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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에 알코올 중독자가 있을 때깨어라!—1992 |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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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에 알코올 중독자가 있을 때
“알코올 중독이 있는 곳에는 알코올 중독의 피해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 가족 중에 알코올 중독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온 가족이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한다.”—버논 E. 존슨 박사.
다섯 살 된 앨리스가 침대에 누워 있다. 아픈 다리가 욱신거린다. 이틀 전에 다친 것 때문에, 다리 전체에 깁스 붕대를 하였다. 그런데 깁스를 너무 꽉 끼게 한 탓에 압박을 받아 다리가 부어 올랐다. 앨리스는 의사에게 가자고 부모를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숙취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누구에게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였다.
며칠 만에 앨리스의 다리가 마비되었다. 거무스름한 진액이 발가락에서 떨어지기 시작하자, 다급해진 앨리스의 부모는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깁스를 풀었을 때, 한 간호사는 그 다리를 보고 실신하였다. 괴저(壞疽)로 인해 앨리스의 다리를 절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코올 중독과 공동 의존증
이 비참한 사건은 다리 하나를 잃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앨리스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래서 그는 딸이 아버지를 절실히 필요로 할 때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응할 수 없었다. “알코올 중독의 본질은 알코올 중독자가 가정을 맨 뒷자리—술과 술이 요구하는 모든 것 다음 자리—에 두지 않을 수 없게 한다”고 상담가 토비 라이스 드루스는 말한다.
앨리스의 어머니는 어떠한가? 어머니 역시 의존증이 있었는데, 알코올에 대한 의존증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에 대한 의존증이었다.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 배우자는 으레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게 하려고 혹은 적어도 중독자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에 대처하려고 안간힘을 쓴다.a 배우자는 알코올 중독자의 문제에 매우 깊이 관련되어 있어서, 똑같은—그러나 술과는 상관 없는—의존 성향을 분명히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앨리스의 어머니 같은 사람을 흔히 공동 의존자라고 부른다.
알코올 중독자와 공동 의존자 모두 본의 아니게 자신 이외의 사물 혹은 사람에 의해 제어된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현실을 부인하기 때문에 실상을 보지 못한다. 자녀에게 감정적으로 유익을 줄 수 없다. 양편 다 욕구 불만에 찬 생활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알코올 중독자가 음주를 제어할 수 없듯이, 공동 의존자는 알코올 중독자를 제어할 수 없으며, 양편 다 알코올 중독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와 그 가족을 위한 도움이 있다. 다음 기사에서 그 점을 살펴볼 것이다.
[각주]
a 본기사에서는 주로 남성 알코올 중독자의 경우를 다루지만, 여기에 언급된 원칙은 여성 알코올 중독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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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깨어라!—1992 |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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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그 다음은 술이 술을 마시고, 결국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동양 속담.
늪지대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갑자기 땅이 꺼진다. 순간 수렁에 빠진다. 빠져 나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 들어간다.
바로 이런 식으로 알코올 중독은 가족 전체를 수렁에 빠뜨린다. 공동 의존자인 아내는 사력을 다해 알코올 중독자를 변화시키려고 투쟁한다. 사랑이 동기가 되어 남편을 위협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술을 마신다. 술병을 감추면 더 많이 사온다. 돈을 감추면 친구에게 빌린다. 가족과 생명에 대한 사랑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호소해도 소용이 없다. 노력하면 할수록 가족 전체가 알코올 중독의 수렁에 더 깊이 빠져 들어간다. 알코올 중독자를 돕기 위해, 가족 성원은 먼저 알코올 중독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가족들은 일부 “해결책”이 왜 거의 틀림없이 실패하는지를 알아야 하며, 어떤 방법이 실제로 효과 있는지를 배워 알아야 한다.
알코올 중독은 단순한 술 취함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술에 탐닉하고 술 마시는 양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 음주 질환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질환이 치유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알코올 중독은 평생 금주 프로그램으로 저지할 수 있다.—비교 마태 5:29.
