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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현대식 역병인가?깨어라!—1991 |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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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현대식 역병인가?
“날씬해지는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라고 34세 된 앤(Ann)은 말하였다. 그는 체중 과다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상당히 철저한 다이어트를 하여 단기간에 몸무게를 30킬로그램이나 줄였다. “아내는 피골이 상접하여 마치 강제 수용소에서 막 나온 사람 같았지요”라고 앤의 남편은 말하였다.
그런 다음 앤은 몹시 허기진 상태에서 음식을 마구 먹어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체중이 늘지 않도록 하제(下劑)를 먹었으며, 음식을 억지로 토해 냈다. ‘어떻게 그런 역겨운 습관에 빠질 수 있는가?’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생각보다 쉬워요”라며 앤은 털어놓았다. “나는 정말 날씬해지고 싶었어요. 여자들은 맵시 있어야 한다는 압력을 상당히 많이 받지요. 나는 ‘날씬, 날씬, 날씬’을 강조하는 패션 잡지를 통해 온통 공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아주 날씬해져서 매력 있게 되기로 결심했지요.”
그렇게 하여 앤은 식욕 이상에 꼼짝없이 사로잡혔다. 장장 10년 동안 그런 상태였다. 그 자신이 이렇게 지적한 바와 같다.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초래하는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앤이 유별난 경우는 아니다. 매년 신경성 식욕 부진이나 다식증에 걸리는 여자들이 미국에만해도 무려 100만 명 가량이나 되니 말이다. 남자들 중에도 그런 식욕 이상에 걸리는 사람이 많으며 다수는 체중 과다이기도 하다. 그러면 식욕 이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식욕 이상
신경성 식욕 부진의 특징은 감정상의 문제로 인해 심각한 정도로, 장기적으로 먹지 못하거나 먹지 않으려는 것이다. 신체상의 병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태는 현저한 체중 감소를 초래한다. 환자—일반적으로 젊은 여자—는 뚱뚱해지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며 야위었는데도 너무 살이 쪘다고 생각한다. 월경이 멎는다. 그런 여자는 자신의 나이와 키에 대한 체중의 최소 정상치를 넘지 않으려 한다.
다식증의 특징은 반복적인 대식 즉 단시간에 많은 양의 음식을 무절제하게 먹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식증 환자는 자발성 구토로 칼로리를 없애려 하며, 하제와 이뇨제를 사용하거나 운동을 열심히 한다. 다식증 환자의 끊임없는 관심사는 몸매와 체중이다.
강박 과식의 특징은 무절제하게 먹은 다음 그런 행동과 그로 인해 체중이 늘어난 것에 대해 죄의식과 수치감을 갖는 것이다. 강박 과식자는 기분이 상하거나 흥분했을 경우 과식하는 것 같다. 그로 인해 흔히 비만해지는데, 강박 과식자들은 대체로 음식을 그만 먹을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체중이 늘거나 주는 것 혹은 뚱뚱해지거나 홀쭉해지는 것 자체가 식욕 이상에 걸렸다는 표시는 아니다. 유전적인 혹은 생리적인 원인도 있을 것이다. 음식과 체중에 대한 태도가 잘못되어 있을 때 식욕 이상이 생긴다. 그러므로 심한 감정상의 동요 때문에 먹는 일—혹은 먹으려 하지 않는 일—이 있다.
증가 일로
대다수의 권위자들은 식욕 이상이 증가한다고 보고하며, 그런 이상을 유행병이라고까지 부르는 권위자도 있다. 연구가들은 “식욕 이상: 1990년대의 방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러한 식욕 이상이 “1970년 이래 그 발생 건수가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이제는 임상 진료에서 흔히 접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보고에 따르면, 신경성 식욕 부진, 다식증과 관련된 합병증으로 해마다 15만 명이 죽는다.
