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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상 과학물—인기 상승
    깨어라!—1995 | 12월 8일
    • 공상 과학물—인기 상승

      미국 영화 산업이 1982년에 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1982/3년도 최고 인기 영화 “연기자”는 결코 어떤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으로 본 영화사」(The Illustrated History of the Cinema)를 보면, 그것은 ET라는, 외계에서 온 괴상하면서도 귀여운 데가 있는 등장 인물로서, 영화 ‘외계인 ET’의 주연이었습니다!

      이 주목할 만한 사건은 공상 과학물(SF)이 근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한 가지 증거에 불과합니다. 한때는 값싼 잡지에나 실려, 남과 어울리지 않고 공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재밋거리로나 여겨지던 공상 과학물이 이제는 연예 오락의 주류를 이루는 한 분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극적 인기 상승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공상 과학물의 내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경탄이나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 또는 그저 재미삼아 공상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17, 18세기 중에 유럽은 과학·물질의 진보의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 관념과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부 사람들은 과학의 진보가 미래의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확히 누가 공상 과학물을 창안했느냐 하는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17세기 저술가인 프랜시스 고드윈과 시라노 드 베르즈라크는 우주 여행 이야기가 나오는 공상 소설을 썼습니다. 1818년,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는 생명 창조 능력을 가진 한 과학자를 묘사하면서 무서운 결과에 대해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일부 작가들은 이런 종류의 공상 소설을 이용해서 인간 사회의 단점을 부각시켰습니다. 그래서 조너선 스위프트는 18세기의 영국 사회를 풍자하여 그것을 일련의 공상 항해 소설로 엮어 냈습니다. 그 결과가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인데, 이는 신랄한 우의(寓意) 소설로서 공상 과학 소설의 “첫 문학 걸작”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작가 줄 베른과 H. G. 웰스가 공상 과학 소설을 현대 형태로 정착시킨 것으로 간주됩니다. 1865년에 베른은 「달 세계 여행」(From the Earth to the Moon)을 썼는데, 이는 성공을 거둔 일련의 소설 중 하나였습니다. 1895년에는 H. G. 웰스의 인기 소설 「타임 머신」이 나왔습니다.

      공상 소설이 현실로 되다

      1900년대 초, 과학자들은 이들 공상가들의 꿈을 일부 실현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위대한 자들」(Die Großen)이라는 책에 보면, 독일 물리학자 헤르만 오베르트는 줄 베른의 꿈인 유인 우주 여행을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면서 여러 해를 보냈습니다. 오베르트의 계산은 우주 여행에 과학적 기초를 놓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상 과학 소설의 영향을 받은 과학자는 오베르트뿐이 아니었습니다. 인기 공상 과학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베르너 폰 브라운과 독일에 있는 그의 동료들 그리고 휴스턴과 케이프케네디에 있는 모든 요원들은 H. G. 웰스와 줄 베른의 소설을 어렸을 적에 읽었다. 그들은 커서 그 모든 것을 실현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실로 공상 과학물은 여러 분야에서 혁신의 도약대였습니다. 저술가 르네 오트는 “공상 과학물이 사전에 예측하지 않은 발명이나 발견”은 거의 없다고 단언합니다. 잠수함이나 로봇, 유인 로켓은 출현하기 오래 전부터 하나같이 공상 과학 소설의 주요 소재였습니다. 따라서 공상 과학 작가 프레드릭 폴은 “공상 과학 소설을 읽는 것이 정신을 넓히는 길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모든 공상 과학물이 참으로 과학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인기 있는 공상 과학 서적이나 영화 중 일부는 사실상 일각에서 환상 과학물이라고 일컫는 형태에 속합니다. 과학적 가능성이 종종 공상 과학물의 특징인 반면, 환상 이야기는 그 저자의 상상에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마법과 마술이 한몫을 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공상 과학물은 미래를 얼마나 정확하게 내다봅니까? 모든 공상 과학물은 읽거나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다음 기사에서 이러한 점들을 다룰 것입니다.