알코올 중독자의 상황은 어떤 면으로는 당뇨병 환자의 상황에 비할 수 있다. 당뇨병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당분을 멀리함으로써 몸에 협조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알코올 중독자는 음주에 대한 몸의 반응을 바꿀 수는 없지만, 완전히 금주함으로써 자신의 질환에 맞추어 노력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실천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알코올 중독자는 현실을 부인하기 때문에 사리 판단을 못한다. ‘나는 그렇게 나쁜 상태가 아니야.’ ‘가족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어요.’ ‘우리 사장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면서 술 안 마실 사람이 어디 있겠소?’ 흔히 정당화하는 말이 매우 그럴듯하게 들리기 때문에, 온 가족이 그런 부인 과정에 가담할지 모른다. ‘아버지는 일과를 마칠 때면 기분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단다.’ ‘아버지는 약주를 드셔야 해. 어머니의 끝없는 잔소리를 견뎌야 하니까.’ 가족은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절대 비밀로 한다. “이것은 그들이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 가정에는 거짓말, 변명, 비밀이 다반사다”라고 수전 포워드 박사는 설명한다.
가족 성원이 먼저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 전에는 알코올 중독자를 수렁에서 끌어낼 수 없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이지 내가 아녜요!’ 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당신의 감정과 행동은 알코올 중독자의 행동에 어느 정도로 얽매여 있는가? 알코올 중독자의 행동 때문에 당신이 화를 내거나 걱정하거나 낙담하거나 두려워하는 경우는 얼마나 자주 있는가? 보다 중요한 활동을 해야 하는 때인데도 알코올 중독자를 돌보느라 집에 있어야 하는 때는 몇 차례나 되는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 가족 성원들이 자신의 생활을 향상시키려고 조처를 취할 때, 알코올 중독자도 따라올 것이다.
책임 전가하는 말을 받아 주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잘해 준다면, 술을 마시지 않을텐데’라고 알코올 중독자가 말할지 모른다. “알코올 중독자는 당신이 그런 말을 곧이듣게 하여 음주에 대한 책임을 당신에게 떠넘기기를 바란다”고 상담가 토비 라이스 드루스는 말한다. 그런 말에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 알코올 중독자는 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부인하는 말을 믿어 주는 사람들에게도 의존한다. 그러므로 가족 성원들은 본의 아니게 알코올 중독자가 계속 술을 마시게 부추길 수 있다.
화를 내는 것에 관한 성서의 이러한 잠언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결과를 떠맡게 하라. 그를 한 번 고난에서 건져 주면, 또다시 건져 주어야 할 것이다.” (잠언 19:19, 「오늘날의 영어 역본」) 그렇다. 알코올 중독자로 하여금 고용주에게 전화를 걸고, 스스로 침대에서 일어나며, 자신이 토한 것을 치우게 해야 한다. 알코올 중독자를 위해 그런 일을 해주는 가족은 중독자가 술을 계속 마시다가 죽게 하는 것일 뿐이다.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족 성원이 스스로 수렁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어렵거나 심지어 불가능할지 모른다. 가족은 지원이 필요하다. 알코올 중독자가 나타내는 현실을 부인하는 태도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가족이 자기 입장을 고집하게 방관하지 않는 벗들을 굳게 의지하라.
알코올 중독자가 도움을 받기로 동의한다면 크게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회복 과정의 시작일 뿐이다. 술에 대한 신체적 의존증은 며칠 동안 해독시키면 저지될 수 있다. 그러나 심리적 의존증은 극복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5면 네모]
알코올 중독자의 특징
탐닉: 알코올 중독자는 술 마실 때를 애타게 기다린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술에 대해 생각한다.
제어력 상실: 아무리 단단히 결심해도, 본의 아니게 술을 마시기 일쑤다.
굳어진 태도: 알코올 중독자가 내세우는 방침(“혼자서는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 “근무중에는 결코 마시지 않는다”, 등등)은 실제 방침 곧 “내가 술 마시는 것을 아무 것도 방해할 수 없다”는 방침을 위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내성(耐性):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는’ 특이한 역량은 축복이 아니라 흔히 알코올 중독의 초기 징후다.