하지만 앤은 완쾌되었다. 다행스런 일이다. 신경성 식욕 부진에 걸린 환자들 중 무려 21퍼센트가 그 병으로 죽는다. 다식증에 걸린 환자들은 흔히 자살할 생각을 하며, 여러 의사들은 찾아온 환자들 중 3분의 1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고 보고한다.
이러한 식욕 이상은 모든 연령·민족·인종 그룹에 영향을 미치며 온갖 사회 계층에 두루 퍼져 있다. 이 점증하는 역병은 경제적으로 발전한 여러 나라에 침투하였다. 일본의 경우 1981년 이래 그 증가가 “급격하였다”고 보도되었다. 스웨덴, 영국, 홍콩, 남아프리카 공화국, 오스트레일리아 및 캐나다에서도 모두 증가해 왔다.
그러면 식욕 이상이란 것이 지난 수백 년 간 알려져 왔는데, 하필 20세기에 유행병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날씬함의 전당”
힐드 브러치 박사는 40년 간 조사한 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그 병이 날씬함에 엄청난 역점을 두는 시대 풍조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 잡지와 영화들도 그와 같은 의도를 전달하지만 유난히 끈질긴 것은 텔레비전인데, 텔레비전은 사람이 날씬해야만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날마다 반복적으로 선전해댄다.”
1900년 이전에, 유행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은 주로 부유한 사람들의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1914-18년) 후 백화점, 여성 잡지, 패션 사진들이 등장함에 따라 서민층의 여자들 가운데서도 패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세련된 새로운 패션에 따른 옷들이 표준형으로 대량 생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옷을 입으려는 여자는 “알맞은” 몸매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몸매가 좋지 않은 것은 그처럼 유행에 맞는 옷을 입을 수 없는 여자들에게 좌절과 낭패감의 근원이 되었다.
당시 1918년에 미국에서 최초로 베스트 셀러가 된 다이어트 책은 체중 조절을 자부심과 결부시켰다. 체중 과다인 여자는 인격에 흠이 있고 사회적 장애가 되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존 브럼버그는 저서 「단식하는 여자」(Fasting Girls)에서 그 결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외모는 내적 인격보다 중요한 것이 되었다. 성적 매력이 여자의 ‘빛나는 장신구’로서 정신적 기풍을 대치하였기 때문이다. ··· 많은 사람은 체구와 몸매가 자기 가치의 척도라는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여 다이어트와 아름다운 몸매에 대한 강박 관념이 자라게 되었다. 오늘날 어느 때 조사를 하더라도, 미국 여자들 중 약 50퍼센트는 다이어트를 하는데 대부분이 외모를 위한 것이다! 「매력」(Glamour) 잡지는 3만 3000명의 여자를 대상으로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설문 조사를 하였다. 42퍼센트는 “체중이 주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직장에서 성공하는 것”과 같은 그 설문 조사에서 보기를 든 것 중에서 여느 것보다 거의 두 배나 차지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날씬함은 힘, 성취, 매력의 상징이 되었다. “날씬함의 전당에서 오래도록 엄청난 집단 숭배가 행해질진대, 현시대의 수많은 젊은 여자들이 다이어트를 일종의 신앙 행위로 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라고 브럼버그는 설명하였다. 눈에 띄는 한 가지 결과는 무엇인가? 유행병처럼 퍼지는 식욕 이상이다.
날씬해져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있지만 모든 여자들이 식욕 이상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특히 누가 그 병에 걸리기 쉬운가?
[3면 네모]
식욕 이상으로 인한 건강상의 위험
신경성 식욕 부진
혈압 장애, 이상 저혈압, 비정상적인 졸음이나 허약증, 불규칙한 심박, 갑작스런 심부전, 피부 황달, 호르몬 장애, 무월경증, 골질량 상실.
다식증
월경 불순, 근육 약화와 경련, 탈수, 현기증, 치아 법랑질 침식과 와동(窩洞), 한랭 불내성, 피로, 소화 장애, 갑작스런 심장 마비를 초래할 수 있는 불규칙한 심박, 식도 파열과 출혈, 복통.
