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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롱거리는 행동—옳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 깨어라!—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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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8
깨98 7/8 20-22면

성서의 견해

새롱거리는 행동—옳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새롱거리는 것을 왜 남의 감정을 희롱하고 기만하는 나쁜 행동으로 생각하는가? 새롱거리는 것은 그러한 행동이 아니다! 일종의 유희다! 그것도 양쪽에게 유익한 유희다.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기 때문이다.”—뉴욕 시 연애 교습소 원장, 수잔 래빈.

새롱거리는 것을 정상적이고 무해한 행동으로, 심지어 대인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행동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새롱거리는 기술”에 포함되는 몸짓, 자세, 눈짓, 시선 등에 관해 가르치는 서적, 잡지 기사, 특별 강습이 최근에 급증하고 있습니다.

새롱거리는 행동이란 무엇입니까? 그에 관한 정의와 설명은 다양합니다. 한 사전에서는 “경박하게 성적 매력을 풍기는 또는 성적으로 유혹하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또 다른 사전에서는 새롱거리는 행동이란 “진지한 의사도 없으면서 성적 매력을 풍기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따라서 새롱거리는 사람이란 결혼할 의사도 없으면서 낭만적인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새롱거리는 것을 해롭지 않은 행동으로 간주해야 합니까? 새롱거리는 행동에 대한 성서의 견해는 무엇입니까?a

성경에 새롱거린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견해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이 문제와 관련 있는 성서 원칙들을 조사해 봄으로써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하도록 지각력”을 발전시키게 됩니다. (히브리 5:14) 우선, 결혼한 사람들의 경우 새롱거리는 것이 적절한 행위인지를 고려해 봅시다.

기혼자의 경우

부부 사이에 사적으로 성적 매력을 풍기는 행동을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비교 창세 26:8) 하지만 결혼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하느님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여호와의 목적은 부부가 친밀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창세 2:24; 에베소 5:21-33) 그분은 결혼을 신성하고 영속적인 결합으로 보십니다. 말라기 2:16은 하느님이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신다고 알려 줍니다.b

기혼자가 새롱거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결혼에 대한 하느님의 견해와 조화됩니까? 기혼자가 새롱거리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하느님의 결혼 마련의 신성함을 경멸하는 것이 됩니다. 게다가 에베소 5:33은 그리스도인 남편에게 “자기를 사랑하듯 자기 아내를 사랑”할 것을 명하며, 아내에게는 “남편에 대하여 깊은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명합니다. 새롱거리는 행동은 질투를 유발하는데, 그러한 행동이 배우자에 대하여 사랑과 존경심을 나타내는 것이 됩니까?

한층 더 심각한 사실은, 새롱거리는 행동으로 인해 결국 간음을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간음은 여호와께서 가차없이 정죄하시며 배신 행위로 간주하시는 죄입니다. (출애굽 20:14; 레위 20:10; 말라기 2:14, 15; 마가 10:17-19) 실로, 여호와께서는 간음을 매우 심각한 죄로 여기시기 때문에, 배우자의 불충실한 행실로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이혼을 허용하시기까지 합니다. (마태 5:32)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새롱거리는 행동과 같은 매우 위험한 유희를 용납하실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까? 사랑이 많은 부모라면 어린 자녀가 예리한 식칼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듯이, 하느님께서도 새롱거리는 행동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간음에 관하여 성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 (잠언 6:27-29) 설령 새롱거리는 행동을 하는 기혼자가 간음을 결코 범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는 또 다른 위험을 자초하게 되는데, 이른바 “연애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연애 감정

성적 접촉은 없지만 낭만적인 감정이 자라는 관계를 결혼 테두리 밖에서 발전시켜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여자를 계속 바라보고 정욕을 품는 사람은 자기 마음으로 이미 그 여자와 간음한 것입니다.” (마태 5:28) 예수께서 정욕이 마음에 머무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마음에서 간음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태 15:19) 그러한 관계는 간음을 범하기 직전까지 발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해로운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이 문제를 다룬 한 책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배우자와의 생활에서 시간과 활력을 지나치게 빼앗는 활동이나 관계는 어느 것이든 일종의 불충실이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연애 감정은 자기 배우자에게 기울여야 할 시간과 관심과 애정을 빼앗아 갑니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의 명령에 비추어 볼 때, 새롱거리는 경향이 있는 기혼자는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내 배우자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내 감정은 어떠할 것인가?’—잠언 5:15-23; 마태 7:12.