나쁜 결과: 정상적인 습관은 가정, 직장, 신체 건강을 망치지 않지만, 알코올 중독은 그런 결과를 초래한다.—잠언 23:29-35.
부인(否認): 알코올 중독자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핑계를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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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할 수 있다깨어라!—1992 |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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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할 수 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술을 끊고 회복하든지, 계속 마시다가 죽든지.”—회복중인 알코올 중독자.
밤에 자다가 갑자기 깨어 보니 집이 불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 후 도움을 줄 사람들이 도착하여 간신히 불을 껐다.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 있겠는가? 분명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집이 못쓰게 되었으므로, 다시 건축해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 역시 회복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그와 비슷한 도전에 직면한다. 그의 생활은 아마 여러 해 동안 술로 황폐되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금주를 하고 있다. “불”은 껐지만 알코올 중독자가 계속 금주자로 머물려면 태도, 생활 방식 및 행동을 대대적으로 다시 건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의 제안들은 알코올 중독자가 금주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1. 적을 알라
성서는 육적 욕망이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것이라고 언명한다. (베드로 전 2:11) 여기서 “싸우는”으로 번역된 희랍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군 복무를 하는”을 의미하며, 파괴적인 전쟁이라는 사상을 전달한다.—비교 로마 7:23-25.
훌륭한 군인이 시간을 내어 적의 전술을 연구하듯이, 알코올 중독자는 알코올 중독의 본질 그리고 알코올 중독이 알코올 중독자와 그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에 관한 지식을 터득해야 한다.a—히브리 5:14.
2. 음주 습관과 사고 방식을 바꾸라
“금주는 술병 그리고 갓난아이 같은 태도를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한 의사는 말한다. 달리 말하면, 음주 습관을 바꾸는 것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즉 속 사람도 바꾸어야 한다.
성서는 지혜롭게 훈계한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로마 12:2) “옛 사람[“성품”, 「신세」]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라.]” (골로새 3:9) 행동은 달라졌지만 성품이 그대로라면 알코올 중독자는 또 다른 해로운 의존 상태로 옮겨 가거나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3. 이해심 많은 벗을 얻으라
성서의 잠언은 이렇게 말한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잠언 18:1) 알코올 중독자는 금주 상태에 있을 때에도 쉽사리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심 많으면서도 확고한 벗(흔히 말하는 후원자)을 필요로 한다. 그런 벗 자신이 회복중인 알코올 중독자로서 금주 상태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처해 온 사람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비교 잠언 27:17) 그런 벗은 알코올 중독자의 종교적 신념을 존중할 것이며, 자기 희생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언제나 끊임없는 지원을 베풀 것이다.—잠언 17:17.
4. 참을성을 나타내라
회복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알코올 중독자가 생활을 다시 틀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경제적 압박, 직장의 긴장, 가정의 혼란이 있을지 모른다. 술에서 벗어난다고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회복중인 알코올 중독자는 처음에는 화학적 ‘해결사’ 없는 생활을 직면할 때 불안을 느낄지 모른다. 그런 불안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일 때, 회복중인 알코올 중독자는 시편 필자의 이런 위안이 되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5. 건전한 사람들과 교제하라
알코올 중독자는 정직하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내가 교제하는 사람들은 나의 금주 생활을 지지하는가, 아니면 끊임없이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여 내가 손해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가?’ 잠언 18:24(「공동번역」)은 이렇게 말한다. “친구를 망치는 사람도 있고 동기보다 가까운 벗도 있다.” 누가 진정한 벗이고 누가 해를 끼칠 벗인지를 구분하려면 지각력이 있어야 한다.
6. 과신을 피하라
“이제 거뜬하다. 더는 술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는 알코올 중독자는 회복 과정을 과대 평가하고, 알코올 중독을 과소 평가하는 것이다. 회복 초기의 들뜬 기분, 이른바 분홍빛 구름은 일시적이다. 「의지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Willpower’s Not Enough) 책은 이렇게 권한다. “균형 잡힌 지각력을 갖고자 노력하라. 이것이 없으면 다시 떨어질 위험이 있는데, 이번에는 뜬구름에서 한참 떨어질 것이다.”—비교 잠언 16:18.