강박 과식
체중이 관련된 고혈압과 피로, (당뇨병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심한 비만, 관상 동맥 심장병, 암, 호르몬 장애, 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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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식욕 이상에 걸리는가?깨어라!—1991 |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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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식욕 이상에 걸리는가?
외모에 합리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정상이지만, 외모에 대한 생각이 강박 관념이 될 경우 식욕 이상에 걸릴 수 있다. 다음의 회견 내용은 그 점을 예시한다.
본지(本誌): 앤, 식욕 이상에 걸리기 시작했을 때 체중 과다였나요?
앤: 아니오. 하지만 데이트를 막 시작한 때였기 때문에 외모가 좋게 보이기를 원했지요.
본지: 외모에 의지해서 자부심을 가졌었나요?
앤: 분명히 그랬어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볼 때면 언제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고 자문했지요. ‘매력 있게 보이려면 알맞은 몸매를 가꾸어야 해’라는 말을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어요.
본지: 그러면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 때, 자신에 대해서도 좋은 느낌을 가졌나요?
앤: 그럼요! 체중이 늘면 자신이 미웠어요. 거울을 볼 때 내적 특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엇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식욕 이상에 걸리지만 어떤 사람은 식욕 이상에 걸리지 않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화, 유전 인자, 건강 이상 혹은 생화학적 이상, 가정 환경, 이 모두가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식욕 이상자들 대부분의 특징처럼 보이는 특정한 성품상의 특질이 있다.
완벽하게 되려고 노력한다
식욕 이상에 걸린 사람들 대부분은 전체적으로 볼 때 학교나 직장에서 성취도가 높은 사람, 완벽한 사람으로 도드라지려는 경향이 있다. 힐드 브러치 박사는 식욕 부진에 걸린 환자 130여 명을 치료한 후 자신의 저서 「황금 새장」(The Golden Cage)에서 그러한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느낌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크나큰 두려움 즉 보통의, 평균의,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그다지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 매우 특별한 것, 아주 훌륭하고 감탄할 만한 것이라서 부모와 그 외에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그들로부터 제일가는 특별한 인물이라고 칭찬 들을 만한 것을 해야만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식욕 부진에 걸렸던 리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최상급의 일을 하려고 하였으며,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최고가 되려고 하였어요.” 이렇게 완벽하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흔히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여 ‘세상에서 제일가는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려는 열렬한 욕망에 의해 분명히 드러난다.
여자가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방식 역시 특히 그 병에 걸리기 쉽게 만들 수 있다. 남자들도 식욕 이상에 걸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주로 여자들이 걸린다. 「식욕 이상을 극복하는 일」(Surviving an Eating Disorder)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식욕 이상에 걸린 여자들은 흔히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자랐다. 훌륭한 여자는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는 법을 아는 조용하고 얌전한 여자라고 생각해 온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탓에 일부 여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부 여자들의 경우 자신의 삶을 주관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면서 언제나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일로 인해 내적 갈등을 겪으며 그래서 식욕 이상이 초래될 수 있다. 이제는 강박 과식과 다식증에서 회복된 돈은 이렇게 설명한다. “나의 가족은 내가 가족이 원하는 방식대로 모두 따라서 하기를, 가족이 원하는 모양의 사람이 되어 주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겉으로는 매우 안정되고 지성 있게 보였지만 속으로는 결코 그렇지 못했어요. 도저히 가족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무도—벗이든 부모든—기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체중을 조절할 수 있음을 깨달았지요! 체중을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었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나도 삶을 관리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체중을 조절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조절할 수 있을테니까요.”