      [3면 삽화]

      줄 베른의 소설 「달 세계 여행」은 우주 여행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3면 사진 자료 제공]

      Rocket Ship: General Research Division/The New York Public Library/Astor, Lenox and Tilden Foundations

  • 오늘날의 공상 과학물을 살펴봄
    깨어라!—1995 | 12월 8일
    • 오늘날의 공상 과학물을 살펴봄

      자동차, 전화, 컴퓨터—130년 전에 누가 이러한 것들의 발명을 예견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공상 과학(SF) 작가 줄 베른은 예견했던 것입니다! 깜짝 놀랄 이러한 과학적 통찰의 산물들이 최근에 찾아낸, 줄 베른의 「20세기의 파리」(Paris in the Twentieth Century)라는 제목의 소설 원고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발간된 적이 없는 이 소설에서, 심지어 베른은 현대의 팩스 장비와 놀랍게도 닮은 데가 있는 기계 장치를 묘사하였습니다!a

      그렇지만 가장 예리한 공상 과학 작가라 할지라도, 참다운 예언자의 경지에는 크게 못 미칩니다. 예를 들면, 줄 베른의 「땅속 탐험」(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은 읽기에는 흥미진진하지만 오늘날 과학자들은 그러한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누군가 과거에 언급했듯이, 2001년이면 목성이나 다른 행성으로의 유인 여행이 이루어지리라는 것도 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공상 과학 작가들은 실제로 이룩한 놀라운 과학적 발전 중 많은 것들을 예측하지 못하였습니다. 「월간 애틀랜틱」(The Atlantic Monthly)지에 실린 기사에서 공상 과학 작가 토마스 M. 디슈는 이러한 점을 인정하였습니다. “모든 SF가 사이버네틱스[컴퓨터] 시대 ·⁠·⁠· 온실 효과, 오존층 파괴 또는 에이즈에 대해 상상하지 못한 점을 고려해 보라. 새로운 지정학적 세력 불균형을 고려해 보라. 이 모든 일을 고려해 보고 나서 SF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지금까지 한 말이 무엇이 있었는지 질문해 보라. 거의 말 한마디 없었다.”

      공상 과학물—거대한 기업

      팬들에게 있어서 물론 공상 과학물은 딱딱한 과학이 아니라 오락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 가치를 오락적인 면에서조차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상 과학 소설이 삼류 문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판은 금세기 초에 공상 과학 소설을 전문으로 하는 값싼 잡지들의 출간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 중 맨 처음 나온 「놀라운 이야기」(Amazing Stories)라는 잡지는 1926년에 시판에 들어갔습니다. 그 잡지의 창간자인 휴고 건스백은 “공상 과학물”이라는 용어로 발전하게 된 단어를 만들어 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이들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모험담들은 설사 문학적 가치가 있다 해도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공상 과학 소설이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였습니다. 그 전쟁에서 과학은 극적인 역할을 수행한 끝에 새로운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공상 과학 작가들의 예측이 더욱 신빙성 있게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상 과학 만화, 잡지, 종이 표지 책들이 보급·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양장본 공상 과학 소설책들이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공상 과학 소설이 대중 시장의 수요를 감당하고자 안간힘을 쓰면서, 문학적 질—그리고 과학적 정확성—은 종종 희생됩니다. 공상 과학 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지금은 “읽을 만하고 웬만큼 재미있는 거라면 뭐든지” 출간되는데 그 중에는 “순리에 어긋나는 소설도 엄청나게 많”다고 개탄합니다. 게다가 여류 작가 어설라 K. 러 긴은 “형편없는 작품”까지도 인쇄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비평에도 불구하고 공상 과학물이 또다시 인기 절정에 달하였는데, 그것은 과학자들에게가 아니라 영화 산업으로부터 든든한 후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공상 과학물이 “은막”에 등장하다