7. 다른 중독을 경계하라
많은 사람은 술을 끊은 다음 식욕 이상이나 일 중독, 충동 강박성 도박 등의 증상을 나타낸다. 회복중인 알코올 중독자는 ‘해로울 것이 무엇인가? 적어도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라고 추리할지 모른다. 물론 어떤 신체 활동은 배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물질이나 활동이 감정을 마취시키는 데 사용될 경우 이것은 거짓되고 일시적인 안전감으로 유도할 뿐이다.
8. 가족의 새로운 역할에 자신을 맞추라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은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할 때, 회복 과정을 망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금주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는 익숙한 생활 양식에 마음이 끌릴지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는 정신이 맑아져도 가정에 소란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가족 성원 각자는 자신의 역할을 바꾸어야 한다. “가족의 행동 방식을 적은 대본을 전부 없애고 그 대신 새로운 대본을 짜야 한다”고 「온 가족의 회복」(Recovery for the Whole Family) 책자는 지적한다. 회복을 가족의 일이라고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비교 고린도 전 12:26.
9. 재발하지 않도록 경계하라
과신, 불건전한 교제, 다른 충동 강박 의식, 점점 고립되는 것은 재발하게 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이런 경향이 있으면 친한 벗과 터놓고 의사 소통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회복중인 한 알코올 중독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알코올 중독자는 음주를 중단한다. 다행히도 일부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 중단한다.”
[각주]
a 여러 치료 센터와 병원, 회복 프로그램들에서 그런 지식을 알려 줄 수 있다. 본지는 특정 치료법을 권하지 않는다. 성서 원칙에 따라 생활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성경의 원칙을 타협하는 활동에 가담하지 않으려고 조심할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파수대」 1983년 9월 1일 호 18-21면에서 도움이 되는 지침을 찾아볼 수 있다.
[7면 네모]
약이 꼭 필요할 경우에는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는 약은 무엇이든 술에 대한 갈망을 다시 일으켜, 재발하게 만들 수 있다.
제임스 W. 스미스 박사는 이렇게 기술한다. “알코올 중독 환자가 여러 해 동안 금주한 후에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는 감기약 시럽을 자가 처방으로 복용한 결과로 재발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알코올 중독자는 모든 진정제에 취약하다. 진정제가 꼭 필요한 경우 알코올 중독자는 이렇게 해야 한다.
1. 위험하지 않을지 약사에게 문의한다.
2. 친한 벗에게 알린다. 가능하다면 매번 복용하기 전에 연락한다.
3. 복용한 것을 모두 기록해 둔다.
4. 되도록이면 빨리 약을 끊는다.
5. 복용 기간이 끝난 것으로서 사용하지 않은 약은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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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자의 성인 자녀를 위한 도움깨어라!—1992 |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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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자의 성인 자녀를 위한 도움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그런 성장 과정에서 얻은 왜곡된 지식과 감정적 혼란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다.”—조지 W. 브룸 박사.
전쟁터에서 중상을 입고 쓰러진 군인이 피를 흘리고 있다. 신속히 도움을 베풀어 부상한 군인을 급히 병원으로 옮겼다. 군인은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문제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상처를 치료받아야 하며, 모진 시련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은 여러 해 동안 지속될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 어버이를 둔 자녀의 경우, 가정은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가 공격당하는 전쟁터와 비슷할 것이다. 일부 자녀는 성적으로 학대당한다. 신체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자녀도 있다. 많은 수의 자녀는 감정적으로 버림받는다. “그것은 집 주위에 폭탄이 떨어지거나 기관총이 발사되는 소리를 들을 때 어린아이가 느낄 수 있는 것과 똑같은 혹심한 공포”라고 한 청년은 어린 시절을 돌이키면서 말한다. 알코올 중독자의 자녀들 중에 퇴역 군인처럼 충격 후 긴장 증세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정신적 충격을 견뎌 내고, 때가 되어 집을 떠나는 자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자녀는 눈에 띄는 상처는 없을지라도 부상한 군인처럼 실제로 오래가는 상처를 지닌 채 성인이 된다. 글로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60세다. 그런데도 내 삶은 여전히 알코올 중독자 어버이가 있는 가정에서 태어난 것과 관련된 정신적 충격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성서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권한다. (로마 12:15) 그렇게 하려면, 흔히 알코올 중독자가 있는 환경에서 생활할 때 초래되는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
“내겐 어린 시절이 없었다”
자녀는 양육과 보살핌, 끊임없는 격려를 받을 필요가 있다. 알코올 중독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흔히 그런 관심이 부족하다. 어떤 경우에는 역할이 바뀌어 자녀가 부모를 보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앨버트는 열네 살 때 가족의 생계비를 벌었다! 잰이라는 소녀는 알코올 중독자인 어버이를 대신하여 집안 일을 다하였다. 또한 동생들을 도맡아 돌보았다. 이 모든 일을 겨우 여섯 살 때 시작하였다!