무능하다는 느낌
돈이 느낀 불안감은 많은 식욕 이상자들이 흔히 품고 있는 자기 회의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재능이 있는데도 근본적으로 자기 가치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과식은 때때로 자부심이 부족하다는 표시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다. 왜 내가 자신이나 체중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는가?’ 그러한 느낌은 우울증을 야기하며, 이것은 식욕 이상에 걸린 거의 모든 사람들을 괴롭힌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무가치한 존재라는 심정을 품는가? 성서는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고 대답한다. (잠언 15:13) 내적 고통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쓰라린 실망, 배척당한 느낌, 자신의 감정적 필요가 무시되는 환경, 어렸을 때의 충격적인 경험 등이 있다. 연구 결과는 식욕 이상에 걸린 환자들 중 놀랄 정도로 많은 수의 사람이 성적으로 학대를 당했거나 강간을 당하기까지 하였음을 밝혀 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태도 때문에 자부심이 저하될 수도 있다. 한 젊은 여자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가 너무 뚱뚱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내 몸에 대해 말하였어요. 내 체중을 줄이려고 온갖 일들이 행해졌지요.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과 몸이 미웠어요.” 오늘날 날씬함을 극찬하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체중 과다인 일부 사람들은 자기 혐오에 빠진다.
그런가 하면 식욕 이상 자체가 자존심을 앗아가는 경우도 있다. 린은 하루에 무려 열 번이나 구토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털어놓았다. “토한 뒤에 거울을 보면서 ‘네가 미워’하고 말한 다음 울었어요.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식욕 이상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몹시 의기 소침해져서 틀림없이 자신의 본성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기본적인 무능함이라는 중대한 흠을 숨기고 자부심을 세우는 방식을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식욕 부진에 걸린 사람들은 독특한 방법으로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이 자기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식욕 부진이 진행되며—치사적인 정도까지 이르기도 한다.
리는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자부심이 실추되었다. 리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가 좋은 상대를 놓친 것임을 증명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주 날씬하고 맵시 있게 보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리는 살을 빼려고 먹기를 중단하였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특별난 존재라고 생각했지요. ‘나는 강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리의 체중은 73킬로그램에서 47킬로그램으로, 걱정스러울 정도로 줄었다. 리는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먹이려 들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 모든 사람들이 내 자부심을 모두 앗아감으로 나의 삶과 행복을 망치려 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역시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게 말이지요.” 리의 그런 태도는 식욕 부진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함으로써 자기 가치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감정적인 농락을 당한 여자는 자신의 유약한 자부심이 더 짓밟히지 않게 보호하려고 노력하다가 식욕 부진에 걸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셜리는 새로 발달된 자신의 몸매로 인해 남자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에 더하여 아버지가 부당하게 추근댔다. “몹시 당황하고 혐오스러운 느낌이 들어 어머니에게 가서 울음을 터뜨렸어요”라고 셜리는 말하였다. “체중이 줄고 몸매가 볼품없게 되자 귀찮게 구는 사람이 없더군요. 이성의 눈길에서 벗어나게 되었지요.”
어떤 경우에 식욕 부진은 성인의 책임에서 벗어나는 도피구다. 셜리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자라서 가족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어요. 무엇 때문에 체중이 늘게 내버려 둔단 말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지요. 누구를 위해서라도 안 돼요!” 유감스럽게도 그는 시간을 정체시키려는 강박 관념으로 자초한 기아로 고통스럽게 죽었다.
식욕 부진에 걸린 사람들이 모두 그런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인물로 만듦으로써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는 것 같다. 그로 인해 약간의 자부심을 얻기도 한다. 날씬한 몸매로 인해 자존심과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해소함
음식은 감정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외로움, 불안, 권태, 분노, 우울함, 버림받은 느낌, 배신감을 대처하는 데 오용될 수 있다. 돈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학교 다닐 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쓰라린 일을 당했습니다. 그 사건을 생각할 때면, 혹은 직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면 음식을 마구 먹어댔습니다. 그러한 느낌을 음식으로 메우려고 한 것이지요.” 음식은 돈의 감정적 고통을 무뎌지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강박 과식으로 인해 체중이 45킬로그램이나 더 늘었다.