      공상 과학 영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02년에 조지 마일레스가 영화 ‘달 세계 여행’을 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다음 세대의 젊은 영화 관객층은 ‘플래시 고든’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 1년 전인 1968년에 영화 ‘2001년: 우주 오디세이’가 예술적 인정을 받았으며 상업적 성공도 거두었습니다. 이제 할리우드는 막대한 예산을 공상 과학 영화에 배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와서는 ‘에이리언’, ‘스타 워즈’, ‘블레이드 러너’ 그리고 ‘외계인 ET’가 전 미국 매표소 수입금의 절반을 차지하였습니다. 참으로 공상 과학물 가운데서, 사상 최대의 히트 영화 중 하나인 ‘쥬라기 공원’이 나왔습니다. 그 영화와 함께 약 1000가지나 되는 ‘쥬라기 공원’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연하게도 TV 역시 시류에 편승하였습니다. 인기 연속극 ‘스타 트렉’에서는 외계에 관한 여러 가지 프로가 줄곧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렇긴 하나 많은 사람들 생각에, 일부 공상 과학 작가들은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키느라 공상 과학물에 있어서 가치의 척도가 되는 질을 희생하였습니다. 독일 저술가 카를 미카엘 아르머는, ‘공상 과학물은 이제 더 이상 내용이 아니라 판촉 기술에 의해서 정해지는 인기 상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늘날 공상 과학 영화의 진짜 “스타”는 사람이 아니라 특수 효과라고 개탄합니다. 한 평론가는 심지어, 공상 과학 영화에 “혐오스럽고 극악한 장면이 너무나도 많”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소위 공상 과학 영화라는 많은 영화는 실제로 과학이나 미래에 관한 내용이 전혀 아닙니다. 미래라는 배경 설정은 때때로 단지 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기 위한 배경으로 이용될 뿐입니다. 작가 노먼 스핀래드는, 요즈음 많은 공상 과학 이야기를 보면 누군가가 “총에 맞거나 찔리고 증발되고 레이저 무기로 살상되고 할큄을 당하고 먹히고 폭사당”한다고 진술합니다. 많은 영화에서는 이러한 상해 행위가 전율을 느끼도록 노골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우려할 만한 부면은 몇몇 환상 과학 서적이나 영화에 나타나는 초자연적 요소입니다. 일각에서는 그러한 이야기를 선과 악의 우의적(寓意的)인 싸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이러한 작품들 중 일부는 우의의 한계를 넘어서서 영매 행위를 조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균형 잡을 필요성

      물론 성서가 상상력을 발휘한 오락물 그 자체를 정죄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무들에 관한 요담의 우화를 보면, 의식이 없는 식물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심지어 음모와 계략을 꾸미는—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사 9:7-15) 예언자 이사야도 마찬가지로 상상적인 표현 기법을 사용해서 죽은 지 오래 된 국가 통치자들이 무덤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사야 14:9-11) 예수께서 사용하신 비유 중 일부에도 문자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가 16:23-31) 그처럼 상상력을 발휘한 표현 기법은 재미있을 뿐 아니라 교훈하고 가르치는 데도 기여하였습니다.

      오늘날 일부 작가들은 미래라는 배경을 이치적으로 설정해서 교훈이나 오락을 제공하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양심적인 그리스도인 독자들은 성서가 우리에게 순수하고 건전한 것들에 관심을 집중하도록 권면한다는 점을 유념합니다. (빌립보 4:8) 성서는 또한 “온 세상은 악한 자의 권세 안에 있다”는 사실도 생각나게 해줍니다. (요한 첫째 5:19) 일부 공상 과학 영화나 서적은 성서와 양립할 수 없는 사상이나 철학, 예컨대 진화·인간 불멸성·환생 등을 조장하는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철학과 헛된 속임수”의 먹이가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골로새 2:8) 따라서 당연히 공상 과학물을 조심해야 합니다. 모든 형태의 오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읽거나 보는 것에 대해 선택적이 되어야 합니다.—에베소 5:10.

      앞서 언급했듯이, 인기를 누리는 많은 영화는 폭력적입니다. 여호와에 대해,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까닭 없는 유혈 장면을 늘 보는 것을 그분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시 11:5) 그리고 성경에서 영매술을 정죄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마법이나 마술과 같은 것을 소재로 한 서적이나 영화를 대할 때 좋은 판단력을 나타내기 원할 것입니다. (신명 18:10) 또 한 가지 염두에 둘 점으로, 성인은 환상과 현실을 별 어려움 없이 구분할지 모르나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는 자녀가 읽고 보는 것으로 어떤 영향을 받는지 살펴야 합니다.b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다른 형태의 읽을 거리와 오락을 선호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이러한 면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개인이 선택할 문제에 대해 비평할 필요는 없습니다.—로마 14:4.

      반면에, 그리스도인이 가끔 기분 전환으로 다양한 소설을 즐기려고 한다면, 솔로몬의 이와 같은 경고를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책에 많이 몰두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전도 12:12, 「신세」 참조) 오늘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과도하게 공상 과학 서적과 영화에 몰두합니다. 공상 과학 동호회 및 대회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타임」지에 의하면, 오대륙의 ‘스타 트렉’ 팬들은 공상 언어인 클링온을 배우는 데 몰두하였습니다. 클링온은 ‘스타 트렉’ TV 프로와 영화에 나온 언어입니다. 그러한 극단적인 행동은 베드로 첫째 1:13에 나오는 성서의 이와 같은 교훈과 조화되지 않습니다. “온전히 정신을 차리십시오[“균형을 유지하십시오”, 「신세—참조주」 각주 참조].”