어린이는 성인이 아니다. 그리고 결코 성인처럼 활동할 수 없다. 어버이와 자녀의 역할이 뒤바뀔 때, 오늘 성인 같은 자녀는 내일 미숙한 어른이 된다. (비교 에베소 6:4) 가정 문제 상담가인 존 브래드쇼는 이렇게 기술한다. “그들의 몸은 성인으로 자란다. 성인처럼 보이고, 성인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들 속에는 자신의 필요를 결코 충족시켜 보지 못한 욕구 불만의 어린이가 있다.” 그런 자녀는 이렇게 말한 한 그리스도인처럼 느낄지 모른다. “나는 어렸을 때 가장 기본적인 감정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은 결과로 아직도 끝없는 아픔을 겪는다.”
“분명히 내 잘못이다”
로버트가 13세 때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하였다.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지요.” 로버트는 눈을 내리깔고 상기한다.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나쁜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로버트는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러 해 동안 그러하였다. 위와 같은 말을 할 당시 로버트는 74세였다!
자녀가 어버이의 알코올 중독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자녀는 자책감으로 인해 자기가 그 상황을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재니스가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다. “내가 더 착한 아이였더라면 아버지가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실은 어떤 자녀—혹은 성인—도 다른 사람에게 음주 문제를 일으키거나 그 문제를 제어하거나 치유할 수 없다. 알코올 중독자 어버이를 둔 자녀가 무슨 말을 듣든지 혹은 누가 무슨 암시를 주든지 간에, 자녀에게는 결코 책임이 없다! 그리고 그런 자녀는 성인으로서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행실에 대해 부당하게 책임을 느끼지 않는지 주의 깊이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비교 로마 14:12; 빌립보 2:12.
“아무도 신뢰할 수 없다”
신뢰의 기초는 솔직하고 정직한 태도다. 알코올 중독 환경의 기초는 숨기고 부인하는 태도다.
세라는 소녀 시절에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기억을 떠올린다. “가족 중 아무도 그 단어를 입 밖에 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단어를 생각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수전도 비슷한 경험을 말한다. “가족 중 아무도 벌어지는 일에 대해, 자신들이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해 혹은 [알코올 중독자인 의붓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일부러 무시하였던 것 같다.” 어버이가 알코올 중독에 걸린 현실을 종종 그런 식으로 부인하고 감춘다. “볼 것을 충분히 보았기 때문에, 보지 않는 법을 터득했다”고 수전은 말한다.
알코올 중독자의 변덕스런 행동 때문에 신뢰가 더 무너진다. 알코올 중독자는 어제는 기분이 좋았다가 오늘은 화를 낸다. “언제 폭풍이 몰아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고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를 둔 성인 자녀 마틴은 말한다. 알코올 중독자는 약속을 어긴다. 부주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술 때문이다. 클로디아 블랙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술 마시는 데 몰두하는 것이 알코올 중독자에게 첫째 자리를 차지한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둘째다.”
“내 감정을 숨긴다”
자녀는 감정적 위로를 받을 수 없을 때, 감정을 억누르는 법을 배운다. 그런 자녀는 “속은 상해 있으면서도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학교에 간다고 「성인 자녀—기능 장애 가정의 비밀」(Adult Children—The Secrets of Dysfunctional Families) 책은 말한다. 그런 자녀는 가정의 비밀이 탄로날까봐 감히 생각을 털어놓지 않는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 속으로는 억눌린 감정이 끓어오른다.