때때로 식욕 이상은 생활의 압력에서 벗어나는 도피구가 된다. 예를 들어, 앤(Anne)은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가 있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자신의 체중에 대해 끊임없이 핀잔을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다식증에 걸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것은 매일의 압박감에 대처하기 위해 내가 취한 방법이었는데, 그것이 효과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으면 실제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온갖 것을 체중 과다 탓으로 돌리면서 체중이 줄면 삶이 멋질 것이라고 스스로 타이릅니다.”
누구나 기분이 상하거나 외로울 때면 평소보다 더 먹기도 하지만 식욕 이상에 걸릴 위험이 있는 사람은 내적 동요에 대처하는 정상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 혹은 상황에 대해 적대감을 품을 수 있지만, 그러한 감정을 말로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먹어대는 것으로 진정시키려 한다.
다이어트의 역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마구 먹어댄 이유로 제시하는 가장 공통적인 변명은 철저하게 다이어트를 한 탓이라는 것이다. 1989년에 비만의 원인에 대해 실시된 한 연구는 이렇게 밝혔다. “체중에 대한 염려로 하게 된 식이 제한 행위는 공교롭게도 체중 과다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철저하게 다이어트를 하려는 사람들은 대개 단것과 그 외에 맛이 좋은 음식을 멀리한다. 이러한 “금지된” 식품은 끊임없이 유혹 거리가 된다. 그러다가 기분이 상하거나 걱정이 생기거나 외로움을 느끼면 자신을 가엾게 생각하게 된다. 기분을 나아지게 하려고, 못 먹게 되어 있던 바로 그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다. 그런 다음 더욱 철저하게 다이어트를 하며, 똑같은 결과—마구 먹는 일—를 초래한다. 이러한 악순환으로 인해 체중이 늘고 식욕 이상에 걸린다. 리는 다이어트로 인해 어떻게 식욕 부진에 걸릴 만한 환경이 조성되었는지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온갖 종류의 다이어트를 다 해보았습니다. 체중이 줄었다가 다시 늘더군요. 이번에는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어요.”
식욕 이상의 원인을 아는 것이 그것을 극복하는 온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러한 지식은 그 병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그 문제를 시초부터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품상의 특질 중 일부가 자신이나 가족 혹은 벗에게 있음을 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한 특질을 극복할 수 있는가?
[7면 삽화]
외모에 열렬한 관심을 갖는 것은 식욕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
[8면 삽화]
일부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해소하려고 마구 먹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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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서 이기는 일!깨어라!—1991 |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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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서 이기는 일!
똑똑하고 외향적이며 체중 과다인 편인 젊은 여자 리를 처음 본 사람은 그가 5년 전에 식욕 부진으로 거의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리와 대화하게 되면 그가 치사적인 식욕 이상을 떨쳐버리기 위해 감행한—실로 매우 어려운—정신적 변화에 크나큰 감명을 받는다. “그것은 단지 음식과의 싸움이 아니었다”고 리는 설명한다.
식욕 이상은 근본적으로 감정상의 문제의 결과이므로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려는 싸움은 정신에서 하게 된다. 색다른 가치관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회복하는 첫 단계에 속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특정하게 확립된 가치관이 있다. 즉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이것이 자신에 대한 관점을 틀잡으며 압박감을 주는 문제에 대한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식욕 이상에 걸린 사람들은 가치관을 바꾸어야 한다. 즉 다른 정신 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성서는 이렇게 강력히 권한다. “너희는 ··· 마음[정신 태도, 미국역]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 12:2) 그렇다. 사람의 태도는 기뻐할 만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에 따라 틀잡혀야 한다. 우리를 지으신 분은 우리를 속속들이 아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신다. 그분은 과연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시는가?