어떤 사람이 이같이 합당하지 않은 감정적인 유대를 이미 맺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당한 감정적 애착을 느끼고 있는 기혼자는 졸면서 운전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온전히 깨닫고 결혼 생활 및 하느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기 전에 즉각적으로 단호한 조처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눈이나 손처럼 귀중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하느님 앞에서의 좋은 신분을 망치고 있다면 그것을 뽑아 버리거나 잘라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과감한 조처를 취할 필요성이 있음을 예시하신 것입니다.—마태 5:29, 30.

그러므로 상대방을 대면하는 장소나 횟수를 제한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그 사람과 단 둘이 있는 환경을 반드시 피해야 하며, 직장에서라도 대화를 가려서 해야 합니다. 심지어 그 사람과의 접촉을 완전히 끊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후에 자신의 시선, 생각, 감정, 행위에 대해 엄격히 자제를 행사해야 합니다. (창세 39:7-12; 시 19:14; 잠언 4:23; 데살로니가 첫째 4:4-6) 기혼자인 욥은 탁월한 모범을 세웠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욥 31:1.

분명히, 기혼자가 새롱거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위험하며 비성경적입니다. 하지만 독신인 사람들 사이의 새롱거리는 행동에 대한 성서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그러한 행동은 정상적이고 무해하며, 이성과의 관계를 확립하는 데 필요하기도 하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그로 인해 실제로 어떤 해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미혼자들은 어떠한가?

독신인 두 사람이 결혼을 계획하고 있고 불결한 행실을 피한다면 서로 낭만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데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갈라디아 5:19-21) 구애 기간 초기에 아직은 결혼 가능성이 희박할 때 이러한 낭만적인 관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그 의도가 좋은 것이라면 반드시 부당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상 이러한 행위는 새롱거리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독신자들이 단지 재미삼아 서로 낭만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어떠합니까? 그들이 미혼이기 때문에 해로워 보이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상처가 생길 가능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새롱거리는 사람이 취하는 태도가 그 사람이 의도했던 것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때, 그로 인해 대단히 큰 아픔과 마음의 고통이 생길 수 있습니다.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라는 잠언 13:12의 말씀은 참으로 매우 참됩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 대해 진지한 관심이 없음을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할지라도,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이 실제로 어떠한지를 두 사람 중 어느 쪽인들 확실히 알 수 있겠습니까? 성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예레미야 17:9; 비교 빌립보 2:4.

또한 음행을 범할 위험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음행에는 질병이나 사생아 임신이 뒤따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음행은 성경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고의로 음행을 거듭 행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혜를 상실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유혹을 저항하려면 ‘음행과 관련하여 몸의 지체를 죽’이고 음행으로 인도하는 “탐욕적인 성욕”을 멀리해야 한다고 지혜롭게 경고하였습니다. (골로새 3:5; 데살로니가 첫째 4:3-5) 에베소 5:3에서, 바울은 음행을 “언급도 하지 [말라]”고 즉 그릇된 욕망을 부추기는 식으로 언급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새롱거리는 행동은 이 교훈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심지어 성에 관한 불건전한 대화까지도 금하신 것입니다.

성서 원칙들을 보면, 새롱거리는 행동은 동료 인간에게 잔인한 짓이 될 수 있으며 결혼의 창시자이신 여호와께 불경을 나타내는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당하게 새롱거리는 행동에 관한 성서의 견해는 사람들이 해를 입지 않게 보호해 주기 때문에 분명히 사랑에 찬 합리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부당하게 새롱거리는 행동을 하지 않으며, 이성을 순결하게 존경심을 가지고 대합니다.—디모데 첫째 2:9, 10; 5:1, 2.

[각주]

a 새롱거리는 행동을 성적 매력을 풍기려는 동기가 전혀 없는, 우정적이거나 사교적인 행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b 본지 1994년 2월 15일 호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혼을 미워하시는가?” 기사 참조.

[20면 사진 자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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