어른이 되어서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표정으로 감정을 억누르려는 어떤 시도도 대개 실패한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면, 몸에서 나타난다. 즉 궤양, 만성 두통 등으로 나타난다. 셜리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이 실제로 나를 좀먹고 있었다. 병이란 병은 모두 걸려 있었다.” 티멘 서맥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성인 자녀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속일 수 없다. ··· 여러 해 동안 잔뜩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이 곤두선 채 지낸 몸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견뎌 내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알코올 중독자의 성인 자녀는 강인하다. 그들이 어릴 때 겪은 정신적 충격을 견뎌 낸 것을 볼 때,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견뎌 내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가족 관계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배워야 한다. 죄책감, 분노, 열등 의식을 해소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의 성인 자녀는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성서에서 말하는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에베소 4:23, 24; 골로새 3:9, 10.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알코올 중독자의 성인 자녀 리로이는 자신의 가정에 성서 원칙을 적용하려고 20년 동안 투쟁하였다. “협회의 「가정」 책과 여러 출판물에서 온갖 인자한 교훈을 받았지만, 개념을 파악할 수 없었다.a 그 결과 그 지식을 별로 적용하지 못하였다. ··· 나는 느낌도 없이, 바리새인들처럼 기계적으로 법칙을 발견하여 적용하려고 하였다.”—참조 마태 23:23, 24.
리로이와 같은 사람에게는 “좀더 사랑을 나타내라”, “의사 소통을 하라”, 혹은 “자녀를 징계하라”는 단순한 권고가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성인 자녀가 그런 특성이나 기술을 체험해 본 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것을 표현하거나 본받을 수 있겠는가? 리로이는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의 영향을 이해하려고 상담을 하였다. 이것은 영적 발전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에서 매우 고통스런 시기지만 영적으로 훌륭하게 성장하는 때다. 난생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실제로 정확하게 알기 시작하는 것 같다.”—요한 1서 5:3.
셰릴이라는 그리스도인 여자는 가정 내의 알코올 중독 문제에 경험이 많은 한 사회 사업 종사자의 도움으로 유익을 얻었다. 그는 또한 감정 이입을 하는 장로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수치스런 비밀을 다 털어놓은 후에야 비로소 여호와와 내 자신과 더불어 평화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여호와를 나의 아버지로 (이전에는 결코 가질 수 없던 느낌으로) 보며, 더는 이 곳 땅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내가 필요로 했던 사랑과 인도를 받지 못한 것을 속았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자의 성인 딸 에이미는 “성령의 열매”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됨을 알게 되었다. (갈라디아 5:22, 23) 그는 또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이해심 많은 장로에게 털어놓는 법도 알게 되었다. 에이미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내가 실제로 구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승인임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그분들의 사랑과 승인을 구하는 것은 결코 자멸을 초래하지 않는다.”
완치
성서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약속 곧 염려거리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분께 오면 새 힘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 기록되어 있다. (마태 11:28-30) 그에 더하여, 여호와는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으로 불린다. (고린도 후 1:3, 4) 모리나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나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결코 버리지 않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성서에서 마지막 날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마지막 날에는 많은 사람이—심지어 가정에서도—‘학대하고 혈육간의 애정이 없으며 사나울 것’이다. (디모데 후 3:2, 3, 「신영서 성서」 참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머지않아 평화로운 신세계를 가져오실 것임을 약속하신다. 그 곳에서 그분은 모든 눈물과 슬픔을 씻어 주실 것이다. (계시 21:4, 5)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자란 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가 신세계로 함께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여호와께서만 베푸실 수 있는 완전한 치료를 받을 것입니다.”
한 가지 사례
“나는 알코올 중독자의 성인 자녀다. 아버지는 내가 여덟 살 때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난폭해졌다. 가족 전체가 느낀 공포를 기억한다.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야 할 때에 감정, 소원, 욕망, 희망을 묻어 버리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버지 문제에 매달리느라 나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나는 부모의 시간을 얻을 만한 처지가 못 되었다. 나는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덟 살 때 내게 맡겨진 역할로 인해 더는 어린이 노릇을 할 수 없었다. 갑작스레 어른이 되어 가족의 의무를 떠맡아야 했다. 내 삶은 보류되었다.