진정한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내면적 됨됨이를 가치 있게 보신다.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으로 단장한 “마음에 숨은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다. (베드로 전 3:4)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흔히 여자들을 외모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표준을 따르는 것은 참으로 지혜롭지 못한 처사다. 오늘날의 날씬주의 풍조가 바뀌면 어떠할 것인가? 미국의 경우 100년 전에는 풍만한 몸매가 맵시 있는 것이었다. 1890년에 한 광고는 이렇게 촉구하였다. “삼가 알리는 말씀, 숙녀들은 홀쭉한 몸을 틀림없이 풍만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주는 ‘패-텐-우’ 식품으로 ··· 풍만한 몸을 가꾸십시오.”
“나는 언제나 사람들을 외모로 평가했지요”라고 리는 털어놓았다. 그 후 그는 태도를 어느 정도 바꾸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과 나 자신에게 있는 그리스도인 특성을 가치 있게 평가하는 법을 배워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특성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외모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를 깨달았어요.”
외모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체중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거나 외모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사람과 자주 교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식증에서 거뜬히 회복된 린은 이렇게 인정한다. “사회의 압력과 싸우며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끊임없는 투쟁입니다. 자동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갖게 된 것이 아니에요. 올바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사고 방식의 이러한 변화는 또한 우리가 자부심을 세우는 토대의 유형에 영향을 미친다.
“헛된 영광”을 배척하라
식욕 이상에 걸린 많은 사람은 완벽하게 되려고 노력함으로 혹은 허기를 완전히 제압함으로 자기 가치를 세우려 한다. 그들이 스스로 찾는 자화자찬은 사실상 실속 없는 헛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아무 일에든지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한다. (빌립보 2:3) “허영”에 해당하는 희랍어 원어는 문자적으로 “헛된 영광” 즉 속이 빈 칭송을 뜻한다. 그러므로 허영 때문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은 진정하고 항구적인 가치가 전혀 없는 헛된 근거로 자신에게 주의를 끌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헛된 것에서 영광을 구한다.
예를 들어, 리는 “아무도 내게 음식을 먹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특별한 존재라고 느꼈어요”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내가 더 날씬해지기만 하면 자신에 대해 더 흡족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체중을 더 줄였는데도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그런 다음 리는 자신이 회복된 데 있어서 주요 전환점을 밝혔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나 자신은 통의 조그만 물 한 방울과 같음을 깨달았어요. 그러니 가장 뛰어난 인물이 되려고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최고가 될 필요는 없지요. 다른 사람들이 특정한 점에서 나보다 더 나아도 괜찮지요.”
그렇다. 리는 ‘남을 더 낫게 여기는’ 법을 배워 알았다. 사실상 우리가 특정한 점에서 뛰어날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보다 탁월한 어떤 능력과 장점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보다 본질적으로 더 가치 있다거나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식욕 이상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진정한 자부심을 가져다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칭송을 받으려고 외모를 신뢰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견해를 존중하는 것이 내게 더 큰 자기 가치 의식을 가져다 줌을 알게 되었다”고 다식증에서 회복된 멜리사는 털어놓았다. 그렇다. 바로 성서가 말하는 바와 같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헛되지 않은 진정한]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언 31:30.