      아무리 뛰어난 공상 과학물이라도 장래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참으로 장래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확실한 근원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이 점을 다음 기사에서 논할 것입니다.

      [각주]

      a 베른은 “사진 전신(電信)이 어떤 글이나 서명, 도안의 장거리 모사 전송(模寫電送)을 가능케 하였다”고 묘사한다.—「뉴스위크」지 1994년 10월 10일자.

      b 「깨어라!」 1978년 6월 22일 호 “자녀에게 무슨 책을 읽혀야 하는가?” 기사 참조.

      [7면 삽화]

      부모는 자녀의 오락을 단속해야 한다

      [7면 삽화]

      그리스도인들은 공상 과학물을 대할 때 선택적이 되어야 한다

  • 미래에 대한 진정한 전망
    깨어라!—1995 | 12월 8일
    • 미래에 대한 진정한 전망

      많은 공상 과학 애호가들은 호기심이 많고 인간 사회의 변화를 염원하며 미래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성서에는 미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서의 견해는 공상 과학 작가들의 추측과는 비슷한 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공상 과학물은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하여 천차만별입니다. 그런데 독자는 그러한 것들 중 하나에 생명을 걸겠습니까? 어디에 선택의 근거를 두겠습니까? 이러한 시나리오 즉 사건 전개 예측들이 모두 사실일 수는 없습니다. 실은 전부가 다 추측 즉 공상을 내포하는데, 그중에 사실이 하나라도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닐 공산이 훨씬 더 큽니다.

      무위로 끝나고 있다

      이미 많은 공상 과학 시나리오가 무위로 끝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러합니까? 과학이 어떻게 이 곳 지상에 더 나은 문명으로 가는 길을 열 것인지를 다룬 시나리오들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진보된 문명은커녕, 오늘날의 실상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독일 작가 카를 미카엘 아르머는 “미래는 우리에게 절망적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지적하는 것으로 “세계적 핵참사 위협, 환경 재난, 기근, 가난, 에너지 위기 [그리고] 정부 주도하의 테러 행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수많은 공상 과학 이야기에 묘사된 땅과 인간 가족의 미래가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지상 상태가 악화되면서 인간이 처한 상황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과학이나 공학 기술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세계 도처에서 인간 사회는 점점 더 많은 범죄·폭력·가난·인종간의 증오·가정 파탄을 겪고 있습니다.

      과학적 노력이 인간의 고통을 상당히 가중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몇 가지 예만 고려해 봅시다. 우리의 공기와 물과 식품이 화학적으로 오염되었습니다. 인도 보팔의 재난에서는, 한 공장에 사고가 나서 독가스가 누출되는 바람에 2000명이 죽고 약 20만 명이 부상당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는 원자로 내부가 녹아 많은 사람이 죽고 암을 비롯한 건강 문제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증가하고 있습니다.

      외계의 식민지화?

      다수의 미래 공상 과학 이야기들은 지상에서의 비참한 생활과 인간 계획의 실패로부터 탈출할 길을 또 다른 방법으로 제시합니다. 애호가들의 관심을 외계에서의 가상 시나리오 쪽으로 돌립니다. 흔히 보게 되는 주제는 인간이 은하간(間) 우주선을 타고 가서 다른 행성과 우주의 다른 구역을 식민지화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뉴욕의 한 신문 편집인에게 편지한 사람과 같이 “인류의 미래는 우주 탐사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사실, 우주 탐사는 우주 왕복선의 지구 주변 비행과 우주 탐사 기구의 발사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계에서 사는 일은 어떠합니까? 유인 우주 비행을 확대하자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달이나 가까운 행성을 식민지화하려는 뚜렷한 추진 계획이 없습니다. 다른 은하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외계를 인간의 노력으로 식민지화한다는 것은 가까운 장래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닙니다. 그리고 최근 여러 나라에서는 우주 계획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그 계획을 축소하거나 포기하고 있습니다.

      실제 상황에서, 인류의 미래 즉 우리의 장래는 인간이 도모하는 우주 모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바로 이 곳 땅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미래는 과학자나 인간 정부나 대본 작가에 의해 좌우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토록 장담할 수 있습니까?