“아버지의 행동은 몹시 수치스러운 것이었으므로, 나까지 그 수치를 느꼈다. 조금이나마 씻어 보려고, 완벽해지고자 노력하였다. 조건 없는 사랑의 가치를 전혀 느끼지 못한 채 계속 사랑을 사려고 노력하였다. 내 삶은 얼어붙은 감정으로 꾸려가는 연극이 되었다. 여러 해 후 남편과 자녀는 내가 로봇처럼 기계적이라고 말하였다. 30년 동안 나는 가족을 위해 종 노릇을 하였으며, 가족의 필요를 위해 나의 감정적 필요를 희생하고, 언제나 부모에게 한 것처럼 가족에게 하였다. 그러면 이것은 나의 애정의 표시였는가? 근본적으로는 상처 때문이었다!
“나는 분노, 혼란, 절망 속에서 내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아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자란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속에 억눌려 있던 감정이 마구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전에는 결코 기억나지 않던 것, 사람을 약하게 하는 우울증을 수시로 일으킨 감정이다. 이것은 짐을 벗어 버리는 것 같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자란 정신적 충격을 다른 사람들이 함께 나누고 이해해 주었을 때 참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알코올 중독자의 성인 자녀회라는 그룹을 찾아갔으며, 그들의 치료법을 몇 가지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지침서들은 왜곡된 견해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가외의 느낌, 수년 동안 묻혀 있던 느낌을 캐내려고 일기를 썼다. 스스로 돕기 테이프도 들었다. 알코올 중독자의 성인 자녀가 나오는 TV 토론회를 보았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의과 대학에서 발행한 「상쾌한 느낌」(Feeling Good) 책은 자중심을 세워 나가고 뒤틀린 사고 방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새 사고 방식은 삶과 인간 관계에 대처하는 도구 곧 좌우명이 되었다. 내가 배우고 적용한 좌우명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난 일을 어떻게 보느냐 혹은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다. 감정을 속에서 응어리지게 할 것이 아니라 자세히 검토하여 건설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해소해야 한다. 또 다른 좌우명은 “올바른 사고 방식에 도움이 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반복되는 행동은 두뇌 작용을 새롭게 형성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다. 성서와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 그리고 장로들과 장성한 증인들을 통하여 최상의 영적 치료를 받았다. 자신을 올바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 알았다. 또한 나 자신은 개성을 지닌 독특한 인격체이며, 우주에는 나와 똑같은 존재가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호와께서 나를 사랑하시며,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죽으셨음을 알고 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나는 70퍼센트 정도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완치는 오직 여호와의 의로운 신세계가 현 악한 세상과 그 신인 사단 마귀를 대치하고 들어섰을 때 있을 것이다.”
결론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찌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잠언 20:5) 돕는 사람이 우울한 사람의 마음의 깊은 물에서 괴롭히는 것을 길어내는 데 성공하려면 명철해야 한다. 명철한 “모사가 많으면” 크나큰 가치가 있다. (잠언 11:14) 다음의 잠언은 또한 다른 사람의 교훈을 구하는 것의 가치를 보여 준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잠언 27:17)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의사 소통을 할 때, “서로 격려를 받”을 수 있다. (로마 1:12, 「새번역」) 그리고 “우울한 영혼들에게 위안의 말”을 하라는 성서의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 위안을 베푸는 사람은 위안을 받아야 할 사람을 괴롭히는 우울증의 원인을 알고 그와 관련된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데살로니가 전 5:14, 「신세」.
[각주]
a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길」, 사단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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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자의 자녀들 중에는 퇴역 군인처럼 충격 후 긴장 증세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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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 환경의 기초는 숨기고 부인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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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은 상해 있으면서도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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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여호와를 나의 아버지로 (이전에는 결코 가질 수 없던 느낌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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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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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실제로 나를 좀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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