하나님과의 벗관계
합당하게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벌을 받을까봐 병적으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벗이 되셨기 때문에 그분을 불쾌하시게 하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두려워, 신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시편 112:1은 언명한다. 하나님의 벗이 되는 사람은 그분의 법에 순종하는 데서 기쁨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식욕 이상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귀중한 선물인 자신의 몸을 존중하라고 말한다. (로마 12:1) 사도 바울은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것들로 열거하면서 ‘믿지 않는 자들이 은밀히 행하는,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한 것 중에는 로마의 일부 연회 참석자들이 연회중에 먹은 것을 토한 다음 다시 와서 탐욕스럽게 먹는 관습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에베소 5:3, 5, 12)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다. “나는 나 자신을 아무 것에도 예속시키지 않겠읍니다.” (I 고린도 6:12, 새번역)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려면 음식과 다이어트가 우리 생활을 지배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
식욕 이상의 유형도 여러 가지며 관련된 정도도 다양하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각 사람의 행실의 심각성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벗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감동을 받은 사람은 식욕 이상을 극복하려고 할 것이다. 앤(Ann)은 이렇게 말하였다. “회복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이런 습관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었어요.” 그러면 이러한 싸움에서 실패하는 경우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다식증으로 인한 죄책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것”이라며 멜리사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아무도 주위에 없을 때면 밤이고 낮이고 하염없이 울면서 하나님께 도움과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널리 용서하시”는 분이며 그분을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임을 아는 것은 참으로 위안이 된다. (이사야 55:7; 시 103:13)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다. (요한 1서 3:20) 그분은 우리의 약함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보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런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의 깊이와 우리가 이루고 있는 진보를 아신다.
동일한 약함에 대해 하나님께 얼마나 자주 나아가든 상관없이 그분의 용서를 구하며 그분에게 열렬히 향하는 데 지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진실하다면 그분은 과분하신 친절로 인해 우리에게 깨끗한 양심을 주실 것이다. (로마 7:21-25)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어주신 참되고 의지할 만한 벗이셨다”고 멜리사는 확언하였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이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해소함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는 음식을 신경 안정제로 삼을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느낌을 해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종종 구제책을 얻기 위해서는 그러한 느낌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메리는 자신의 체중에 대한 아버지의 핀잔 때문에 다식증에 걸렸는데, 이렇게 설명하였다. “아버지의 핀잔이 얼마나 불쾌했는가를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실제로 내 잘못이었습니다. 그저 내 방으로 가서 울 뿐이었거든요.”
그러나 그러한 느낌을 표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진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식증: 체계적 치료법」(Bulimia: A Systems Approach to Treatment) 책은 이렇게 기술한다. “분노한 느낌을 인정하고 그러한 느낌을 안전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다식증에서 회복되는 주요 관건이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성서의 조언은 참으로 적절하다! (에베소 4:26) 화가 날 때 혹은 실제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말하도록 압력을 받을 때, ‘신랄하게 되는 일 없이 어떻게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고 자문하는 것이 좋다.
또한 기억해야 할 점은 성서는 여자의 역할을 단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충실한 여자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면서도 이따금 자신의 느낌을 적절히 표현하였다. 그런 여자들은 솔선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늘 쉬운 일만은 아닌 과감한 사업을 하기도 하였다. (잠언 31:16-18, 29) 물론 익숙하지 않은 노력을 하다 보면 실패할 위험도 있다. 흔히 식욕 이상에 걸린 사람들은 실수를 하여 어리석게 보이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 그러나 실수는 누구나 하게 마련이다!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잠언 24:16은 말한다. 실수와 실패를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회복과 예방에 매우 중요하다.
때때로 고통스런 감정은 과거에 있었던 일과 관련이 있다. 그러한 경험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고통을 초래할 수 있지만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닫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한다. (시 107:43)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의 증거를 맛볼 수 있었던 때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 설령 심하게 피해를 당한 사람일지라도 그러한 학대를 당해야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것이 한 인격체로서의 가치를 침해하는 것도 아니다.
도움을 받으라!
