분명히, 그의 진정한 상은 돈이 아니라, 자녀들과 부모들이 그 심각한 위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보면서 느낀 만족이었을 것이다.

      끝으로, 아픔과 질병과 슬픔이 영원히 사라진 낙원 같은 땅에서 끝없이 사는 전망에 관해 가르침받는 일을 고려해 보자. 그러한 좋은 소식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많은 봉급을 받아 마땅한지 상상해 보라. 하지만, 그러한 교육자들이 있으며, 그들은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그들에게는 금전적인 상이 전혀 없다! 예수께서는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을 때, 이 좋은 소식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봉급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누가 10:7) 그분은 그들이 필수품을 받을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그분은 또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 10:8) 그들은 무슨 상을 받을 것인가? 다름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신 예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것—깨끗해진 낙원 같은 땅에서 영원한 생명의 상을 받을 것이다. 억만 달러의 봉급이라도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9면 네모]

      돈, 명성, 약물—어느 것?

      청소년들이 직업 스포츠에서 명성과 수백만 달러를 얻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 비정상적으로 짧은 기간에 억센 체격과 울퉁불퉁한 근육을 갖게 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사용한다. 미국 올림픽 약물 규제 프로그램의 일원인 윌리엄 N. 테일러 박사는 이러한 약물 사용이 “유행병이 될 정도”에 달하였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만도 약 25만 명의 사춘기 청소년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 직업 축구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에서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게 하는 압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선수들은 스테로이드를 사용할 경우 20년 후 무슨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대학생들은 20일 앞도 생각하지 않는다. 선수들, 특히 젊은 연령층은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한 야심적인 직업 축구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선수가 되려면 스테로이드를 사용해야 한다. ·⁠·⁠· 신체 단련장에서는 경쟁이 치열하다. 해마다 더 크고 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며 다른 사람이 그러한 체격을 얻는 것을 보고 자기도 얻고 싶어한다. 그러한 사고 방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면서도, 그 선수는 스테로이드의 도움 없이 자기가 바라던 인물—직업 축구 선수—이 되었다. 그는 스테로이드가 “경기할 때 거리의 마약보다도 위험”하다고 여긴다.

      의사들뿐 아니라 스테로이드와 그 외의 근육 강화제로 큰 해를 입은 사람들도 많은 내용을 기술했다. 가장 심각한 반응은 사망을 초래한다.

      [7면 삽화]

      캘리포니아 질로이에서 마늘 수확을 하는 이주 근로자

      [자료 제공]

      Camerique/H. Armstrong Roberts

      [8면 삽화]

      교사들은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한 사람들로서 많은 봉급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

      [10면 삽화]

      미국에서 200명이 넘는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들은 일 년에 100만 달러 이상 번다

      [자료 제공]

      Focus On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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