      미래는 이 땅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느님에 의해 결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공상 과학 시나리오도 성서에 제시된 약속들과는 상대가 안 됩니다. 그 책 즉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그분의 영감받은 말씀에서, 그분은 우리에게 인간의 미래 전망을 알려 주십니다. (디모데 둘째 3:16, 17; 베드로 둘째 1:20, 21) 어떠한 전망입니까?

      인간 가족의 미래

      하느님의 말씀이 명백히 밝혀 주는 창조주의 목적은 인간 사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수중에 있는 새 정부를 통해 완전히 개혁하는 것입니다. 성서에서는 그 하늘 정부를 하느님의 왕국이라고 부릅니다.—마태 6:9, 10.

      그 왕국에 대하여, 다니엘 2:44의 영감받은 예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오늘날 존재하는]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현존하는]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하느님의 강력한 활동력의 영감을 받아, 사도 베드로 역시 하느님의 왕국의 통치를 받는 지상에서의 미래 생활에 관해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약속대로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새 하늘[하느님의 하늘 왕국]과 새 땅[그 왕국의 통치를 받는 새로운 인간 사회]이 있으니, 거기에는 의가 깃들여 있을 것입니다.”—베드로 둘째 3:13.

      하느님의 하늘 왕국 통치 아래 땅에서 사는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까? 창조주의 약속은 이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죽음이 없고, 애통과 부르짖음과 고통도 더는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왕좌에 앉아 계신 분이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또한 그분은 말씀하신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여라.’”—계시 21:4, 5.

      창조주께서는 놀라운 미래를 약속하십니다. 그 미래는 공상 과학 작가나 과학자들이 내놓는 가공의 시나리오와는 전혀 다릅니다. 흔히 그러한 시나리오들은 기괴하고 환상적인 등장 인물과 배경으로 특색을 이룹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에 대한 하느님의 확실한 약속에 믿음을 둡니다. 아니,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약속에 생명을 겁니다.

      어떻게 그처럼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으므로 이 “희망은 실망에 이르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습니다. (디도 1:2; 로마 5:5; 히브리 6:18) 하느님의 종 여호수아가 오래 전에 이렇게 언명한 바와 같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느니라].”—여호수아 23:14.

      많은 공상 과학물은 이 악한 낡은 제도의 사조를 반영합니다. 어떻게 반영합니까? 공상 과학물은 이른바 계몽 시대에 탄생하였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은 기존 권위를 무시하고 인간이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사회 병폐의 큰 책임을 세속 종교에 돌린 것은 옳았지만, 그리고 나서 그들은 하느님의 존재와 목적에 대한 진리까지도 내던졌습니다. 그들은 세상 돌아가는 방식에 실망한 나머지 다른 사상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상은 아무리 잘 구상한다 해도 범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9.

      진정한 과학적 발견

      하느님의 신세계에서는, 지식에 대한 인류 본연의 갈망이 일부는 진정한 과학적 탐구로서 충족될 것입니다. 시나리오를 창작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실제 상황이 정신을 건전하고 사실적인 방법으로 매료하고 교육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은 유명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어떤 심정으로 자신을 가리켜 “진리라는 전인 미답의 거대한 대양이 펼쳐진 ·⁠·⁠· 바닷가에서 노는 소년”에 비유했는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하느님의 신세계에서 그분께서는 충실한 인간들을 지도하시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들이 하나하나 발견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과학 연구는 그 때 온전히 진리에 근거를 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인간의 지상 환경은 물론 동물의 세계에서도 배우라고 권하십니다. (시 31:5; 욥 12:7-9) 진리의 하느님의 지도를 받는 정직한 과학적 노력이 분명 하느님의 새 제도의 매혹적인 특징이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모든 발명과 발견 그리고 인간의 생활과 생활 수준의 놀라운 향상에 대한 영예가 어느 인간에게가 아니라 우주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느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급속히 다가오는 그 신세계에서, 모든 순종하는 인간은 사랑의 보살핌과 인도에 대해 하느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들은 크게 기뻐하며 그분을 섬길 것이며, 계시 4:11에 묘사된 것처럼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느님, 당신은 영광과 영예와 권세를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그것들은 당신의 뜻으로 말미암아 존재하였고 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9면 삽화]

      인류의 미래는 이 땅에 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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