식욕 이상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필요하다. 혼자 힘으로 극복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린은 자신이 회복되는 데 주요 전환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느 날 밤 나는 어머니와 함께 내 방으로 왔어요. 10분 간 운 다음 마침내 내가 다식증에 걸려 있음을 털어놓았어요.”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부모는 매우 이해심이 깊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참을성을 나타내고 하룻밤 사이에 회복될 것을 기대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실용적인 제안을 해주었으며 나와 함께 기도하였지요. 내가 입을 열지 않았더라면 그 모든 도움을 놓쳤을 겁니다.”a
다른 사람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 완쾌되는 데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고립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그런 증세를 느낄 때는 말이다. (잠언 18:1) 린은 기분이 상할 경우 더는 속으로 삭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회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와 나는 이따금 산책을 하면서 기분을 상하게 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다식증 행위에 다시 의존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였는데, 이를테면 혼자 있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에는 식욕 이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 온 사람들이 있다. 다식증과 투쟁하면서 가장 비참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앤(Ann)은 이렇게 인정하였다. “더는 혼자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10년 동안 숨겨 온 문제를 밝히면서 마음에 있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어요.” 그리스도인 벗들은 지원을 매우 잘해 주었다. “교만 때문에 도움을 구하지 않았었는데, 그로 인해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했지요.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벗들의 도움으로 완쾌되었어요.”
어떤 경우에는 식욕 이상을 치료하는 전문가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첫 단계는 진단이다. 이용할 수 있는 도움에는 여러 형태의 대화 요법, 영양 지도 및 어쩌면 약물 사용이 포함될 것이다. 극도의 경우에는 입원해야 할지 모른다. 의사나 병원 당국은 해당 지역에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있는지 알 것이다.
합리성과 희망
린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의사는 내게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만 한다면 신진 대사가 정상 상태로 돌아올 것이며, 살이 찌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의사의 말대로 되었어요.” 그러므로 “너희 관용[합리성, 신세]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는 성서의 권고는 참으로 현명한 것이다.—빌립보 4:5.
초과 체중을 줄이는 일은 지방과 정제 식품, 이를테면 설탕이나 백분 섭취량을 일관되게 줄이고, 과일, 야채, 정백하지 않은 곡물 섭취량을 증가시킴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절도 있는 운동 역시 중요하다.b 하지만 유전 인자, 연령 및 그 외의 요소들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체중이 유행 표준보다 더 나간다.
다이어트 및 다식증과의 오랜 싸움에서 이긴 리사는 이러한 건전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승리는 체중을 줄이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승리는 모든 일에서 절도를 유지할 줄 아는 데 있다고 봅니다. 설령 이 세상이 유행에 맞는다고 규정한 수치보다 체중이 더 나간다 해도 말입니다.” 하지만 외모에 대해 합리적인 견해를 발전시키는 사람은 오로지 외모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비만과 관련된 건강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체중을 줄이려고 할 수 있다.
보다 작은 옷에 몸을 억지로 맞추려고 끊임없이 시도할 것이 아니라 어울리면서도 편안하게 맞는 옷을 입을 수 있다. 매일 체중을 달고 몸의 치수를 잴 것이 아니라 건전한 활동에 전념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 다식증과 싸우는 사람이라면 따로 치워둘 수 있는 가외의 음식을 모두 치워두고, 식품을 사러 갈 때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합리적인 계획을 따르려고 힘쓰며, 여가 활동을 위해 필요한 시간을 내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목적을 가꾸는 것이 좋다. 다가오는 의로운 신세계에 대한 성서의 희망에 열심히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머지않아 식욕 이상을 초래하는 여러 가지 좌절을 이 땅에서 제거하시고 이 20세기 역병을 영원히 없애실 것이다.—베드로 후 3:13.
그러면 가족 중에 식욕 이상에 걸린 사람을 돕기 위해 부모 혹은 배우자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본지는 나중에 그 점을 다룰 것이다.
[각주]
a 일부 식욕 이상의 경우 문제의 핵심이 부모일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 역시 도움을 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교훈을 사적으로 베풀 때 자녀가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유지하기가 한결 쉬울 것이다. 부모는 그런 식으로, 회복하는 데 지속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b 본지 1989년 6월 1일 호에 실린 “체중을 줄이는 일은 승산 없는 싸움인가?” 기사 참조.
[10면 삽화]
사람의 가치가 외모에 있다는 세상의 선전을 배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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